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홍길복 목사의 ‘잡기장과 라틴어 인문학’ 중에서
우리 시대 지성의 소리 1 ~ 4 / 왜 우리는 피곤할까? : 인문학적으로 보는 피곤의 원인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41)
우리 시대 지성의 소리 (1)
오늘 잡기장의 작은 이름을 ‘우리 시대 지성의 소리’라고 붙여보았습니다만, 혹시라도 오해하실 분들이 있을 수도 있을까 싶어 한 두 마디 사족을 더합니다.
여기 소개하는 글들이 ‘우리 시대 지성의 소리’라고해서 이런 외침을 ‘절대적’ 혹은 ‘지배적’ 이라고는 생각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 세상에는 언제나 다른 주장과 목소리들이 늘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합니다. 어렵기는 해도 균형잡힌 생각과 조화로운 판단을 이루어 가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이라 하겠습니다.
또 하나는 오늘 소개하는 책이 최근에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비롯한 국제 문제나 국제 정치를 의식 하거나 염두에 두고 쓰여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여기 소개하는 글들은 한 10여년 전에 읽으면서 밑줄을 쳐 놓았던 책, “시대의 양심 20인 –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 (노암 촘스키, 하워드 진, 에드워드 사이드 등의 외침, Louder than Bombs : The Progressive Interviews, 강주헌 옮김, 시대의 창, 2011)에서 약간 문체를 가다듬어서 써 본 잡기장 입니다.
이 책은 주로 21세기 미국을 중심한 비판적 지식인들의 진보적이면서도 마음에 있는 진솔한 인터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도 많이 들어서 익히 잘 알고 있는 촘스키와 사이드와 진 같은 학자들을 포함하여 모두 20명이 나오는데 그 중 서너분만 빼고는 모두 다 미국인들이고, 그들의 비판은 한결같이 미국을 향하고 있습니다. 미국 사회가 그 내면에 지니고 있는 어둡고 부정적인 측면들을 향하여 화자들은 한결같이 심각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비판적 자성의 소리가 미국 밖에서 쏟아지는 비난이 아니라 그들 내부에서 외치는 애정어린 자기반성의 목소리이기에, 절망스럽긴해도 그래도 미국이라는 사회는 그런 외침의 자유와 함께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어서 희망이 없는 사회는 아닐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는 것 입니다.

* 터러리스트에 대한 미국정부의 판단은 늘 너무도 자의적 입니다.
* 우리는 개인이나 정부나 진실을 말하려고 한다면서도 늘 거짓말을 합니다.
* 우리의 희망은 미국 정부가 얼마나 탐욕스럽고 부도덕하고 우둔한 지를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희망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은 자본가들의 손에 사로잡혀 있는 신문과 텔레비젼들 입니다.
* 베트남 전쟁에서는 미군 1명과 베트남 사람 50명의 비율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미군 만 명에 베트남 사람 50만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 ‘해프굿씨 (Power Hapgood), 당신은 부자이고 하버드 출신이고 유명한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인데 어째서 노동자가 되었고, 노조운동을 하다가 경찰에 잡혀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갔습니까?’
질문을 던지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산상수훈에 따라서 살아보려니까 어쩔 수가 없었네요’
그 때 존 업다이크 (John Updike)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떤 신학자나 설교가 보다 훨씬 쉽게 하나님을 설명해 주시는군요’
* 사실 사회주의는 기독교의 한 형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그가 갔던 길을 따라가고 싶어하니까요. 소련이나 중국이나 큐바나 북한의 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그들은 관료정권에 불과 합니다. 그러므로 소련이 붕괴되었다고 해서 사회주의가 죽었다고 생각해서는 않됩니다. 사회주의는 죽지 않았습니다. 아니, 진정한 사회주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 마르크스가 ‘종교는 민중의 아편’ 이라고 했을 당시, 아편은 의학적으로 진통제였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종교는 민중의 아스피린’ 혹은 ‘민중의 타이레놀’ 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좋은 의미로써는, 종교를 통하여 아프고 쓰라린 삶에서 조금이라도 그 아픔의 완화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교회나 성당이나 절에 갔다 온 사람들은 한 주간 세파에서 다치고 지친 삶을 힐링받기 위해서 그런 종교단체에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말했습니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큰 목소리로 외치고 다니면 대단히 위험합니다. 언젠가 그런 사람은 죽임을 당할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는 실제로 그 자신의 말 그대로 그렇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 그래 당신이 기도해서 세상이 뭐 좀 달라졌나요? 당신의 기도로 인해 가난한 사람이 좀 줄어들고 노숙자들이 좀 줄어들고 병자들이 좀 더 좋은 치료를 받게 되었나요? 그런 소리 왜 하느냐고 성내지 마시고 당신 자신에게 물어 보세요. 기도하지 말라든가, 기도에는 힘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도드린 다음,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할 지를 좀 생각해 보시라는 말씀입니다.
