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18)
제14강 어떻게 살 것인가? – 그것이 문제로다!
(후기 그리스 철학자들의 이야기)
들어가는 말
종교와 철학을 포함하는 형이상학이나 수학, 물리, 화학, 천문, 지리, 정치, 경제 등등을 포함하는 형이하학과 일체의 모든 인간 사상과 문화는 신이 하늘에서 떨어뜨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때, 그 곳에서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작품들입니다. 문사철(文史哲)이든 시서화(詩書畵)이든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지난 날 인간들의 생각과 삶의 흔적들을 추적해 봄으로 오늘을 진단하고 내일을 예측하여 보다 더 바람직한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 가려는 데 있습니다.
사자들이 사라진 숲에서는 토끼들이 왕노릇을 하게 됩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한 시대의 위대한 사상가들이 지나가고 나니 이제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가 왔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역사는 변합니다. 어제는 오늘로 이어지고 오늘은 또 다시 예측할 수 없는 내일로 연결됩니다. 한 때는 페르시아 같은 큰 나라까지도 물리치면서 지중해를 제폐하고 역사상 최초로 민주정치를 실현하면서 철학과 사상의 꽃을 피웠던 그리스였지만 이 후 자신들의 도시 국가들 사이에서 서로 갈라져서 파벌적 동맹을 만들어서 싸웠던 펠레폰네소스 전쟁이후 그들은 급격하게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이나 공동체를 막론하고 언제나 최대의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존재한다는 진리를 확인시켜 줍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최고의 정점에 이르렀던 고대 그리스 철학은 정치적, 사회적 변동과 더불어 막을 내리고 후기 헬렌이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아테네의 정치적 몰락은 그리스의 철학과 문명 까지도 쇠퇴기로 접어들게 했고 도시국가들의 분열은 민주정치에 대한 희망을 상실 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이상적 세계’에 대한 기대를 잃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개인적 행복과 행복한 삶만을 추구하는 데 ‘올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우주와 존재, 인간과 자아, 국가와 사회, 이데아와 현실, 이원론과 일원론 같은 거대 담론들은 인생살이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살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로 바뀌어졌습니다. 진리를 탐구하고 이상적인 세계를 그려보는 철학적 꿈은 상실되고 오로지 개인적 성공, 행복한 인생, 지혜로운 처신 같은 현실주의가 전면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리스 철학은 탈레스 이후 퍽 긴 역사적 흐름 속에서 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한 아테네에 이르러 만개했습니다. 그후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으로 인한 동서양의 교류는 그리스의 철학뿐만이 아니라 문학, 예술, 건축, 음악, 미술 등 그리스 문명을 세계로 넓혀 가는데 한 몫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은 너무나 짧았습니다. 알렉산더는 33살에 죽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 그 제국은 여러 개로 갈라졌고 곧 이어서 등장한 로마는 새로운 신흥국가로 등극하여 지중해는 물론이고 북아프리카와 유럽까지를 포함하는 통일된 제국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리하여 한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헬렌이즘(Hellenism)은 로마의 정치적 힘과 그에 따른 정치철학과 결부되어 새로운 ‘그레코 로마 시대’(Greco–Roman Empire)를 만들게 됩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시대가 이루어졌습니다. 로마의 정치, 군사, 경제, 법률, 제도가 천하를 지배하는 통치원리로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습니다. 힘이 곧 정의가 되고 모든 권력은 총부리에서 나오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나타난 것이었지 사람들의 정신세계 까지 완전하게 지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스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철학자들의 배경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정치적 힘과 그 힘에 따른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둘은 서로의 공존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와 현재, 전통과 변화, 옛 것과 새 것은 타협을 시도했습니다. 이렇듯 헬라의 철학과 사상과 문화, 로마의 정치와 법과 질서가 새로운 시대를 엮어가던 시대를 우리는 ‘후기 헬렌이즘 시대’ 혹은 ‘그레코 로마제국’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사상과 철학은 한 시대의 산물이요, 그 시대의 성격을 반영합니다. 