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Charles-Pierre Baudelaire, 1821 ~ 1867)의 시 모음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 샤를르 보들레르 (Charles Pierre Baudelaire, 1821 ~ 1867)는 청년 시절 여러 문인들과 어울리며 문학의 길로 들어섰으나, 무절제하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우려한 가족의 청원으로 금치산 선고를 받아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는데도 평생 가난과 빚에 시달려야 했다. 극심한 빈곤 속에서도 창작을 중단하지 않은 보들레르는 1845년 첫 책인 미술평론집 『1845년 미술전』을 출간했다. 프랑스 최초로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번역 · 소개하여 큰 찬사를 받기도 했다. 1857년에는 보들레르의 문학과 삶의 정수가 담긴 『악의 꽃』이 출간됐으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벌금과 시 여섯 편 삭제 판결을 받았다. 이후 에세이 『인공 낙원』과 『악의 꽃』 2판을 연이어 출간하고 비평문도 활발히 발표했으나, 오랜 가난과 병으로 고통받다가 1867년 46세에 영면했다. 사후에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 에세이 「내면 일기」 등이 출간되었다.

- Correspondances
La Nature est un temple oude vivants piliers
Laissent parfois sortir de confuses paroles;
L’homme y passe a travers des forets de symboles
Qui l’observent avec des regards familiers.
Comme de longs echos qui de loin se confondent
Dans une tenebreuse et profonde unite,
Vaste comme la nuit et comme la clarte,
Les parfums, les couleurs et les sons se repondent.
Il est des parfums frais comme des chairs d’enfants,
Doux comme les hautbois, verts comme les prairies,
Et d’autres, corrompus, riches et triomphants,
Ayant l’expansion des choses infinies,
Comme l’ambre, le musc, le benjoin et l’encens,
Qui chantent les transports de l’esprit et des sens.
- 교감 (交感)
자연은 살아 있는 기둥들이
때로 어렴풋한 말들을 내뱉는 하나의 신전.
인간은 정다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신전을 지나가네.
밤처럼, 빛처럼 광막하고
어둡고 깊은 조화 속에서
멀리서 뒤섞이는 긴 메아리들처럼
향기, 색깔 그리고 소리들은 서로 화답하네.
어린 아이의 살결처럼 신선하고
목가와도 같이 부드럽고, 초원과도 같이 푸른 향기가 있지.
그리고 또 부패하고, 풍성하고 요란한 향기도 있어.
용연향, 사향, 안식향과 제향처럼
무한한 것들의 확장을 지닌 채
정신과 관능의 극치를 노래하네.
*자연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아니,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이 둘 사이에 ‘친밀한’ 함수관계가 정말 있기나 한 걸까? 언제부터인가 인간들은 스스로가 자연에 속하기를 거부한다. 우리는 모든 동물과 식물과 그리고 몇몇 신들의 위에 군림한다. 가 닿을 수 없는 자리? 물론 해결책이 있다. 어마어마한 파워를 부여 받은,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에게 불가지(不可知)의 영역을 맡겨버리면 모든 문제는 사라진다. ‘신이란 우리 고통을 측정하는 하나의 개념(God is a concept by which we measure our pain)’이라 노래한 존 레논의 신은 자신과 연인 뿐이었다. 가슴속에 어떤 형태로든 신을 간직한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자연과 사물에서 신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원자를 확대해 보면 원자핵과 그 주위를 회전하는 전자들이 보인다. 계속 확대를 하면 원자핵의 모습은 사라지고 전기적인 파장만이 남는다. 그것은 1초에도 수천 번씩 진동을 하는데, 그 진동의 폭이라는 것이 거의 무한에 가까워 우주 저 멀리까지 갔다 되돌아온다. 그리고 모든 사물과 생명체의 파장은 저 넓은 우주 안에서 서로 간섭하고 교감한다고 한다. 이는 체코의 과학자 이차크 벤토프의 이론이다. 물리학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 말의 진위 여부를 떠나 그런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어온다. 나는 우주와 자연의 일부고 세상 만물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멋진 일이다.
보들레르의 이 시는 그러한 자연과의 일체감을 나타내고 있다. 시인은 낭만주의자들이 보는 것과 다른 시각으로 자연을 바라본다. 그에게 있어 자연은 하나의 상징이요, 이 상징은 ‘특유한 능력을 부여 받은’ 시인에 의해 해석된다. 시인에게 자연과 인간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다. 빛과 어둠, 시각과 청각, 신선함과 부패함, 정신과 육체, 이 모든 것들은 이분법적 분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치 판단이란 쓸 데 없는 작업일 뿐이다. 정신이 육체에, 선이 악에, 신이 악마에 우월하다는 기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이런 개념들은 마치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음에도 우리는 이 분할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보들레르는 이러한 벽을 쉽게 뛰어넘어버린다. 만일 그의 세계관에 이성(理性)의 힘이 더욱 크게 작용을 했다면 그의 시는 힘을 잃었을 것이다. 직관으로써만 느낄 수 있는 마력이 여기에 존재한다. 하나인 세계, 하나인 우주, 그리고 하나인 자연과 인간.
- L’Abatros
Souvent, pour s’amuser, les hommes d’equipage
Prennent des albatros, vastes oiseaux des mers,
Qui suivent, indolents compagnons de voyage,
Le navire glissant sur les gouffres amers.
A peine les ont-ils deposes sur les planches,
Que ces rois de l’azur, maladroits et honteux,
Laissent piteusement leurs grandes ailes blanches
Comme des avirons trainer a cote d’eux.
Ce voyageur aile, comme il est gauche et veule!
Lui, naguere si beau, qu’il est comique et laid!
L’un agace son bec avec un brule-gueule,
L’autre mime, en boitant, l’infirme qui volait!
Le Poete est semblable au prince des nuees
Qui hante la tempete et se rit de l’archer;
Exile sur le sol au milieu des huees,
Ses ailes de geant l’empechent de marcher.
