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9월 모임 실시
린필드 목요모임 ‘큰 줄거리 중국사 2’ 강연과 신영복의 ‘담론’ 독서모임 가져 … 다음모임은 10월 2일 (목, 오후 7시)
리드컴 수요모임은 주강사 홍길복 목사 강연, 9월 24일 모임후 3학기 방학 [9월 4일 강연 전문포함]
시드니인문학교실 (The Humanitas Class For the Korean Community in Sydney)은 2025년 9월 모임을 린필드와 리드컴에서 실시했다.

리드컴 수요모임은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를 주강사로 중간방학 후 9월 10일과 24일 모임을 가졌다.
다음모임은 3학기 중간방학후 새벽종소리 명성교회 (리드컴 소재)에서 모임을 갖는다.
린필드 목요모임은 9월 4일 (목) 오후 7시, 린필드한글사랑도서관 (김동숙 관장, 454 Pacific Hwy, Lindfield)에서 김대근 강사는 ‘큰 줄거리 중국사 2 : 근세 (‘비화하족’과 왕조 교체 중심으로)’를 주제로, 9월 18일에는 신영복의 ‘담론’ 제11장 ‘「어제의 토끼를 기다리며’ (한비자) 독서 모임을 가졌다.

9월 4일 모임에서 김대근 강사는 “큰 줄거리 중국사 두 번째 시간입니다. 전 역사가 학부 전공이긴 하지만 역사가도 아니고 중국사를 전공하지 않았다는 점을 다시 말씀 드립니다. 이 강연의 많은 주장은 [동이 한국사], [동북 공정 이전 중국이 쓴 한국사] 등등의 저자인 이기훈 박사 주장을 참조했다는 점도 재차 밝힙니다. 지난 시간에 하나라에서 시작해서 한나라까지 살펴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어서 위진 남북조시대와 수.당을 포함해서 이번 시간에는 근세에 해당하는 기간을 시간 여행해 보겠습니다. 이런 서사는 현재 중화인민 공화국이라고 하는 곳의 국민국가의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준비한 자인 한국계 호주인의 관점도 들어가 있겠네요. 말씀드렸지만 역사는 관점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사료들과 발견되는 유물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당시 모습에 가까운 이해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또, 제 주장의 기저에는 현재의 한국과 호주의 ‘국익’과 전체주의 혹은 부족주의 보다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더 낫고 세계는 현실주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개인적인 관점이 들어있습니다.”라며 전한과 후한, 5호 16국, 수나라, 당나라, 5대 10국, 송나라, 몽골제국, 명나라 순으로 살핀 후 “어떠십니까? 두 번에 걸쳐 중국 역대 왕조들을 주마간산식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각 왕조의 개창자들이 누구인지 어느 종족 출신인지를 논의하며 (거의) 모든 중국의 왕조들이 한족이 아니라 이 민족이 세운 나라라는 저의 주장을 뒷받침 해보려 했습니다만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이 되었을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청나라는 하셨다고 하니 여기서 멈추겠습니다”라며 강연을 마쳤다.

이어 9월 18일에는 독서모임으로 신영복의 ‘담론’ 제11장 ‘어제의 토끼를 기다리며’ (한비자)를 나눴다.
신영복 선생은 동양 고전의 깊은 울림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리며, 공자에서 맹자, 그리고 노자와 장자로 이어지는 사유의 흐름을 따라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나눴다. 인문학교실에서는 전반기 독서모임에 이어 이날 모임에서는 한비자의 관점에 주목했다.
법가는 군주론과 제왕, 법치를 주장했으며, 한비자가 유명하다. 『한비자』에서는 신발을 사러 장에 간 차치리의 탁(度)과 족(足) 이야기를 통해 변화하는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완고한 인식틀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의 어리석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선생은 우리가 탁을 가지러 다시 집에 가는 차치리와 같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문제를 풀려고 할 때, 우선 그 현실을 대면하려 하지 않고, 현실을 본뜬 ‘탁’을 가지러 도서관으로 가거나 인터넷을 뒤진다. 살아 있는 현실을 대면하기보다는 그 현실을 본뜬 책을 더 신뢰하는 것이다. 이러한 완고한 인식틀은 사람을 평가하는 우리의 인식틀과도 같다. 전국시대 법가(法家)의 원칙은 계급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형(刑)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당시에는 대부(大夫) 이상은 예(禮)로, 서민들은 형벌로 처벌하는 것이 통용된 형 집행 원칙이었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사법 현실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정치인이나 경제사범은 처벌도 경미하고 또 받은 형도 얼마 후면 사면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법 현실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의 사회의식이다. 정치·경제 사범은 ‘불법행위자’로 인식하면서 절도, 강도와 같은 일반 사범은 ‘범죄인’이라고 한다. 엄청난 인식의 차이다. 한쪽은 그 사람의 ‘행위’만이 불법임에 반하여, 다른 쪽은 ‘인간 자체’가 범죄인이 된다. 완고한 인식틀이다.