정치적, 사회적 격변기 속에서 후기 헬렌이즘 시대는 전통적 가치관은 흔들리면서 아직 확고한 새로운 가치관은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런 혼란의 와중에서 나타난 몇 가지 철학적 사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견유학파라는 이름은 아마도 그 학파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의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둘째, 스토아학파라는 이름은 이에 속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기르친 자리와 공간으로 부터 이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가하면 마지막 에피쿠러스학파는 에피쿠러스라는 인물과 그의 사상을 중심하여 명명된 것이라고 봅니다. 후기 그리스 시대라는 혼란스런 시대상 속에서 나타난 이 사조들은 공히 ‘우리는 이럴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을 시도해 봅니다
이후 계속되는 사조들에 대해서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지나가하려고 합니다만 그 이름만이라도 적어놓겠습니다. 피론(Pyrrhon)을 중심한 ‘회의주의’(Pyrronism)사상, 종교적 성격이 진하게 나타나는 ‘영지주의’(Gnosticism)사상, 그리고 플로티노스(Plotinos)를 중심으로 하는 ‘신플라톤이즘’(Neo-Platonism) 같은 것들이 있는데 기억해두고 함께 공부 할 기회가 오기를 기대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질문은 ‘어떻게 사는 것이 참으로 보람되고 가치있는 삶이 될까?’ 혹은 ‘진정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 하는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문제와 동일하다고 봅니다. 이는 어제 오늘의 물음이 아니고 인류의 아주 오레된 화두 중 하나 입니다. 우리 인문학 교실도 첫 시간부터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가지 대답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 이 물질 만능의 풍조에다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해진 세상 속에서 다른 어떤 때 보다 더욱 더 ‘어울려서 함께 사는 삶’ ‘피차의 생각과 삶의 스타일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받아주면서 함께 공존하는 삶의 태도’를 지향해 나가자고 다짐해 왔습니다. 슬픈 모습으로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친구에게 다가가 우산을 받쳐 주면서 ‘감기 걸리겠어’라고 말하기 보다는 조용히 곁으로 다가가 함께 비를 맞아 주면서 말없이 어깨동무를 해 주는 ‘생활감정의 동질성’을 회복해 나가는 것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하는 질문에 대한 우리 시대의 대답이 되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삶은 나누는 인생이고 가장 위대한 종교는 나누는 종교이고 가장 위대한 교육과 훈련은 나눔을 배우고 연습하는 것입니다. 잘난 척하는 인간, 교만한 사람, 독선적 종교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어지럽히고 함께 사는 사람들을 슬프게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배우고 함께 가르치면서 인생을 걸어 갑니다. 사자성어 가운데 ‘줄탁동시’(崪啄同時)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는 우선 알 속에 있는 그 애기 병아리가 연약한 부리를 가지고서도 사력을 다하여 알의 껍질을 쪼아대는데 그걸 줄(崪)이라하고 밖에서는 어미 닭이 부리로 그 알을 깨트리려고 쪼아대는데 그걸 탁(啄)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안과 밖에서 동시에, 병아리와 암닭이 함께 껍질을 깨트리려고 하는 공동의 노력, 줄탁동시를 통하여 생명이 만들어지고 삶이 창조되고 교육이 이루어지고 역사가 발전된다는 교훈입니다. 저는 끊임없이 여러분들에게서 배우고 또 여러분들도 간단 없이 피차간에 배우는 것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하는 질문에 대한 겸허한 대답이 되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우리 ‘시드니 인문학 교실’을 통하여 쉬임없이 지향하는 방향과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은 저나 우리 중 그 어느 누구도 우리 개개인들의 삶을 가르치고 끌고가고 변화 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클라스를 통하여 지금까지 생각하고 그렇다고 확신하며 믿어왔던 기존의 사고와 정형화되고 습관화된 기존의 생각에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또 그리되어야 하겠다는 꿈과 비젼입니다.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실은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자, 후기 헬렌이즘 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한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들은 어떻게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부터 벗어났을까요?
