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홍길복 목사의 ‘잡기장과 라틴어 인문학’ 중에서
오래된 유목민이 오늘의 유목민들에게 : 몽골의 속담들 중에서 1, 2 / 골프공 이야기 / 중심축 / 빅 퀘스천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46)
오래된 유목민이 오늘의 유목민들에게 (1) – 몽골의 속담들 중에서
오래전 제가 목회하던 교회에서 그 교회 설립 10주년 기념으로 몽골에 선교사 한분을 파송했습니다. 아마도 몽골 땅에 기독교 선교사를 파송한 것은 호주와 호주에 있는 한인교회를 통털어서 그 때가 처음 있던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로 이 때 처음으로 몽골에 발을 디딘 분이 김충석 선교사 내외 였습니다. 그이는 지난 십수년간 온 힘을 다하여 몽골에서 먹을 것이 없고 잘 데가 없는 걸인들은 돌보며 빈민선교에 전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요즘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시드니에 머물고 있지만, 하루 하루 현지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선교 제 2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은퇴하기 전 몇차례 그가 일하는 몽골을 방문했습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최성운 장로님과 또 우리 인문학 친구 임운규 목사님과 동행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는 더더욱 몽골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무했습니다. 기껏해야 칭키스칸, 고비사막, 몽골반점 그리고 게르 정도가 몽골에 대해 들은 것의 전부였습니다.
몽골은 사막의 나라요, 초원의 나라이며, 동시에 별들의 나라라고 말합니다. 국토는 160만 평방 킬로미터나 되는 광대한 땅입니다. 남한의 18배나 됩니다. 그러나 농사가 가능한 땅은 얼마 않됩니다. 주로 사막인데 사하라나 사우디 같은 모래 사막이 아니라 거치른 초원으로 형성된 사막이어서 유목민이 많습니다. 지금도 몽골 인구 330만 중, 40%가 넘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유목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저도 한번은 울란바토르에 있는 한 신학교를 방문하여 특강을 하면서 ‘유목민 예수 – 몽골 신학의 가능성’이란 제목으로 이야길 나누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몽골도 이제는 점점 도시화되어 가는추세여서 인구의 절반 정도가 이미 수도인 울란바토르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몽골은 불교, 특히 티벳 불교가 가장 큰 종교로 인구의 53%나 되고, 그 다음은 이슬람교로 이어지고, 기독교는 아주 미미합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5천불 정도라고 하지만 빈부의 격차가 아주 심합니다. 한국에 체류중인 몽골인의 숫자는 약 3만 2천명 정도이고, 호주 외무성 통계를 보니 이곳 호주에서 호주 시민권을 지닌 몽골 사람들은 현재 약 1200명 정도이고 기타 약 2천명 정도의 유학생들과 불법 체류자들이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13세기 칭키스칸이 몽골제국을 세운 후 변화무쌍한 역사를 거쳐 1924년 구소련의 영향 아래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가 소련이 멸망한 다음인 1992년 부터 현재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섞은 혼합주의 경제와 혼합정치 체제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죽을 때 까지 한자리에서만 살지는 못합니다. 먼 옛날 인류의 조상이 에덴의 동쪽으로 옮겨간 이후 모든 인간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로 살아왔습니다. ‘호모 모벤스’ (Homo Movens) ‘호모 노마드’ (Homo Nomad) ‘호모 미그란스’ (Homo Migrance)라고 불리워 왔습니다.
기원전 8세기 경 부터 사람들은 말을 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후 인류는 훈족, 아바르족, 헝거리족, 몽골족, 터키족으로부터 시작하여 스키타이족을 거쳐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소리와 함께, 켈트족, 갈리아족, 고올족, 게르만족 시대를 지나 비단길을 따라 쉬임없이 움직이는 인간, 유목하는 인간, 이주하는 인간, 호모 모밴스, 호모 노마드, 호모 미그란스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저만해도 북한 땅에서 태어나 남한 땅으로, 또 남한에서 지금은 아주 먼 남쪽나라 호주로 움직이는 인생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이즘 우리 아들 딸과 손자 손녀들은 이 땅 호주에서 다시 서울로, 도쿄로, 홍콩으로, 싱가포르로, 런던과 뉴욕으로 움직이며 옮겨다니며, 현대판 유목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신유목민들 입니다. 뉴 노마드들 입니다. 우리 인문학교실 카톡방에 들어와 계시는 47명의 친구들 중 호주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찌 어찌 흘러 흘러 여기 까지 온 유목민들 입니다.