- 알바트로스
흔히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바닷새인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쓰디쓴 심연 위로 미끄러져 가는 배를 뒤쫓는
시름 없는 항해의 동반자들을.
그들이 이 새들을 갑판 위에 내려놓자마자
이 창공의 제왕들은, 서투르고 부끄러운 몸짓으로
가련하게도 그들의 커다란 흰 날개를
마치 노처럼 뱃사람들 옆에서 질질 끄는구나.
이 날개 달린 여행자는 얼마나 어색하고 무기력한가!
일찌기 그토록 아름답던 그가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추악한가!
어떤 이는 담뱃대로 그의 부리를 괴롭히고
다른 이는 다리를 절름거리며, 날아다니던 이 불구자를 흉내낸다!
시인은 폭풍 속을 드나들고 궁수를 깔보는
이 구름의 왕자와도 같다.
야유의 함성 속에 지상으로 쫓겨 온
그의 거대한 날개가 걷는 것을 방해하는구나.
*흔히 자유의 상징으로 새를 이야기한다.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저 푸른 창공을 날기를 열망해왔고, 자신들이 바라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새들의 두 날개 위에 이상(理想)을 가득 실어 보내곤 했다. 어릴 적 보았던, 어디선가 날아와 저 산 너머로 유유히 사라지던 거대한 독수리의 모습은 얼마나 위대한 환상이었던가! 그가 까만 점이 되고 하늘의 파아란 빛 속으로 용해되어 내 눈 안에 허공만을 듬뿍 안겨줄 때까지 난 내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새는 단지 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막연한 동경과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때로 사람들은 새들에게 영성(靈性)을 부여하기도 한다. 죽은 영혼이 새로 환생하는 내용의 신화나 전설은 숱하게 많다. 그러나 날지 못하는 새는, 지상에 있음으로 해서, 그의 다른 족속들이 받는 온갖 찬사를 모두 잃어버린다. 날개가 있지만 날 수 없는 닭이나 날개가 퇴화되어버리고 덩치만 커다란 타조와 같은 새 아닌 새들은 멍청함의 상징처럼 이야기되지 않는가.
알바트로스 (신천옹)는 거대한 날개와 아름다운 빛깔의 깃털을 가진 바닷새다. 그런데 시인은 배 주위를 선회하는 새의 모습과 선원들에게 잡힌 새의 모습에서 비할 데 없는 찬란함과 연민을 느낀다. 시인 자신이 항해 도중 직접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 시가 쓰였다고 하는데, 망망한 대해 (大海)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바다에서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배를 따라 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 반가움과 감동은 오죽했으랴!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보고 즐기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하늘을 유유히 날던 그 아름다운 새를 잡아 갑판에 내려놓고는 그를 놀려대기 시작한다.
보들레르는 무기력한 새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시킨다. 자신의 위대한 예술적 재능 (거대한 날개)은 단지 저 무한하고 푸른 창공에서만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리석은 대중들 (뱃사람)은 모든 것을 자신들의 눈높이에 두려 한다. 그들은 하늘을 날던 새를 잡아 끌어 지상에서 절룩거리게 하고는 무기력한 그 모습 앞에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놀림감으로 삼는 등 새디즘적 행위를 서슴지 않고 행한다. 대중들의 눈에 천재란 자신들과는 좀 다른 족속일 뿐이고 또 그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인도의 철학자 라즈니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나체로 명상하는 것을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명상하는 데에 옷이란 것은 거추장스러운 물건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나의 아쉬람 (명상 센터)에서 나체 명상을 권하지 않는 이유는 대중과 사회 때문이다. 만일 나의 아쉬람에서 나체로 명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소문이 그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우릴 그냥 두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아쉬람이 문을 닫게 된다면 난 어리석은 일을 한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진리의 유무를 떠나, 사회 속에 존재하는 것이 중요한 일일 수가 있다.”
날개를 달고 세상에 나온 이상 그 날개를 떼어버릴 수는 없다. 그것이 걷는 데 방해가 될 지라도.
- L’Etranger Qui aimes-tu le mieux, homme enigmatique, dis? Ton pere, ta mere, ta sœur ou ton frere?
Je n’ai ni pere, ni mere, ni sœur, ni frere.
Tes amis?
Vous vous servez la d’une parole dont le sens m’est reste jusqu’a ce jour inconnu.
Ta patrie?
J’ignore sous quelle latitude elle est situee.
La beaute?
Je l’aimerais volontiers, deesse et immortelle.
L’or?
Je le hais comme vous haissez Dieu.
Eh! qu’aimes-tu donc, extraordinaire etranger?
J’aime les nuages… les nuages qui passent… la-bas… la-bas… les merveilleux nuages!
- 이방인
수수께끼 같은 사람아, 말해다오. 그대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그대의 아버지, 어머니, 누이, 아니면 형제?
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형제도 없소.
그대의 친구들은?
당신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그 의미가 미지로 남아 있던 말을 사용하고 있군요.
그대의 조국은?
나는 그것이 어느 위도 아래 위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오.
아름다움은?
그것이 불멸의 여신이라면 기꺼이 사랑하겠소.
금은?
당신이 신을 증오하듯 나는 금을 증오하오.
허! 도대체 그대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괴상한 이방인이여?
나는 구름을 사랑하오… 흘러가는 저 구름을… 저기… 저기… 저 경이로운 구름을!
