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6-1)
이웃되기의 역사학
줄임글
현존 질서 안에서 편안함을 누리는 기득권자들은 그 힘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칸막이를 쳐댄다. 그 칸막이 밖에는 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나 현존질서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하게 된다. 이 칸막이가 건재한 세상에서 ‘이웃’은 찾아볼 수가 없다.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싸움하는 전쟁터다. 필자는 역사를 ‘인간의 활동공간 확장과정’이자 동시에 끊임없이 ‘칸막이를 허무는 과정’이거나 ‘칸막이를 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칸막이를 치는 과정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약자를 주변부로 내몰았다. 여기에 희망은 없다. 하여 나는 역사의 희망은 칸막이를 허무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서로 다른 언어·문화·종교를 배우며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해 나며 칸막이를 허물기 시작할 때 비로소 ‘타자’가 ‘이웃’으로 다가오게 된다.
1. 머리글: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널리 알려진 대로 E. H. 카(Edward H. Carr)가 질문하고 대답한 책이름이다. 그만이 이를 논의한 것은 아니다. 역사학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하여튼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한 크로체(Benedetto Croce)도 있고, 앞서 말한 카도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다. 헤겔(G. W. F. Hegel)은 이데아(Idea)가 끊임없는 ‘정반합’의 과정을 통하여 발전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칼 맑스(Karl Marx)는 계급 없는 사회를 이루어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계급 사이의 지속적인 투쟁이 역사라고 했다. 토인비(Arnold J. Toynbee)는 역사란 끊임없는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라고 했으며, 우리의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는 ‘우리’(我)와 ‘우리 아닌 이들’(非我) 사이의 끊임없는 ‘쟁투’(爭鬪)라고 했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어제의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다는 것은 오늘의 문제를 풀기 위한 지혜를 찾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의 관심과 시각으로 어제를 보니,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한 크로체의 말도 일리가 있고,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카의 설명도 설득력이 있다. 정신사나 사상사의 시각에서 자유정신과 같은 이데아가 다른 생각이나 비판적 생각과 서로 부딪치면서 변증적으로 더 나은 단계로 발전한다는 헤겔의 역사철학도 그럴듯하고, 산업화 이후 자본을 가진 자들이 실제 생산에 종사하는 이들을 착취하고 횡포를 부리는 현실을 예리하게 관찰하며 분석하고 헤겔의 변증론을 거꾸로 빌려와 노동자와 무산대중의 계급투쟁을 통해 자본가들의 경제적 토대와 그들의 지배구조를 허물고 ‘계급 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으로 역사를 본 맑스의 주장도 매력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이라는 역사론도 흥미로우며,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던 시대, 특히 식민지 백성으로 독립투쟁에 뛰어들었던 신채호의 삶을 생각하면, 역사란 ‘우리’와 ‘우리 아닌 이들’과의 쟁투라고 읽은 그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들의 역사관을 두루 살피며, 역사학이라는 ‘큰 바다’를 오래도록 항해해온 나는 역사를 ‘인간의 활동공간 확장과정’이자 동시에 끊임없이 ‘칸막이를 허무는 과정’이거나 ‘칸막이를 치는 과정’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이 글은 역사를 바로 인간의 활동공간 확장과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칸막이들이 허물어져 가거나 칸막이를 치는 과정으로 본 나의 역사학에 기대어 ‘하나의 지구촌’에 살게 된 오늘의 우리 삶을 성찰의 마음으로 읽어보고자 한다.
2. 공간 확장의 역사
나는 어느 특강에서 인류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 적이 있다.
고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니 인류의 역사가 종언을 고할 때까지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활동공간 확장의 역사로 읽고, 인간의 활동공간 확장과정에서 이전에 있던 여러 칸막이를 허무는 것이 인류역사다.
