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15-1)
제12강 플라톤 선생님, 두 가지 물어 볼 것이 있습니다
(플라톤 철학이 남긴 이원론과 국가론의 문제점 풀어가기)
‘시드니인문학교실’은 지난 2017년 2월 2일 이곳 Lindfield 한글사랑도서관(김동숙 관장)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서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교실에 함께 하셔서 공부해 오신 인문학 친구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뒤에서 여러 모습으로 섬겨주신 운영위원님들을 비롯하여 물질과 마음을 다해 섬겨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동시에 이 곳에서 우리 교실을 널리 알려주심은 물론이고 모든 소식과 강좌를 한 번도 거르지않고 전문을 게재해주신 ‘크리스천라이프’(임운규 발행인)와 한국의 ‘나비통신’(최광열 발행인)에 대해서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 교실에 직접 참석하지는 못하셨지만 신문을 통하여 꾸준히 읽고 배우고, 생각을 더해 가시면서 저희와 함께해주신 분들이 생각 밖으로 참 많으셨습니다. 그 모든 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 강좌의 원고는 호주는 물론, 한국, 몽골, 동남아시아, 캐나다, 미국, 남미 등 여러나라에 계신 친구들 수십명에게 보내왔는데, 특히 미국 필라델피아 지역에서는 우리 강좌를 중심하여 그 지역에 계신 분들 이십여명이 김영근 선생님과 함께 ‘필라델피아 인문학교실’을 만들어서 함께 공부하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주셔서 참으로 반갑고 보람을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다시한번 이 모든 분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 해 우리가 가졌던 18번의 강좌와 토론의 주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제1강 우리들은 모여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인문학의 목적)
제2강 인문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인문학의 정의와 역사)
제3강 인문학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인문학 방법론)
제4강 생각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인문학의 출발점)
제5강 인문학의 주제1–사람(Saram)에 대한 서구적 이해
제6강 이웃되기의 역사학(박정신 교수)/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탈북자–이웃 환대하기(구미정 교수)
제7강 인문학의 주제2–사람에 대한 동양적 이해
제8강 인문학의 주제3–사람에 대한 통전적 이해
제9강 나의 철학 만들어 보기(철학이란 무엇인가?)
제10강 호주의 역사 이야기(한상대 교수)
제11강 내 인생의 중심개념은 무엇인가?(자연철학자들의 이야기)
제12강 해외 한인동포들 이야기(한상대 교수)
제13강 종교개혁 500주년기념:인문주의와 종교개혁의 배경(주경식 교수)
제14강 종교개혁 500주년기념:루터-종교개혁과 교회분열의 사이에서(주경식 교수)
제15강 우기지 마라! 네말도 맞고 내말도 맞다!(소피스트들 이야기)
제16강 죽음:어떻게 맞을 것인가?(소크라테스의 생각, 삶, 그리고 죽음을 보면서)
2018년도 ‘시드니인문학교실’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2월부터 5월까지, 또 8월부터 11월까지 8개월 동안 매월 첫째 및 셋째 목요일 저녁 7시부터 Lindfield 한글사랑도서관에서 16번에 걸쳐서 모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첫째 목요일 저녁에는 그동안 제가 진행해 왔던 것처럼 서양철학의 역사를 중심으로 강좌와 토론의 시간을 갖겠습니다만 셋째 목요일 저녁에는 인문학과 관계된 여러가지 토픽들을 가지고 강사들을 초청하여 말씀을 듣고 함께 의견을 나누는 시간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직 초청 강사들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토픽들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홍길복의 강좌 – 플라톤이 남겨놓은 숙제 풀기/행복과 중용의 관계(아리스토텔레스 이야기)/헬렌이즘과 로마시대의 철학 이야기(견유학파, 스토아 학파, 에피퀴레스 학파들이 남겨놓은 인생의 교훈들 살펴보기)/중세의 시작–기독교 이야기/보편논쟁이란?/르네쌍스 이야기/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우리는 어떻게 알게 되는가?)/계몽주의란 무엇인가?/칸트 철학의 3가지 중심 주제 등 근세까지의 서양철학사를 중심으로 너무 무겁지 않게 공부해 가고자 합니다.
