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한인기독교연구소, 세미나 통해 ‘요한의 예수 정체성과 역할이해’ 연구해
김세현 박사, “요한의 예수: 그의 정체성과 역할에 관한 포스트콜로니얼 읽기” 주제로
호주한인기독교연구소(소장 이상진 목사)에서는 지난 12월 2일(화) 저녁 6시 시드니신학대학(Unit 6B / 5 Talavera Rd. North Ryde)에서 ‘제21차 세미나 및 송년모임’을 실시했다. 이번 세미나 강사로는 김세현 목사(시드니예안교회 시무)가 “요한의 예수: 그의 정체성과 역할에 관한 포스트콜로니얼 읽기”(The Johannine Jesus: An Postcolonial Reading of His Identity and Role)란 주제로 실시했다.
연구소 소장 이상진 목사의 인도로 시작된 세미나는 특별히 아기예수 오심을 대망하는 대강절을 맞이하여 성탄 찬양을 드린 후 초대소장 김호남 목사의 기도와 SCD총장 Dean의 축하 메시지가 전해 졌고 이어 김세현 목사(시드니 예안교회 담임)의 논문발표가 있었다.
2005년에 이민 목회 현장에서 수고하는 동역자들과 호주에 있는 이민교회를 섬기기 위해 설립된 호주한인기독교연구소는 지금까지 모두 20회의 신학 세미나와 7회의 시드니신학포럼을 개최하여 목회자들의 신학적인 필요를 충족하였고, 이번에 제21회 신학세미나 및 송년모임을 열게 되었다.
◐ 호주한인기독교연구소 제21회 신학세미나 요약 ◑
일시: 2014년 12월 2일(화) 저녁 6시
장소: 시드니신학대학(Unit 6B / 5 Talavera Rd. North Ryde)
주제: 요한의 예수 – 그의 정체성과 역할에 관한 포스트콜로니얼 읽기(The Johannine Jesus: An Postcolonial Reading of His Identity and Role)
발제: 김세현 목사(시드니예안교회 시무)
요한은 예수의 성육신과 생애,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예수를 왕으로 묘사한다. 요한은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참된 해방과 구원을 선포하고 있다. 요한의 예수가 다스리는 새로운 세상은 그의 통치 원리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이 됨을 예수의 생애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첫째로 로마제국이라는 식민세계 속에서 태동한 요한복음은 분명히 대다수가 식민화되었고 제국의 중심부로부터 주변화 되어진 1세기 독자들에게 제국의 언어와 주변인들의 언어를 함께 사용하여 저항과 탈식민화라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즉, 요한복음은 로마제국의 굴레 아래에 있는 독자들에게 온 인류를 위한 왕으로서의 예수라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이러한 관점은 로마제국의 권력 하에서 억압되고 착취당하며 갈등 속에 있는 세상,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주변화된 독자들에게 보다 나은 삶과 세상을 이루기 위해 독자들의 생각과 행동의 방식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둘째로 요한복음 속에서 요한의 예수는 탈식민주의자(decolonizer)로 기능한다.
1) 요한복음은 예수를 통해 자유케 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은 새로운 세상의 중심으로, 미래를 위한 초점으로 예수를 제시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롬 2:19)으로 자신들을 여겨왔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예수가 세상의 빛(요 8:12)이라고 증언하므로, 예수 자신에게서 그 역할이 나타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요한의 예수는 타자(메시아, 구주)로부터 오는 구원을 기다려 왔던, 그래서 궁극적으로 어둠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했던 주변인들(사마리아인들, 38년 된 병자, 소경, 나사로 등)을 방문하고 그들을 해방한다.
2) 요한복음 12장의 예루살렘 입성에 관한 장면에서, 예수는 정복자의 이미지가 없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간다(요 12:15). 이 이미지는 요한복음 내에서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이미지와 연결된다(요 1:29, 36). 특별히,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군중들로 무기를 취하고 달려 나오도록 만들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이 예수를 환영하기 위해 종려나무 가지들을 잘랐다고 기록하고 있다(요 12:12-15). 이처럼 이스라엘 왕으로써 요한의 예수는(12:13; 1:49 참조) 세상의 논리(무력, 힘, 폭력)를 가진 로마에 반대하는, 세상의 논리에 역행하는 영원한 세계 평화를 위한 진정한 평화의 왕으로 그 역할을 한다.
3)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장면(13:1-20)은 섬김의 왕(중심이 주변을 섬김)의 겸손한 행위의 분명한 한 예가 된다(13:14-15). 이러한 이념은 그 방향성에 있어서 이 세상의 것과는 완전히 반대이다. 이 세상에서 주변부의 존재 이유는 단지 그 세상의 중심부를 섬기기 위함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새로운 세상에서는 중심부가 주변부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스승이 제자들을 섬기는 것이 중요한 삶의 원리가 된다는 것이다(요 13:16; 10:14-15; 15:15). 그러므로 중심부와 주변부의 갈등으로 인해 찢겨진 사회를 치유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요한복음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독자들을 도전하고 있다.
4) 요한복음은 자유/구원을 위해 주변인들이 영접해야 하는 이 세상의 진정한 구원자로 예수의 정체성을 밝히고 있다(1:12; 3:16; 7:32). 그는 모든 개인이나 공동체가 들어 갈 수 있는 새로운 우주적 세상을 열어 주었다(1:12; 10:9). 또한 요한복음에 나타난 새로운 공간으로서의 예수는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추구한다(10:16; 11:52; 12:32). 그 예로, 요한의 예수는 그의 왕국을 위한 모든 지상적 영역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독특한 존재로 묘사된다. 예수는 유월절과 같은 절기를 대체한다(6장). 그리고 성전과 같은 기관들을 대체한다. 성전 청결은 전통 유대주의의 대체를 의미하며, 유대인들의 언약적 의미를 자신으로 대체하고 재해석하는 것이다. 생명의 떡(6:35), 생수(4:10; 7:38), 그리고 세상의 빛(8:12)은 쓸모없어진 의식의 제례적 원천을 대신하는 것이다. 다른 영역들(가지들)을 통합하는 방향성을 가진 참 포도나무인 예수는 그 포도나무로 독자들을 초청하고 있다. 성전을 포함하여 거룩한 장소들이 예수에 의해 치환되었다. 예수께서 베델(1:52), 성전(2:23-25), 야곱의 우물(4:1-15), 예루살렘(4:21), 베데스다 연못(5:1-19), 그리고 실로암 못(9:17)과 같이 구약에서 신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많은 공간들 너머로 가시며 그 자신 안에서 그것들의 의미들을 재해석 하시고, 그 안으로 그것들을 통합하시는 것이 요한복음에서는 명확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특별히, 이것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부활하신 예수를 전하는 요한의 묘사에서 더욱 절정으로 드러난다(요 20:19, 26).
결론적으로 요한복음은 어둠으로부터 그의 백성들을 자유 하게 하기 위해 이 땅으로 오신 탈식민주의자로서의 예수를 제시하기에, 요한의 예수를 아는 것, 즉 그를 믿는 것은 자유에 이르는 길이 된다. 물질적 억압과 독재와 권력, 종교의 속박과 사회적 지위의 한계로부터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예수를 믿는 것, 즉 그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간략히 말해, 요한복음은 예수가 왕으로 다스리는 새로운 세상에서는 새로운 통치 이념(사랑, 용서, 자유, 평화, 섬김)이 적용되며, 이 새로운 이념을 그들 자신에게 적용하기 위해 이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오라고 독자들을 초대하고 있다.
제공 = 윤석영 목사(다음세대 HIS CHURCH)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