*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사실 미국이 중동에 밖아놓은 경비견 입니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불량국가이면서 피듯하면 다른 나라들을 불량국가라고 부릅니다.
* 대부분의 기자들은 앵무새들 입니다. 그들은 죠지 오웰이 말한대로 ‘공식적 진실’을 전달하는 사람들이지 ‘실체적 진실’을 좇아가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의 공식적 전달자일 뿐입니다. 기자들이 정직해 지면 세상은 변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날이 과연 올까요?
* 컬럼비아대학의 교수였던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W. Said)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직업은 무엇 입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비판과 해석이 저의 본직 입니다’(계속)
Carpe diem !!!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42)
우리 시대 지성의 소리 (2)
소개해 드리고 있는 책 ‘시대의 양심 20인 –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에는 모두 20명이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 좀 지루하기는해도 그 분들의 이름을 한분 한분 모두 다 기록해 둡니다. 혹시 기회 있을 때 검색해서 그들의 저서와 생각을 좀 더 알아 볼까 해서요. (이 책을 엮은 인터뷰어는 라디오 PD로 잘 알려진 언론인 데이비드 바사미언 – David Barsamian – 입니다.)

1. 에드위지 댄디캐트 – Edwidge Danticat
2. 커트 보내거트 – Kurt Vonnegut
3. 아흐메드 라시드 – Ahmed Rashid
4. 대니 글로버 – Danny Glover
5. 존 필저 – John Pilger
6. 타리크 알리 – Tariq Ali
7. 에드워드 사이드 – Edward Said
8. 아마르티아 센 – Amartya Sen
9. 아룬다티 로이 – Arundhati Roy
10. 안젤라 데이비스 – Angela Davis
11. 하우나니 트라스크 – Haunani Kay Trask
12. 후안 곤젤라스 – Juan Gonzales
13. 랄프 네이더 – Ralph Nader
14. 노암 촘스키 – Noam Chomsky
15. 에드아르도 갈레아노 – Eduardo Galeano
16. 테일러 브랜치 – Taylor Branch
17. 에크발 아흐마드 – Eqbal Ahmad
18. 반다나 시바 – Vandana Shiva
19. 하워드 진 – Howard Zinn
20. 벤 바그디키언 – Ben Bagdikian
* 서구의 텔레비전들은 9.11에서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리고 3천여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주로 반복해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행한 복수전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는 거의 말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브라운대학 왓슨연구소와 CIA, 그리고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웁살라 갈등 데이터 프로그램’ (Uppsala Coflict Data Program)의 연구 등을 종합해 보면 2001년 9.11 이후 10여년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통하여, 그 지역에서 미군 7천여 명을 포함하여 아프칸과 파키스탄 사람들 약 50만을 죽인 것으로 나타납니다.
* 미국은 미국을 모르고, 미국인들은 실제 자신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정신분열증 환자입니다. 미국은 테러를 반미로 생각하고, 미국에 대한 비판은 비애국적이라고 여기는 나라입니다. 미국은 이슬람을 기독교에 대한 반대 세력이라고 부추기는데 많이 성공하고 있습니다. 종교 까지도 가장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나라가 미국인데 미국 사람들과 미국에 이민해온 사람들은 그런 고도의 정치적 술수에 속아넘어가고 있습니다. 순진한 기독교인들 중에는 그런 속임수에 빠진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 자신이 어떤 특별한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고해서 특별한 원한도 없는 다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은 짐승의 세계에서도 안하는 일입니다.
