시드니인문학교실 : 홍길복 목사의 ‘잡기장과 라틴어 인문학’ 중에서
절대를 찾아서 1 / 절대를 찾아서 2 / 이럴 때 Homeless들은 어떻게 살까? / 종교들 사이에 평화가 없이는 / 제 모습을 비쳐봅니다

만나 뵙고 싶은 우리 인문학 친구 여러분들께 오랜만에 문안의 인사를 드립니다.
시드니 광역권에 Lockdown이 계속되고 있는 중, 많이 힘들고, 어렵고, 불편한 데다 또 불안하기까지 한데 하루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고 계시는지요?
원래 우리는 오는 8월 5일, 목요일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었는데 현재로서는 어찌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부디 주정부의 여러 제한조치들이 힘들고 어렵기는해도 잘 참고 견디시어 강건하게 이겨내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우리 중 가장 어른이신 김삼오 박사님을 위시한 연세 높으신 분들과 믿음과 의지로 투병 중이신 이기영 선생님께 엄지척을 들어 화이팅을 보내드립니다.
저는 오늘 아침부터 우리 단톡방에 지난해 코로나 중에 나누어왔던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을 다시 이어가볼까 합니다. 별것 아닌 작은 몸짖이지만 이런 것을 통해서라도 우리 인문학 친구들 사이가 소원해 지거나 단절되지 않고 connect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mei socci !
감사합니다.
홍길복 드림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16) _ 2021년 7월 19일
‘절대를 찾아서’ (1)
다음은 윌프레드 세시저 (Wilfred Thesiger)가 쓴 ‘절대를 찾아서’를 읽던 중 밑줄을 친 것 가운데 몇 귀절입니다. 원래의 책 제목은 Arabian Sands 데 이 책은 세시저가 1945년 부터 5년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아라비아 사막을 여행한 여행기입니다.

* 거대한 사막에는 오만한 현대문명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절대문명이 숨 쉬고 있다.
* 베두인 (Beduin)들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낙타와 함께 살아가는 유목민이다. 그런데 그들은 인간에게 닥쳐오는 그 어떤 고난이나 결핍도 인간이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고난이나 결핍이란 그대로 받아드려야 하고, 또 받아들이는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 베두인들은 인내심이나 관대함이 부족한 사람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 베두인들은 사막에선 늘 모래로 손을 씻는다. 변을 본 후에도 모래로 밑을 닦는다.
* 베두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지 않는다. 동시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것 역시 전혀 잘한 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나눔이란 당연한 것이지 절대로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 베두인들은 손님을 배불리 먹이지 않고 그냥 돌려보내는 것은 범죄행위라고 생각한다.
* 베두인들은 사막을 여행 중 먼저 우물에 도착했다고 해서, 먼저 물을 마시는 자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지막 일행이 다 도착하면 제일 마지막으로 도착한 사람부터 물을 마신다.
* 아라비아 사막의 동반자 빌 카비나가 말했다.
‘저 노인은 아주 유명인사입니다’
내가 물었다. ‘뭘로 유명한데요?’
그가 대답했다. ‘후한 인심으로요!’
* 로렌스가 외쳤다. ‘이건 자스민이고 저건 제비꽃이고 저건 장미군요! 이리 와서 냄새 좀 맡아보세요.’ 한 베두인이 말했다. ‘이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냄새예요!’ 로렌스가 물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냄새는 뭔데요?’ 그러자 그 베두인이 대답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냄새 – 그건 아무 냄새도 없는 냄새예요!’ (계속)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17) _ 7월 20일
‘절대를 찾아서’ (2)
* 베두인들은 낙타를 ‘알라의 선물’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낙타를 그리 부르는 것은 ‘낙타는 이 세상에서 최대의 인내심을 지닌 동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두인들은 낙타를 사랑하는 정도를 지나 존경한다.
* 베두인들은 낙타의 발자국만 보아도, 그것이 어떤 종류의 낙타이니, 몇살이나 되었는지, 어른낙타인지 새끼낙타인지, 사람이 타고 간 낙타인지 혼자 걸어간 낙타인지 다 알아낸다. 베두인들은 낙타의 발자국이나 똥만 보아도, 그 낙타가 어느 부족에 속한 낙타인지, 언제 먹이를 먹었고 물을 마셨는지를 다 알수있다. 우리가 자동차를 보면 한국산인지, 일제이니, 미제인지를 구별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그들은 낙타 한 마리 한 마리를 다 구별해 낸다.

