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단(7)
기독교 선교적 관점에서 본 G2국가로서 중국에 관한 연구
세계 지도자 역할에 관하여
목 차
I. 서론
II. 중국의 역사적 배경 연구
III. G2국가로서 중국
IV. G2국가 중국민족의 세계관
1. 중국민족의 세계관
2. 중국민족의 사회주의 세계관
3. 중국민족의 개혁개방 이후 세계관
V. 100년간 G1 국가의 역할을 수행한 미국의 청교도 정신
VI. 중국의 G2 역할과 수행 능력
VII. G2국가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
VIII. G2 중국의 기독교 선교와 역사적 교훈
IX. 결론
IV. G2국가 중국민족의 세계관
1. 중국민족의 세계관
세계관은 이 세상을 보는 통일적인 관점이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항상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통일적인 관점에서 자기들이 사는 세계를 해석하고 그런 관점 에서 세계를 이해해 왔다. 겔츠(Clifford Geerz)는 세계관을 “한 문화의 특유한 성격, 가치, 도덕, 심미감 등의 종합 인식 체로서 종교와 사회의 기반”이라고 본다.인간의 모든 사고가 이 세계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움직인다.
화란의 기독교 철학자인 헤르만 도이베르트(Herman Dooyeweerd)는 세계관을 유신론적 세계관과, 무신론적 세계관으로 나누고 있다. 유신론적 세계관은 창조와 은혜의 하나님에 대해 순종하는 신앙에서 나오는 세계관이며, 무신론 세계관은 하나님에 대해 근본적으로 배교하며 저항하는 세계관이며 자연적 세계관이다. 무신론 세계관은 이 세상을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없이 생각하고 해석하며 인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인간에게 가치관에 두는 것이다.
중국인들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화의 문명이 시작된 역사의 시대”를 알아야 한다. 중화의 문명이 최초로 시작 된 왕조는 상(商, B.C 1600-1046년)이며 도읍이 은(殷)이였기에 역사적으로 은 나라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미 은 나라는 중국 중원의 대륙을 통치하는 중국의 문화를 건설한 왕조로서 최초로 중국 대륙을 대표하는 국가의 초석이 되었던 나라이다. 다음 왕조인 주(周B.C.1046-256년)에서는 글자를 사용하는 문명국 문화를 만들어 글자를 사용하는 문서와 책들이 발간되어 중화의 문화와 사상과 세계관이 이루어 질 수 있는 국가의 기초가 되었다.중국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주 왕조는 이웃의 민족과 나라에 교육제도와 글자와 학문적 문화를 보급할 수 있는 기회는 중국대륙이 하나의 중화의 이념과 사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춘추 전국시대 (春秋戰國時代)에 시작한 공자의 유교 사상의 윤리 도덕사상은 2,50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 속에 중국 왕조들의 국가의 통치 이념과 백성들의 사회 질서를 교육하는 근간으로 삼을 수 있었다. 중국 민족의 사상의 근원에는 공자의 유교적 사상이 중화 민족으로서 중국 역사속에 잠재해 왔다.
중국인의 세계관을 알기 위하여는 중국인의 역사와 역사관이 어떠했는지 알아야 한다. 중국인들은 그들의 천하사상(天下思想)에 따라 그들의 국가관과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었다.이들에게 있어서 ‘천하’란 원래 서주(西周)시대의 최고 신이었던 천(天)의 주재 아래 있는 모든 영역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으로서 모든 사상을 하늘에 두려는 서주국가의 통치 이념에서 유래 하였다. 변방 국가들에 대한 우월성을 나타내는 개념적 중국민족 시상이다. 중국은 왕의 칭호에 대하여 천황재(天皇帝)를 일찍부터 사용했다. 중국이라는 명칭에도 중국을 중심세계로 구분하여 사방(四方), 사해(四海), 구주(九州)지역을 사방으로 분리하여 중앙에 있는 대국(大國)에게 조공을 바치고 변방(邊邦)국가로서 책봉을 받아가는 제도는 황제가 바꾸고 나라가 변해도 조공제도와 책봉제도는 중국 땅 왕조들에게는 변하지 않았다. 중국민족의 고유 권한으로 삼아 왔던 것이 중국인의 세계관이었다. 자신들의 문명과 주변 이방민족과 구별하기 위하여 화이(華異)개념 민족사상이 생겨났다. 양자강 상류인 중원 평야를 차지한 민족은 한 글자인 한족 (韓族)이라 부르며 주변민족은 모두 두 글자로 부르도록 정했다. 동쪽 나라들을 동이(東夷)족이라 부르며, 몽골족, 조선족, 만주족, 등으로 동쪽의 변방나라로 취급했다. 고대 한족(지금은 중국)들이 중국 대륙에서 누려오던 그들의 세계관 이었다. 