*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정치적 행동입니다. 만약 당신이 다니는 교회나 성당의 목사나 신부가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이유를 들어 현실 정치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면, 이것은 이미 그 침묵을 통하여 현실을 인정하고 지지해 주는 정치적 행동입니다. 만약 당신이 다니는 교회나 성당의 목사나 신부가 구약의 예언자들이나 세례요한이나 예수의 가르침과 그 하신 행동을 따라 공의와 정의를 말하지 않고 그냥 영적 은혜만 강조하고 모호하게 행동한다면, 그것은 당신네 교회나 성당에 나오는 공화당원이나 민주당원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그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다니는 대학의 교수가 ‘교육의 비정치성’이라는 이유로 당신 나라의 정치적 부정이나 부패에 대하여 침묵한다면 그는 사실 그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정치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현재 미국의 교도소 재소자 중, 70%는 유색인종이고, 그 중 50%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흑인)이고, 17%는 라틴계 미국인 입니다. 인구 비율로는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안)들이 제일 많습니다.
오스트랄리아도 교도소 재소자의 30% 정도가 아보리진 입니다.
오스트랄리아의 멜버른 외곽에 있는 호주에서 제일 큰 여성교도소는 미국 테네시에 있는 미국교도소주식회사 (Corrections Corporation of America)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교도소 입니다. 요즘은 교도소 까지도 다국적 기업들이 정부의 하청을 받아서 운영하는 추세 입니다. 그래서 민간 기업들이 운영한 교도소는 마치 비행기에 1등석, 2등석, 3등석이 있듯이 교도소도 돈 많이 내는 사람에 따라 등급을 달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하와이 원주민들의 외침입니다.
하와이는 미국정부의 ‘이국적 식민지’입니다. 미국은 우리를 침략해서 우리 섬들을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하와이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욕이 드러난 땅입니다. 미국은 하와이 여성들의 성을 착취하고, 우리 문화를 악용해 왔습니다. 우리 원주민 여성들로 하여금 조개껍대기로 만든 목걸이를 걸고, 훌라춤을 추고, 공항과 공연장에서 껑충거리며 뛰어 다니며 폴리네시아식 뮤지컬을 하게하고, 관광객들과 미군들로 하여금 돈을 내게하는 것입니다. 20만의 원주민들이 해 마다 700만의 관광객들을 상대합니다.
하와이의 수많은 골프장들은 온갖 종류의 살충제와 제초제가 뿌려지면서 점점 죽음의 땅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와이키키, 마우이섬, 코나섬에는 점점 매춘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와이는 지금 강간을 당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태평양 진출을 위하여 우리 하와이를 점령한 후, 우리에게 낯선 것을 가르치고, 우리는 미개하다고 하면서 옷을 입혔습니다. 우리가 씨뿌리고, 고기잡고, 발가벗고 살아온 풍습들은 위험하고 나쁜 것 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우리 말을 금지 시키고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우리를 붕괴 시켰습니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은 미국의 식민지로 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사실 하와이는 1770년 호주 대륙에 첫 발을 들여놓았던 영국의 제임스 쿡 (James Cook)이 1780년, 이 아름답고 전통있는 꿈 같은 우리 섬을 점령하면서 결핵, 홍역, 천연두, 장티푸스 같은 서양의 질병들을 계속해서 옮겨옴으로, 당시 100만이나 되었던 우리 하와이 원주민들이 그 후 4만 명까지 줄어든 슬픈 섬입니다. 토지의 개인 소유권이 없었던 우리 모두의 땅은 미국의 자본가들의 손으로 넘어갔고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으로 바뀌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부탁합니다. ‘우리 땅에 오지 마십시오. 원래부터 하와이는 관광지가 아닙니다. 그들이 관광지로 만든 것입니다. 우리는 관광객을 원치도 않고 관광객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 참고로 추천하는 책 : 하와이 원주민의 딸, 하우나니 카이 트라스크 지음, 이일규 옮김, 서해문집, 2017.