* 베두인들은 사람의 얼굴 보다 낙타의 얼굴을 더 잘 알아본다.
* 모든 낙타는 자기 자신이 죽는 그 마지막 순간 까지도 죽을 것 같은 조짐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인간들은 거개가 죽음 앞에서는 고통스러워하거나 당황해 하는데, 낙타는 죽어도 그냥 죽지, 안달하다가 죽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낙타가 인간 보다 위대한 점이라고 여겨 베두인들도 낙타처럼 말없이 조용히 죽는 것을 좋아한다.
* 베두인들은 좀처럼 빨리 걷지 않는다. 사막생활에서의 경험을 통하여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빨리 걸으면 반드시 빨리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주어진 인생의 속도가 있다. 무리하지 말아야한다. 자신의 속도에 따라 천천히 가야 이 사막 같은 인생길을 통과 할수 있다.
* 베두인들은 자신이 남들에게 탐스럽게 보이는 것을 최대의 수치로 여긴다.
* 베두인들은 그들의 삶 속에 고난이 있다는 것을 최고의 축복으로 여긴다. 그들은 편리하게 사는 것 보다 고통에 개의치 않고 사는 것을 인생의 진정한 가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 베두인들은 늘 인생살이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최악의 고통 속에서도 앞으로 닥쳐올 고난에 비하면 지금 당하는 어려움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심지어 그들은 죽으면서 까지도 아직 더 남은 아픔이 있다고 말한다.
* 베두인들은 자기들은 굶는 한이 있어도 손님을 극진히 대접한다. 손님이 떠나가고 나면 몇일을 굶어야하는 데도 잘 대접한다. 그리고 그 손님이 떠날 때는 무엇이든 손에 들려서 보내고, 그 동안 우리 집에 머물러 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한다.
* 베두인들은 날씨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언제 구름이 낄지, 바람이 불어올지, 비가 올지, 해가 날지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천기는 알라의 영역에 속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양 사람들이 방송을 통하여 ‘일기예보’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크게 소리쳤다. ‘그건 참 무서운 신성모독입니다’ (요즘 우리는 잘 압니다. 아무리 몇주 후, 혹은 몇달 후 장기 일기 예보를 해도 왜 이 세계는 폭염, 혹한, 산불, 빙하는 녹고, 기상은 예측할 수 없이 지구를 위협하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일기예보하면 뭐합니까? 탐심예보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 베두인들이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을 싫어하는 것은 그들의 종교가 싫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서구의 자본주의와 한편이 되어 평화의 땅 아라비아 사막을 파괴하고 고요함이 깃든 땅에 고속도로를 높고 도시를 건설하고 사막에서 석유를 퍼내어 그들의 오래된 공동체와 전통과 가치를 파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50년 이후 미국과 영국이 석유회사들을 앞세워 사우디 아라비아에 유전을 개발하고 고속도로와 도시건설을 하기 이전’ 세시저가 5년동안 수 차례에 걸쳐 아라비아 사막을 탐사하면서 쓴 책입니다).
*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왜 베두인들은 사막을 좋아하고 사막에서 삽니까? 그들도 이젠 그 힘든 사막을 벗어나 물질문명이 주는 안전과 평안을 얻도록 도와야하지 않을까요?’ 그럴 때마다 나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아닙니다. 인생길은 어디나 다 사막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의 사막에서 살고 어떤 이들은 인간사막에서 살고 또 어떤 이들은 문명이란 사막에서 살 뿐이지, 모두 다 사막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베두인들은 아주 일찍부터 아라비아 사막이 자유, 평화, 인내, 관용, 용기, 그리고 사랑을 나누게하는 곳으로 사막 중에서 가장 좋은 사막, 뉴욕이라는 사막, 런던이나 시드니라는 사막 보다는 훨씬 나은 사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 (우리 인문학친구들과 혹시 상황이 좋아진다면, 2023년이나 2024년 쯤, 제 2차 인문학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이스라엘, 이집트, 그리고 요르단을 예정하고 있는데, 그때 우리는 요르단의 페트라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우디와의 국경지대 사우디 사막에 가서 베두인텐트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사막의 모래와 하늘의 별들과 같이 놀아보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이 답답함 속에서 선착순 지원자들을 한번 받아볼까요? 손들어 주세요. 선착순 30명 – 웃느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18)
이럴 때 Homeless들은 어떻게 살까?