신영복 저자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대전 · 전주 교도소에서 20년간 복역하다가 1988년 8 ·15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76년부터 1988년까지 감옥에서 휴지와 봉함엽서 등에 깨알같이 쓴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묶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큰 고통 속에 있는 인간이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진솔함으로 가득한 산문집이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한국사상사, 중국고전강독 등을 가르쳤고, 1998년 3월, 출소 10년만에 사면복권되었다. 1998년 5월 1일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정식 임용되어 2007년 정년퇴임을 하고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저자 신영복은 2014년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16년 1월 15일, 향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한편 시드니인문학교실은 “우리 시대 과연 사람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고 고민하며, 함께 그 생각과 고민을 나누고 싶어 하는 분들을 초청합니다. 현재 린필드에서는 목요일 (1, 3주 목요일 오후 7시)에, 리드컴에서는 수요일 (2, 4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모임을 합니다”라고 취지를 밝히며 초청했다.
다음 린필드 목요모임은 10월 2일 (목) 오후 7시, 린필드한글사랑도서관 (김동숙 관장, 454 Pacific Hwy, Lindfield)에서 모인다.
다음 리드컴 수요모임은 9월 24일 모임후 3학기 중간방학을 실시한다. 이후 공지해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를 주강사로 리드컴에 위치한 명성교회에서 모인다.
시드니인문학교실 9월 4일 강연 전문
큰 줄거리 중국사 2 : 근세 (‘비화하족’과 왕조 교체 중심으로)
안녕하세요. 여러분. 큰 줄거리 중국사 두 번째 시간입니다. 전 역사가 학부 전공이긴 하지만 역사가도 아니고 중국사를 전공하지 않았다는 점을 다시 말씀 드립니다. 이 강연의 많은 주장은 [동이 한국사], [동북 공정 이전 중국이 쓴 한국사] 등등의 저자인 이기훈 박사 주장을 참조했다는 점도 재차 밝힙니다.
지난 시간에 하나라에서 시작해서 한나라까지 살펴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어서 위진 남북조시대와 수.당을 포함해서 이번 시간에는 근세에 해당하는 기간을 시간 여행해 보겠습니다.
이런 서사는 현재 중화인민 공화국이라고 하는 곳의 국민국가의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준비한 자인 한국계 호주인의 관점도 들어가 있겠네요.
말씀드렸지만 역사는 관점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사료들과 발견되는 유물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당시 모습에 가까운 이해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또, 제 주장의 기저에는 현재의 한국과 호주의 ‘국익’과 전체주의 혹은 부족주의 보다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더 낫고 세계는 현실주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개인적인 관점이 들어있습니다.
본론
저의 주장은 기존의 널리 알려진 그리고 중국이 주장하는 역사와 다르게 중국사는 소위 중국사에서 ‘이민족’으로 구분되어오던 사람들이 건설한 왕조들의 교체사이다. 그리고 그중에 큰 부분은 현재의 한국인 (韓國人)과도 관계가 있는 혹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비화하족 (非華夏族)’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건설한 왕조들이다는 것 입니다.
비화하족은 예전 교과서의 표현대로 하면 ‘오랑캐’입니다. 예를들면, 5호 16국의 오호 (五胡)는 다섯 ‘오랑캐’라는 뜻이죠. 흉노, 선비, 갈, 저, 강입니다. 지난 시간에 동이족이란 표현으로 비화하족을 많이 말씀드렸는 데 오늘은 흉노, 선비, 여진, 거란, 사타 등과 같은 비화하족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먼저 흉노와 접점이 많았던 왕조가 한 (漢) 나라입니다. 진시황제가 죽자 진승, 오광의 난을 시작으로 전 지역이 혼란에 빠지고, 두각을 나타내던 한나라의 유방과 초나라의 항우가 최후의 결전을 한 역사적 사실을 소설화 한 초한지 (楚漢志)는 중학생때 매우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Figure 1 5호 16국의 성립과 한족의 이동 / Figure 2 서한시대의 지도 (바이두에서 퍼옴)