1. 견유학파
견유학파(Cynicos, 영어로는 Cynics)는 물질, 명예, 정치, 종교, 문화, 예술 등 사람들이 만들어낸 일체의 인위적 요소에서 벗어나 자연을 통하여 값없이 거져 주어지는 것들에 대하여 만족해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이상으로 여겼습니다. 금욕주의와 비슷합니다만 이 보다 더 극단적이었습니다. 無所有가 아니라 無慾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거의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장철학과 도교에서 주장하는 ‘無爲自然’과 흡사합니다. 이들 견유학파에서는 남자와 여자, 주인과 종, 통치자와 시민계급 등에서 일체의 차별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고대 그리스 시대 최초의 ‘코스모폴리탄이즘’(Cosmopolitanism-세계시민주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세상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거나 영합하면서 점차 물질주의와 출세주의에 길들어가던 무렵, 이런 시대적 대세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철학 사상 중 하나가 견유학파입니다. Cynicos란 헬라어 Kunikos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말인데 그 뜻은 ‘개’라는 말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개처럼 사는 것을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스스로를 犬儒學派라고 불렀습니다. 일체의 개인적 소유를 포기하고 마치 집 없는 개처럼, 길에서 잠을 자고, 길에서 먹고, 길에서 떠돌이처럼 사는 것을 가장 바람직한 삶이라고 여겼습니다. 이 학파에서는 ‘얻어먹는 삶’–걸식생활(乞食生活)을 권장하고,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에게서 얻어 먹는 것은 ‘불행한 소유자’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걸은 상대방이 내가 가져야 할 것을 빼앗아 가진 것이므로 당당하고 떳떳하게 요구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무소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나 히피(Hippie) 같이 기성의 사회적 전통과 습관, 제도와 조직, 문화와 가치관을 부인하고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자는 운동과도 연결이 됩니다. ‘모든 문화와 문명은 비인간적이고 반자연적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그들은 Hippie is Happy라고 부르짖습니다. 견유학파나 히피문화는 공히 반문화운동을 공유합니다. 자연의 질서를 따라서 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신념 위에서 일체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문화와 전통, 습관과 인위적인 것들을 거부하고 항거하면서 마치 애기들과 같이 천진난만하게 살아야 한다고 부르짖습니다. 이들은 옷을 입거나 목욕을 하거나 장신구를 다는 것은 위선이고 머리나 수염이나 손톱을 깎는 것은 조작이라고 단정하면서 오직 자유, 평화, 사랑, 희망, 열정, 낭만, 반전, 반문화, 반지성, 반정부 같은 것을 추구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습니다. 이들은 그 시대의 보통 사람들이 추구하던 가치관을 거부했으며 더 나아가 오히려 그것들을 비웃었습니다. 바로 여기 Cynicos-kunikos에서 파생된 말이 cynical(냉소적)이라는 단어입니다. Cynicism-냉소주의는 이 학파의 성격을 드러냅니다. 견유학파는 모든 세속적 가치, 출세, 성공에 대하여 냉소적이었고 콧웃음을 쳤으며 비웃었습니다. 그들은 디오게네스 처럼 굴러다니는 통 속에서 사는 것을 이상적 인간의 바른 삶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들의 대표자 가운데서 두 사람만 살펴보겠습니다.
1)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 BC 444-365)
소크라테스의 제자 중 하나로써 이 학파를 처음 시작한 사람입니다. 그의 핵심 사상과 삶의 태도는 다음과 같은 3가지에 잘 나타납니다. 첫째 자족(아우타리케이아, Autarikeia), 둘째 절약(아스케시스, Askesis), 셋째 부끄러움이 없는 태도(아나이데이아, Anaideia)입니다. 명심하십시오. ‘배고프지 않는데도 먹으면 죄가 됩니다’ ‘춥지 않는 데도 입고 있으면 바보입니다’ ‘모든 것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행동해야지 습관이나 분위기에 따라 처신해서는 않됩니다’
2) 디오게네스(Diogenes, BC 412-323)
견유학파의 실질적 대표자이며 같은 이름을 지닌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그의 고향 ‘시노페’를 붙여 ‘시노페의 디오게네스’(Diogenes of Sinope)라고 부릅니다. 물론 디오게네스는 견유학파의 중심 사상인 무소유,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인생, 문명반대론의 입장에 굳게 서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그의 삶 속에서 실천한 사람입니다. 그는 ‘철학적 사상가’라기 보다는 ‘철학적 인생을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아테네 거리를 다니면서 ‘아 어둡구나. 진리도 사람도 보이질 않는구나’ 하면서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며 조롱했습니다. 디오게네스의 사상과 삶의 특징은 2가지로 요약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습관과 인습의 거부’입니다. 그는 인간이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관습의 노예로 살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습관적 행동은 나쁘다. 습관은 반자연적이고 우리를 길들여진 삶으로 유인한다’면서 모든 인습을 거부하고 반습관화 해 나갈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 때 그 때 마다 닥치는 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해라. 자연스런 것은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숨길 필요도 없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들의 일상적 삶은 습관적 행위로 인한 무의미한 일들이 반복되곤 합니다. 기도, 찬양, 성찬, 미사를 포함하는 종교의식들과 제사상을 채리거나 절을 하는 등 전통에 따른 예절과 의복, 음식, 주택, 인사치례, 인간관계 등에서 의미 없는 습관의 반복이 우리를 노예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는 無慾과 無所有입니다. 그는 무욕을 통한 정신적 평화와 자유를 주장했습니다. ‘가장 적게 소유한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나에게는 필요한 것이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세상이 다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인이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는 비결은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육체적 쾌락을 거부하고 평화와 무소유를 일치시켰습니다. – 알렉산더 대왕이 그를 찾아와서 했다는 유명한 일화를 기억합니다. ‘디오게네스 선생님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천하의 반이라도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저리 좀 비껴 주십시요. 지금 햇볕을 쪼이고 있는데 해를 가리지 마십시요’ – 사실 여부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훗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만약 내가 알렉산더만 아니었더라면 디오게네스가 되는 것이 더 행복했을 것이네!’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더의 일화에서 우리는 누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인지, 누가 진정으로 왕이고, 누가 진짜 인생의 거지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디오게네스는 역사에서 최초로 무욕을 통한 체제전복적 삶을 실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일설에는 90이 넘어서도 죽어지지 않아서 스스로 숨을 쉬지 않고 숨을 거두웠다고 합니다).