코로나 펜데믹이 수그러들기는 고사하고 그 변종으로 인하여 이전 보다 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마침내 저희들이 살고 있는 뉴 사우스 웨일즈 주정부는 광역 시드니 지역에 봉쇄조치인 Lockdown을 선포했습니다. 일상생활에 여러가지 제한과 규제가 발표되었습니다. 주총리는 우리들에게 “제발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소연을 하면서 “Stay at home”을 연일 당부합니다. “Stay at home Order”라는 행정명령이 발표되었을 때, 제 머리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이럴 때 집없는 사람들 Homeless들은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락다운이 되고 이런 저런 불편한 것들이 있기는 해도 그래도 안락하게 머무르셔 있는 집이 있는데 그 나마 stay 할 수 있는 방 한칸도 없는 홈리스들은 어떻게 살아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마음이 쓰여지고 많이 아팠습니다. 자주 지나다니던 슈퍼나 은행 앞에 거죽을 깔고 누워있거나 동냥을 하던 홈리스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어느날 같이 가던 동료 은퇴목사님이 지갑을 열고 가지고 있던 현찰 300불을 몽땅 주시던 모습도 다시 보여졌습니다. ‘목사님 아무리 불쌍하고 그건 너무 큰 돈이네요’라고 말했던 내 까칠한 태도도 연상이 되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2016년 인구 census에는 전 호주에 집없이 사는 homeless가 11만 6천명이었습니다. 다음 달 census에선 많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현재 시드니에는 9,385명의 홈리스들이 Australia care, World vision같은 사회봉사 기관이나, Anglican, Baptist, Uniting, Catholic 같은 기독교 봉사기관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19)
종교들 사이에 평화가 없이는

일본 와세다 대학의 박상준 교수가 쓴 ‘일본 불교 사찰의 마리아 관음상’이란 칼럼에서 읽은 글입니다. 일본말로 ‘가쿠레 기리시단’이란 말은 ‘숨은 크리스챤’이란 뜻이랍니다.
일본에선 16세기 예수회선교사들에 의해서 기독교가 들어온 후 크게 퍼져나갔는데, 그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들어서면서 기독교를 극심하게 박해하고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환란을 피하여 산속으로 숨어들었는데,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산중에 있던 절에도 들어가 몸을 숨기며 신앙을 지켰는데, 그들은 그 절에다 마리아상이나 십자가 돌비석을 많이 남겨놓았습니다. 이들이 바로 16세기 일본의 ‘가쿠레 기리시단’입니다. 요즘은 그런 마리아관음상이나 십자가 돌비석이 일본의 오래된 산중 사찰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불교의 사찰 안에 카톨릭의 마리아상이나 십자가 비석이 있을 수가 있었을까요? 여러가지 추측과 주장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일본 사찰의 관용과 너그러움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는 설명입니다.
타종교를 지닌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신앙을 지키고 핍박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절간을 찾아왔을 때, 16, 17세기 일본의 스님들과 불자들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들 ‘가쿠레 기리시단’ ‘숨은 기독교인’들을 숨겨주고 지켜 보호해 주면서 절간에서도 예수를 믿을수 있도록 허용해 주었다는 것 입니다. 지난날 역사 속에서 우리는 비록 나와 종교는 달라도 어려운 가운데 있던 소수의 타종교인들을 보호해주고 그들의 신앙을 인정해주고 자신들의 종교를 지켜나갈수 있도록 배려해준 관용의 정신을 배우게 됩니다.