*’인간적’이라는 말은 무수히 얽히고설킨 관계의 사슬 사이에서 그 의미가 성립된다. 어차피 ‘인간’이라는 단어 자체가 내포하는 뜻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거니까. 그리고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거기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며 하나둘씩 그 사슬의 고리를 엮어간다. 이는 달리 말해 제도화라 할 수도 있고 일정한 틀의 형성이라 할 수도 있다. 짜여진 틀 속에서 또한 짜여진 삶을 이루며 짜여진 사고 (思考)를 한다. 그 짜여진 틀을 조금만 벗어나려 하면 이미 몸을 감고 있는 단단한 사슬들은 가슴과 머리를 조이며 그를 괴롭힌다. 그는 아파하며 신음하지만 사슬의 큰 고리를 쥐고 있는 것이 자신의 두 손임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 그 사슬을 과감히 놓아버리고 저 하늘을 떠 가는 이가 있다. 그는 일체의 ‘인간적’인 것들을 배제한다. 마치, 오랫동안 집을 나가 있던 아들의 얼굴을 보고 눈물 짓는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며 “내겐 섬겨야 할 어머니가 많습니다. 이 대지, 저 하늘, 자연,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요 사랑의 대상입니다.”라고 덤덤히 말하는 예수와도 같이. 둘 중 하나다. 그는 성자 (聖者)거나 지독한 몽상가다. 그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생물학적 관계’나 ‘윤리’를 빼버린다면 부모형제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과연 ‘친구’란 존재하는가? 정치적, 지리적 혹은 혈연적 의미에서의 조국은 무가치하다. 퇴색하지 않는 미 (美)란 곧 신이다. 그러나 그 신 또한 약한 인간들이 허공에 그려 놓은 허상일 뿐, 국외자 (局外者)에게 그건 절대적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황금? 그 누런 돌이 뭐길래? 돈? 지저분한 종이와 금속 쪼가리… 아니, 그럼 그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삶을 영위해 가는가? 강한 니힐리즘 혹은 아나키즘 앞에서 삶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지닐 수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이 이방인에게는 찬란한 구름이 보인다.
세계는 오물투성이다. 불결하다. 인간적인 것에 관해서라면 일체가 혐오스럽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그것이 무언지도 모르면서 신을 찾고 사랑을 떠들어대며 또 그 이름으로 (종교라는, 국가라는, 사랑이라는 허울 아래) 다른 사람을 고통 받게 한다. 혼돈 뿐이다. 그 어디에서도 예술가는 마음껏 상상할 수 없다. 아마도 이 지구상 어느 곳에 서있어도 마찬가지리라. 아니, ‘인간적’이라는 관계의 사슬을 끊어버리지 않는 한 그것은 불가능하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파랗게 채색된 무한한 공간에 은빛 찬란한 무정형의 환상이 떠다닌다. 그 세계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시 (詩)란 그 세계로 향하는 통로 (passage)다.
- Enivrez-Vous
Il faut etre toujours ivre. Tout est la: c’est l’unique question.
Pour ne pas sentir l’horrible fardeau du Temps qui brise vos epaules et vous penche vers la terre, il faut vous enivrer sans treve.
Mais de quoi? De vin, de poesie, ou de vertu, a votre guise. Mais enivrez-vous.
Et si quelquefois, sur les marches d’un palais, sur l’herbe verte d’un fosse, dans la solitude morne de votre chambre, vous vous reveillez, l’ivresse deja diminuee ou disparue,
demandez au vent, a la vague, a l’etoile, a l’oiseau, a l’horloge, a tout ce qui fuit, a tout ce qui gemit, a tout ce qui roule, a tout ce qui chante, a tout ce qui parle, demandez quelle heure il est;
et le vent, la vague, l’etoile, l’oiseau, l’horloge, vous repondront: “Il est l’heure de s’enivrer!
Pour n’etre pas les esclaves martyrises du Temps, enivrez-vous; enivrez-vous sans cesse! De vin, de poesie ou de vertu, a votre guise.
- 취하십시오
항상 취해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입니다.
당신의 어깨를 짓눌러 당신을 땅으로 고꾸라지게 하는 시간의 엄청난 무게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당신은 쉼 없이 취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에 취할까요? 술이든, 시 (詩)든 혹은 덕 (德)이든 당신 마음대로입니다. 어쨌거나 취하십시오.
그리고 때때로, 궁전의 계단 위에서, 도랑의 초록색 풀 위에서, 당신 방의 음울한 고독 안에서, 당신이 깨어나고 도취가 이미 퇴색하거나 사라지면,
바람에게, 파도에게, 별에게, 새에게, 시계에게, 달아나는 모든 것에, 신음하는 모든 것에, 구르는 모든 것에, 노래하는 모든 것에, 말하는 모든 것에 몇 시냐고 물어 보십시오.
그러면 바람, 파도, 별, 새, 시계는 당신에게 대답할 겁니다. “취할 시간입니다! 시간에 박해당한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취하십시오. 끊임 없이 취하십시오! 술이든, 시든 혹은 덕이든 그건 당신 마음대로입니다.”
여기에 무슨 말이 필요하랴. 난 늘 취해 있고자 노력한다. 어떤 대상에 흠뻑 취할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멋진 일이다.
★ 항상 취하라
항상 취하라
그것보다 우리에게 더 절실한 것은 없다.
시간의 끔찍한 중압이 네 어깨를 짓누르면서
너를 이 지상으로 궤멸시키는 것을 느끼지 않으려거든
끊임없이 취하라.
무엇으로 취할 것인가.
술로, 시로, 사랑으로, 구름으로, 덕으로
네가 원하는 어떤 것으로든 좋다.
다만 끊임없이 취하라.
그러다가 궁전의 계단에서나
도랑의 푸른 물 위에서나
당신만의 음침한 고독 속에서
당신이 깨어나 이미 취기가 덜하거나
가셨거든 물어보라
바람에게, 물결에게, 별에게, 새에게, 시계에게,
지나가는 모든 것에게, 굴러가는 모든 것에게
노래하는 모든 것에게, 말하는 모든 것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바람이, 물결이, 별이, 새가
시계가 대답해 줄 것이다.
취하라.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항상 취해 있으라.
술이건, 시이건, 미덕이건 당신 뜻대로
★ 가을의 노래
1
우리 곧 싸늘한 어둠 속에 잠기리.
잘 가거라, 너무도 짧은 여름 발랄한 볕이여!