2. 스토아 학파
스토아 학파(Stoicism)라는 이름은 아테네의 아고라광장(Agora)에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아고라는 그리스의 폴리스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광장으로써 그 말의 뜻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 아고라 광장에 모여서 종교의식, 정치적 연설, 재판, 장사, 사교활동 등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고라 광장에는 길게 채색 기둥을 세우고 그 복도를 따라서 한 쪽에는 벽을 쌓아 바람이 통하게 하고 그 위에는 지붕을 얻은 건물들이 늘어져 있었습니다. ‘스토아’라는 단어는 이 아고라 광장에 세워져 있는 ‘채색 주랑’ 즉 ‘길게 늘어선 색칠된 돌 기둥’을 의미합니다. 스토아학파에 속한 사람들은 주로 이 ‘주랑이 늘어서 있는 스토아’ 밑에 모여서 강연을 하거나 듣고 토론을 한데서 ‘스토아 학파’란 말이 생겨났습니다.
1) 스토아 학파의 중심 사상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까지 추구해온 ‘지식 자체를 위한 인간 지식은 무용하다’고 믿고 철학의 참된 목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루는 ‘삶의 방법’(ars vitae-삶의 기술)에다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스토아 학파의 기원은 앞에서 본 견유학파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토아학파는 이들 견유학파의 사상과 일치 하거나 유사한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스토아 학파의 중심 사상을 흔히 ‘엄격주의’라고 합니다만 이하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이들의 생각을 살펴보겠습니다.
(1) 스토아학파는 자연과 자연주의를 강조합니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를 이루는 삶을 가치있는 삶으로 여깁니다. 자연이 명하는대로 자연의 질서와 흐름에 따라 사는 것을 미덕이라고 보았습니다. ‘자연이 곧 신이고 신이 곧 자연이다’ 그들은 유물론적이고 범신론적 사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스토아 철학은 신을 창조자나 초월자로 여기지 않습니다. 신은 자연 속에 내재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자연을 대 할 때는 신을 대하듯이 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고대 중국의 노장철학이나 현대의 반전 평화운동, 친환경주의, 저탄소운동, 여성주의를 앞세우는 정치적 녹색운동인 Green Movement와 흡사한 사상을 지니고 있다 하겠습니다. 오늘날 시간에 쫓기면서 시계의 노예가 되어버려 시계가 시키는 대로 먹고 자고 일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를 되묻게 합니다).
(2) 스토아학파는 일체 육체적 욕망이나 충동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누리는 길은 ‘이성적 지배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앞에서 자연의 질서에 따른 삶이 가장 바람직한 인생의 태도라고 했다고 해서 무질서하게 살아도 된다고 여겨서는 않된다는 의미 입니다. 그들은 ‘이성의 통제를 통한 부동심(不動心)’을 강조합니다. ‘이성의 지배하에서 자연의 질서를 따라서 살아야한다’ ‘우리는 이성의 빛이 이끄는 데로 가야한다’ ‘이성의 지도에 따라 판단하고 이성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철학자의 길이다’ ‘모든 욕망은 비이성적인 데서 온다. 비이성적 인간은 육체의 본능에 따라서 산다.’
(3) 스토아학파는 ‘자기억제’와 ‘절제’(self-control)를 강조합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관대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나라. 이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절제가 우리를 행복의 길로 이끈다.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한 무지와 어리석음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행과 악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불행하게 살기로 결심한 사람은 편안하게 산다.’ 스토아 학파의 이런 사상들을 지지하는 최근의 좋은 책 하나를 소개합니다. 롤프 도벨리 지음, 불행 피하기 기술(The Art of the Good Life), 유영미 옮김, 인플루엔셜 2018년판 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현대 사회의 불행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탐욕, 황금만능주의, 출세주의, 성공제일주의, 자본주의, 경쟁주의, 충동적 구매, 각종 세일과 1+1 판매전략, 불필요한 것인데도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거나 계속해서 사드리는 행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종이 된 종교와 종교인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2) 스토아학파에 속한 철학자들
스토아학파에 속한 철학자들은 기원전 4세기의 제논부터 시작하여 기원 후 2세기의 마커스 아우렐리우스 때까지 거의 5백여 년에 걸쳐서 이어져왔습니다만 몇몇 대표적인 사람들만 살펴보겠습니다. 제논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후기 스토아 철학자들로 분류됩니다.