지난 2021년 5월 19일은 불교에서 ‘부처님 오신 날’로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서울 종로에 있는 유명한 불교사찰인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일부의 기독교 신자들이 거기에 모여 ‘인간의 손으로 만든 탑이나 불상은 모두 우상이다’ ‘오직 예수’ ‘예수 천당 불신 지옥’ 같은 팻말을 들고 5시간이나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조계사의 한관계자가 말했습니다. ‘이건 신앙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예의에 관한 문제 입니다. 이웃 종교에 대해서 그럼 않되지요’

저는 아무 대표성도 없는 일개 은퇴한 기독교의 목사이지만 지난 6월, 한 지인과 함께 이곳 시드니에 있는 정법사 주지 기후스님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면서 지난 5월 부처님 오신 날 서울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사과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런 보잘 것 없는 짧은 잡기장 몇 줄을 긁져거리면서 저는 젊은 날 저의 신학적 사고에 크게 영향을 끼친 한스 큉 (Hans Kung) 신부가 생각났습니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일평생 가톨릭의 사제로, 또 튀빙겐대학의 교수로 우리 시대, 신학과 사유, 교회와 사회에 크게 영향을 끼쳤던 그이는 지난 4월 9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많은 책들과 명언들이 있지만 지금도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는 귀절이 있습니다.
‘종교들 사이에 평화가 없이는 세상엔 평화가 없습니다’ ‘종교들 사이에 평화가 없이는 나라와 나라, 당신과 나 사이에도 결코 평화가 없습니다‘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20)
제 모습을 비쳐봅니다
* 미국 남침례교 출신으로써 세계적인 복음주의 설교가로 널리 알려진 빌리 그래함 (Billy Graham) 목사님은 지난 2018년 세상을 떠나기 까지 아이젠하워 이후 역대 많은 미국 대통령들의 개인적 멘토 역할을 해 오셨던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목사님 내외분은 연로해지신 후 몇 일에 한 번씩은 가사 도우미가 와서 청소나 음식 등, 집안일을 도와주곤 했습니다.
하루는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가 와서 집안일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전화가 왔답니다.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대통령이 무언가 좀 상담할 것이 있어서 전화를 했었답니다.
그런데 그 때 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대통령님 죄송하지만 지금은 제가 저희 집 가사를 돌봐주시는 도우미 아주머니와 이야길 나누는 중이라서 잠시 후 제가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다시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 오래 전 저는 서울에서 목회하던 가까운 친구 목사의 초청을 받아 그가 일하던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잘 꾸려진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정면 벽면에 걸린 커다란 사진 한 장이 먼저 눈에 띠었습니다. 당시 K 대통령 앞에서 그 친구가 약간 머리를 숙인 채 대통령의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누는 사진이었습니다. 둘러보니 십자가 액자는 다른 쪽 벽면에 걸려있었습니다. ‘청와대엔 왠일로 갔어?’ 제가 물었더니 그가 대답했습니다. ‘응 알잖아! 내가 저 양반 대통령 만드는데 힘 좀 썼잖아!’
*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부인 Ruth Graham여사에게 신문 기자가 물었습니다.
‘목사님과 75년 동안이나 함께 살면서 혹시 이혼을 생각해 보신적은 없으셨습니까?’
Ruth가 대답했습니다. ‘
‘Divorce? – No! But murder? – Yes!’
(이혼요?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정말 죽이고 싶은 때는 있었지요!’)
인생의 꾸밈없는 면목을 보여 주네요.

*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부인이 잠들어 있는 무덤 비석을 사진에서 보았습니다.
Ruth Bell Graham June 10, 1920 – June 14, 2007 이라고 쓰여진 다음 그 밑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End of Construction – Thank you for your Patience’
길거리 공사장 표지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을 그대로 옮겨온 묘비명인데 많은 생각과 함께 커다란 울림을 줍니다.
‘제 인생 공사는 이제야 끝이 났습니다. 그 동안 저의 인생살이로 인해 여러가지로 불편을 끼쳐드린 것이 많았을 텐데 끝까지 참고 인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뜻이 담겨 있잖아요? 살아오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폐끼친 것들을 고백하면서 ‘지난 삶에 대해 사람들에겐 감사를 표하고 죽음을 마무리’하는 표현이 참 인상적입니다.
‘저 살아오는 동안 불편 많이 드렸습니다. 늘 참아주셔서 여기 까지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이제 죽음으로 미완의 삶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제 모습을 비쳐봅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