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
시 (詩)
네루다 (Pablo Neruda, 1904 ~ 1973)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어,
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또는 내 나름대로 해 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遊星)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 (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 (虛空)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개관】
.작자 : 네루다 (Pablo Neruda)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고백적, 명상적, 체험적, 내향적
.어조 : 독백적인 어조
.심상 : 비유적 심상
.표현 : 시 창작 과정을 고백함
.제재 : 시작 (詩作)
.주제 : 시작 (詩作)의 본질과 의미
.출전 : <아슬라 네그라 비망록> (1964)
【구성】
.제1연 : 문득 시적 영감이 떠오름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는 ‘목소리’, ‘말’, ‘침묵’은 공통적 언어와 연결되어 있는 데 그것은 영혼의 충동, 다시 말해서 시적 영감을 의미한다).
.제2연 : 시적 영감을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함 (‘내’가 이름을 대지 못하고 눈이 먼 이유는 ‘이름을 대지 못한’ 것은 일상적 관계로 묶여질 수 없음을 의미하며, 이는 ‘눈이 먼’ 것을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제3연 : 새로운 세계와 일체감을 느낌 (서정적 자아는 큰 우주와 미소한 존재가 시를 매개로 비로소 결합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시어 풀이】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 주요 소재로서 시적 화자가 추구하는 정신적 목표, 의인화됨.
<나> : 시를 쓰고자 하는 시인, 정신적 목표를 집념어린 태도로 추구하는 자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 나는 우연한 장소에서 시를 쓰겠다는 충동을 느끼기 시작했어. 시를 쓰게 된 동기가 극히 우연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의도적으로 시를 창작했다는 결심을 하고 충분한 습작 과정을 거친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시의 진실에 접하게 된 것이다. 의인법
<밤의 가지에서,/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격렬한 불> : 시의 영감을 상징하는 소재로 강렬하고 뜨거운 생명력을 가리킴] 속에서 불렀어[시의 영감이 불이 지닌 속성처럼 강렬하고 신비한 것임을 비유적으로 표현. 은유법.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그건 드리더군> : 시작 (詩作)의 동기를 밝히고 있음. 우연히 찾아온 시적 영감의 신비, 촉각적 이미지를 통한 영감의 형상화.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 시적 영감이 촉발된 상태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어> : 내 영혼 속에서 시의 충동이 조금씩 일기 시작했어. 시와 만남으로 인한 자신의 변화를 표현
<넌센스> : 시적 표현의 특성 – 무의미성, 무목적성, 비도구성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순수한 지혜> : 내가 쓴 시의 첫 구절은 나 자신으로서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 만큼 넌센스에 가까웠다. 그러나 서구 시들의 명쾌한 시적 주제와는 다르게, 남미 특유의 정서와 특징이 자신의 시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는 은밀한 자부심이 깔려 있다. 자신의 시에 대한 생각을 드러냄.
<유성 (遊星)> : ‘나’를 감싸는 우주 속에서 빛을 뿜으며 지나가는 존재, ‘시적 영감’과 ‘소재’의 상징, 시적 영감의 강렬함과 빛나는 속성에 상응함.
<고동치는 논밭> : 시적 영감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감정을 분출시키는 모양들
<그림자> : 하늘, 논밭, 그림자, 우주 – 시를 쓰는 과정에서 발견한 새로운 세계
<그리고 문득/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 내가 몸담고 있는 남미의 어느 한 나라 속에서 서구인들이 여태껏 발견하지 못했던 많은 시적 주제들이 깔려 있음을 나는 문득 확인하게 되었어. 그 시적 주제들은 하늘, 유성, 논밭, 그림자, 밤, 우주 전체에 흩어져 있었어. 시적 화자는 서구인들이 발견하지 못한 많은 시적 주제들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있음. 시적 영감에 대한 나의 반응과 시작.
<그리고 나, 이 미소 (微小)> : 자기 자신의 보잘것없음에 대한 자각.