벌써 돌바닥 뜰 위에 장작 부리는
불길한 충격 소리 들려오는구나.
겨울은 온통 내 가슴에 사무쳐 들리-
분노, 증오, 몸서리, 넌덜머리, 고역,
그리하여, 내 심장 북극지옥의 태양인 양,
한갓 얼어붙은 덩어리 되어지리.
장작 소리마다 몸서리치며 귀 기울이니,
두들겨 세우는 사형대보다도 더 둔탁한 울림이여,
내 정신 육중한 파벽기(破壁機)의 끊임없는 연타에
와르르 무너지는 탑과도 같아라.
그 단조로운 충격에 맞추어 어디선가
부랴부랴 관에 못질하는 듯,
누구의 관을? 어제는 여름, 이제 가을인가!
그 야릇한 소리 출발인양 울리는구나.
2
나는 그대 지긋한 눈의 푸른 빛이 좋아,
다사론 미녀여, 나 오늘 일체가 쓰디써,
그대 사랑도, 침실의 쾌락도, 화끈한 난로도,
그 어느 것도 바다의 찬연한 태양만 못해.
하지만 사랑해 주오, 다정한 그대여!
박정하고 심술궂은 놈일지라도 어머니 되어주오.
애인이건, 누님이건, 가을 영롱한 하늘 또는
낙조, 그 한 순간의 따스한 정을 베풀어주오.
잠간의 수고를! 무덤 기다리니, 그 탐욕의 무덤이!
아! 내 이마 그대 포근한 무릎에 얹고,
백열의 지난여름 그리며, 이 늦가을의
따스하고 누른 햇살 맛보게 해주오!
★ 고독한 자의 포도주
물결 같은 달이 나른한 아름다움 멱 감기고 싶을 때,
잔물결 이는 호수로 가만히 내려 보내는
하얀 빛살처럼 슬그머니 우리에게 다가오는
바람둥이 여자의 야릇한 눈길도
노름꾼의 손가락이 움켜쥔 마지막 돈지갑도
핼쑥한 애덜린의 꺼림 없는 입맞춤도
인간 고뇌의 아련한 하소연과도 같은
간장 녹이는 달콤한 음악의 가락도
모두가 너를 못 당한다, 오 깊숙한 술병아,
푸짐한 네 배가 경건한 시인의
갈증난 가슴 위해 간직하는 강력한 진통제를
너는 시인에게 부어준다, 소망과 젊음과 생명을,
또 우리를 우쭐하게, 신들과 맞먹게 만드는,
그 온갖 거지 노릇의 보물인 거드름을!
★ 떠나가는 집시들
어제 길을 떠났네,
미래를 점치며 불타는 눈동자를 한 부족
아이들을 등에 업지 않았으면,
혹은 축 늘어진 유방의 준비된 보물을
그들의 넘쳐흐르는 식욕에 내맡긴 체.
번들거리는 무기를 어깨에 멘 사나이들,
식구들이 옹기종기 탄 수레를 따라 걸어가네.
침울하게 미련을 갖고 이미 사라진 환상에
무거워진 눈으로 허공을 들러보며.
귀뚜라미는 감추어져 있는 모래 구멍 속에 숨어
그들의 행렬을 보며 한층 크게 노래 부르네.
대지의 신은 그들을 사랑하여
푸른 초목을 번창시키고.
그 길손들 앞에는 바위에서 샘이 솟고
사막이 꽃을 피우니,
그들을 맞기 위해
다가올 짙은 어둠의 왕국은 열려 있었네.
★ 이 밤에
오늘 저녁 무엇을 말하리, 가엾고 외로운 넋이여.
내 전에 시든 가슴, 무엇을 말하리.
그 성스런 시선이 어느 날 그대를 다시 환하게 한
너무나 아름답고, 지극히 어질고,
가장 사랑스런 그녀에게!
그녀를 칭송함에 우리는 자랑으로 삼으리.
그녀의 유연함만 한 것은 이 세상에 없으리라.
그녀의 정신에 싸인 육체는 천사의 향기를 지니고
그녀의 눈길은 우리를 광명으로 감싸주네.
어둠 속에서나 외로움 속에서나
거리에서나 군중 가운데서나
그녀의 환상은 횃불처럼 빈 하늘에서 너울거리네.
그 환상이 가끔씩 부탁하기를
“나는 아름다워 명하노니,
오직 나를 위해 아름다움만을 사랑하라
나는 수호천사요, 뮤즈이자 마돈나이나니!”
★ 깊은 심연 속에서
내 마음
떨어진 캄캄한 심연
밑바닥에서
연민을 비나이다
내 사랑하는 유일한 그대여.
이건 납빛 지평선의
침울한 세계
거기서
어둠 속에 공포와 모독이 떠돌고
열없는 태양이 여섯 달을 감돌고
또 여섯 달은
어둠이 땅을 덮으니
이건 극지보다도 더 헐벗은 고장
짐승도, 개천도
푸르름도, 숲도 없구나!
그런데
이 얼어붙은 태양의
차가운 잔인성과
태고의 혼돈 과도 같은
이 광막한 어둠보다
더 끔찍스런 것
세상에 없어라.
멍청한 잠속에 잠길 수 있는
더 없는 더러운 짐승 팔자가
샘나는 구나
그토록
시간의 실타래는
더디 풀리네!
★ 내 가슴에 비가 내리네
마을에 비가 내리듯
내 마음에 눈물 흐른다.
내 마음 속에 스며드는
이 우울함 무엇이런가.
대지와 지붕에 내리는
부드러운 빗소리여,
우울한 마음에 울리는
오 빗소리, 비의 노래여.
슬픔으로 멍든 내 마음에
까닭없이 비는 눈물짓는다.
뭐라고! 배반이 아니란 말인가?
이 크나큰 슬픔은 까닭이 없다.
