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단(4)
기독교 선교적 관점에서 본 G2국가로서 중국에 관한 연구
세계 지도자 역할에 관하여
목 차
I. 서론
II. 중국의 역사적 배경 연구
1. 중화민족 사상적의 역사적 배경
2. 중화민족 사상의 근원
3. 중국의 사회주의 정체성
III. G2국가로서 중국
IV. G2국가 중국민족의 세계관
V. 100년간 G1 국가의 역할을 수행한 미국의 청교도 정신
VI. 중국의 G2 역할과 수행 능력
VII. G2국가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
VIII. G2 중국의 기독교 선교와 역사적 교훈
IX. 결론
II. 중국의 역사적 배경 연구
3. 중국의 사회주의 정체성
1847년에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런던에(공산주의자 동맹) 본부 사무실을 열고 1848년(공산당 선언)이라는 최초의 초안을 출판함으로 이 땅에 공산주의라는 하나의 유령이 전 세계를 무서운 유령으로서 100년 이상 배회하게 되었다. 그리고 온 세계의 자유진영 지도자와 국가들은 이 유령을 쫓아 버리기 위해 연합하여 투쟁해야 했다. 공산주의는 노동 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 달성해야 하며 노동계급의 경제적 해방이야말로 위대한 목적이고 모든 정치운동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170년의 역사적 교훈에서 공산주의의 노동계급의 정치적 투쟁만이 노동계급의 경제적 해방을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을 교훈을 얻고 있다. 우리 인류는 너무나 힘겨운 대가를 지불하고 그 교훈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이 노동계급의 사회주의 사상 투쟁에서 전환하여 개혁개방 경제정책으로 시장경제 체제의 개혁 개방을 실시한지 30여년 만에 G2라는 세계경제 대국으로 자리를 가지고 경제가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공산주의 사상에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사상이 기독교의 교리이다. 기독교의 교리에는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의 영혼 구원에 관한 교리는 절대 수용할 수 없는 것이 공산주의 이데올르기와 유토피아 사상이다. 그러나 중국의 지도자들은 공산주의 사상으로는 경제적 성장의 한계성을 인정하고 자유경제 체제로 경제성의 목표를 달성했지만 아직도 무엇이 중국의 세계적 리더로서의 G2의 위치에서 또 다른 한계성을 찾아가기 위하여 중국의 사회주의 정체성을 알고자 그들의 사상을 처음부터 연구 하고자 한다.
모택동이 중국 공산당을 창당하기로 결의한 시기는 1921년 7월 23일부터 30일까지 일주일간 상해의 한 허름한 건물에 모여 역사적인 비밀회의를 시작하면서 역사적인 중국 공산주의의 중국을 건국하기 위한 모임이 태동하였다. 모택동을 비롯하여 천두슈, 리다, 리한준, 위슈송, 리다자오, 장귀다오 등 50여명이 모여 중국공산당 당론과 계획을 성립하고 당권의 방향을 결정했다. 그러나 1920년 8월 상해에서 모임을 가졌으며 1920년 10월에는 북경에서 모임을 가졌으며 1920년 10월과 10월에는 후난성에서 당대회 조직을 완성하고 1921년 7월에 상해에서 최종적으로 당론을 결정했다. 이제 중국 공산당 창당 94주년을 맞이하며 창당 기념일을 7월 1일로 정하여 창당 기념 행사 날로 한다.