초청 강사들로부터 듣고자 하는 토픽들 – 인문학과 정치, 혹은 인문학과 정치적 자유/인문학과 경제, 혹은 인문학과 경제적 평등/인문학과 법, 혹은 인문학과 정의/인문학과 자연과학과의 관계/인문학과 책 이야기, 혹은 인문학과 독서/인문학과 음악 이야기/인문학과 미술 이야기/인문학과 영화 이야기/인문학과 공연예술/인문학과 문학(시, 소설, 희곡 등) 이야기/인문학과 여행 이야기/기타 인문학과 종교, 죽음, 사랑, 분노, 음식, 바른 삶, 노후 등등.
오늘은 2018년 첫 시간입니다. 먼저 각자 금년에 읽어보고 싶은 도서 목록을 정리해 볼 수 있도록 아래에 빈 칸을 만들었습니다. 각자 한번 작성해 보면 좋겠습니다.
‘시드니인문학교실’은 인문학 친구들의 꾸준한 사랑과 관심 가운데 한해를 지나오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새해도 이 작은 교실을 통해서 우리들의 초심이 변치 아니할 뿐만 아니라 더 성숙해 지기를 바랍니다. 새해 새롭게 시작하는 마당에 우리는 다시한번 우리 ‘시드니인문학교실’이 다짐했던 처음의 목표들을 재점검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이 교실에서 강의, 독서, 토론을 통하여 서양에서 이어온 문사철과 동양에서 다듬어온 시서화를 살펴보면서 인문학의 전통과 역사, 목적과 내용, 방법론과 한계를 공부하고자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의심하고, 고민하고, 우리 개인과 역사 속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하여 진솔하고 깊이 있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개인적 삶의 의미와 보람을 추구해 나가는데 보탬을 얻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 교실을 통하여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으로 하여금 보다 정의롭고, 사랑과 평화가 넘실거리는 사회를 지향하는데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위와 같은 목표를 바라보면서 독서, 강의, 토론을 할 때 우리 인문학 친구들의 지녀야 할 기본적 자세 또한 대단히 중요합니다.
첫째는 ‘자아성찰(自我省察)’입니다. 인간이란 영원히 이상한 존재이고 풀려지지 아니하는 숙제입니다. 인간에 대한 최대의 원수는 인간입니다. 인간성 속에는 이기적 유전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결코 이길 수 없는 탐욕과 이기주의와 교만의 노예입니다.–북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이야기와 혜능대사의 이야기는 물론, 최근 우리가 보고 온 램브란트 특별전에서 그가 그렸던 100여개의 초상화 이야기도 늘 깊이 새겨두어야 합니다. ‘미술에 있어서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작품의 대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 그림을 그리는 화가 자신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다.’
둘째는 ‘절대란 절대로 없다’는 생각을 갖고 ‘세상 모든 일에는 반드시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오직 다를 뿐’임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황희 정승의 이야기나 막스 프랑크 연구소에서의 빛에 대한 실험 이야기나 불트만과 후기 불트만학파 사이에서의 학문적 겸손에 대한 태도를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피하거나 안만나는 것은 아주 나쁜 태도입니다. 우리 인문학 교실만해도 동과 서처럼 아주 먼 사람들이 함께 자리하여 서로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을 나눔으로 우리는 더욱 더 성숙해지게 됩니다.
셋째는 늘 ‘역시사지(易地思之)’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입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데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가 있게 마련입니다’–세상에는 손바닥을 얼굴보다 두배, 세배 더 크게 그리는 그림도 있습니다. 미국 동부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벌어진 여학생에 대한 sexual rape 사건에 대한 대처 방법에 있어서 학교당국과 여학생들의 생각의 차이점을 기억해 둡시다.
대부분의 모든 학문이 그러하듯이 인문학도 결코 혼자서는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힘을 합하여 나가는 과정입니다. 우리 각자는 점묘법(點描法)–점 하나 하나를 찍어서 마침내 큰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미술 기법과, 여러개의 작은 조각들을 맞추어서 전체를 이루는 ‘모자이크’나 ‘퍼즐 맞추기’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인문학은 서로 협력하여 전체를 아우르고 함께 힘을 합하여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인문학을 하려는 사람들은 일체의 차별의식을 가져서는 않됩니다. 나와 너, 사람과 자연, 하느님과 사람, 어린이와 어른, 여자와 남자, 가진 자들과 못가진 자들, 건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 내국인과 외국인, 원주민과 이민자, 일체의 갑과 을 사이에 그려진 빗금(칸막이/슬래쉬)을 걷어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인문학은 언제나 그 사회와 조직 속에서 약자들의 편에 섭니다.–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의 한 주모에게 내려준 당호, 사의제(四宜齊)를 기억해 둡시다.
