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
폴 베를렌 (Paul-Marie Verlaine, 1844 ~ 1896)의 시 : 가을의 노래 / 하늘은 지붕 너머로 / 내 마음에 눈물 내리네
폴마리 베를렌 (Paul-Marie Verlaine, 1844년 3월 30일 ~ 1896년 1월 8일)은 프랑스의 시인이다.
프랑스 시 (詩)에서 가장 위대한 팽 드 시에클 (Fin de siècle, 세기말이라는 뜻)의 대표자 중 한 명이다.

- 가을의 노래
가을 날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
단조로운
우수로
내 마음 쓰라려.
종소리 울릴 때면
나는 창백하고
숨이 막혀
옛날을
추억하며
눈물 흘리네.
그리하여 나는 가네
모진 바람이
날 휘몰아치는 대로
이리, 저리로,
마치
낙엽처럼.
Chanson d’automne – Paul Verlaine
Les sanglots longs
Des violons
De l’automne
Blessent mon coeur
D’une langueur
Monotone.
Tout suffocant
Et blême, quand
Sonne l’heure,
Je me souviens
Des jours anciens
Et je pleure
Et je m’en vais
Au vent mauvais
Qui m’emporte
Deçà, delà,
Pareil à la
Feuille morte.
< 주 >
이 시는 『토성시집 Poèmes saturniens, 1866』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단순한 형식에 음악성이 뛰어나 레오 페레를 비롯해 많은 음악가가 이 시에 곡을 붙여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베를렌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이지만, 우리말 번역으로 이 시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프랑스 시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그 한계를 절실히 느끼게 되는 시이다. 얼핏 보면 사춘기 소녀의 애잔한 감상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는 이 시가 뭐가 그렇게 훌륭하다는 것일까.
1연만 분석해 보도록 하자.
Les sanglots longs
Des violons
De l’automne
Blessent mon coeur
D’une langueur
Monotone.
번역시를 가지고 운율은 따질 수가 없으니 그건 접어두기로 하자.
이 시의 내용은, 가을날에 어디선가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와서 내 마음이 아프다는 얘긴데, 이것이 뭐가 그리 특별한가. 그런데 원문을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프랑스어를 몰라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바이올린 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원문의 1연을 자세히 보면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 모음을 발견할 수 있다. ‘o’라는 모음이다. 이 짧은 싯귀 안에 무려 10개 ‘o’라는 모음이 들어있다. 심지어 마지막 6행에는 한 단어(Monotone)에 3개의 ‘o’가 들어있다. 우연일까. 그럴 리가 없다. 이 ‘o’ 하나하나는 가을날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메마른 나뭇잎들이다. 우선 형태상으로 ‘o’라는 모음은 나뭇잎과 상사를 이루며, 더 나아가 나뭇잎은 바이올린과 유사한 모습을 갖고 있다. 여기에 ‘o’라는 모음이 갖는 어둡고 음울한 음색이 더해진다. 이렇게 볼 때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이란 어디선가 누군가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소리라기보다는, 바람이 마른 나뭇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 바람이라는 활대가 나뭇잎이라는 바이올린을 켜는 소리라고 유추할 수 있다. 시는 언어의 의미와 소리의 음악성의 복합체이다. 음악은 형식 그 자체일 뿐이다. 이 시는 의미보다 훨씬 형식(음악성)에 무게가 실려 있다. 시의 형식이 언어의 의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것이 상징주의 시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 하늘은 지붕 너머로
하늘은, 지붕 너머로,
어찌 저토록 푸르고 고요할까!
종려나무 한 그루, 지붕 너머로,
잎새들 바람에 나부끼네.
하늘 위로 보이는 종,
부드럽게 울리고,
나무 위 새 한 마리,
탄식을 노래하네.
아, 삶은 저기 저렇게,
단순하고 평온하게 있는 것을.
시가지에서 들려오는
저 평화로운 웅성거림.