(1) 제논(Zenon of Citium, BC 335-263)
엘레아 학파의 제논이나 로마의 황제 제논과 구별하기 위해서 흔히 그의 고향인 사이프로스의 씨티움을 붙여서 ‘씨티움의 제논’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스토아학파를 세웠고 아테네의 4대 학원 중 하나인 ‘스토아 학원’을 세웠습니다. 이 학파의 대표자입니다. ‘절대적 자기억제’를 강조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네가 만약 감정이 이끄는 대로 살면 너는 확실하게 불행해 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네가 이성이 명령하는 대로 산다면 너는 확실하게 행복해진다’ ‘이성의 명령을 따라 가는 자는 마침내 부동심에 이르게 된다.’
(2)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43)
로마시대의 정치가, 변호사, 당대 최고의 웅변가, 철학자. 로마의 집정관이 되었고 후에 안토니우스에게 암살당함. 고전 라틴어의 기틀을 만들었고 오늘날도 라틴어를 배울 때는 키케로의 변론문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을 정석으로 여김. 주요 저서로는 수사학, 의무론, 우정에 관하여, 선악론 등이 있음. 철학적 사유의 글이기도 하지만 정치가요, 당대 최고의 웅변가로써 그가 남긴 명언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글들이 있습니다.
전해지는 명언들 –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고 눈은 마음의 고백록이다’ ‘그 사람의 얼굴이나 눈 보다 우리를 더 잘 속이는 것은 그 사람의 혀다’ ‘민중은 불확실하고 여론은 우매하고 선거는 거짓말을 한다’ ‘우정 없는 인생은 태양 없는 세상과 같다’ ‘좋은 친구는 우리의 기쁨은 두 배로 만들어주지만 슬픔은 반으로 줄여준다’ ‘최고의 쾌락이 있은 후에는 반드시 최고의 실망이 따라 온다’ ‘죽으면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마라. 죽은 후에 없어지는 것은 오직 육체뿐이다’ ‘힘 있는 자와 같이 있을 때는 흔들리지 않고 가난한 자와 함께 있을 때는 우쭐대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인격자이다’ ‘절약이 제일 좋은 수입이다’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와 같다’ ‘어리석은 자의 특징은 잘못을 반복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욕심을 부리는 자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짐을 꾸리는 사람과 같다’ ‘고난이 클수록 영광도 큰 법이다’ ‘모든 실수가 다 어리석은 것은 아니다’ ‘남의 슬픔을 보고 흘리는 눈물은 돌아서면 말라버린다’ ‘제일 빨리 전달되고 제일 쉽게 받아드리고 제일 넓게 퍼져나가는 것은 중상모략이다.’
(3) 루키우스 세네카(Lucius Seneca, BC 4-AD 65)
예수와 동시대의 로마의 정치가, 철학자. 사도 바울과 만났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음. 54년부터 62년 사이 로마의 실질적 통치자가 됨. 네로의 스승이며 가정교사를 지냈으나 그에 의해서 자살을 명령받고 죽음. 주요저서로는 총 20여권의 서간집과 124통의 단편적 편지가 전해짐. 행복론, 대화, 비극, 마음의 안정, 노여움에 대하여 등이 있다.
전해지는 명언들 – ‘실수에 대해서는 절대로 화를 내지 말아라’ ‘정의는 결코 불의에 의해서는 해를 당하지 않는다’ ‘종교란 평민들은 진실이라고 믿고 현자들은 거짓이라고 믿고 정치인들은 유용하다고 믿는 것이다’ ‘가난이란 부해 질 수 있는 기회이다’ ‘가난한 사람이란 적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너무 많이 바라는 사람이다’ ‘소유를 늘리지 말고 욕망을 줄여라 그럼 행복해진다’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과 모든 것을 다 믿는 것은 똑같이 어리석은 일이다’ ‘천천히 하는 것이 분노를 삭이는 제일 좋은 길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가벼운 슬픔에는 말이 많고 큰 슬픔에는 말이 없다’ ‘흉년이 온 다음 해에도 씨는 뿌려야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게서 배운다’ ‘인생이란 가장 어려운 예술이다’ ‘모든 운명은 자기가 만든다.’