몽골의 유목민들은 현존하는 유목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유목민들의 옛 전통과 풍습, 문화와 역사, 그리고 삶의 지혜를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는 유목민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3세기 경에 몽골은 국가체제를 갖춘 나라를 형성하면서, 그 때 부터 ‘칸’ – 칭키스칸 할 때의 그 ‘칸’ 으로 이는 황제를 뜻하는 말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칸’은 유목민들의 지도자로서 말을 타고 다니며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이 잡기장은 이렇듯 뿌리 깊게 전통을 이어온 몽골 유목민들이 남겨놓은 속담들을 추려 본 것입니다. 옛유목민이 새유목민에게, 수천 수백년된 유목민이 , 말 대신 자동차와 비행기로 이동하며, 소와 양을 모는 대신에 주식을 사고 파는 21세기 유목민들에게, 그들의 경험 깊은 곳에 축적된 오래된 지혜와 교훈과 잠언을 들려 줍니다.
(참고한 책들 : 몽골속담풀이(Mongolian Proverb, Janice Raymond 지음, 민음미 편저, 2010, 품절) / 세계민담선집 3 – 몽골편, 유원수 지음, 황금가지, 2003. / 몽골비사, 유원수지음, 사계절, 2004 )
* 배고플 때는 사슴뿔도 연하고, 배부를 때는 양고기도 질기다.
* 좋은 말은 이빨을 보면 알 수 있고, 좋은 사람은 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 산속에 있는 사슴을 쳐다보고 지금 타고 있는 말을 버리는 자는 바보다. (더 좋은 것을 얻겠다고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귀한 줄을 모르는 자를 일컫는 비유)
* 한 마리의 소 뿔이 흔들리니 천 마리의 소뿔도 흔들리고, 한 마리의 낙타가 미끄러지니 천 마리의 낙타도 미끄러진다.
* 빚 없으면 부자이고, 병 없으면 행복한 자다.
* 개는 소 탄 사람을 싫어하고, 사람은 진실한 말을 하면 싫어한다. (몽골 신화 이야기 : 부처님이 처음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 그런데 소가 와서 그 흙으로 만든 사람 하나를 무너뜨렸다. 그 무너진 흙더미 속에서 나온 것이 개였다. 그래서 개와 인간은 처음부터 비슷했고 또 친해졌다. 동시에 개는 그 놈 소 때문에 자기가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원한이 되어 늘 개와 소는 원수관계가 되었다. 몽골 사람들은 ‘개 같은 사람’이란 욕을 모른다. 굳이 동물과 비교 할 때는 ‘소 같은 녀석’이라고 한다)
* 좋은 말은 타보아야 알고, 좋은 찬구는 사귀어 봐야 안다.
* 세상 최고의 보물은 물이다.
* 우물은 가까워야 좋고, 아내는 멀리서 데려와야 좋다.
* 물고기와 손님은 사흘이면 냄새가 난다.
* 성을 쌓은 자는 반드시 망한다.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에 정착하면 반드시 적이 쳐들어온다)
* 위로 돌 던지기 (우리 속담의 ‘누워서 침뱉기’)
* 태어나지도 않은 애기를 위해서 갑옷을 만든다.
* 염소고기는 삶으면 바로 먹어야한다. (다른 고기는 삶은 후에도 비교적 천천히 식는데 비하여 염소고기는 빨리 식어서 기름 덩어리가 된다 : 일을 미루지 말고 즉시 하라는 교훈)
* 풀이 많은 초원에는 가축이 살지 않는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아무리 좋은 초원이 있어도 늘 더 좋은 초원을 찿아서 떠나가는 존재다. – 끊임없는 인간의 욕망을 일컷는 속담)
* 낙타 꼬리가 땅에 붙는다. (결코 그럴 수는 없다. 30cm 밖에 않되는 낙타 꼬리는 절대 땅에 닿지 않는다. 절대 않되는 일, 불가능한 일을 일러주는 말 ) _ (계속)
Carpe diem !!!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47)
오래된 유목민이 오늘의 유목민들에게 (2) – 몽골의 속담들 중에서
이 잡기장은 뿌리 깊게 전통을 이어온 몽골 유목민들이 남겨놓은 속담들을 추려 본 것입니다. 옛유목민이 새유목민에게, 수천 수백년된 유목민이 , 말 대신 자동차와 비행기로 이동하며, 소와 양을 모는 대신에 주식을 사고 파는 21세기 유목민들에게, 그들의 경험 깊은 곳에 축적된 오래된 지혜와 교훈과 잠언을 들려 줍니다.