그 중심에는 중국 민족은 일찍이 문자와 글에 관한 대화 용어들이 표준화 되어가고 있었으며 문자를 사용하여 국가를 통치하고 국가 행정을 문자로서 사용 했으며 주 나라 시대부터 시경과 서경을 편찬하여 국민들에게 문맹률을 높이는 사회제도를 확립했다. 그러나 주변의 국가들은 문자와 글과 표준용어가 없기 때문에 국가가 문자와 글을 사용하지 못하고 지방마다 다른 사투리을 사용하며 중국의 한자를 아는 사람들은 소수밖에 없으니 오랑캐나 변방 민족으로 볼 수 밖에 없던 것이다.중국민족의 역사에서는 1978년 개혁 개방을 시작하기 이전 역사에서는 외국의 국가와 정치적 교류와 문화를 평등한 조건에서 외교관계를 가지기를 기피 하여 왔다. 주위의 국가들에게도 언제나 지나친 요구와 조건으로 교류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국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의 자부심에 도취되어 타 민족에 대한 배타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언제나 중국인의 역사 속에는 자민족 중심주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민족의 지리적 조건 역시 넒은 대륙적인 측면에서 보면 동쪽과 남쪽은 태평양 바다가 중국의 대륙을 감싸고 있으며, 북쪽은 언제나 중국민족의 국경을 침략해 왔던 몽고족이 있으며, 서쪽은 넒은 사막과 높은 산맥들이 있기에 중국의 민족들은 때로는 분열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중국 대륙을 통일한 왕조가 있기도 하였다. 중국은 몽고족의 칭기즈칸이 유럽의 천하를 정벌한 이후 중국의 영토는 북으로는 러시아, 서쪽으로는 유럽의 헝가리까지 점령하여 영토의 넓이가 3,400만km까지 팽창하였다. 당시 중국 영토는 오늘날 960만km의 3.5배에 달할 정도로 세계의 중심국가 곧 중국이라 할 수 있었다. 또한 스위스 경제학자 베어록(Paul Bairoch, 24 Jul 1930–12 Feb 1999)은 180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서유럽국가들보다 높은 국가로서 당시에는 선진국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특히 비단이나 실크제품은 유럽에서 최고급 상품으로 인정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의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은 18세기 말부터(淸國時代, 1616–1830년)유럽 국가들이 산업혁명과 기계공업 발전에 힘입어 생산력이 폭발적으로 증대된 유럽의 국가들에게 뒤지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농업국가인 중국이 서구국가들에서 발전하는 기계기술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외면하고 오르지 천년을 이어오던 재래식 방법과 기술에만 집착하던 중국의 현실의 알게 된 것이다.유구한 문화적 역사와 아름다운 국토를 물려받은 중국민족이 무능했던 지도자를 만나서 무서운 시련의 대가를 지불해야 뼈아픈 역사의 고통을 체험해야 했던 중국 민족이다.세계의 민족적 격동기인 19세기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야욕적 제국주의를 꿈꾸던 일본과 광신적 정신의 히틀러가 방공호에서 자결함으로 19세기 이전의 제국주의 전통의 침략적 문화는 인류의 역사에서 사라지면서, 20세기 수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비록 중국이 2차 대전이 종결되기 이전 잠시나마 대만과 홍콩과 일부 지역의 중국 본토가 일본에게 점령당했던 역사가 있었다. 조상의 지도자들이 국토와 국민을 지키지 못하고 무능하고 부패하여 국토와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없는 수치적 과거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중국인의 세계관은 굴욕적 과거의 역사와 함께 이제는 유능하고 참신한 지도자들이 있기에 경제 대국으로 오늘의 중국이 있게 되었다. G2로서 21세기를 맞이하는 중국인의 세계관은 역사상 어느 시대보다 다양한 사상들의 조류가 밀려들어 오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사조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모든 시대의 사람들은 그 시대의 세계관으로 흡수된다. 그러나 서구 집단적 세계관과 동양 집단적 세계관이 21세기 집단적 세계관으로 통일되고 있다. G2 중국인의 세계관은 21세기 세계관으로 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다음호에 계속)
강호생 선교사(Grace Theological Seminary 박사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