(4) 에피크테투스(Epictetus, AD 55–135)
소아시아 히에라폴리스에서 노예로 태어났으나 후에 자유인이 되었으며 다리를 저는 지체 장애인이었습니다. 네로 시대를 산 후기 스토아 철학자로써 대표적인 견인주의자로 알려집니다. 제자 아리아노스가 전해준 ‘어록집’이 있습니다. 삶의 원칙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첫째-절대 무한 수용의 원칙. ‘모든 것을 끝까지 받아드려라.’ 둘째-절대 무한 감사의 원칙. ‘모든 일에 감사해라.’ 셋째-절대 무한 시각의 원칙. ‘언제 어디서나 더 큰 시각을 갖어라.’
전해지는 명언들 – ‘끝 까지 참아라.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 인내다’(Bear and Forbear, 노예로 있을 때 다리 부러진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한번은 억울한 일로 인하여 주인이 주리를 틀었습니다. 어찌나 아픈지 그러다가는 다리가 부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땅을 두드리면서 좀 멈추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잠시 주리트는 일을 멈추었습니다. 주인은 그가 잘못했다고 빌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에피크테투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이러다가는 다리가 부러지겠습니다 그려’ 화가 난 주인은 더 세게 주리를 틀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에피크테투스의 다리뼈가 ‘뚜드득’ 하고 부러졌습니다. 그러자 그가 다시 차분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조금 전에 제가 이러다가는 다리가 부러질 것이라고 말씀 드렸잖습니까?’)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은 절대로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하나 뿐이다. 고민하지 않으면 된다’ ‘인간의 가치는 얼마나 사랑을 받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좋은 죽음은 나쁜 삶 보다 훨씬 값진 것이다’ ‘모든 위대한 것은 절대로 갑자기 찿아오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 대해서 나쁘게 이야기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이렇게 말하도록 하라. – 그 사람이 그 이야기만 하는 것을 보니 그는 내 숨겨진 다른 단점들은 아직 모르는가 보군! 참 감사한 일이야!’
(5) 마커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D 121-180)
로마의 16대 황제. ‘철인황제’라고 불리우며 세네카와 에피크테투스와 더불어 후기 스토아 철학의 대표자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5현제 중 하나입니다(5현제란 로마의 황제들 가운데서 뛰어난 다섯 명의 황제들에게 붙인 별명입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원로원과 황제 사이에서 놀랍게도 현명한 타협을 이루어낸 ‘정치적 타협의 명수들’ 입니다. 1. 네르바 2. 트라야누스 3. 하드리아누스 4. 안토니우스 피우스 5. 마커스 아우렐리우스 인데 Edward Gibbon은 이 시대를 서구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로마 제국의 마지막 전성기를 구가했고 그 이후부터 로마는 점점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책으로는 ‘명상록’(Meditation)이 있습니다. 원제목은 ‘타 에이스 헤아우톤’(ta eis eauton, 나 자신에게) 입니다. 체계가 갖추어진 저술이라기보다는 전쟁터에서 쓴 단편적 사상의 편력들이 주요 내용입니다. 모두 12파트로 되어있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은 철저한 금욕과 절제의 삶을 찬양하고 인정미가 넘치며 자비로운 황제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커스 아우렐리우스는 기독교를 크게 박해한 황제 중 하나입니다. 그가 기독교를 박해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기독교가 무신론적이고 미신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대부분의 다른 황제들과 마찬가지로 기독교를 무신론적 집단으로 보았습니다. 로마는 로마의 신들을 인정하지 않으면 무신론자로 여겼습니다. 둘째로 기독교는 오직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만이 유일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박해했습니다. 로마는 세계적 도시로써 종교적 다양성 위에 건설된 국가였기에 결코 하나의 신 만을 인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우렐리우스 치하에서 순교당한 유명한 교부 ‘순교자 저스틴’(Justianus, The Martyr)은 그의 ‘변증론’을 통하여 ‘기독교는 절대로 무신론이 아니라’는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마커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나오는 명언들 – ‘모든 것은 다 마음에 달려있다’ ‘죽은 후에 받는 칭송은 아무 의미가 없다’ ‘모든 고통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서 온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것이 신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다’ ‘운명과는 다투지 말아라’ ‘오늘을 불평하거나 내일을 근심하는 자는 신과 싸우려고 작정하는 자다’ ‘용서는 의무이지 자선이 아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즐겨라’ ‘최선의 복수는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논하지 마라. 네가 선한 사람이 되면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다 했다고 여겨지고 육체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면 세상을 떠나라는 신의 신호인 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자살은 우주의 질서와 신의 세계로 귀의하는 길이다’ ‘죽음이 우리를 비웃을 테니 우리도 죽음을 보면서 웃으며 가야한다.’