Figure 3 흉노의 이동경로
싸움의 결과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유방의 승리로 끝나고 한나라가 시작됩니다. 한나라는 기원전 202년부터 기원후 220년까지 지속된 나라입니다. 전한과 후한으로 나누기도 하고 전한은 서한 후한을 동한이라고도 합니다. 중간에 잠깐 왕망이 세운 신나라로 맥이 끊기기도 했죠. 중국의 역사 서사에서 한나라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합니다.
한족 (漢族)이라 할때 한 (漢)은 이 한나라에서 왔습니다. 통일 왕조이고 ‘중국’(?)이라 할만한 문화적 정체성도 이 때에 생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천천히 쌓여 온 부분도 있겠으나 일반 백성의 입장에서 지배자가 누구로 바뀌든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으면 관심이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한은 삼국으로 나누어지며 대립하고 이 시대는 조조가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위나라를 세우고 얼마가지 않아 사마염이 진나라를 세우며 막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 진 (晉)도 북방 유목민의 침략으로 수도를 강남으로 옮기면서 많은 나라 중에 하나가 되는 시기가 오는 데 이 때를 5호 16국 시대라고 합니다.
선비, 흉노, 갈, 저, 강이라는 이민족들이 16개의 나라 (실제로는 더 있다고 합니다.)를 세웠다는 의미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명칭입니다. 이 기간은 수나라 등장까지 130여년을 갑니다. 16국이라는 용어는 6세기 북위의 역사학자 최홍의 십육국춘추에서 따서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한의 멸망이후 부터 수의 통일까지 시기를 위진남북조라고도 합니다.
이런 혼란스런 시기를 정리하고 세워진 나라가 바로 수나라 입니다.수는 북주에서 선양을 받아 만들어집니다. 이 북주는 우문선비족이 세운 나라 입니다. 저는 선비 (鮮卑)라는 이름은 조선 (朝鮮)족을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름 아닐까 생각합니다. 흉노 (匈奴)도 ‘훈’이란 사람들의 음차 부분과 멸칭으로 노예 (奴)란 단어를 넣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째든, 수나라를 세운 선비는 탁발선비입니다. 요하 유역에 거주했던 모용선비가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때로는 동이 때로는 북적으로 표현된 이민족입니다. 특히 모용선비는 중국사에서 연 (燕 제비연) 나라라는 이름을 쓰는 나라들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선비는 단씨성을 쓰는 부족이 유명했었는데 묘용선비가 전연 (前燕)을 세우고 이들을 제압하고 나중에는 우문선비를 멸망시키나 후에 탁발선비에게 자리를 내주죠.

Figure 4 선비족분포도(위키피디아에서 퍼옴)
탁발선비들은‘한족’문화를 도입하고 따르려 한 사람들도 있었는 데, 그들은 양씨, 원씨 등으로 성을 바꿉니다. 그러면서 북주 건국때 수문제의 아버지 양충은 주국대장군과 수국공이란 직을 겸직하며 군권과 정권을 잡고 아들 양견도 수국공을 지위를 이어 받아 수나라를 건국하고 장안을 도읍으로 삼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문씨들은 씨가 말랐다는 이야기는 꽤 유명합니다.