* 가장 낮은데를 보는 자가 가장 넓은 곳도 볼 수 있다.
* 마음이 두개인 남자는 남자가 아니다.
* 몽골사람에게는 길을 가르쳐 주지 마라. 그들은 한번 가르쳐 주면 죽을 때까지 그 길로만 간다.
* 떼를 지은 까치가 혼자 있는 호랑이 보다 강하다.
* 불속에는 서늘함이 없고, 어둠속에는 평화가 없다.
* 까마귀가 까치 보고 검다고 흉을 본다.
* 채소도 잘 익혀 먹어야한다.
* 살모사는 눈에 띠지만, 비열한 인간은 눈에 띠지 않는다.
* 어리석은 사람은 어제 먹은 것을 말하고, 현명한 사람은 어제 본 것을 이야기한다.
* 지혜로운 유목민은 개 짖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
* 두려운 일은 처음부터 하지마라. 그러나 한번 한 일은 끝까지 두려워해라.
* 한번 승낙한 일은 결코 후회하지 마라.
* 토끼가 뿔 나기를 기다려서는 안된다.
* 어리석은 사람도 침묵하면 똑똑하게 보인다.
* 유목민은 보통하는 말도 맹세 처럼 한다.
* 고양이는 장난으로 하지만 쥐는 죽는다.
* 말은 달릴 때가 아름답고, 사람은 진실 할 때가 아름답다.
* 개와 사이가 나빠지면 옷이 찢어지지만, 영주와 사이가 나빠지면 등이 찢어진다.
* 고통을 모르는 자는 기쁨도 알 수 없다.
* 소 뿔 위에 올라간 개미가 천하를 정복했다고 기뻐한다.
* 강은 보지도 못했는데 신발 부터 벗는다.
* 구름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이슬은 태양을 이길 수 없다.
* 진실치 못한 친구는 적 보다 훨씬 위험하다.
* 부상은 내가 당했는데, 신음은 네가 한다.
* 아이에게 칼을 주어서는 않되고, 어리석은 자에게 권력을 주어서는 않된다.
* 말 많은 사람은 혀가 바쁘고, 일하는 사람은 손이 바쁘다.
* 놓친 물고기는 언제나 크게 보인다.
* 양치기도 학자가 모르는 것을 알 때가 있다.
* 거북이는 알을 천 개나 낳고도 조용한데, 닭은 알을 하나 낳고도 온 동네를 향해 울어 젖힌다.
* 한 손으로는 단추를 꿸 수 없다.
* 남자는 알타이 산맥을 넘어가 보아야 남자가 되고, 내가 탄 말은 고비사막을 지나가 보아야 알 수 있다.
* 어머니 마음은 자식에게 있는데 자식 마음은 늘 초원에 가 있다.
* 천둥치는 하늘에는 비가 없고, 잘난 여자에게는 신랑이 없다.
* 말의 숫자에 따라 휘파람을 불고, 이불의 크기에 따라 다리를 뻣어라.
* 자신을 알면 사람이고, 초원을 알면 가축이다.
* 우물 마다 물맛은 다 다르다.
* 나쁜 장군은 부하들에게 대장노릇하고, 나쁜 남편은 아내에게 대장노릇한다.
* 소나기가 쏟아져도 약속은 지켜야한다.
* 머리가 헝크러져도 내 어머니고, 틈이 벌어져도 내 게르다.
* 불에서 도망치다가 물에 빠져 죽는다.
* 말이 좋지 못하면 도착 할 때 까지 고생하고, 생각이 좋지 못하면 죽을 때 까지 고생한다.
* 아버지의 말씀은 금이고, 어머니의 교훈은교양이다.
* 맛 보다가 주당이 되고, 한번 피워 보다가 골초가 된다.
* 처방을 모르는 스님 보다 고생해 본 할머니가 훨씬 낫다.
* 이미지 망가지는 것 보다 뼈 부러지는 것이 낫다.
* 말은 타보아야 알고, 사람은 같이 살아 보아야 안다.
* 웃는다고 해서 친구가 아니고, 분노한다고 해서 원수가 아니다.