Carpe diem !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43)
우리 시대 지성의 소리 (3)

이어지는 ‘시대의 양심 20인 –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에서 정말 폭탄 보다 큰 소리로 우리를 일깨우는 지성인 중 한분인 노암 촘스키 (Noam Chomsky 1928 ~ )를 간단히 소개해 봅니다.
노암 촘스키는 잘 알려진 대로 유대계 러시아 이민 2세로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습니다. 펜실바니아대학에서 철학과 언어학을 전공한 그는 MIT에서 평생 교수로 일하다가 정년 은퇴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그의 인생 중반 부터는 언어학자로 철학의 영역에만 머물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지식인의 책무’를 강조하며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제 등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해 왔습니다. 그는 스스로 말한대로 ‘진실을 도둑맞고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하여, 그들의 편에 서서 발언해 온 인문주의자 였습니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사명은 힘을 가진 정부와 부를 지닌 강자들과 펜을 휘두르는 언론의 부정 부패와 불의와 거짓말을 온 세상에 알리는 것’ 이라고 여기며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보통 우리는 그가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고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반대하는 등 평화와 반전 운동을 펼쳐 온 것은 기억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와 관계된 발언도 있습니다. 촘스키 박사는 미국의 다른 지식인들 25명과 연대하여 2011년 7월 ‘제주 평화의 섬 지지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는 그 성명서에서 ‘제주 해군 기지 건설’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이 운동을 펼쳐 온 제주 강정마을 사람들의 외침과 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제주 해군 기지 건설은 한국과 한국의 방위 사업이 아니라 한미동맹에 의거해 어는 때든지 미군에 공여되어 미국의 대중국 전진 기지로 사용될 것이고 이는 결국 한반도의 평화에 위협이 되는 강대국의 군사작전 중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촘스키는 평생 약 1,000여편의 논문과 100여권 이상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단행본들은 그의 전문 분야인 철학이나 언어학에 대한 것들은 제외한 인문학 책들로서 한국어로 번역된 것들 중 일부 입니다.
* 지식인의 책무, The Responsibility of Intellectuals, 강현주 옮김, 황소걸음, 2005
* 여론 조작, Manufacturing Consent :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Mass Media, 정경옥 옮김, 에코리브르, 2006
* 테러리즘의 문화, The Culture of Terrorism, 홍건영 옮김, 이룸, 2002
*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What Uncle Sam Really Wants, 문이열 옮김, 설인호 그림, 시대의 창, 2013
* 불량국가, Rogue States : The Role of Force in World Affairs, 장영준 옮김, 두레, 2001
* 촘스키 사상의 향연, Chomsky on Democracy and Education, 이종인 옮김, 시대의 창, 2007. (이 책은 900쪽이 넘는 것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촘스키의 저서 중 가장 두꺼운 것임)
* 중동 평화에 중동은 없다, Middle East Illusions : Including Peace in the Middle East ? Reflections on Justice and Nationhood, 송은경 옮김, 북폴리오, 2005
* 권력과 테러, Power and Terror : Post 9/11 Talks and Interviews, 홍한열 옮김, 양철북, 2003
* 야만의 주식회사 G8을 말하다, Arguments against G8, 이종인 옮김, 시대의 창, 2006
*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 Deux heures de lucidite : entretiens avec Noam Chomsky, 강현주 옮김, 시대의 창, 2013
* 비밀, 거짓말 그리고 민주주의, The Prosperous Few and the Restless Many Secret, Lies and Democracy, 강주헌 옮김, 김용민 그림, 시대의 창, 2013
* 불평등의 이유, 유강은 엮음, 이데아, 2018
* 우리가 모르는 미국 그리고 세계, 강주헌 옮김, 시대의 창, 2008
*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3권), 이종인, 장봉군 옮김, 시대의 창, 2021 (가장 최근의 책)
이제는 다시 ‘시대의 양심 20인’에서 옮겨오는 짧은 잡기장 입니다.
* 언어를 배우는 것은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 이혼하는 것이 결혼하는 것 보다 많이 어려운 것 처럼, 식민지를 정복하는 것 보다는 그 식민지를 포기하고 해방 시키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를 경제적 및 군사적 식민지 상태에서 풀어주길 힘들어 하는 것입니다.