Figure 5 수나라 지도 / Figure 6 당나라 지도
다음은 중국 역사에 관심없는 분들도 많이 들어 본 당 (唐) 나라입니다. 본론부터 말씀드리면 당 고조 이연은 선비족 출신의 수나라 장수였습니다. 수나라 어린 황제 공유에게 형식상 선양을 받아 당나라를 개국했습니다. 그러니 당나라도 선비족이 세운 나라입니다. 사실 다른 모든 왕조들도 한족이 세운 왕조도 없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어째든 당나라도 이런 상황이다 보니 서울대의 중국 중세사 전문가 박한제 교수는 [대당제국과 그 유산]에서 당은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의 제국이었다고 했습니다. 모든 종교가 다 모였다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네스토리우스교라 불리는 외래종교가 있었다.
태종정관 9년 대진국 아라본이 이끄는 전도단이 왔다는 기록에서 그 모습을 나타낸다. 현종 때에 이르러서 경교 (景敎)라는 중국적 이름으로 확정되었다.”(78쪽)

Figure 7 대진경교유행중국비
약 300년 지속되던 당은 안녹산과 사사명의 난으로 쇠퇴하기 시작해 황소의 난으로 역사가 됩니다. 그런데 한자 이름인 것 같지만 안녹산은 소그드인의 이름을 음차한 것 입니다.
소그드인은 이란계 민족과 돌궐족의 혼혈로 알려져 있습니다. ‘밝음’과 ‘빛나다’를 의미하는 로흐샨 (roxs(a)n)을 음차한 것이라고 하죠. 영어의 록산느 (Roxane)와도 어원이 같습니다. 사사명은 돌궐족 출신입니다. 과연 중국 역대 왕조가운데 한족의 나라가 있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진도를 나가보겠습니다. 당나라 다음은 5대 10국 기간 약 반세기 동안 입니다. 5대는 후량 (後梁, 907년 ~ 923년), 후당 (後唐, 923년 ~ 936년), 후진 (後晉, 936년 ~ 946년), 후한 (後漢, 947년 ~ 951년), 후주 (後周, 951년 ~ 960년) 입니다. 중국사의 정통왕조로 분류되는 다섯 왕조 입니다. 그래서 대 (代: 한 집안에서 이어 내려오는 혈통과 계보, 지위나 시대가 이어지고 있는 동안이라는 뜻이 있음.) 라는 한자를 사용한 것 입니다.
대부분 절도사들이 황제를 자처하며 나라를 세운 것인데 이들이 대부분 사타 (沙陀) 족 출신입니다. 사타족은 샤카족 같은 이란 (스키타이)계 부족이 투르크계 국가인 돌궐 (서돌궐) 동화되 중국사에 등장하는 부족입니다. 천산 부근의 사막지역에 자리를 잡아 사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 데 이 지역에는 오손족, 샤카족 등과 같은 인도 이란계 혹은 투르크계 부족들이 세웠다고 알려져 있는 나라나 연맹체들이 있었습니다.

Figure 8 후한시기 지도와 인접국가들 지도 (행복일기 블로그에서 퍼옴, https://blog.naver.com/legend_bd/222750292363)
10국은 더 복잡하지만 ‘한족’의 후예가 세운 나라가 있었다 하더라도 정통중국 왕조에 들어가지 못하니깐 그냥 넘어가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의 관점에서는 회수 이남의 지역들이 본격적으로 ‘중국’이라는 ‘제국’에 포함이 되는 것은 남송 이후라고 여겨집니다.
5대 10국은 조광윤이 송 (宋: 960년 ~ 1127년)의 황제로 추대 되면서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는 곽위가 세운 5대 후주의 무장입니다. 그의 부친은 후한의 군관이었습니다. 이 후한은 투르크계 출신 석경당의 후진을 이은 투르크계 유지원 (창씨개명)이 세운 왕조 입니다. 과거의 군권은 왕권과 직결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입니다.
같은 계열의 부족에게 군권을 주는 예가 다른 유목민들에게도 발견이 되니까요. 이런 관점에서 조광윤은 투르크계 아니면 사타족계라고 보는 관점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더 관심을 가져야 될 것은 중국 사학계에서 정통 왕조로 송조 대신에 금 (金) 나라로 대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동북공정 떠올리시면 센스쟁이!) 금나라는 여진족이 세운 나라인 것은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죠. 송나라는 거란이 세운 요 (遼: 916 ~1125) 나라에 의해 초기부터 경쟁도 하고 압박도 받으며 결국에는 형제의 관계 (전연의맹 / 澶淵 <허난성 푸양시> 之盟)를 맺고 세폐 (歲幣)를 제공하는 것으로 관계를 정리합니다. 거란을 통일 시키고 나라를 세운 것은 야율아보기란 출중한 부족장입니다. 거란은 동호설도 있고 흉노설도 있지만 한족과 다른 둘 다 이민족이라는 것은 같습니다.
동호에서 시작해 선비중에서도 동부지역의 선비에서 갈라져 나온 우문선비의 한 계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름이 요로 바뀌었을 뿐이지 선비족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선비, 흉노가 종족 개념은 아닐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앞에서 저는 선비가 조선의 폄칭으로 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조선은 뒤에서 금나라에서 더 말씀드립니다만 현재의 대한민국과도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라 이야기도 해야 하는 데 시간이 없네요.)
사서보다도 유물이 더 사실을 이야기 한다라고 저는 보는 편인데, 1956년 내몽골에서 발굴된 요나라 진국 공주의 묘지석에는 ‘야율씨는 원래 시작은 일찍이 고씨의 후예로서 6대 후손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합니다. 고씨는 고구려의 성씨입니다. 고주몽이 시조이죠. 물론 한자로 음차한 것을 후대의 한글 발음으로 읽은 것이라는 짐작입니다만.