까닭을 모르는 슬픔이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
사랑도 미움도 없지만
내 가슴은 고통으로 미어진다.
★ 나그네
말씀해 보시오,
수수께끼 같은 양반,
당신은 누구를 가장 사랑하시오?
당신의 아버지나 어머니,
누이나 형제인가요?
내겐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형제도 없답니다.
그럼, 친구들인가요?
당신은 지금까지
내가 통 몰랐던 말을
사용하고 계시는군요.
당신의 나라입니까?
나는 그게 이 세상
어디쯤에 있는지도 모른답니다.
미인은?
예, 미인이라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죽지 않는 성스러운 여신 같은 미인이라면.
돈은?
황금은 싫어합니다.
당신들이 신을 싫어하듯이.
그럼, 말해 보세요.
당신 마음에 드는 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별난 나그네시여?
구름을 사랑합니다
흘러가는 구름을
저기 저 위에서 흘러가는 구름을,
저 경이로운 구름을!
★ 향수병
어떤 물건도 꿰뚫고 나오는
강렬한 향기가 있다. 그것은 유리도 뚫으리라.
동양서 건너온 손궤, 상을 찡그리고
삐걱삐걱 소리 지르는 자물쇠 열면,
또는 버려둔 집에서 곰팡냄새 코를 찌르는
먼지 낀 컴컴한 옷장을 열면,
옛 추억 간직한 낡은 향수병 눈에 띄는 수 있어
옛 사라의 넋 생생하게 되살아 거기서 용솟음친다.
서글픈 번데기처럼, 거기 온갖 생각이 잠들어,
무거운 어둠 속에 조용히 떨고 있다가,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오른다,
하늘색으로 물들고,
장밋빛으로 칠해지고, 금빛으로 장식되어.
거나한 추억 이제 흐린 공중에
펄럭거린다. 눈을 감는다. 현기증이
녹아떨어진 넋을 움켜잡고 두 손으로 밀어뜨린다,
인간의 장로 어두워진 심연 쪽으로.
그리고 천년 묵은 심연가로 쓰러뜨린다.
거기에, 스스로 수의를 찢는 라사로 모양,
썩고 음산한 그리운 옛사랑의 닮은 송장이 잠깨어 꿈틀거린다.
그처럼, 나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가련한 낡은 향수병 모양, 늙고, 먼지가 끼고,
꾀죄죄하고, 천하고, 끈적거리고, 금이 가서,
으슥한 옷장 구석에 내던져졌을 때,
나는 네 관이 되리, 사랑스런 독기여!
네 힘과 독성의 증인이 되리
천사가 마련한 사랑하는 독약이여!
나를 좀먹는 액체, 오, 내 마음의 생살권자 (生殺權者)여!
★ 그대에게
그대의 행동은
한 폭의 그림처럼 눈부시다
한줄기 바람이
맑은 하늘을 스치듯이
아름다운
미소가 감도는 그대의 입술
그대의 손짓
하나로 해가 떠오르고
그대의 미소 하나로
세상이 환하게 밝아지는데
나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너무나
눈부신 그대의 눈빛
나는 그대의 수호천사
내 영혼은 이미 그대의 것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은 화석처럼
영원하기에
나는 모든 것을 바친다
★ 내 영혼의 별을 따러
차가운 물이라도 한 잔 시원스레 들이켰으면
목이 마르다. 담배라도 한대 피워야겠다
피곤이 밀려온다. 언제부턴가
눈에 띄게 볼품없어진, 이 내
얼굴은 문제가 아니다
까만 문자들이 쉴새 없이 서성이고
누군가의 장난처럼,
음담패설의 낙서처럼,
버려진 문장들이
시간 속을 흐르다 고이고
나는 나날이 썩어가는 저 세월의 웅덩이에다
침을 뱉었지, 알고 보니 그게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내 이 정신이었던거야
내 볼품없는 얼굴보다 더 초라해진
내 이 정신이었던거야
내 이 정신이었던거야
차라리 술이라도 한잔 독하게 들이켰으면,
거기다 내 생을 안주삼아 씹어 먹었으면
사람들이 떠나가고, 절망과 고독이 몰려온다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에
내 지난 시절이 더렵혀진 바람에 흔들린다
내 지친 육신이 흔들린다
흐린 하늘로 내 영혼의 별을 따러간다.
★ 아름다움
나는 아름답다 오, 인간이여! 돌의 꿈과도 같이.
그리고 누구나 번갈아 상처 받는 내 가슴은,
물질처럼 말없는 영원한 사랑을
시인에게 불어넣어 주려고 만들어진 것.
나는 흡사 수수께끼의 스핑크스, 창공에 군림한다.
나는 눈(雪)의 마음을 백조의 흰 빛에 결합한다.
나는 선(線)을 옮겨 놓는 움직임을 미워한다.
그리고 나는 아예 울지 않는다, 아예 웃지도 않는다.
가장 의젓한 기념상에서 빌어 온 듯한
내 존대한 몸가짐 앞에서, 시인들은
준엄한 탐구 속에 평생을 탕진하리.
왜냐하면, 이 유순한 애인들을 홀리기 위해,
나는 모든 것을 한결 미화하는 맑은 거울 가졌으니.
그것은 나의 눈, 영원히 반짝이는 커다란 눈!
★ 어느 아름다운 여인에게
그대의 머리와 몸짓
그리고 맵시는
아름다운 경치처럼 황홀하구나
맑은 하늘에 시원한 바람이 흐르듯
그대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그대 옆을 스쳐가는 슬픈 행인도
그대의 팔과 어깨로부터
번개처럼 용솟음치는
그 건강에 눈부셔 한다
그대의 외면을 장식하는
요란스런 빛깔은
요정의 발레 환영시키며
시인의 마음속에 비친다
그 야단스런 옷들은
얼룩덜룩한 그대 마음의 상징인가
나를 미치게 하는 여인이여
나는 그대를 미워한다
그대를 사랑하듯이
이따금 아름다운 정원을
하염없이 거닐 때면
태양이 빈정거리듯
내 가슴 찢어짐을 나는 느꼈다
그리고 봄과 신록이
내 마음을 모욕하기에
나는 한 송이 꽃에
‘자연’의 건방짐을 벌해 주었다
나는 어느 날 밤
쾌락의 시간이 울리면
구슬 같은 그대 몸 곁에
겁쟁이처럼 살금살금 기어가
쾌활한 그대의 살을 벌해 주고파
큼직한 상처를 내어 주고파
그리고
아 어지러운 쾌감이여 !