*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투표 용지에는 반드시 ‘지지자 없음’ 이라는 칸을 만들어야 합니다. 마음에 드는 지지자가 현실적으로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개표에서 ‘지지자 없음’이 가장 많이 나오면, 당연히 그 선거는 무효로 처리하고, 새로운 후보자들을 세워 다시 선거를 해야 합니다.
* 개인이나 국가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예전에는 돈을 쓸 필요가 없던 곳에다 지금은 돈을 쓰기 때문 입니다.
* 자본주의에서는 기업이 보이지 않게 정부를 접수하여 정부를 간접 운영합니다. 그러니 자본주의에서는 정부가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정책을 추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늘 기업의 보이지 아니하는 손에 조종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 한 마디로 지식인이란 잘 훈련된 개 입니다.
* 항상 의심하십시오. ‘권력은 어떻게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는가? 생산과 소비는 누가 결정하고 있는가?’ 항상 의심하십시오. 국가는 믿음을 강조하는 종교단체가 아닙니다.
* 미국은 폭력적 테러국가 입니다. ‘국제법과 유엔 헌장은 우리에게는 부적절하다. 우리는 총으로 다스리겠다’는 것이 미국의 공공연한 정책입니다.
인도 법학자협회는 미국과 영국을 전범으로 국제 사법 재판소에 제소했습니다만 미국과 미국의 언론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라는 존재가 정의되는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은 존재 그 자체가 없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소유와 소비가 인간과 사회의 가치관을 결정하는 시대가 우리 시대의 민 얼굴 입니다.
* 매스 미디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에다 가면을 씌웁니다. 매스 미디어는 현실을 변화시키거나 민주적 참여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체념과 무관심을 부추깁니다.
*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난쟁이와 어린아이를 혼돈케 만듭니다. 겉으로 보면 난쟁이와 어린아이의 키는 비슷하지만 그 원인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어린아이는 언젠가 클 수 있지만 난쟁이는 일종의 신체적 장애인이기 때문에 클 수가 없습니다. 가난한 나라들은 구조적으로 클 수 있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 난쟁이 입니다. 몬테비데오가 세월이 지나면 로스 안젤리스가 될 수는 없습니다. 미국은 선천성 장애인 같은 가난한 나라들을 향하여 계속 거짓말을 합니다. ‘노력하면 클 수 있어 ! 노력하면 잘 살 수 있어 !’
* 나는 중립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나는 인기가 없더라도 그래도 연약한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 핍박받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은 나라들 편에 서는 데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겠습니다.
Carpe diem !!!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44)
우리 시대 지성의 소리 (4)

‘시대의 양심 20인 :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에서 읽고 다듬은 짧은 글, 마지막 입니다.
* 미국인들은 미국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거의 눈과 귀를 막고 삽니다. 그들은 수백년 전엔 바그다드가 뉴욕 보다 얼마나 크고 위대한 문화와 문명을 지닌 도시였다는 것을 모르고 살거나, 모르는 체 하면서 삽니다.
* 대부분의 전쟁은 ‘평화를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시작됩니다. 군사 작전은 인도주의적 사명을 띠고 시작됩니다. 여기에 인간 세상의 모순과 거짓이 있습니다.
* 세계 무기의 50%는 미국이 만들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입니다. 이들이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의 상임 이사국들 입니다. 이들은 군수산업으로 국가를 유지할 정도로 국가의 산업 시스템이 군산복합체제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누가, 어느 나라가 무기를 만들어 팔고 있습니까? 평화와 안전 – Peace & Safety – 을 지킨다는 그 다섯 나라 입니다. 끔찍하지만 이것이 현실 입니다.
* 지구 인구의 20%가 지구 전체 자연자원의 80%를 낭비하면서 지구를 병들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지금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데, 그걸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자연보호니 녹색혁명이니 하면서 그럴듯한 말들로 위장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거대한 자동차 산업도 녹색이고, 끔찍한 화학산업도 녹색이고, 군수산업도 녹색이고, IMF도, 세계은행도 녹색혁명을 부르짖습니다. 그들은 지구를 병들게 하고 황폐화 시키며 각종 질병들을 일으키게 만들면서, 뒤에서는 그것으로 떼돈을 버는 자들 입니다.