* 어제는 몽골의 속담들을 담고 있는 책 몇권을 올려드렸는데, 오늘은 혹시 우리 인문학 친구들 중에 유목, 이민, 이주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으실 분들이 계실까 싶어서 한 3권만 추천해 드립니다.
1) 사람은 왜 옮겨 다니며 살았나 – 인류의 이민 2만년사, 기 리샤르(Guy Richard) 외 8인 지음, 전혜정 옮김, 에디터, 2004
2) 호모 노마드 – 유목하는 인간, 자크 아탈리 (Jacques Attali) 지음, 이효숙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5
3) 이주하는 인간 – 호모 미그란스, 조일준 지음, 푸른역사, 2016
Carpe diem !!!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48)
골프공 이야기

취미나 재미로 가끔 골프를 치시는 분들도 많이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15세기 스코틀랜드에서 목동들이 소나 양떼를 몰고 다니면서 초장에 널려있던 돌멩이들을 지팡이로 툭툭 쳐내면서 골프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초기 골프 클럽이라고해야 기껏 나무 막대기로 부터 시작되었으나, 그후 점점 질 좋은 막대기, 이를테면, 밤나무 가지 같은 것을 거쳐, 시간이 흘러가면서 스틸로 발전이 되었고, 오늘날에는 카본이나 티타늄으로 까지 크게 개선되어 왔다고 합니다.
물론 프로들에게는 골프 클럽이나 골프 공 이외에, 옷이나 신발이나 모자 등등 거의 모든 골프와 연관된 악세서리들이 다 상업적 광고 이상으로 운동 자체에도 큰 영향을 끼치겠지만, 그냥 취미 삼아 하는 이들에게는 골프 클럽과 골프 공, 이 두 가지가 제일 중요하지 싶습니다.
골프 공 역시 처음에는 오늘날 같은 공이 아니라 돌멩이가 원조였습니다. 그후 16세기에 접어들면서 목동들이 쳐내던 돌멩이 공이 나무를 동그랗게 다듬어서만든 나무공으로 발전이 되었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밤나무로 만든 공이 좋았다고 합니다.
이후 18세기에 이르러 골프가 상류층의 운동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골프공도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나온 공이 ‘페더리 공’ (featherie ball)이었습니다. 우리 말로 ‘깃털 공’이라 할 수 있을텐데, 가죽으로 공의 껍데기를 만들고, 속은 새나 닭이나 오리 깃털을 쑤셔 넣어서 만든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엔 이것이 더 발전하여 ‘구티 볼’ (gutty ball)이 나왔습니다. 구티나무의 수액을 굳혀서 만든 공이었는데 공이 아주 유연하고 따라서 멀리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말이 되었습니다. ‘하스켈 볼’ (Haskell ball)이 나왔습니다. 이 공은 코번 하스켈 (Coburn Haskell)이 발명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속에다는 고무실을 칭칭 감고 페르카 나무에서 추출한 고무를 표면에 씌운 것으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골프 공과 아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하스켈 볼이 참 좋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그 이전의 구티 볼이 기껏해야 비거리가 약 120m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거의 그 두배에 이르는 240여m 까지 날아가는 등 장점이 참 많았지만, 그 볼의 결정적 단점은 가격이었습니다. 당시엔 하나 하나가 다 수작업을 통하여 만드는 것이였기에 그 값이 여간 비싼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이 하스켈 볼을 쉽게 바꿀 수가 없어서 볼 하나를 가지고 계속 쳤습니다. 그런 중에 공은 여기 저기가 움푹 파이고 흠집이 생겨났습니다.
그 때 나타난 현상이 오늘날 골프 볼에 딤플 (dimple)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 만들었던 하스켈 볼은 달걀 껍질 처럼 아주 매끈하고 평평하게 만들어서 사용했는데, 그것이 값이 비싸서 계속해서 오래 쓰는 바람에, 공에는 수많은 상처가 생기고 울퉁 불퉁해졌는데, 그에 비해 공의 비거리는 거의 두배나 되는 것을 발견해 낸 것 입니다.
‘아 맞고 터지고 생채기가 생기고 울퉁 불퉁해진 공이 확실히 더 멀리 날아가고 홀에도 잘 들어가고 좋은 스코어를 내게 하는 구나 !’ 그걸 발견해 낸 것이 오늘 우리가 쓰는 솔리드 코어 볼 (solid core ball)이 나오게 된 계기였습니다. 오늘날의 골프 볼이 여기 저기 울퉁불퉁, 마치 흠이 있는 것 처럼 딤플을 많이 가진 것이 된 역사는 이렇게 된 것 입니다.