50여명으로 창당했던 중국 공산당 당원은 2013년말 현재 8600만 여명을 넘고 있다. 경제규모 역시 현재 GDP 규모가 세계 2위로 성장하였으며 중국의 13억의 인구의 의식주를 책임지며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로서 중국 정부의 모든 실권을 행사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강력한 정당이다. 중화인민 공화국 헌법의 규정에서 “중국 신민주주의 혁명의 승리와 사회주의 사업의 성취는 모두 중국공산당이 중국 각 민족 인민을 영도하고”라는 내용을 볼 때 중국공산당이 정치와, 경제, 국제외교, 그리고 정부 국정의 관계의 모든 결정권을 장악하여 행사할 수 있도록 공산당이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 인민공화국의 의결 기구에도 우리나라의 의결 기구와 같이 국회에 해당하는 전국 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會, 전인대)가 있다. 그러나 모든 의결 사항들은 해마다 가을에 회의를 소집하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中國共産黨中央委員會) 전체회의(중전회)’에서 먼저 심의하여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먼저 가을에(중전회)에서 국가의 정책과 목표들을 먼저 심의하여 결정된 사향들을 이듬해 초에 열리는(전인대) 이관하여 다시 결정하는 양원제 형태를 취하는 의결기구 체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중전회에서는 핵심 공산당 간부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모든 국가 정책들은 중국 공산당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가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음 연초에는 전국 각 지방의 성(省)과 직할시 자치구에서 간접적으로 선출된 대표들과 인민해방군(人民解放軍) 간부들과 재외 중국 동표들이 선출한 대표들과 인민대표들로 구성된 3000여명의 전국 인민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 한다. 대부분 핵심 공산당원이며, 인민 대표자대회에서 요직이며 중국공산당 간부들 로 구성되어 있기에 언제나 결정은 공산당의 기준으로 가결 되고 있다. 중국의 최고 권력 기구인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사전에 심의를 거친 정책들이기에 모든 의결들은 전인대에서는 절차만 따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중전회 대표로는 국가 주석이 된다. 제1대 대표는 모택동이며, 현재는 후진티오로부터, 2013년에 물려받은 제9대 시진핑 대표가 앞으로 10년의 임기로서 2023년까지 임무를 맞고 있다. 중국의 공산주의가 90년이 넘도록 대륙의 중국국가를 잘 통치해 오고 있다. 물론 1989년 6월 4일 천안문 사태로 인한 세계적 여론의 질책을 받기도 했지만 1978년에 시작된 개혁개방의 정책에 따라 이미 전 세계를 향해 열린 사회가 되여 있는 중국공산당 국가이다. 지도자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떤 구상으로 국가적 정책을 세워가야 할지 알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아니고는 자유시장경제의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서구의 시장경제 이론을 뒤엎고 공산주의 일당 독재체제에서 30년간의 초고속 경제성장을 달성하여 GDP 세계 2위 국가를 건설한 중국공산당 국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1978년 개혁개방이전 시대에는 5억의 중국 인민들은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의 실패한 경재 정책과 문화혁명 기간의 권력 투쟁으로 인하여 중국 경제정책을 실패하여 굶주리며 죽어간 아사자가 2,000만 명이 넘는 지옥 같은 중국인민들이 참담한 공산주의 정치적 패배의 역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택동은 그의 정치적 위기를 넘기기 위하여 문화혁명이라는 정치적 변란을 일으켜서 중국은 또 다른10년이라는 기간 동안 국가적 역랑을 상실하며 수 많은 인민들에게 고통과 수난을 남겨 주었다. 모택동 사망 이후 모택동을 추종하던 4인방을 숙청해야만 했다. 개혁과 개방 정책을 통한 경제발전을 시작하면서 개혁개방 정책을 총 지도한 등소평 부주석은 당시 중국 경제보다 앞서 있는 한국을 비롯한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을 네 마리의 작은 용들이 채택한 경제 발전을 따라야 한다며 경쟁의 대상으로 지적했다. 노동계급 평등주의인 공산주의 사상을 포기하고 “등 따듯하고 배 부른” 내일을 중국 인민들에게 약속하며 경제발전 최우선 순위를 따르기 위하여 1979년 1월 1일 미국과 수교를 시작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화 인민공화국의 정체성 때문에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1997년 수교했다. 한국과 개혁개방 정책의 국교를 맺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동경했던 작은 용들은 아직도 별로 성장하지 못했지만, 중국의 경제는 개혁 개방 정책의 경제발전 30년 만에 큰 용으로 성장해 있는 중국의 경제이다. 중국의 공산주의는 미래의 30년을 어떻게 설계해야 공산주의로 존재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가 되어있는 것이다. 중국이 1978년 개혁 개방의 30년이 오직 그들의 대륙 안에서 성장하기 위하여 노력했다면 이제 G2로서 중국은 국내 자국경제만 위하여 노력하는 시대가 아니라 세계와 함께 성장해야 하는 리더로서 자세와 임무도 함께 주어지기 때문이다. 중국이 G2로 부상하면서 미국은 아시아 패권 경쟁에 있게 된다.
그리고 과거의 중국이 동양의 맹주로서 아시아권 지역에서 영향권을 행사 했다면, 이제 아시아의 맹주가 아니라 세계속의 맹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할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중국의 경제를 위하여 헌신했던 원자바오 전 총리가 2011년 6월 27일 런던에서 열린 한 국제회의에서 “미래의 중국이 나아갈 길”이라는 제목의 연설한 연설문 내용이다.