* 여행해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팔레스타인 땅에는 이스라엘 사람들 못지 않게 많은 아랍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어디를 가도, 도로 표지판 하나 까지도, 히브리어와 영어로만 표시되어 있지 아랍어는 없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나가라! 여기서!’ 그런 뜻 입니다.
*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운동이 폭력화되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폭력적 방법은 도덕적이지도 않고, 예수님의 가르침과도 반대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콤 엑스는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폭력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폭력적일 때는 우리도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과 미국인들은 결코 비폭력적이지 않습니다’
* 폭력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야만인이거나 원시인들의 감각적 행동입니다. 군사력으로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던 부시를 비롯한 미국의 대통령들은 모두 야만인들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현대에 살면서도 원시시대를 산 사람들이고, 와싱톤 백악관에서 살면서도 아마존 정글에서 사는 사람들 입니다. 현대인들은 모두들 ‘정글의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원시 부족인들입니다.
* 빈 라덴은 미국, 특히 미국의 CIA가 훈련시키고 키운 인물입니다. 빈 라덴은 미국에서 배우고 익히고 또 약속한대로 실행한 사람입니다. 미국은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 양성을 위해서 약 80억 달라를 쓴 나라입니다. 빈 라덴은 미국의 역풍입니다.
미국은 앞뒤가 맞지 않는 나라입니다. 자유, 평화, 민주, 인권을 부르짖으면서, 동시에 거의 100여년을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독재정권을 지원해 온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완전히 자기 나라를 위해서라면 그 무슨 거짓말도 하고 또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는 위선적 조직 입니다.
* 중동에 대한 미국의 근본 정책은, 중동의 평화, 인권, 민주, 여성의 권리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석유와 천연가스를 안전하고 확실하게 확보할 것인가가 미국의 중동 정책의 핵심입니다. 1950년대 이전 까지 민주와 여권 등에 있어서, 이란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비교도 않되게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후 미국은 사우디의 편에 서서 그곳에 미군을 주둔 시키고, 정보 기관을 두고 사우디를 지원했습니다. 이유는 딱 하나 였습니다. 돈 입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는 무슬림의 성지가 있는 곳이지만, 그래도 미국은 거기에 100억 달라 이상의 무기와 군수품을 팔아먹고, 석유를 사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근본 정책입니다.
* ‘세계화’ ‘세계화’ 하는데 그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시장이 될 만한 곳은 모두 찾아내라’는 뜻입니다. 중국이든, 인도이든, 파키스탄이든… 팔 수 있는 곳은 모두 찾아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라’는 의미 입니다. 자동차든, 무기든, 맥도날드든, KFC든, 코카코라든… 이게 ‘세계화’의 숨은 뜻입니다.
* ‘먹을 것이 없는 사람도 마실 물은 돈을 내고 사먹어야 한다’ 전에는 우리가 돈을 내고 물을 사서 마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계은행이 갑자기 ‘세계가 물이 부족하게 된 이유는 물이 공짜이기 때문에 남용되고 있다’고 말 한 후 부터 거의 모든 나라들과 물장사 기업들이 돈을 내고 물을 사 먹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 콜럼버스의 이야기도 이제는 바뀌어졌습니다. 오늘날 학생들은 콜럼버스가 위대한 탐험가요, 모험가로 배우지 않습니다. 그는 약탈자요, 납치자요, 고문자요, 나쁜 사람이라고 배웁니다. 정복과 영토확장은 나쁜 것이고 황금을 찾아다니는 일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 오랫동안 사람들은 영어의 Man을 ‘사람’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man은 ‘남자’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라고 하려면 반드시 ‘Man and Woman’ 이라고 써야 합니다. 미국 독립선언서에서의 man도 이제는 man and woman으로 고쳐서 다시 써야 합니다.
* 과거 미국의 신문들과 텔레비전들은 편집자들이 그 신문과 TV의 각종 기사를 결정했지만 지금은 월 스트리트의 분석가들이 그 결정권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의 뉴스에서 절대로 건드려서는 않되는 성역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기업의 시스템입니다.