ㅡ뭘 했니? 여기 이렇게
끝없이 울고만 있는 너,
말해봐, 뭘 했는지? 여기 이렇게 있는 너는,
네 젊음을 가지고 뭘 했는지?
Le ciel est par-dessus le toit – Paul Verlaine
Le ciel est, par-dessus le toit,
Si bleu, si calme !
Un arbre, par-dessus le toit,
Berce sa palme.
La cloche, dans le ciel qu’on voit,
Doucement tinte.
Un oiseau sur l’arbre qu’on voit
Chante sa plainte.
Mon Dieu, mon Dieu, la vie est là
Simple et tranquille.
Cette paisible rumeur-là
Vient de la ville.
Qu’as-tu fait, ô toi que voilà
Pleurant sans cesse,
Dis, qu’as-tu fait, toi que voilà,
De ta jeunesse ?
< 주 >
이 시는 『예지 Sagesse』에 수록된 것으로, 베를렌이 몽스 감옥으로 이감되기에 앞서 브뤼셀 감옥에 있었을 때 씌어졌다. 1873년 7월 베를렌은 랭보에게 2발의 권총을 쏘고 2년의 형량을 받아 감옥에 수감된다. 감옥에서 그는 젊은 아내와의 이혼 통지서를 받게 되는데, 이에 크게 충격을 받은 베를렌은 열렬한 가톨릭 신자가 된다. 이러한 개종으로부터 나온 시집이 『말 없는 연가 : Romances sans paroles』와 『예지 : Sagesse』이다.

- 내 마음에 눈물 내리네
거리에 비가 내리듯
내 마음에 눈물 내리네.
가슴 속에 파고드는
이 울적함은 무엇일까 ?
대지에도 지붕 위에도
오, 저 부드러운 빗소리!
답답한 마음에 스며드는
오, 비의 노래여!
울적한 마음에
까닭 없이 눈물 흐르네.
웬일일까!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까닭 없는 이 크나큰 슬픔은 무엇이란 말인가.
왠지 알 수 없는 슬픔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슬픔
사랑도 미움도 없는데
내 마음 이토록 괴롭다니!
Il pleure dans mon coeur – Paul Verlaine
Il pleure dans mon coeur
Comme il pleut sur la ville;
Quelle est cette langueur
Qui pénètre mon coeur ?
Ô bruit doux de la pluie
Par terre et sur les toits !
Pour un coeur qui s’ennuie,
Ô le chant de la pluie !
Il pleure sans raison
Dans ce coeur qui s’écoeure.
Quoi ! nulle trahison ?…
Ce deuil est sans raison.
C’est bien la pire peine
De ne savoir pourquoi
Sans amour et sans haine
Mon coeur a tant de peine !
<주>
이 시는 1874년에 나온 『말 없는 연가 Romances sans paroles』에 수록된 작품이다. 여기에서 ‘말이 없다는 것’은 시어의 의미보다 음악성을 강조한 말이다. 음악은 의미가 아니라 형식이다. 원문에서 보면 이 시에서도 동일한 시어의 반복과 운율을 통해 음악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빗소리는 시인의 슬픔을 증폭시키기도 하지만, 또한 ‘부드러운 노래’가 되면서 시인의 슬픔을 진정시킨다.
원문에서 특이한 표현은 베를렌의 신조어라 할 수 있는 ‘Il pleure’라는 표현이다. 문맥으로 보아 이것은 ‘나는 눈물 흘린다’라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3인칭 주어인 ‘Il pleure’가 아니라 1인칭 주어의 « Je pleure »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Il’는 3인칭의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비가 온다’고 할 때 « Il pleut »에서처럼 비인칭주어로 사용된 것이다. 그런데 « pleurer 울다 »라는 동사는 비인칭동사가 될 수 없다. 이렇게 « Il pleure 울다»와 « Il pleut 비오다 »는 서로 혼융되면서 동일화하는 효과를 갖는다. 눈물과 빗물이 하나가 된다. 이런 이유로 « Il pleure »를 ‘눈물 흐르네’로 하지 않고 ‘눈물 내리네’로 번역하였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