‘맞고 터지고 생채기가 생기고 울퉁불퉁해 질 때 거리는 늘어나고 점수는 더 좋아진다’
모든 것이 이와 흡사합니다. 뜨거운 불과 용광로를 통과한 후에야 정제된 강철이 나옵니다. 쇠는 담금질과 벼름질을 통하여 단단해지고, 이글거리는 불속을 지나야 쓸모있는 기구가 만들어 집니다. 99.9%의 순금은 그냥 처음 부터 금광에서 토출되는 것이 아니라 잘게 부수고, 깨고, 씻어내고, 끓여내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골프공만 흠집이 있어서 멀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저 혼자 걸음마를 하기 까지는 평균 2천, 혹은 3천 번 정도는 넘어진다고 합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오늘날 우리가 쓰는 전구를 발명해 내기 까지 무려 999번의 실패 끝에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사람들은 에디슨을 가르켜 ‘세상에서 가장 많이 실패해 본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한번도 실패를 실패라 하지 않고 늘 실험이라고 불렀습니다’
페니실린 발명에 앞서 발견한 살바르산 606호는 에를리히 (Paul Ehrlich)가 605번이나 실패한 후 606번 째 실험에서 성공을 거둠으로 붙여진 이름 입니다.
인생이란 거의 이와 흡사합니다. 고난, 실패, 아픔, 쓰라림이 인생을 더 아름답게하고, 빛나게하고, 멀리 가게 해 줍니다. 많이 맞은 사람이 더 성숙해지고, 실패해 본 사람이 더 크게 성취하게 되고, 아파 본 사람이 더 강건해 집니다. 잔병치레 많이 한 사람이 더 장수한다고 합니다. 인생살이 이런 저런 시련 많이 격어 본 사람이 더 성숙한 인격과 성품을 지니게 됩니다.
제 주변에는 아픈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나이가 더해 가니 그런 것이겠지만, 벌써 수년 째 견디기 어려운 통증으로 고생하는 분, 걷기에도 불편한 몸이지만 좌절하지 않고 움직이는 분, 암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하시는 분 등이 가까이 계십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사실 실패와 아픔을 통해서 더 단단해지고, 건강 할 때 보다 아플 때 훨씬 더 많은 것을 깨우치게 됩니다. 울퉁불퉁한 딤프가 있는 골프 공, 아프고 쓰라린 인생 – 그것이 우리를 더 멀리 가게하고, 더 높이 보게하고, 더 큰 희망과 가능성을 갖게해 주며, 더 깊은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깨우치게 해 줍니다.
흔히 꽃길만 걸으라고 축복해 주지만, 인생길엔 결코 꽃길만 있지는 않습니다. 가시밭 길도 많이 있습니다. 낮과 밤이 반반인 것 처럼, 꽃길 반, 가시밭길 반 입니다.
움푹 파진 골프공 하나를 보면서도, 고난은 연단을, 연단은 인내를, 그리고 인내는 마침내 영광을 가져오리라는 희망을 지닐 수만 있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하는 9월의 첫날 아침입니다.
Carpe diem !!!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49)
중심축

사전적으로 중심축이란 1) ‘사물의 한 가운데’를 이르는 말로서 중간, 중심을 뜻하며 2) 더 나아가 어떤 일이나 사건의 핵심, 즉 기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주로 Axis, the central axis, 혹은 the central point로 표기 합니다. 이는 마치 시소에서 이쪽과 저쪽, 양쪽의 균형을 잡아 주기 위해서 한 가운데다 놓는 받침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심축이란 어떤 것이 어느 한 쪽으로 쏠리지 않게 균형을 잡아주는 역활을 합니다.