* 광고의 핵심은 ‘거짓말을 진실 처럼 믿게 만드는 것’ 입니다. 요즘은 광고주가 광고 제작자들에게 그것을 요구하기 전에 광고회사들이 미리 알아서 잘 하고 있습니다.
* 지금 이 세상을 끌고가는 사람들에게 협력하거나, 아니면 그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은, 다함께 망하고 죽기로 결정하는 일이기에, 나는 내가 살기위해서라도, 바른 말을 하고, 대들고, 반항하며 싸우려 합니다.
Carpe diem !!!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45)
왜 우리는 피곤할까? – 인문학적으로 보는 피곤의 원인
현대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거이가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다싶이 합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손녀아이도 뭘 좀 하자고 하면 ‘할아버지 나 피곤해’라고 말 할 정도 입니다.
피곤한 사회, 피곤한 현대인 입니다. 쉬어도 피곤하고, 놀아도 피곤하고, 휴가를 가고, 여행을 가도 피곤하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하루 놀고 하루 쉬는’ 사람도 ‘피곤하다’고 합니다. ‘어제는 놀았으니 오늘은 쉬어야한다’고 말하는 것은 ‘노는 것도 일하는 것 못지 않게 피곤한 작업’ 이라는 뜻이 있을 것입니다.
공동묘지에 가면 묘비명들 중, 제일 많이 눈에 띠는 귀절이 ‘이제는 편히 쉬소서’ ‘이제는 안식 하소서’ – Rest in Peace – 라는 문구 입니다. 장례식 때도 제일 많이, 또 제일 마지막으로 드리는 조사 역시 ‘그 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괴롭고 고달픈 인생길 마치셨으니 이제는 저 세상에서, 주님 품 안에서 안식하시고 편안히 쉬시옵소서’라고 말 합니다.

“죽어야지나, 이 피곤한 인생, 괴로운 인생, 고달프고 지친 인생살이 쉴 수 있지, 땅에 있는 동안은 어쩔 수 없어!” 한 평생 고생, 고생만 하다가 가신 우리 부모님 세대의 한으로 얼룩진 음성이 들려오는 듯 합니다.
왜 우리는 늘 피곤할까요? 피곤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누적된 육체적 과로나 질병, 혹은 영양의 부족이나 불균형 같은 것들이 아마도 제일 큰 원인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가하면 정신적 스트레스나 압박감, 심할 경우에는 우울증 같은 질병이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경우도 아주 많습니다. 그외에도 사회적 환경 – 요즘의 코로나 팬데믹 같은 유행병이 하루도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날마다 그 숫자를 더해가는 상황이나, 그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과 답답함,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정치적 견해의 차이, 가정적 불화, 혹은 자기가 다니는 종교단체에 대한 속상함, 인간관계에서 오는 아픔 등등… 우리는 참 여러가지로 피곤한 하루 하루, 피곤한 인생길을 걸어 갑니다.
우리가 피곤한 이유를 생각해 보다가 책 두 권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은 ‘쉬어도 피곤한 사람들’ (이시형 지음, 비타북스, 2018) 입니다. 저자는 한국에서 아주 널리 알려진 정신과 의사이며 뇌과학자 중 한분 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가 피곤해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몸은 쉬어도, 뇌는 쉬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말 합니다. 우리가 늘 피곤해하고, 쉬어도 피곤하고, 쉬어도 쉰 것 같질 않은 이유는, 우리가 무엇을 쉬어야 할지를 모르는 데서 온다는 것 입니다. 우리는 피곤하면 그냥 무턱대고 몸이, 육체가 피곤해서 피곤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일 좀 안하거나 덜 하거나 하면서 잠 좀 많이 자고나면 피곤이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피곤한 가장 크고 결정적인 원인은 뇌가 쉬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피곤한 이유를 그는 몸의 피곤, 육체의 피곤에서 찾지 않고, 뇌의 피곤, 정신의 피곤, 더 나아가 마음의 피곤에서 찾습니다. 사실 우리는 피곤할 때 몸은 좀 쉰다 하더라도 뇌는 여전히 쉬지 않고 무엇인가 골골이 생각하고, 정신과 마음은 여전히 이런 저런 복잡한 현실로 부터 자유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우리가 계속 피곤한 것은 피로를 푸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뇌가 쉬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피곤하다’
그는 뇌의 피로를 풀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들을 제안하고 있는데 그 중 몇가지만 정리해 봅니다.