역사학자나 인류학자들은 인류의 조상들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하는데, 이들은 빙하기를 지나 이 산 저 산을 돌아다니며 수렵채취를 하며 살았다고 한다. 남자들이 한 달 또는 두 달 먼 산으로 수렵하려고 간 사이 동굴과 같은 주거지에는 여자들과 아이들이 살림을 하면서 주변의 과일이나 열매를 채취하며 살았다는 말이다.(Crag 들; 1986, Thomas; 1979, Chodorow 들; 1986)
이러다가 ‘여성 호모 사피엔스들’이 농업기술을 알게 되었다. 바로 동굴과 같은 주거지 주변에 쌓여있는 쓰레기 무덤을 오래토록 관찰한 결과였다. 그곳에는 먹다 버린 열매나 과일이 있었고 동물의 뼈도 있었을 터이다. 그 곳에서 여러 종류의 과일과 열매를 맺는 나무가 자라고 여러 가지 과일과 열매가 달리는 것을 관찰하였다. 주거지 주변에 이런 과일이나 저런 열매 나무를 심고 가꾼다면, 또는 이런저런 채소들을 심는다면, 그리고 쉽게 다룰 수 있는 개와 닭과 같은 동물을 사육한다면, 남자들이 오래도록 사냥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하는 여성들’이 오랜 과학스런 관찰을 통해 농업의 지혜를 터득한 것이다. 이것이 인류역사 최초의 과학혁명(The First Scientific Revolution)이다.(Thomas; 윗글: 3장, Chodorow; 윗글: 16-18)
인류의 역사를 보면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게 한다. 나중에 또 말하겠지만, 18세기 과학혁명이 산업혁명을 가져와 산업사회로 이끌었고, 20세기 말 지식정보기술혁명이 전 지구가 하나가 되는 사회로 이끌었다. 그런데 농업기술을 터득하고도 당시 인류는 곧바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지 못했다. 기왕에 해오던 수렵과 채취에 익숙한 이들이 ‘새로움’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 익숙한 삶을 ‘보수’하는 것이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거나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진보’보다는 더 안전하였기 때문이다. 인류는 이처럼 처음부터 ‘보수’스러웠다.
그러나 수렵채취의 삶을 ‘보수’하려는 공동체는 결국 위기에 봉착하였다. 인구가 증가하고 이전의 수렵채취로서는 증가하고 있는 수렵채취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식량을 댈 수가 없었다. 위기였다. 그래서 오래전 관찰을 통해 알아낸 농업기술을 꺼내 주거지 주변 산기슭에 농업을 하기 시작하였다. 멀리 이 산 저 산 무리지어 사냥을 나가지 않아도, 그리고 몇 달을 가족과 떨어지지 않아도 식량을 해결할 수가 있었다. 한동안 이들의 삶은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식량문제를 해결하였을 뿐 아니라, 고된 사냥 길에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사냥은 이들에게 행락이 되어갔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것은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삶을 꾸릴 수 있는 정착의 삶(a settled life)이었다. 이전에는 동물을 많이 포획하게 해 달라고 그들의 신들에게 기도했는데, 이제는 농사가 잘 되게, 적당한 비와 적당한 햇빛을 달라고 기원하였다. 모든 것이 변한 삶이다.
그러나 산기슭에서 농업을 하며 정착의 삶을 꾸리게 된 초기 ‘산기슭 농업공동체’에 또 위기가 닥쳤다. 인구의 급증이었다. 사냥을 나가지 않아 함께 살게 되었으니 이성과의 접촉이 잦게 되었고, 그래서 인구는 이전 수렵채취시대의 인구증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상승 곡선을 그리며 증가하였다. 산기슭에서 농사를 지어서는 급증하는 인구를 먹일 수가 없었다. 넓고 비옥한 그리고 적당한 햇빛과 물이 있는 곳, 강가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동쪽의 이 산 저 산에서, 서쪽의 이 산 저 산에서, 북쪽의 이 산 저 산에서, 그리고 남쪽의 이 산 저 산에서 같은 강가로 내려온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인간 활동공간이 좁은 산기슭에서 넓디넓은 강가로 확장하였다는 말이다.(Chodorow; 윗글: 16-22)