한결 더 눈부시고 아름다운 그 입술을 통해
누이여,
그대에게 내 독(毒)을 부어 넣었으면 !
★ 신천옹(信天翁)
흔히 뱃사공들은 장난삼아서
크나큰 바다의 새, 신천옹을 잡으나
깊은 바다에 미끄러져 가는 배를 뒤쫓는
이 새는 나그네의 한가로운 벗이라.
갑판 위에 한번 몸이 놓여지면
이 창공의 왕은 서투르고 수줍어
가엾게도 그 크고 하얀 날개를
마치도 옆구리에 노처럼 질질 끈다.
날개 돋친 이 길손, 얼마나 어색하고 기죽었는가!
멋지던 모습 어디 가고, 이리 우습고 초라한가!
어떤 이는 파이프로 그 부리를 지지고
어떤 이는 절름절름 날지 못하는 병신을 흉내 낸다.
시인 또한 이 구름의 왕자와 비슷한 존재,
폭풍 속을 넘나들고 포수를 비웃지만
땅 위에 추방되면 놀리는 함성 속에
그 크나큰 날개는 오히려 걸음을 막고 만다.
★ 술의 넋
어느 날 저녁술의 넋이 병 속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인간이여, 오 친애하는 낙오자여, 나 그대에게
내 유리 감옥과 주홍빛 밀랍 아래서
빛과 우애 가득한 노래를 보내노라!
나는 아노라, 내 생명을 낳고 내게 넋을 넣어주기 위해
불타오르는 언덕 위에서 얼마나 많은 노고와 땀과
따가운 태양이 필요한가를
그런데 나 어찌 그 은혜 잊고 심술궂게 굴리오!
일에 지친 사람의 목구멍에 떨어질 때면
나는 그지없는 기쁨을 느끼고,
그의 뜨거운 가슴속이 내 싸늘한 지하실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 아늑한 무덤이기에.
그대 들리는가, 주일의 노래 울려퍼지고
설레는 가슴속에 지저귀는 희망의 노랫소리가?
탁자위에 팔꿈치 괴고 소매 걷어올리고,
그대는 나를 찬미하고 흐뭇해하리
나는 기뻐하는 그대 아내의 눈을 빛나게 하고
그대 아들에겐 힘과 혈색을 돌려주고,
인생의 연약한 이 경기자를 위해
투사의 근육을 단단하게 해줄 기름이 되리.
나는 식물성의 신들의 양식, 영원한 ‘씨 뿌리는 자’가
던져준 귀중한 씨앗, 나는 그대 속에 떨어지리.
우리의 사랑이 시를 낳아
진기한 꽃처럼 ‘하느님’을 향해 피어오르도록!”
★ 그대가 질투하던 마음씨
그대가 질투하던 마음씨 갸륵한 하녀
지금은 보잘 것 없는 잔디 아래 잠들어 있으니
우리, 그녀 앞에 꽃다발을 놓아야 하지.
죽은 사람들, 가엾은 그들에겐 큰 고통이 있다.
10월의 묵은 나무 쳐버리는 음산한 바람이
그들의 대리석 묘비 둘레에 휘몰아칠 때
진정, 그들은 제대로 이불에 싸여 포근히 잠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원망하리.
그럴 때, 그들은 어두운 악몽에 찢기고
잠자리를 같이 나눌 동반자도, 다정한 이야기거리도 없이
구더기에 시달린 얼어붙은 늙은 해골되어
무덤 울타리에 매달린 시든 꽃가지를 갈아 줄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이, 쌓인 겨울 눈이
녹아 방울져 내리고 세월이 흘러감을 느낄 따름.
벽난로의 장작불이 탁탁 튀기며 노래부를 때
만일 저녁마다 조용히 그녀가 안락의자에 와서 앉는 걸 본다면
그녀가 시퍼렇게 추운 섣달 밤에 영원한 제 잠자리 속에서 빠져나와
예절 바르게 내 방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모성어린 눈으로 다 큰 아이를 대견스럽게 바라본다면
그 움푹 패인 눈까풀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보며
나는 이 경건한 영혼에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으리?
*그대가 질투하던 마음씩 갸륵한 하녀 – 보들레르의 어머니의 하녀였던 Marieett로서, 그녀는 어린 시인을 대단히 사랑해 주었다.
★ 머나먼 곳에
여기에 성스러운 오두막 한 채
계집애는 곱게곱게 단장을 하고
조용히 언제나 몸을 차리고
한 손으로 가슴에 부채질하며
방석에 팔을 짚고서
샘물이 우는 것을 듣고 있다
이것이 바로 도로떼의 방
멀리서 노래하는 바람과 물의
흐느끼는 거친 가락이
이 귀염둥일 어려 재운다
머리에서 발 끝까지, 정성스럽게
그 고운 살결에 발라 놓은 건
향기로운 기름과 안식향의 물
꽃들도 구석에서 황홀해 한다
★ 연인들의 술
오늘은 세상이 찬란도 하다!
재갈도, 박차도, 고삐도 없이
말타듯 술을 타고 떠나자꾸나
거룩한 꿈나라 하늘을 향하여!
열병같이 지독한 환각으로
괴로워하는 두 천사처럼
수정처럼 맑고 푸른 아침에
아득한 신기루를 따라 가자꾸나!