1. 뇌를 힐링해라.
2. 우리 뇌의 자율신경을 ‘천천히 상태’로 조율해라. 서두르는 사람의 뇌는 늘 피곤하다. 아무리 바쁜 일이 생겨도 ‘천천히 천천히’ 하면서 자기 최면을 걸어라.
3.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감동하는 것이 뇌치료에 큰 효과가 있음을 잊지 마라.
4. 삶의 가치관을 바꿔라. 지금과 같은 가치관을 그냥 그대로 지니고 살면 우리는 죽을 때 까지 피곤하게 살 수 밖에 없다.
두 번째 책은 ‘피로사회’ (독일어 원서 – Mudigkeitsgesellschaft,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2) 입니다. 저자는 한국인으로서는 아주 드물게 독일 카를스루대학의 교수입니다. 이 책은 불과 128쪽 밖에 안되는 아주 작은 책 입니다.
한 교수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논리는, 현대인들이 피곤한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 자체가, 전체적으로 피곤한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내가 피곤한 이유는 내가 피곤한 세상에서 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는 피곤하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피곤한 가정, 피곤한 직장, 피곤한 정치, 피곤한 종교, 피곤한 나라, 피곤한 국제사회, 피곤한 인간관계 등등 우리는 이런 ‘피곤으로 찌들어진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곤으로 병든 이런 땅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만약 피곤을 느끼지 못한다면, ‘나는 않피곤해’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이상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가 피곤하다. 지구가 피곤하다’
아무리 우리 집안을 공기 청정기로 먼지를 걷어내고 순환을 시켜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이 지구가 온갖 종류의 미세 먼지와 이산화 가스로 가득 차 있는데 무슨 제주로 깨끗하게 만들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 그 다음, 현대사회가 전반적으로 피로사회가 된 이유는 무엇일 까요? 그것은 인간의 탐욕, 이기심, 경쟁심, 이기려는 심성, 더 갖고, 더 높아지려는 마음이 이 세상을 온통 피로한 사회, 피곤으로 병든 세상, 우울증으로 앓는 사회로 만들었다는 진단 입니다. 탐욕으로 병들어서 피곤해지고 지쳐버린 인간들은 여전히 To be desire와 To have desire – 무엇인가 되어보려는 욕망과 무엇인가 하나라도 더 갖으려는 그 두 가지 욕망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피곤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지요?
한 교수는 현대인들이 피곤해진 사회에서 피곤하게 살아가게 된 원인을, ‘긍정성의 논리’에서 찾습니다. 현대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긍정성, 즉 ‘하면 할 수 있어!’ – We can do ! Yes, we can do everything ! -이라는 세계로 유혹했고, 우리는 모두 그 속임수에 속아 넘어갔다고 봅니다. 이 ‘불가능은 없다’는 속임수가 우리를 ‘성과 제일주의 사회’ ‘성공주의 신화 사회’로 이끌어 가게 함으로, 우리는 소유욕과 성취욕에 빠져, 자아를 짖누르는 만성 피로와 좌절감과 우울증 환자가 되게 만든 것이라는 주장 입니다. 사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일 뿐이지 인간은 아닙니다.
‘모든 것은 더 큰 성과, 더 큰 성공, 더 큰 야망과 꿈으로 인도하는 그릇된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 낸 것이다’
‘처음에는 남을 착취하지만 마지막에는 자기가 자기를 착취하게 된다. 그것이 우리를 만성 피로 환자로 만든 주범이다’
성공욕과 성취욕, ***이 되려는 욕망과 ***을 가지려는 탐욕이 계속되는 한, 그리고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을 지니고 있는 한, 인간은 끊임없이 짖눌린 삶을 살 수 밖에 없고, 영원히 행복과 저유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왜 우리는 늘 피곤할까요?
왜 나는 오늘도 피곤하게 살까요?
내 속에 있는 탐욕의 세계를 다시 들여다 봅니다.
Carpe diem !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