풍부한 강물 덕에 더 넓은 토지를 경작할 수 있었고, 정착생활로 인해 인구가 증가하여 풍부한 노동력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넓은 경작지를 가지게 되었고, 농업에 필요한 기술도 발전하여 더 많은 수확을 얻게 되어 더욱 풍족한 삶을 꾸리게 되었다. 강 주변에 이른바 ‘농업도시들’(agricultural cities)이 생성하게 되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4대 고대문명(중국,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이 강가 농업도시를 중심으로 잉태되었다. 문명(civilization)이라는 라틴어가 ‘씨빌리스’(civilis)이고 도시라는 라틴어 ‘씨비타스’(civitas)와 말 뿌리가 같은데, 이것은 바로 도시가 있는 곳에 문명이 생성하고, 도시가 없으면 문화는 있으되 문명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고대 문명은 도시화의 산물, 그렇다, 농업도시화의 산물이었던 것이다.(윗글: 25-26)
강가에 들어선 이 농경사회에 문제가 지속적으로 들이닥쳤다. 또 위기다. 이처럼 인류의 역사는 위기의 연속이었고, 이 위기가 ‘진보’의 기회였다. 하여튼 가장 시급한 문제는 비가 많이 올 때 강이 범람하고 홍수가 나, 밤낮 쉬지 않고 땀 흘려 경작하고 있던 논밭을 쓸어버리는 것이었다. 때로는 혹심한 가뭄도 있었다. 이러한 자연재해를 고대 사람들은 신이 노해서 내리는 재앙이요 징벌로 여겼다. 어떤 무리는 이 노여움을 피하기 위해 산기슭으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어떤 무리는 이 재앙을 피하려고 신에게 이런저런 형태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자연재해는 신의 노여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많은 비로 강이 범람하고 홍수가 일어났으니 미래를 대비하여 댐을 건설하고 강둑을 쌓으면 된다는 과학적 주장을 하고 나섰다. 당시로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들었지만, 과학적 해결책이었다. 그들은 댐을 건설하고 강둑을 쌓았으며 저수지를 만들었다. 그래서 강가 농업도시는 점점 더 확장되었다. 새 기술도 따라 발전하였다.
이렇게 농업혁명 후 잉태된 농업도시를 중심한 고대문명은 번성하여 갔다. 그 후 유럽의 왕조국가들이 좁은 유럽에 갇혀 있지 않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탐험정신, 발전된 항해술과 배 건조기술에 기대어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로 진출하였다. 15세기에 들어서면서 일어난 일이다. 역사가들이 세계가 ‘더 작아지기 시작했다.’(the world began to grow smaller)고 말하는 것은 세계 여러 지역이 서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통상이 이루어지고 각지의 특산 농업종자가 다른 지역으로 옮아가기 시작한 것도 다 이즈음이다.(Stearns, 1987: 2장)
그러다가 인류의 역사는 두 번째 과학혁명과 더불어 일어난 산업혁명(The Industrial Revolution)으로 인해 산업사회로 이어졌다. 앞선 영국을 뒤따라 유럽 여러 나라가 다투어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게 되자 산업화에 필수인 더 많은 자원과 더 넓은 시장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찾아 나서게 되었다. ‘국민국가’(nation-state)를 건설한 이들은 경쟁적으로 아메리카로, 아시아로, 그리고 아프리카로 진출하게 된다. 15세기의 진출과는 달리 이번의 진출은 제국주의적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이처럼 공간의 끊임없는 확장의 역사였다.(Chodorow들, 윗글: 26, 29, 34장)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혁명으로 지식 정보화 시대를 열었고, 그래서 지금은 모두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하나의 지구촌’(a global village)에서 살고 있다. 인간의 활동 영역이 여기까지 확장되어 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인간의 활동 간 확장’의 시각으로 인류문명사를 읽는다.
1) 칸막이 허물기, 이웃되기
그런데 이 ‘공간 확장의 역사’는 그 과정에서 무수히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칸막이들과 부딪치게 되고, 그 결과 이들 칸막이들이 허물어지는, 또는 의도적으로 허무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공간 확장의 역사‘는 ‘칸막이를 허무는 역사’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내가 거시적으로 바라본 인류 역사다.