<나 자신이 그 심연 (深淵)> : 빠져 나오기 어려운 깊은 구렁
<일부임을 느꼈고> : 조화의 신비감
<내 심장> : 시인의 정신세계
<그리고 나∼바람에 풀렸어 : 시적 화자는 시를 쓰는 과정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시를 통해 그 새로운 세계와 일체감을 느끼고 있음을 드러냄.
【감상】
이 작품은, 시를 써 본 문학소년, 소녀라면 으레 경험해 보았을 법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네루다 자신의 시인관 (詩人觀) 내지는 시론 (詩論)을 드러낸 시이다. 또한 시가 시인을 찾아와 시인이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보고 그 속에 동화되어 가는 과정을 노래한 것이다.
문득 계시 (啓示)처럼 찾아온 시는 `나’를 눈멀게 하고 언어를 잃어버리게 한다. 그 불같은 영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나’는 새로운 눈, 새로운 언어를 찾아야 한다. 새로운 날갯짓처럼 시의 첫줄이 이루어지자 그것은 곧 새로운 세계, 우주로 나아가는 길이 되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1964년에 간행된 시집 <이슬라 네그라 비망록>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자신이 우주의 일부임을 느끼게 되며,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게 되는 경지에 이른다. 이처럼 이 시는 시인이 최초로 시적 영감을 떠올리는 순간부터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여 완성된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맛보는 우주 내지 자연과의 일체감을 노래한 것이다. 이를 통해서 볼 때 네루다가 생각한 시인이란 우주로부터 받은 시적 영감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합일 (合一)의 경지에 이르는 존재를 가리키고 있음이 명확해진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언어로 표현된 시적 영감의 결정물은 시를 의미한다.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1904 ~ 1973)
파블로 네루다 (스: Pablo Neruda, 1904년 7월 12일 ~ 1973년 9월 23일)는 칠레의 민중 시인이자 사회주의 정치가이다. 본명은 리카르도 엘리에세르 네프탈리 레예스 바소알토 (스: Ricardo Eliécer Neftalí Reyes Basoalto)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의 강압에서 벗어나고자 사용한 필명이 나중에는 법적인 실명이 되었다.
1904년 남칠레 국경 지방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아홉 살 때 ‘스무 편의 사랑과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출간하여 남미 전역에서 사랑을 받았고, 스물세 살 때 극동 주재 영사를 맡은 이후 스페인,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지의 영사를 지냈다.
프랑코의 파시스트 반란이 일어나자 파리에서 스페인인들의 망명을 적극적으로 돕는 등 정치활동을 했으며, 칠레 공산당 상원의원으로도 활동했다.
곤살레스 비델라 독재 정권의 탄압을 받자 망명길에 올랐다가, 귀국 후 아옌데정권이 들어서면서 프랑스 주재 칠레 대사에 임명되었다.
1973년 피노체트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본명: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바소알토 (Neftalí Ricardo Reyes Basoalto)
.출생: 1904년 7월 12일, 칠레 마울레 주 파랄
.사망: 1973년 9월 23일 (69세), 칠레 산티아고
.직업: 시인
.언어: 스페인어
.국적: 칠레
.배우자: 마틸다 우루티아 (1966~1973), 델리아 델 카릴 (1943~1966)
.활동기간: 1911년 ~ 1973년
.장르: 시문학
.사조: 초현실주의
.주요 작품:《지상의 주소》(1931)
.수상: 노벨 문학상, Golden Wreath, 레닌 평화상 등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의 시인이자 사회주의 정치가이다.
본명은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바소알토 (Neftalí Ricardo Reyes Basoalto)이다.
연애 시를 많이 남겼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스타일로 시를 썼다.
사회주의자라서 평생동안 정치적 망명을 여러군데 다녔다.
1971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한국에는 그의 작품 중 ‘시가 내게로 왔다’ 라는 구절로 유명한 ‘시’ 가 널리 알려져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