이런 가운데서 우리 교실이 추구해 나가는 방향은 중용(中庸)입니다. 극단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중용이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식으로 중도(中道)에 서는 것은 아닙니다. 중용은 정도(正道)를 걷는 노력입니다. 포용, 관용, 너그러움, 똘레랑스, 균형과 조화(Harmony & Balance)입니다. 그럼 플라톤을 살펴보겠습니다.
Platon[BC 427년(혹은 428, 424년)∼347년(혹은 348)]은 어떤 인물인가?
아테네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써 소크라테스의 제자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었습니다. 21살에 소크라테스를 만나 그에게서 철학과 인생을 배움으로 정치가가 되겠다던 처음의 인생 계획을 바꾸어 철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평생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과 사상이 만들어집니다. 살아생전 단 한편의 글도 남기지 아니한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을 만남으로 역사 속에서 위대한 철학자로 빛을 발하게 되었고 플라톤 역시 소크라테스를 만남으로 서양철학사에서 독보적인 사상가로 남게 되었습니다. 특히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부터 큰 감명과 영향을 받았습니다. 플라톤의 저서라고 불리우는 대부분의 책들은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바울이나 베드로가 없이도 예수가 전해질수 있었을까라고 말하는 것처럼 플라톤이 없이도 소크라테스가 알려질 수 있었을까하는 의구심이 있습니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 28살에 세계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이었으며 그리스의 4대 학원중 하나인 아카데미아(Akademia)를 세웠습니다[Athens의 4대 학원 i)Platon의 Akademia, ii)Aristoteles의 Lykeion, iii)Epikouros의 Epikouros학원, iv)Stoa학파의 Stoa학원]. 플라톤은 여기에서 주로 정치학, 윤리학, 인식론, 형이상학 등을 가르쳤으나 수학과 기하학과 천문학을 포함한 물리학도 가르쳤습니다. 번듯한 학교건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단순히 자기집 정원에 세워진 학교였으나 그 입구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문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말을 새겨 놓았습니다. 이 학교는 AD 529년 유스티아누스황제가 아카데미아를 반기독교적이라는 이유로 폐교할 때까지 거의 천여년 동안 지중해 세계 최고의 두뇌집단이었고 지식인 양성의 모체였으며 학문의 전당이었고 자유의 시험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스티아누스는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종교적 권력을 등에 업고 인류 최초의 대학을 폐쇄한 것입니다. 권력을 잡은 종교가 얼마나 억압적이고 반지성적인지를 보여주는 예화가 됩니다. 한때 플라톤은 그의 정치사상을 실현해 보기위하여 여러 곳을 방문하며 노력했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81세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모든 이론과 현실사이에는 간격이 있습니다. 정치든, 경제든, 종교든, 원칙과 이상, 꿈과 이론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유토피아는 없습니다.
플라톤의 대표적 저서들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소크라테스의 여러 제자들과 나누는 ‘대화편’이 35개가 전해집니다. 당시 글쓰는 방법은 주로 그리스 문학의 영향으로 인하여 등장인물들이 서로 묻고 대답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희곡식 글쓰기 방식이 가장 보편적이었습니다. 책의 제목은 주로 등장인물중 주인공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의 이름을 따거나 토론의 주제를 책명으로 붙였습니다. 기타 그의 편지라고 생각되는 ‘서간문’이 13개가 있는데 대화편이나 서간문에는 플라톤의 글이 아니라고 의심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신약성서나 기타 고대의 다른 문서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저작들에는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파르메니데스’ ‘파이드로스’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메논’ ‘국가’ ‘법률’ 등이 있습니다. 2017년 현재 플라톤의 저서는 한국어로 완역이 안된 상태입니다(일본은 이미 백여년 전에 플라톤 전집을 완역했고 70년대엔 고대 그리스원전 모두를 일본어로 번역해 냈습니다).(다음호에 계속)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