이를테면, 농업혁명으로 수렵채취 단계에서 농경 단계로 인류역사의 공간이 확장되면서 ‘칸막이’ 문제가 대두되었다. 산에서 강가로 내려와 건설한 농업도시공동체 안팎에서 일어난 구성원 사이의 경제ㆍ사회ㆍ문화ㆍ정치 등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전부터 있었던, 또는 새로 생겨난 여러 칸막이들 때문에 서로 갈등하고 다투게 되었다. 이 산 저 산, 각기 다른 곳에서 같은 강가로 내려온 다른 씨족, 다른 부족 사이에 언어가 다르고 관습이 다르며 믿는 바도 달라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지 못해 모두가 어색하고 불편하였다. 또는 누가 저수지의 물을 먼저 사용하는가의 문제를 놓고 다투기도 했다. 강가로 이주한 시기가 서로 달라 먼저 정착한 무리가 우선권/기득권을 가진다는 주장과, 늦게 왔으나 더 큰 무리, 더 강한 무리가 먼저 물을 사용하겠다는 주장 사이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다툼과 갈등이 있었다. 언어가 다르니 이런 다툼과 갈등은 점점 깊어만 갔다. 견제하고 싸우고 심지어는 힘으로 다른 무리를 억누르고 제압하려고 한다. 어떤 무리는 ‘낯선 이들’과 긴장하고 갈등하기보다 자기 씨족끼리 평화롭게 생활하던 ‘산기슭’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했고, 어떤 무리들은 지속적으로 힘으로 문제를 풀고자 했다.
이들 가운데 어떤 무리는 넓디넓은, 그리고 풍요를 가져다 준 이 농업도시를 포기하고 산(과거)으로 되돌아가지 않고서도 이 농업도시 구성원들이 ‘다름’이나 ‘차이’를 극복하고, 칸막이를 낮추거나 허물며 함께 살 수 있다고 나섰다. 이들은 서로가 언어ㆍ문화ㆍ풍습ㆍ종교ㆍ피부색과 같은 다름을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농업도시공동체에 드리워진 언어 칸막이ㆍ관습 칸막이ㆍ종교 칸막이ㆍ인종이나 부족의 칸막이를 서서히 허물 수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남의 언어ㆍ관습ㆍ종교를 서로 배우고 이해하자는 것이다. 경제나 정치의 다툼이나 갈등에 대해서도 제도를 만들고 법을 만들어 어떤 무리의 전횡을 막고 또 스스로 욕망을 제어하는 장치를 만들자는 것이다. ‘서로 이웃되기’에 나서자는 말이다. 이들이 인류역사의 주인공이다. 인내와 타협을 통해 상생하자는 것이다. 여러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서로 적대하고 충돌하기도 했지만, 시기가 다를 뿐, 결국에는 이들을 갈등케 한 칸막이들이 허물어져 갔다.
앞서 짧게 언급했지만, 과학혁명에 뒤이어 일어난 산업혁명으로 인류의 활동공간이 더욱 확장되었다.(윗글) 이 단계에서도 여러 칸막이가 있어 서로 긴장하고 갈등하였다. 여기서도 언어의 칸막이ㆍ문화의 칸막이ㆍ인종의 칸막이ㆍ종교의 칸막이 등 여러 칸막이들이 있었다. 힘 있는 인종이나 국가의 언어ㆍ문화ㆍ종교 따위를 우월한 것으로 강요하여 토착민으로부터 저항을 받는 갈등의 역사가 연출되었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대결의 시대가 열렸다. 아프리카에서도, 아메리카에서도, 그리고 아시아에서도 제국주의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이 한 치의 양보 없이 쟁투하였다. 서로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는 시대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긴장, 갈등 그리고 쟁투의 시대를 통해 칸막이들이 허물어져 갔다. 때로는 무력으로 칸막이를 허물기도 했지만,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다른 쪽에 있는 무리들이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 서로가 함께 죽기보다는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되기의 길을 모색하였다. 서로 다른 이들의 언어ㆍ문화ㆍ종교를 배우고 연구하며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정보통신혁명으로 세계가 하나가 되어 살아가야 하는 역사 단계에서는 이전의 칸막이들이 쓸 데가 없게 되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도 유럽ㆍ아프리카ㆍ아메리카ㆍ아시아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일하고, 공부하고, 또는 여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세계 여러 지역ㆍ여러 나라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그리고 여행한다. 아니 나라의 칸막이ㆍ민족의 칸막이ㆍ문화의 칸막이ㆍ종교의 칸막이ㆍ심지어 인종(피부색)의 칸막이를 넘어, 아니 허물어 가정을 이루고, 삶을 꾸리는 시대다.