3. 에피쿠러스 학파
에피쿠러스 학파(Epicurianism)는 앞에서 본 스토아 학파와는 비슷한 시기에 똑같이 아테네라는 동일한 공간에서 활동한 사상가들의 그룹입니다만 그러나 이 둘의 생각과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는 판이했습니다(늘 강조합니다만 동시대, 동일한 공간에서 살면서도 다양한 생각과 삶의 스타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와 공동체적 삶의 내용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원초가 됩니다). 스토아 학파는 이성적 통제와 철저하게 자아를 억제하는 엄격주의 위에 기초하여 새로운 시대, 로마라고 하는 신질서 속에 개인들이 적응할 수 있는 논리와 훈련을 강조했습니다. 그리하여 스토아 학파는 개인이 국가와 공동체에 참여하고 더 나아가 봉사할 수 있는 삶으로까지 나아가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에피쿠러스 학파는 반대였습니다. 그들은 인간 삶의 최고, 최대의 목표를 개인적 행복과 쾌락과 안정에다 두었습니다. 일종의 사회적 도피와 은둔적 삶을 보다 더 가치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에피쿠러스 학파는 개인적 ‘쾌락주의’로 불리웠습니다. 하지만 좀 자세히 살펴보면 에피큐리안에 대한 이런 ‘이름 붙이기’는 억울한 측면도 있습니다.
에피쿠러스는 데모크리토스(Demokritos)의 ‘원자론’(Atomism)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이 우주의 아르케를 원자라고 본 사람입니다. 그는 태초에 이 우주에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작은 알갱이들인 원자들이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원자들은 어떤 목적이나 초자연적인 어떤 신의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아주 ‘우연히’ 이탈, 낙하, 분열, 합병을 통하여 세상을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세상은 원자들의 우연한 운동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주는 신이나 신의 목적에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신이란 처음부터 없다’는 무신론적 사상이 데모크리토스의 우주관입니다. 목적없는 우연을 철학적 근간으로 삼을 경우 당연히 신은 없고 따라서 죽음에 대한 공포도 살아지게 됩니다. 에피쿠러스는 이런 데모크리토스의 영향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학파의 중심 사상을 간추려봅시다.
1) 에피쿠러스 학파에서는 인간 삶의 가장 큰 목표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가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였습니다. 그들은 행복과 쾌락은 선이고 불행과 불쾌는 악이라고 단정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해야 할 책임이 있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오랜 시간 인류가 꿈꾸어 왔고 대부분의 종교들이 말하고 오늘 우리들 까지도 동의하는 것과 대동소이 합니다.
2) 그 다음 그들은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즐거움을 얻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즐거움’ 즉 쾌락이 주어져야지만 행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즐거움과 쾌락이 없는 행복은 행복이 아니다.’ 여기까지만 이해한 사람들이 에피쿠러스를 쾌락주의라고 부릅니다.
3) 그런데 그 다음에 이르러 그들은 다른 식으로 이론을 전개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즐거움과 쾌락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육체적 쾌락이 아니다. 참된 쾌락은 정신적 자유에서 온다’는 것이 이 학파의 주장입니다. 단순히 육체적 욕망을 만족 시키는 정욕과 안락과 사치스러운 삶은 우리를 더욱 더 불쾌하고 불행하게 만든다고 보았습니다. 진정한 쾌락은 온갖 세속적이고 육신적인 정욕과 안일한 삶과 사치스러움에서 떠나 ‘마음의 평정과 고요함’을 찾을 때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점에서 볼 때 에피큐리안들은 쾌락주의자들이 아닙니다.
4) 그럼 이 ‘참된 마음의 평정과 고요함’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그들은 그것을 ‘아타락시아’(Ataraxia)의 상태라고 부릅니다. 아타락시아의 상태란 첫째로 ‘아무 것도 더 이상 바라지 않는 상태’이며, 둘째는 ‘아무 것도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탐욕과 공포가 없는 상태란 일종의 부동심(不動心)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에피큐리안들은 스토아 학파와 견해를 함께 합니다.