“미래의 중국은 민주와 법치가 충분히 실현되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국가가 될 것이다. 인민민주는 사회주의의 생명이며 민주없는 사회주의는 없다. 진정한 민주는 자유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고 진정한 자유는 경제적 권리와 정치적 권리의 보장 없이는 불가능하다. 현재 중국에는 부패라는 문제가 존재하고 있으며, 분배의 불공정과 인민들의 권익이 손상되는 폐단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정치체재의 개혁을 추진해서 사회주의 민주 법치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원자바오가 한 연설의 핵심은 내용은 2010년 8월 이후 중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7번째의 경제계획의 달성을 위해서는 정치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연설에서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원자바오 총리의 그런 견해의 내용을 외국에서 발표하는 처사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의 입장을 발표했다. 인민일보는 2011년 7월 5일 “당의 정치 기율의 고압선”이라는 논평을 통해 중대한 정치문제에 대해 당내에서 이런 말 저런 말이 나오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에도 인민일보는 논평을 통해 “감추어진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라는 제목에서 우리 사회에서 다수가 아닌 힘없는 군중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그런 감추어진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 사회 관리층의 책임이라고 강조함으로써 원자바오 총리같은 사회관리층들이 자신의 책임을 버려두고 이런 말 저런 말을 해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는 논지를 폈다. 또한 인민일보는 이 두편의 반대 논평과 3편의 반대적 논평을 발표했다. 완자바오 총리와 인민일보 논평에서 일어나는 이론의 서로 다른 논평의 평가를 보면 아직도 중국공산당 내에서 진보적 노선의 원자바오 정책 노선과 보수 좌익 진영의 노선 역시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적 좌익 진영에서는 경제적 자유시장 경제의 제도적 개혁개방의 범주까지는 허용하지만 정치적 체제의 개혁은 중국의 국가를 위험하게 만들 뿐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존립마저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정치개혁의 핵심에는 아직도 중국공산당이 둥지를 잡고 있기에 만약 중국이 정치까지도 개혁을 해야 한다면 제일 먼저 수술을 받아야 대상이 90년의 역사를 가지고 중국 대륙을 통치 해온 중국 공산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30년전 민주주의 시장 경제 자본주의를 실행하지 않고는 굶주리는 중국 인민들의 민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중국 공산당이다.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그토록 투쟁의 대상으로 삼아 왔던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민주주의 자유 시장경제 자본주의이고. 둘째는 그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만들어 가는 기독교이다. 그러나 중국의 공산당 정부는 30년간 민주주의 자유 시장경제 체제에서 생산된 제품을 세계를 상대로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하여 무역하기 위해 13억의 중국인민이 최선을 다해 노력하였기에 이제 세계경제 대국인 G2을 달성했다. 거기에는 모든 중국의 인민들이 자신들의 개인적 능력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사상은 개인의 능력과 재능을 최대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출신 성분과 공산주의 사상의 기준이 아니다. 칼빈주의가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말을 한다. 칼빈 자신은 지역교회의 자치적 민주주의를 지지했다. 언제나 민주주의와 기독교는 인류역사 속에 함께 성장해 왔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모든 인류를 죄에서 자유함을 얻고 평화와 평등함을 선포하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정부는 계급투쟁의 유물론 사상의 이데올로기 헤겔철학의 헤겔학파와 무신론주의자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자본론을 포기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인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자본론을 채택하여 서방세계의 막대한 투자자본과 기술을 유치하여 자국의 저렴한 인건비로 세계인의 생필품을 공급하여 세계의 공장으로 지난 30년간 열심히 노력하여 이제 기술과 자본을 축척하여 G2 국가로 변신하여 힘을 가지게 된 그 힘이 오늘 중국의 정체성이다. 1980년대 말에서 1999년대 초까지 중산주의 종주국인 소련과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차례로 무너지고 말았다. 일부 서구의 정치가들은 중국 공산당도 같은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중국 공산당 정부는 굳건하게 정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중국 민족의 사회주의에 대한 정체성에 있었다는 것이다. 1921년 상하이 한 벽돌 건물안에서 비밀회의가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였으며 중국공산당 창당 원년으로 2021년에는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100주년에는 중국에 최극빈자는 한 사람도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 중국공산당의 계획이다.(다음호에 계속)
강호생 선교사
(Grace Theological Seminary 박사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