그런데 그 동안 우리가 살아온 세상은 이 균형을 잡아 주어야 할 중심축이, 균형축이 지나치게 오래,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흔히 ‘기울어진 운동장 이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퍽 많은 부분에서 공평과 공의가 깨어지고, 사회적 양극화를 가져온 원인이 바로 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중심축’ 때문이요,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세상과 역사는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 합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안든, 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모든 것은 변합니다. 중심축은 서서히 움직여 왔고, 지금도 움직이고 있고, 또 앞으로도 움직일 것 입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어른에서 젊은이로, 기성세대에서 신세대로, 서양에서 동양으로, 엘리트에서 시민으로, 전문가에서 교양인으로, 제 1세계에서 제 3세계로, 속도의 차이는 있어도, 그래도 인간과 역사의 중심축은 변화의 변화를 거듭해 갑니다. 물론 많은 경우, 이런 중심축의 이동과 변화는 반복적이거나 윤회적 모습으로도 보이지만, 그래도 그 저변은 직선적 발전과 보다 나은 미래를 지향한다고 봅니다.
전에는 화자, speaker, 즉 말을 하는 사람이 중심이었으나, 이제는 말을 듣는 사람, 즉 listener가 중심축으로 바꾸어 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선생에서 학생으로, 필자, 저자, writer에서, 독자, reader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서, 그 그림을 보는 사람으로, 음악을 작곡하거나 부르는 사람에서, 그 음악을 듣는 사람으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지역적으로도 서울 중심에서 지방 중심으로, 회사도 경영자 중심에서 노동자 중심으로, 사업도 해외 무역 중심에서 해외 투자 중심으로, 마치 온 세상이 오프 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변하듯이, 나타난 현상 만이 아니라 밑에 깔려있는 바탕이, 기본이, 중심축이 이동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중심축의 변화와 움직임은 그 동안의 역사가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면 이제는 그 기울어진 불균형과 불평등을 똑바로 맞추어 보자는 데서 출발한 것 입니다. 남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북쪽으로 기울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을 균형있게 맞추자는 것 입니다. 그 동안은 너무 오랫동안 남성, 어른, 선생, 전문가, 엘리트, 서양, 서울, 말하는 사람, 글 쓰는 사람, 그림 그리고 노래하는 사람, 회사 경영하는 사람들에게 무게의 중심을 두어왔었는데, 이제는 좀 더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 여성, 젊은이, 학생, 동양, 지방, 보통사람, 상식선, 교양인, 듣는 사람, 읽는 사람, 보는 사람 노동자, 소비자들 중심으로 끌어당겨 균형을 맞추어 나가자는 것 입니다. 너무 오래 한 쪽으로 기울어 졌던 운동장, 그래서 기울어진 줄도 모르고 지내왔던 그 운동장을 가능한 한, 남쪽과 북쪽이 균형을 맞추어 공평하게 만들어 보자는 것 입니다.
모든 사물은 중심이 똑바로 서 있어야 무너지지 않습니다. 팽이도, 운동도, 건물도, 그리고 건강과 사람됨도 중심축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곧 쓰러집니다.
세상은 급속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지난날엔 변방이라고 여겼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힘과 가치와 쓸모가 없다고 여겼던 것들이 조금씩 중심으로, 가운대로 이동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중심축의 이동형상은 사실 우리 인간들의 생각이, 사고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표시 입니다. 이는 단순히 외형적 무게의 이동만이 아니라, 내적, 정신적 가치관이 변한다는 뜻 입니다. 전에는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일을 이루어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전에는 성공이나 출세가 삶의 중심축이었다면, 이제는 하루 하루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으로 삶의 중심이 변하고 있다는 뜻 입니다.
나는 이런 중심축의 변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사람일까요? 불안한가요! 거부감이 생기나요? 그래서 반대하는 편인가요? 혹시 나는 보수주의자는 이닐까요? 기득권을 옹호하는 사람은 아닐까요?
나는 그래도, 비교적으로 역사의 중심축이 움직이고 있는 것에 대하여, 많이 긍정적이고 지지하며 찬성하는 편인가요? 솔직하게 나 자신의 정체성을 테스트 해 봅니다.
전에는 나 자신이 모든 것의 중심이었으나, 이제는 타인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할 것 입니다.
전에는 인간이 중심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부터는 자연이 중심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입니다.
전에는 지구가 중심축이라고 여겼지만, 이제 부터는 우주를 바라 보아야 하겠습니다.
전에는 땅이 중심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부터는 바다를 중심으로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전에는 돈과 물질이 모든 것의 중심축이었지만, 이제 부터는 마음과 인격을 중심으로 삼겠습니다.
김삼오 박사의 말대로, 전에는 갑이 중심이요, 선진국이 중심이었으나, 이제부터는 을이 중심이 되고, 경제 발전을 넘어서서 글로벌 에티켓과 예의와 매너를 소중히 여겨, 내 일상적 삶의 중심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저는 저 자신에게 다시 묻습니다.