분별 있는 회오리바람의
날개를 타고 두둥실 흔들거리며
너와 나 똑같은 환희 속에서
누이여! 나란히 헤엄치면서
한시도 쉬지 말고 날아가자꾸나.
내 몽상의 천국을 향하여!
★ 우울
내겐 천년을 산 것보다도 더 많은 추억이 있다네.
계산서와 詩作노트, 연애편지와 소송 서류들,
무거운 머리털 따위로 그득 찬 서랍 달린 육중한 장롱,
내 슬픈 머릿속엔 그보다도 더 많은 비밀이 숨어 있다네.
내 머리는 하나의 피라미드, 하나의 거대한 지하 매장소,
공동묘지보다도 더 많은 주검들이 간직되어 있는 곳.
★ 거짓에의 사랑
오, 시름에 찬 애인이여, 천장에서 부서지는
악기의 노래에 느릿느릿 발걸음 맞추어
깊은 눈에 서린 권태로운 빛을 보이며
그대가 걸어가는 것을 보면
가스 등불에 물들고, 시름 겨운 매력으로 꾸며져
저녁의 횃불에 새벽이 밝아오는 듯한
창백한 그대 이마와 초상화의 눈처럼
매혹적인 그대의 눈을 바라보면,
나는 생각한다.
‘그녀는 아름답도다.
그리고 저 기묘한 싱싱함이여!’
육중한 왕실의 탑과 같은 묵직한 추억이
그녀 머리에 관을 씌우고,
복숭아처럼 달콤하고 물기찬 그녀 마음은
무르익은 육체와 더불어 오묘한 사랑을 기다리는구나.`
그대는 비길 데 없는 맛을 담은 가을 과실인가?
누군가의 눈물 기다리는 슬픈 꽃병인가,
멀고 먼 오아시스를 꿈꾸게 하는 향기인가?
쓰다듬는 베개인가, 그도 아니면 꽃 바구니인가?
나는 알고 있다. 소중한 비밀 전혀 감추지 않은
견줄 데 없이 우울한 눈들도 있음을
보석 없는 상자, 유물 없는 유물함,
오 ‘하늘’보다 더 텅 비고, 더 심오한 눈이여!
그러나 진실을 외면하는 내 마음 즐겨 주기 위해선
그대 겉모습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대가 어리석든 무관심하든 무슨 상관?
가면이건 겉치레건
반가와서 나는 몹시 좋구나, 그대의 아름다움이.
★ 베아트리체
검게 타서, 풀도 없는 재투성이 땅속에서
정처없이 헤매다.
어느날 자연을 향해 분통을 터뜨리며
내 생각의 칼날을
내 가슴 위에서 천천히 갈고 있을 때
나는 보았다, 대낮인데도 내 머리 위에
폭풍우 안은 불길한 먹구름이
잔인하고 호기심 많은 난쟁이를 닮은
한무리 음탕한 악마들을 싣고 오는 것을.
냉담하게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더니
길 가던 행인들이 미치광이 구경하듯
사뭇 눈짓과 몸짓을 주고 받으며
서로들 킬킬대고 소곤대는 소리를 들었다.
저 만화 서서히 구경하자구,
저 꼴 좀 보지, 햄릿 같잖은가.
흐릿한 눈빛에,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칼에
보기에도 몹시 가엾지 않은가, 저 호인,
저 거지, 저 놀고 먹는 어릿광대, 저 괴짜,
그 치는 제 구실을 교묘하게 해내는 줄 알고
제 고통을 담은 노래에 관심을 끌려 들고
독수리, 귀뚜라미, 시냇물과 꽃들,
그 낡아빠진 술책의 장본인인 우리들에게까지도
울부짖는 소리로 제 공공연한 장광설을 늘어놓으려 든다.
(나의 자존심도 산처럼 높아 구름과 악마들을 초월하므로.)
나는 단순히 내 지고의 머리를 돌릴 수 있었으리라.
만일 내가 그 음탕한 악마의 무리 가운데
태양마저 비틀거리게 한 죄악 앞에,
세상에도 기이한 시선을 가진 내 마음의 여왕이
그 자들과 더불어 내 어두운 비탄을 비웃고
이따금 그들에게
치사스런 애무를 쏟는 것을 보지만 않았더라면.
★ 사랑에 들뜬
열렬한 애인들도 근엄한 학자들도
중년이 되면 다 한결같이 사랑한다,
자기들처럼 추위 타며 죽치고 사는,
집안의 자랑거리, 힘세고 순한 고양이들을.
학문과 즐거움의 벗인 그들은,
어둠들의 침묵과 공포를 탐구하니;
에레보스라면 그들을 상여말로 삼았겠지,
그들이 자존심을 굽혀 섬길 수만 있다면.
생각에 잠길 때의 그 의젓한 자세는 흡사,
인적 없는 사막 복판에 드러누워,
끝도 없는 꿈속에 잠든 듯한 우람한 스핑크스;
그 푸짐한 허리는 마법의 불꽃들로 가득차고,
고운 모래알과도 같은 금 조각들이 어렴풋이,
그들의 비유적인 눈동자에 별들처럼 반짝인다
★ 고백
한 번, 꼭 한 번, 사랑스럽고 정다운 사람이여,
당신의 미끈한 팔이
내 팔에 기대었다.
(내 넋의 어두운 밑바닥에서 그 추억은 스러지지 않는다).
밤은 이슥하였다. 새 메달과 같이
보름달은 하늘에 걸리고,
장엄한 밤은 강물처럼 잠든
파리 위를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집들을 따라, 대문 아래로, 고양이들은
살금살금 빠져 나갔다,
귀를 쫑그리고, 또는 정다운 사람의 혼백처럼,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다.