그렇다, 인류역사를 거시적으로 읽으면 인류역사는 인간 활동 공간이 확장되어간 역사이고, 또한 이 과정에서 언어ㆍ문화ㆍ나라ㆍ민족ㆍ인종의 다름에서 생겨난 여러 칸막이들을 사이에 두고 서로 긴장하고 갈등을 겪는 역사, 그러나 종국에는 이러한 칸막이들이 허물어져간 것이 인류의 역사이다.
2) 칸막이 설치하기, 적 만들기
인류역사를 이런 시각에서 읽으면, 궁극적으로 올 ‘새 시대’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지금까지 해온 것, 그래서 ‘익숙한 것’을 ‘보수’하려고 한다. 이들의 의식구조는 이분법적이다. 도 아니면 모, 흑 아니면 백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선동가들도 이런 시대에 나타나고, 테러도 이럴 때 나타난다.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의 ?문명의 충돌?도 바로 새 시대를 두려워하는 미국 사람들이나 이들의 사조에 익숙한 이들의 마음을 선동하였다.(헌팅턴, 1997)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동서 냉전질서는 무너지고, 미국의 세계 주도권이 흔들리고 있다. 이 불확실한 미래세계를 헌팅턴이 예측하고 구상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나라의 경계와 민족이나 인종 사이의 칸막이는 허물어졌지만, 이 때문에 야기되는 분쟁이나 충돌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미래세계는 중화권이다, 이슬람권이다, 서구권이다 하는 여러 문명권으로 나누어질 것이고, 바로 이 문명권들이 충돌할 것이다. 이를 위해 서구권이 단결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헌팅턴의 미래세계 구상이고 예측이다. 단순하고 이분법적이다. 선동적이다. 그래서 무섭고 위험하다. 헌팅턴의 글을 따온다.
딥딘(Michael Dibdin)의 소설 <죽은 못>(Dead Lagoon)에 등장하는 베네치아의 민족주의적 선동가는 이 새로운 시대의 음울한 세계관을 잘 표현하였다. “진정한 적수가 없으면 진정한 동지도 있을 수 없다. 우리 아닌 것을 미워하지 않는다면 우리 것을 사랑할 수 없다. ……” 이 해묵은 명제에 담겨있는 불행한 진실을 정치인과 학자는 묵과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윗글, 18)
‘적수가 반드시 필요하며, 잠재적으로 가장 위험한 적수를 가져야 한다.’는 헌팅턴의 미래역사 예측은 위험하다. ‘우리 대 그들’이라는 단순한 대결성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서구 지배질서의 몰락으로 공황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선동하여 테러케 한다. 내가 말하는 공간 확장의 역사와 칸막이 허무는 역사와 대척점에 선 주장이 헌팅턴의 “마니교적 정치학”(뮐러, 2000: 33-34)이다. 적이 없으면 가상의 적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며 냉전적인 ‘우리 대 그들’ 구도의 대결을 선동한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1960년대 킹 목사(Martin Luther King, Jr.)를 중심으로 한 민권운동으로 미국은 엄청나게 변했다.(박정신, 2008: 72-83) 법적으로 변하고 제도적으로 변하기도 했지만, 이 대중운동으로 많은 백인들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흑인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이 정치적ㆍ사회적으로 깨어난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다. 차별을 받으면서도 그냥 참고 지내던 옛 태도를 버리고, 스스로 모임을 만들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민권운동가인 잭슨 목사(Jesse Jackson)가 1984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지명전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그처럼 칸막이를 허무는 역사의 움직임의 결과였다.