Figure 9 https://blog.naver.com/cytchoi/221703145340 에서 퍼옴
그럼 고구려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의 선조의 나라가 중국에게 조공을 받았다고 역사를 써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이런 역사는 한국의 교과 과정에는 없는 것 일까요?
지도를 보면 한나라 때의 흉노 지역도 거란이 다 점령했습니다. 탕구트와 위구르등도 제압하고 현재의 외몽골에서 동투르키스탄 (현신장위구르자치구)의 일부까지 확보합니다.

Figure 10 요나라 지도 (연우의 세계 https://blog.naver.com/hongyw/222663031883 에서 퍼옴)
그러나 이 요나라도 금나라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정확히는 서쪽으로 밀려나 서요라는 나라를 건국하죠. 금나라는 여진족이 세운 나라입니다. 1115년 요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던 아무르 강 배수지역인 하얼빈시의 생여진 부족들을 완안아골타라는 부족장이 규합해 여진 제국을 구성한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금나라가 요나라와 북송을 멸망시키고 현재 중국의 장강 이북지역을 100년 동안 지배합니다.
한국식 한자 독음으로 완안은 당시 여진어로 온얀이라고 하고 만주어 발음으론 왕야 또는 왕얀이고 중국식으로 변형된 것이 왕씨라고 합니다. [원조비사]와 같은 몽골의 기록엔 여진을‘주르첸’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여진어로는 주션이고 n 음이 탈락하면서 주셔로 발음되기도 합니다.
이 발음은 궁리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일단 ‘중국’의 사서에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다양한 이름으로 표기했는데, “조선, 숙신, 직신, 제신, 식신, 여진, 주신 등의 말들이” (김운회, [우리가 배운 고조선은 가짜다], 124쪽)그런 다양한 이름입니다. 이들은 만주쪽에 있었던 사람들을 묘사한 표현인데, 주셔란 발음과 유사한 쥬스란 발음은 서쪽의 유라시아 대륙에서도 발견됩니다.
카자크스탄이란 나라에서는 나라를 세지역으로 나누고 울루 쥬스, 오르타 쥬스, 크스 쥬스라 합니다. [단군의 나라 카자크스탄]의 저자 김정민 박사는 유라시아의 많은 지역들이 예전에 조선 (고조선)이란 연방국에 속해 있었다고 봐야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몽골제국 건설이전에 그에 버금가는 큰 지역이 연방국의 모습으로 고대에 존재했었다는 주장입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을 타타르라고 러시아에서 부르기도 하고 중국 사서에 한자로 달단 (韃靼)으로 기록된 부족입니다. 현재는 러시아의 작은 공화국 하나가 타타르 공화국으로 남아 있습니다.
뮤대륙을 주장했던 20세기 초반의 Jamese Churchward라는 영국의 작가도 아시아의 큰 나라가 있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한족의 나라가 아니라 위구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저는 흥미롭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아시아 대륙의 한 부분을 중심으로 놓고 생각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자는 취지로 말씀드려 봅니다. 살기 좋은 곳 그리고 세력을 모은 사람들의 더 넓은 지역 확보 또는 새로운 지역으로의 이동에서 꼭 어떤 특정 지역이 계속 중심일 필요는 없을 것 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한국이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1115년부터 1234년까지 장강 이북의 지역을 호령하던 금나라도 몽골족이 흥기하면서 역사가 됩니다. 요나라와 금나라가 회수와 장강 이북 지역에 존재했을 당시 그 남쪽에는 송나라가 있었고 이 나라를 남송으로 부르죠. 금과 남송을 다 제압하고 나라를 세우는 이는 쿠빌라이 칸입니다. 거대한 몽골제국에서 통일된 이 중국 지역을 원나라고 부릅니다.