별안간, 휘멀건 달빛 아래 피어난
허물 없는 친밀감 속에,
쾌활한 소리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풍부한 악기, 당신 입에서,
빛나는 아침 군악 소리 울리듯
명랑하고 즐거운 당신 입에서,
구슬픈 가락,야릇한 가락,
비틀거리며 새어나왔다,
마치 가족들이 부끄러워서, 세인의 눈을 피하려고,
남 몰래 오랫동안 굴 속에
숨겨 두었던, 허약하고 험상궂고, 음산하고,
꾀죄죄한 계집애같이.
가엾은 천사여, 당신 목소린 곡조 높이 노래 불렀다,
이승에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고,
아무리 정성들여 꾸며 보아도, 언제나,
사람이 이기심은 드러나는 법.
미인 노릇 하기란 힘이 드는 일,
억지 웃음 지으며
흥겨워하는 어리석고 쌀쌀한 무희의
진부한 일과 같은 것.
사람들 마음 위에 집을 세움은 바보짓거리,
사랑도 아름다움도 모조리 깨져버린다,
마침내는 망각의 (치룽) 속에 집어던져
영원의 손에 돌려줄 때까지는!
나는 때때로 회상하였다 , 그 황홀한 달을,
그 적막, 그 답답함을,
그리고 가슴 속이 고해실에서 속삭인
그 무서운 고백을.
*치룽: 싸리로 가로 퍼지게 둥긋이 결어 만든 뚜껑이 없는 그릇.
★ 아름다움 – Beauty
나는 아름다워라, 오 덧없는 인간들! 돌의 꿈처럼
저마다 거기서 상처받는 내 유방은
질료처럼 영원하고 말없는 사랑을
시인에게 불어넣게 되어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스핑크스처럼 창공에 군림하네.
백조의 순백에 백설의 마음을 결합하고,
선을 흔들어 놓는 움직임을 싫어하며,
나는 울지 않고 결코 웃지도 않네.
우뚝솟은 기념물에서 빌은듯한
내 당당한 태도 앞에 시인들은
준엄한 연구로 그들의 세월을 탕진하리!
이 고분고분한 애인들을 홀리기 위해서
만물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거울을 가졌네.
내 눈, 영원의 광택을 지닌 커다란 두 눈을!
샤를르 보들레르 (Charles-Pierre Baudelaire, 1821 ~ 1867)
1857년 : 6월 25일 「악의 꽃」 출판 – 외설죄로 법정에 피소됨
1861년 : 2월에 「악의 꽃」 再版 발매
1864년 : 「파리의 우울」, 「소산문시(小散文詩)」발간
1867년 : 8월 31일 46세를 일기로 사망

프랑스의 작가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Charles-Pierre Baudelaire, 1821 ~ 1867)
그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 있다. 그리고 그 광기로부터 아름다운 시어 (詩語)들이 폭포수처럼 흘러 나온다. 그의 시에는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예지와 사물에 대한 통찰과 신화적인 환상이 담겨 있다. 그는 분명 범인 (凡人)은 아니었다. 어느 범인의 가슴속에서 바람이, 물결이, 별이 “취하라!”고 외치겠는가. 그저 푸르고 밝은 하늘만 볼 줄 알았던 내게 슬픈 하늘을 가르쳐준 이는 보들레르와 랭보, 그리고 존 레논 뿐이었다. 그의 ‘취하십시오 (Enivrez-Vous)’가 아니었으면 나는 수십 배 더 힘든 군 생활을 했을 것이고, 내 삶은 꽤나 무료했을 것이다. ‘흡혈귀 (Le Vampire)’나 ‘썩은 짐승 시체 (Une Charogne)’를 읽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쾌감이 발 끝에서 올라오며 몸을 전율시킨다. 저 찬란한 구름만을 사랑하는 이방인의 길지 않은 말들은 가슴속 구석에 쌓였던 오물들을 모두 걷어 치우고 태양과 같은 기쁨을 불어 넣기에 충분하다. 그의 이러한 감성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던 것일까?
만일 예술가가 자신에 대해, 세계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를 예술가로 만들어 놓은 많은 요인들 중 커다란 한 가지를 잃은 꼴이 될 터이다. 완벽한 파라다이스에 어찌 예술 혹은 ‘미 (美)의 추구’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다행스럽게도 신 (神)은 보들레르에게 예술적 재능을 주었고 가정과 사회와 연인은 그에게 숱한 시적 영감을 주었다. 타고난 반항적, 자유인적 기질은 대상에 대한 증오심 (루소의 그것보다 더욱 강렬한)과 신비사상에 어우러지며 그를 위대한 시인으로 이끌었다. 다른 모든 사실들에 앞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한 것은 ‘악의 꽃 (Les Fleurs Du Mal)’이라는 한 권의 시집이었다. 많은 시대의 숱한 선각자들이 그러했듯 그 역시 당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고, 정열과 강한 향기로 가득 찬 이 아름다운 작품집은 오히려 풍기문란 죄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아 판금되기에 이른다. 예술은 어떤 형태로든 ‘인간’을 담으려 하지만 인간들은 그것을 정치와 도덕이라는 좁은 틀 안에 가두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르바’적인 인간보다 ‘파스칼’적인 인간을 더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보들레르는 단연코 전자 (前者)에 속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삶에 있어, 그리고 시작 (詩作)에 있어 그는 자유분방했다. 작품의 수량은 과작 (寡作)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지 않았지만, 각각의 작품들은, ‘악의 꽃’에서의 강렬한 테마의 전개와 다분히 감각적인, 현란한 용어의 사용에서부터 산문시에 나타나는 낭만성과 날카로운 통찰력과 신비로움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드넓은 의식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그의 삶 자체는, 랑송의 표현을 빌자면, ‘예술을 무한히 즐겼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것이었다’. 경제적 압박과 무서운 질병들이 그를 괴롭혔으리라. 그리고 그런 것들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으리라. 이제 공포는 사라지고, 19세기의 가장 뛰어난 예술가 중 한 명인 이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시대를 초월한 독자들과의 교감 (correspondances)을 이루며, 구름 위에서 미소 지으리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