그러나 이 부동심의 상태에 도달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다른 입장을 취합니다. 스토아에서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통제하고 다스리려는 노력을 강조하는데, 에피큐리안들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도피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떠나라 세상을 떠나라 혼자 살아라.’ 이것이 에피큐리안들의 주장입니다. 에피쿠러스는 아테네에 있던 자기 집에다 정원을 만들고 그 정원에다 아테네의 4대 학원 중 네 번째 학교인 Epicurian School을 만들었습니다. 이 학교가 모체가 되어서 에피쿠러스 학파를 형성했습니다. 이 학교는 대단히 개방적이고 파격적이어서 여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노예들까지도 함께 공부하는 특수학교였습니다. 하여튼 에피쿠러스는 이 정원학교에서 일종의 도피적 삶을 살았습니다. ‘밖으로 나가지 말아라. 거기에는 탐욕이 이글거리고 비극이 기다린다. 정원 안에 머물러라. 참된 평안이 온다. 주목받는 삶을 살지 말아라. 당신이 누군가에게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순간 그 때부터 당신은 불행해 지기 시작한다.’ 그는 세상의 모든 고통과 비극, 불행과 두려움을 피하여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정원인 자기 내면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 설 때 진정한 평안, 자유,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피큐리안의 정원학교(The Garden School)란 지리적 성격의 정원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속세를 떠나서 사는 ‘내적 정원’을 이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5) 에피쿠러스학파가 마지막으로 주장하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않는 상태’입니다. 죽음은 인간 최고의 고통이며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죽음은 인간이 극복해 내야 할 마지막 적입니다. 죽음의 문제를 극복해 내지 못하면 그 어느 누구도 ‘아타락시아’ 곧 ‘참된 마음의 평정과 고요함’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에피큐리안들은 죽음이란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허상이라고 강조합니다. ‘죽음이란 아무 것도 아니다. 죽음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전혀 두려워하지 말아라. 우리가 살아서 존재하는 동안은 죽음이 존재하지 않고, 죽음이 살아서 존재하게 된다면 그 때는 이미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 있으면 죽음이 없고, 죽음이 살아 있으면 그 때는 내가 없다. 우리는 죽음과 함께 같은 시간, 동일한 공간에서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전혀 겁내거나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살아 있으면 죽음이 없는 것이고 죽음이 살아있으면 우리가 없는 것이다’ ‘사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은 다음에 가상의 신이 내린다고 하는 그 어떤 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들은 죽음을 겁내는 것이다. 그런데 다행이도 이 세상에는 그런 신이란 처음부터 없다.’
이 학파의 대표자인 에피쿠러스(Epikouros, BC 341–270)는 지금의 터키 동부에 있는 사모스섬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아테네를 중심으로 활동한 당대의 뛰어난 철학 중 하나입니다. 자기 집 정원에다 아테네의 네 번째 학원인 Epicurean School을 세워서 제자들을 중심한 학파를 만들었습니다. 이 그룹을 흔히 ‘에피큐리안이즘’ 혹은 快樂主義라고 부릅니다. 그의 사상을 몇 개의 단어로 요약하면 행복, 쾌락, 평안(아타락시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데모크리토스의 영향을 받은 유물론자였습니다. 훗날 칼 마르크스는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자연 철학 비교 연구’라는 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에피쿠러스 자신의 저서는 알려진 것이 없으나 에피쿠러스의 생애와 사상은 로마의 시인이며 철학자였던 루크레티우스(Lucretius BC 96–AD 55)가 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On the Nature of Things)를 통하여 소개되었습니다. 긴 세월 동안 잊혀졌던 이 책이 어떻게 발견되고 추적되었는지는 스티븐 그린블렛(Stephen Greenblatt)이 쓴 퓰리쳐상 수상작품인 ‘1417년–근대의 탄생’(The Swerve: How the World became Mdern 2011. 한국어판은 이혜원 번역으로 2013년 까치에서 출판되었음)에 잘 소개되고 있습니다. 레크레티우스는 이 책에서 에피큐러스가 어떻게 데모크리토스에게서 영향을 받고 그의 사상을 펼쳐나갔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가는 말
앞에서 살펴 본 대로 저와 여러분들은 오늘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후기 헬렌이즘과 로마시대의 몇 가지 철학 사상들과 그 시대의 철학자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주제는 ‘그래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였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에 기고한 글들은 대부분 참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만 특히 오늘의 강의안은 김민섭의 ‘나는 결국 우리 아이 이름을 린(隣)이라고 지었다’로부터 큰 영감을 얻어서 화두로 삼았습니다.
▷ Questions & Comments
▷ Sharing –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함께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에는 무엇이 있으며 어떻게 대처 할 수 있을까요?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