나는 내 인생의 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나는 내 인생의 중심축이 어느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는 사람은 아닌가?
나는 혹시 세상의 중심축이 이동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닌가?
(추천도서 : 세계사의 중심축이 이동한다, 다마키 도이아키 지음, 서수지 옮김, 사람과 나무사이, 2020)
Carpe diem !!!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50)
빅 퀘스천 (Big Question)
한국의 카이스트 (KAIST)에서 일하는 김대식 교수의 책, ‘김대식의 빅퀘스천’ (김대식 지음, 동아시아, 2014), 거의 앞 부분에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15쪽)

아이들은 가끔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으로 어른들을 당혹하게한다.
‘초콜릿 먹으면 왜 안돼?’
‘이 상하니까’
‘이 상하면 왜 안돼?’
‘음식을 못 먹으니까’
‘음식을 못 먹으면 왜 안돼?’
‘아파서 죽을 수 있으니까?’
‘죽으면 왜 안돼?’
‘엄마 아빠가 슬프니까’
‘슬프면 왜 안돼?’
‘……’ (말문이 막힙니다)
대학 1학년 초, 철학개론 첫 시간에 철학과 선생님들이 흔히 꺼내는 화두입니다.
한 학생이 급히 강의실로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교수가 물었습니다.
‘학생, 왜 이렇게 바삐 가나?’
‘수업에 늦을까봐요’
‘수업에 늦으면 어떻게 되는데?’
‘강의를 다 들을 수 없지요’
‘강의를 다 못 들으면 어떻게 되는데?’
‘시험 칠 때 제대로 답을 못 쓰게 되지요’
‘시험을 잘 치면 어떻게 되나?’
‘그야 좋은 성적을 받게 되지요’
‘좋은 성적을 받으면 무엇이 좋은가?’
‘졸업 후 원하는 좋은 곳에 취직할 수 있지요’
‘그래,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무엇이 좋은가?’
‘월급 많이 받고 저축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럼 그 후에는 뭘 할 건가?’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아이들도 갖겠지요’
‘그래,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세월이 지나 나이 먹고 저도 은퇴하겠지요’
‘아 그렇구만… 은퇴 후에는 뭘 하겠나?’
‘아내랑 세계 여행이나 하면서 노후를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
‘그 후엔 또 무얼 하겠나?’
‘무얼 하겠습니까? 그 때가 되면 저도 죽겠지요’
‘그렇구만! 그럼 수학에서 문제를 풀 때, 중간의 식은 다 생략하고 답 만 말하는 것 처럼, 한번 답만 말해보게. 학생은 지금 왜 이렇게 바삐 가나?’
‘아… 죽으러 가는 것이네요 !’
세계에서 질문을 가장 많이 하고, 잘 하는 민족은 유대인들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너 오늘 뭘 배웠니?’ 하면서 ‘배운 것’을 물어봅니다.
그런데 유대인 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이렇게 묻는다지 않습니까?
‘너 오늘 무슨 질문을 했니? 너 오늘 선생님께 뭘 물어봤니?’
질문이 없는 곳에는 답도 없습니다.
인간은 질문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질문을 통하여 성장합니다.
자연도, 역사도, 인간도, 신도, 사상도, 과학도, 도덕과 종교 등등 세상 모든 것은, 질문으로 부터 출발하여, 질문을 통하여, 생각하게 되고, 답을 추구하게 되고, 더 깊고 넓은 이해를 더해 가게 됩니다.
우문현답, 현문우답, 우문우답, 현문현답 – a wise answer to a silly question / a silly answer to a wise question / a silly answer to a wise question / a wise answer to a wise question –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문이든, 현문이든, 일단은 질문이 먼저 던져지는 곳에 답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이어집니다.
소크라테스의 질문법,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Socratic Method는철학에서 가장 오래된 방법론 중 하나 입니다. 그는 사람들을 향하여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 가면서 제일 마지막에는, 자기 입으로 스스로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라고 실토하게 이끌었습니다. 그럼 그때, 소크라테스는 말합니다. ‘되었네! 자네는 이제 자네의 무지를 알게 되었으니!’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계속한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알게 해 주려는 것’ ‘자신의 무지를 깨우쳐 주려는 것’ – 그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너 자신을 알라’ – Know Yourself ! 를 그의 철학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나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 그 하나만은 안다’ – I know only one thing that is that I know nothing. 한 시대의 한 위대한 철학자는 이렇듯 쉬임없는 질문으로 부터 출발하였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질문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심하고, 의아해하고, 질문함으로 더욱 성숙해 집니다.
