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발달 영역과 성경이야기(3)
인지 발달과 성경이야기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수학을 잘한다. 그건 아마 우리의 관심이 단어보다 숫자에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엘리베이터에 탄 어떤 아이와 이야기하게 된다면 외국사람들은 제일 먼저 “너 이름이 뭐니?”하고 물어 볼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주로 “너 몇살이야?”하고 질문한다. 한국 사람들에게 숫자는 굉장히 중요하다. 호주에서는 이력서에 나이를 기록하지 않는다. 호주 사람들에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어느 모임에 가든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꼭 질문한다.
한국 부모들이 숫자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아이들의 성적에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부모들이 가장 관심있어 하고 중요하다 생각하는 발달은 인지발달이다. 우리 아이가 좀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똑똑해 질 수 있다면 부모는 자신의 삶을 뿌리 채 옮겨서라도 아이 뒷바라지를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곳 호주에 와 계신 분들도 많을 것이다. 모든 발달이 그런 것처럼 인지 발달도 발달 단계가 있고 발달 순서에 따라 진행된다. 아이들의 발달은 중앙에서 먼 곳으로, 구체적 감각에서 추상적 사고로 진행된다고 생각하면 대부분 맞다. 인지발달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감각을 통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경험해야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그 다음 단계인 조작기로 넘어갈 수 있다.
특별히 교회에서 다루는 신앙교육은 추상적이어서 감각 운동기에 있는 0-2세 유아들이나 전 조작기에 있는 2-7세 어린이들에게 설교하기 쉽지 않다. 그러기에 이 시기에는 일방적인 설명보다 경험과 탐색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배우도록 해야 한다. 이 때는 말하고 듣고 보고 만지면서 배워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움직이면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물환론’이 생긴다. 그래서 퍼펫을 이용하거나 가상놀이를 통해 설교를 전달할 수 있다. 인형을 꺼내 “난 너희들이 어떻게 예배드리는지 보고 싶어서 왔어. 설교 잘 들을 수 있니?”하고 설교할 때 옆에 세워 놓으면 아이들은 그 친구가 본다고 생각하고 더 집중하려고 한다. 열두 해 혈루병을 앓은 여인을 설교할 때 물을 담은 주사기를 퍼펫 눈 옆에 감춰 놓고 눈물을 흘리면 아이들은 진짜 인형이 울었다고 생각한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대해 나온다. 천지 창조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하나님이 만드신 것들을 쭉 설명하기보다 아이들이 직접 보고 탐색해 보도록 한다. 나가서 하늘도 쳐다보고, 나무도 보고, 바람도 느끼고 그리고 과일이나 야채들을 만져보거나 냄새도 맡아보고 직접 먹어보게도 한다. 이런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탐색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가게 된다. 출애굽기 2장에는 한 여인이 아기를 바구니에 담아 나일강에 띄우는데 애굽의 공주가 그 아기를 건져서 살려주는 모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들이 아기 모세 인형을 만들어 종이컵에 넣고 물이 담긴 커다란 통에 띄운다. 그리고 다같이 아기가 무사하도록 기도한 후 직접 건져보는 활동을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수에 대해 경험하며 수개념을 익힌다. 이 시기 아이들의 탐색을 학습지에 국한시키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학습지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마음껏 탐색하고 경험하는 감각 운동기와 전조작기 보내야 나중에 기호에 대한 추상적 사고가 필요한 학습지도 잘 할 수 있다. 수세기가 안되는데 더하기를 할 수 없고, 크기를 구별할 수 없으면 순열을 할 수 없다.
아이들은 수를 익힐 때 수의 의미 즉 숫자 1이 1만큼의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먼저 알까? 아니면 1,2,3,4,5 같은 수세기를 먼저 배울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수세기를 먼저 익힌다. 그리고 그 다음에 수의 가치에 대해 배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수세기는 수의 가치에 대한 이해의 시작이다. 물론 수세기보다 ‘있다’ ‘없다’ 또는 ‘많다’ ‘적다’하는 수의 보존개념이 먼저 온다. 성경에는 숫자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내용들이 무궁무진하다. 우리 손가락이 10개인 것처럼 십계명이 열 개이고, 애굽에 내려진 재앙이 10개이고, 예수님이 10명의 문둥병자 병자를 고쳐 주셨다. 설교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수세기를 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일대일 대응이다. 바이블 스터디할 때 sheet지를 나눠 주거나 간식을 먹을 때 한 사람 당 1개씩 연결해 보는 일대일 대응은 아이들이 ‘더 많다’, ‘적다’ 하는 보존개념을 배울 수 있는 시작이다.
0-2세 감각운동기의 가장 큰 특징은 ‘대상영속성’이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잃어버린 양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가 나온다. “어떤 사람에게 양 100마리가 있는데 한 마리가 없어지면 찾지 않겠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우리의 머리는 100-1=99 같은 수학적 사고나 혹은 1마리 보다 99마리가 더 많다는 경제적 사고를 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99마리를 두고 그 한 마리를 찾아 나가는 목자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 목자가 경제적 개념이 없거나 99마리에 무책임해서가 아니다. 목자에게 잃어버린 양은 100마리 중 한 마리라는 1/100의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경 어디에도 목자가 양을 세어서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는 내용이 없다. 만약 100명이 모이는 어느 그룹에 우리 아이가 안보이면 100명을 세어봤더니 99명이라서 내 아이가 없어진 것을 알까? 절대 그렇지 않다. 백명이 있던, 천명이 있던 내 아이가 안보이면 부모는 금방 알아차린다. 왜냐하면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에게는 내 아이가 100명 중 하나가 아니라 그냥 100 그 전부이기 때문이다. 안 보인다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할 수 없다. 그러기에 목자는 양을 찾아 나서고, 찾아서 그토록 기뻐하는 것이다. 영아들에게 잃어버린 양에 대해 설교한 후 양 찾기 놀이를 하면 재미있다. 양을 아이들 눈에 보이도록 갖다 놓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도록 한다. 아이들은 양을 찾아서 가지고 온다. 다음 단계로 수건으로 양을 가려 보이지 않게 해 놓고 찾아보게 한다. 대상영속성이 있는 아이는 안보여도 있다고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고 찾는다. 양을 찾으면 아이들은 정말 기뻐한다. 마치 목자가 기뻐서 양을 어깨 사이에 매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감각 운동기, 전조작기 그리고 조작기를 넘어 성인이 되었다. 우리의 주일학교 아이들이 주일에 한번 교회에서 볼 때만 존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나머지 일주일의 시간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이들의 대상영속상만도 못하다. 오늘 출석한 성도의 ‘숫자’가 아닌 ‘성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일이 세어보지 않아도 누가 없는지 아는 자만이 영혼을 찾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우명옥 전도사(시드니한인장로교회 어린이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