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한편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시인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의 대표작인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모란을 대상으로 기다림과 절망 또 다른 기대가 시적 순환구조를 이룬다. 절정과 완성의 순간은 바로 추락과 상실의 순간이다. 시인은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은 찬란한 봄에 대한 기다림이지만, 이내 시들어 떨어지는 죽음과 같은 것이다. 기대나 희망은 슬픔으로 어둠과 빛은 결국 하나이며 인간의 삶과 죽음은 숙명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긍정했다고 할 수 있다.
김영랑의 생애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런 시대를 겪어온 시대 상황은 당시의 시인들에게 다양한 형태의 시어로 표현되고 있다. 이육사는 일제의 폭력에 대해 민족적 저항을 직설적으로 외쳤다. 윤동주는 보편적 인류애라는 시각에서 일제 식민체제를 돌아보고 그 폭력성에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어 자신에 대한 성찰과 자성으로 몰입하였다.
김영랑의 시는 직설적 표현도 내부를 향한 자성도 아니지만 암울한 시대에 태어난 어두운 그림자를 담고 있다. 그의 시정은 막연한 슬픔과 억눌러진 한을 토로하는 형태이다. 이는 식민지배가 나름대로 고착화되고 익숙해진 1930년대의 시대 상황에서 시인의 상실감은 지배 체제의 억압과 강제성을 증언한다고 할 수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