출발은 그져 아무 질문이나 괜찮습니다. ‘나는 왜 밥을 먹는가?’ ‘나는 왜 운동을 하는가?’ ‘나는 왜 이 글을 읽고 있는가?’로 부터 출발해 보십시요. 계속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다 보면 우리는 우리가 미쳐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모든 질문에는 호기심, 궁금해 하는 마음, 의심스런 마음이 그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인간 존재는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그 나이에 걸맞게 항상 끊임없는 호기심, 궁금증, 그리고 의심과 질문이 있습니다. 의심하는 것과 그 의심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실험해 보고, 토론해 보고, 그러다가 그것을 말하고, 글로 써 보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욕구 중 하나 입니다. 이런 호기심과 의심과 탐구심은 그 어떤 법률이나 종교적 교리나, 그 무엇으로든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인문학교실의 목표 중 하나는 우리 모두 질문하는 사람이 되어 보는 것입니다. 질문하는 기쁨, 질문을 통한 자기 발견은 우리의 아주 소중한 관심사 입니다.
사람 마다 자신이 처한 환경, 자신이 해본 경험, 자신이 가진 생각에 따라 빅 퀘스천, 가장 크고 소중한 질문이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문제가, 또 어떤 이에게는 경제문제가, 그리고 다른 이에게는 가정문제, 자녀문제, 부부문제, 종교문제, 정치문제, 인간관계에서 오는 문제 등등 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 인간들 대부분에게 던져지는 그 어떤 공통된 문제, 공통의 질문은 없을까요? 만약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이는 종교적 질문이 아닙니다. 과학적 질문만도 아닙니다. 사회학적, 정치학적, 인류학적 질문만도 아닙니다. 물론 고갱이 그의 작품의 제목으로 이 질문을 붙였다 하더라도 이는 실로 고갱의 질문만도 아닙니다. 이는 인간 모두가 지닌 가장 공통적이며 가장 깊고 심오한 빅 퀘스천입니다.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이 작품은 고갱 (Paul Gauguin)이 1897년에 그린 것으로 지금은 미국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김대식교수는 그의 책 ‘빅 퀘스천’에서 31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큰 질문은 3가지 입니다.
삶은 의미가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정의를 기대하는가?
만물의 법칙은 어디서 오는가?
이에 따라 그가 우리들에게 묻는 질문 31가지를 정리해 봅니다.
존재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는 왜 먼 곳을 그리워하는가?
원인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친구란 무엇인가?
삶은 의미가 있어야 하는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환상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인간은 왜 죽어야 하는가?
운명이란 무엇인가?
영혼이란 무엇인가?
진실은 존재하는가?
인간은 무엇을 책임질 수 있는가?
우리는 왜 정의를 기대하는가?
민주주의는 영원한가?
로마는 정말 멸망했는가?
왜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는가?
인간은 왜 유명하고 싶어 하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소유란 무엇인가?
가축은 인간의 포로인가?
우리는 왜 사랑해야 하는가?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시간은 왜 흐르는가?
인간은 어떻게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가?
만물의 법칙은 어디에서 오는가?
노화란 무엇인가?
정보란 무엇인가?
마음을 가진 기계를 만들 수 있을까?
인간은 기계의 노예가 될 것인가?
인간은 왜 필요한가?
Carpe diem !
(인문학 친구 여러분께 드립니다. 그 동안 부족한 사람이 잡기장이란 이름으로 아침 마다 올려 온 글을 오늘로써 마감하려고 합니다. 아직 코로나로 인한 lock down이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어제 저녁 부터 우리 인문학교실이 비대면으로, zoom으로 나마 다시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뵈올 수 있어서 참 기뻤습니다. 아마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9월, 10월, 11월 석달은 어제 처럼 매주 1째와 3째 주 목요일 저녁 7시에 만나 전 처럼 함께 배우고 사귈 수 있는 모임이 계속 될 것 입니다. 그 동안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글, 그야말로 일천한 잡기장을 읽어 주시고 여러가지 모양으로 함께 해 주신 여러분들께 마음 곳에서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