그러나 그럴수록 헌팅턴스러운 사람들은 늘 나타난다. 백인 대 흑인, 백인 대 소수민족의 칸막이가 사라지는 것에 불안을 느끼는 극우 백인집단이 다시, 더욱 극렬하게 결집하기 시작했다. 내가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에서 가르치던 때에도 미시간ㆍ아이다호ㆍ뉴멕시코ㆍ아리조나 주 등 미국 곳곳에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모여 살면서 민병대를 조직하여 ‘백인의 왕국’을 건설하려고 군사훈련까지 하는 광경을 종종 접했다. 그들은 결코 무지하기만 한 백인들이 아니었다. 교육 받은 백인들 중에도 백인 우월의식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지금도 많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교묘하게 소수민족을 차별한다. 아무리 우수한 소수민족 사람이 백인 못지않게 일을 잘해도 백인처럼 진급하지 못하고 백인처럼 월급받지 못하는 일들이 매일매일 일어난다.
심지어 대학교수인 나도 이런 인종차별을 받았다. 주말에 연구실로 걸어갈 때 누가 어디서 던졌는지 모를 돌을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른바 미국에서 가장 열린 공간이라는 대학촌에서 벌어진 일이다. 어떤 때는 연구실 문 앞에 붙어있는 내 이름표가 사라진 적도 있다. 백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노랭이’ 교수, 아니 잘난 체하고 인기 있는 ‘노랭이’ 교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개한’ 백인들이 벌이는 교묘하고 천박한 인종차별이다. 내가 나서서 주장하고 요구하지 않으면 진급도 늦고 봉급인상도 해주지 않는다.
이런 행태는 역사의 명백한 퇴행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역사는 인간 활동 공간의 확장이자 칸막이를 허무는 역사다. 칸막이를 설치하자, ‘그들’이 없더라도, 있다고 생각하고 새 칸막이를 설치하자는 헌팅턴은 어제의 냉전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칸막이 허물기를 기피하며 ‘산기슭’으로 올라간 순진한 이들도 아니다. 그는 칸막이를 허무는 무리 뒤를 따라오며 새 칸막이를 설치하는 사람이다.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 미국의 세계 주도권 상실에 대한 허탈감에 대한 ‘보수적 반응’이다. 뮐러(Harald Mueller)의 글을 따온다.
파란색 선글라스를 쓴 사람은 세상을 파랗게 볼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한동안 지내다보면 세상이 정말 파랗다고 믿게 된다. 날씨가 화창한날 하늘을 올려다 볼 때 파란색 선글라스는 현실을 왜곡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선을 아래로 돌리게 되면, 사물의 색채에 대해 잘못된 발언을 하게 된다. …… 안경은 현실을 왜곡시킨다.(뮐러, 윗글: 23)
칸막이를 치는 이들은 현존질서에서 ‘힘이 있는 이들’이다. 남자들ㆍ부자들ㆍ권력 가진 자들ㆍ많이 배운 사람들의 특권이 허물어져 갈 때, 그래서 여자들ㆍ가지지 못한 이들ㆍ힘이 없는 이들ㆍ많이 배우지 못한 이들이 ‘권력’을 나누어 가지려고 할 때, 이들은 자기들의 권력상실을 우려해 칸막이를 치고 ‘보수’의 설교를 해 댄다. 자신들의 시대에 ‘종말’이 오고 있다는 불안으로 적을 만들고, 적이 없으면 가상의 적이라도 만들어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미국의 패권이나 권력(교회 권력도 포함)에 기댄 헌팅턴 유의 지식꾼들이 등장한다. 이전의 칸막이들이 무너져가는 새 시대,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 이제까지 누리던 패권이나 권력 상실에 대한 불안감이 이들을 엄습한다. 수많은 헌팅턴이 나오고, 그들에게 선동 받는 자들이 테러에 나선다.(오드니, 2012: 옮긴이 해제)
3. 꼬리글: 어느 길로 갈 것인가
그렇다면, 다시 묻자. 이런 세상에 희망이 있는가. 난민들과 일자리를 나누기 싫어 ‘브렉시트’(Brexit)를 단행한 영국, 소수민족에게 빼앗긴 일자리를 되찾아 오겠다는 트럼프(Donald Trump)의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미국, 그리고 입으로만 ‘우리의 소원은 통일’, ‘통일은 대박’이라고 외칠 뿐, 실제로는 개성공단 철수, 사드 배치 등 분단의 칸막이를 더 높이 쌓고 있는 한국, …… 과연 이렇게 뒷걸음질 치는 역사의 희망은 어디서 올 것인가.