원나라라고 한자 중심으로 보는 것은 몽골제국의 전체상과 몽골의 입장이 빠져있는 중국의 역사관임은 물론입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이 부른 xanadu란 노래가 있었는 데, Samuel Taylor Coleridge의 시, ‘Kubla Khan’에서 나오는 이상향을 노래로 한 것인데 이것이 원의 여름수도 상도였다는 것을 아는 분은 많지 않을 것 입니다.
이렇게 유목민들은 수도를 여러 곳에 놓고 계절별로 이동을 했습니다. 겨울에는 현재 베이징에서 나고 여름은 시원한 북쪽으로 간 것 입니다.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폴로도 이 수도를 경험하고 글로 남겨 그것이 영국의 구석까지 전해진 것입니다. 상도는 현재 내몽고자치구에 존재하는 유적지가 되었습니다. 몽골이 망해 초원지도로 후퇴하면서 북원이 될 때까지 수도 역할을 했습니다.
몽골어로는 다이 온 이케 몽골 울루스 (대원대몽골국)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송, 요, 금, 남송으로 분열되어 있던 중국을 다시 통합한 진정한 왕조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듭니다. 100년도 못 가서 원도 무너지게 됩니다. 제국의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데 잘 알려진 것은 바로 홍건적의 난입니다.
본인을 미래불인 미륵이라고 칭한 한산동을 수장으로 한 백련교도들의 난입니다. 홍건적의 지도자 중 한 명이 주원장입니다. 명나라 (1368 ~ 1644)는 이 주원장이 몽골 지배자들을 북방으로 몰아내고 개국합니다. 이 주원장은 조선족설도 있고 중국 서북 지역 무슬림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거느린 장수 대다수가 무슬림이었다는 점, 그의 초상화가 서북지역의 사람 얼굴형이라는 점, 정권을 장악하고 이슬람 사원을 세우고 이슬람교를 칭송한 점을 보면 무슬림설이 좀 더 설득력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 봅니다. 이런 배경이 속에서 명나라 초기에 이슬람 교도인 정화를 장수로 임명해 거의 전 세계를 원정항해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Figure 1 이민족의 나라 중국 – 중국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이기훈의 역사와 미래에서 퍼옴)
어떠십니까? 두 번에 걸쳐 중국 역대 왕조들을 주마간산식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각 왕조의 개창자들이 누구인지 어느 종족 출신인지를 논의하며 (거의) 모든 중국의 왕조들이 한족이 아니라 이 민족이 세운 나라라는 저의 주장을 뒷받침 해보려 했습니다만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이 되었을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청나라는 하셨다고 하니 여기서 멈추고 질의 응답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는 한도 내에서 답변을 드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대근 (명리학자)
![시드니인문학교실, 9월 모임 실시 – 린필드 목요모임 ‘큰 줄거리 중국사 2’ 강연과 신영복의 ‘담론’ 독서모임 가져 … 다음모임은 10월 2일 (목, 오후 7시) / 리드컴 수요모임은 주강사 홍길복 목사 강연, 9월 24일 모임후 3학기 방학 [9월 4일 강연 전문포함]](https://chedulife.com.au/wp-content/uploads/시드니인문학-9월모임-실시-1024x64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