멀리 갈 것 없다. 경기도를 들여다보자. 우리나라 전체로는 만성적인 ‘저출산’ 현상 때문에 인구가 줄고 있지만, 경기도는 예외다. 해마다 인구가 늘고 있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간 단 한 번도 전출인구가 전입인구를 넘은 적이 없다. 경기도로 이사 온 타도민 중 가장 많은 비중은 서울시민이 차지한다. 2012년 기준, 서울에서 경기도로 전입한 사람은 35만4천명으로, 전체 전입인구 중 54.4퍼센트나 된다. 물론 경기도에서 서울로 옮겨간 사람들도 많다. 전출인구 56만8천 명 중 44.8퍼센트(약 25만4천 명)가 서울로 빠져나갔다. 그래도 여전히 서울로부터의 전입인구가 전출인구보다 10만 명이나 많다.
외국인의 경우는 어떤가. 2015년 기준, 경기도에 등록된 외국인 수는 약 55만 명으로 추산된다.(경기일보, 2016.9.18.) 전국에 분포되어 살고 있는 외국인 수가 200만 명이라고 할 때, 그 중 32퍼센트가 경기도에 산다는 뜻이다. 2001년만 해도 전체 49만 명이던 외국인 수가 14년 만에 4배나 늘었다. 이러한 성장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그러니까 경기도는 서울의 높은 전세 값을 감당하지 못한 ‘전세 난민’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인 곳이자, ‘코리안 드림’을 좇아 한국까지 온 외국인 노동자나 결혼이민자들에게 환상적인 ‘기회의 땅’이라는 것이다. 경기도가 우리나라의 올제를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이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경기도에서 공간 확장의 역사ㆍ칸막이 허무는 역사의 진행과정이 주춤하거나 퇴행한다면, 우리나라의 올제에도 먹구름이 낄 것이다. 다문화는 불안하다고,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노동자, 특히 이슬람계 동남아 노동자는 위험하고 무섭다고 색안경을 낀 채, 인종의 칸막이ㆍ계급의 칸막이ㆍ종교의 칸막이ㆍ문화의 칸막이를 높이 세우려 한다면, 단언컨대 경기도는 고사하고 우리나라의 올제는 비관적이다.
또 한 가지 변수가 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통일이 온다면, 그것도 빠른 시간 안에 ‘도둑같이’ 이루어진다면, 북한 주민이 가장 많이 몰릴 곳도 경기도다. 한반도의 허리를 두 동강 낸 38선이 지나는 곳 경기도는 분단의 아픔을 가장 절절히 느끼는 곳인 동시에, 또 그만큼 통일의 기쁨도 가장 먼저 느끼게 될 곳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소식이 정말 ‘기쁜 소식’(good news)으로 들리는가, 아니면 ‘나쁜 소식’으로 들리는가. 북한 주민들이 우르르 몰려오면 덩실덩실 노래하고 춤추겠는가, 아니면 불안하고 무서워 숨겠는가. 어쩌면 통일은 이 질문에 경기도가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에 달려있을지도 모른다. 경기도가 보수스러운 공포정치와 선동정책에 휘둘리지 않고 꿋꿋이 공간 확장의 역사ㆍ칸막이 허무는 역사의 길을 걸어갈 때, 대한민국의 희망이 있을 것이다.
결국 희망은 현존질서를 상대화할 줄 아는 사람들, 이 질서를 지탱하는 논리에 맞서는 사람들에게서 올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종류의 칸막이를 설치하여 구분하고 구별하며 차별하는 현존질서 ‘안’에서 편안함을 누리는 사람이 아니라, 기형적인 현존질서 ‘밖’에 있는 사람들, 이 현존질서로부터 혜택 받지 못하고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 현존질서를 향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질 사람들로부터 올제의 경기도가, 올제의 대한민국이 탄생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박정신 교수
(숭실대 법인이사, 역사학 / 전 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 및 원장 / 문화학술계간지 <이제 여기 그너머>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