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의 이민 삶 나눔
나를 불나게 만들었던 불링(bullying)
“엄마, 오늘 쉬는 시간에 XX가 내가 앉아있는데 와서 비키라고 안 그럼 나 발로 차겠다고 해서 내가 수퍼바이저 선생님한테 말했어”
작년 9월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딸아이가 내가 해준 말이었다. 정작 그때는 그 피해의 심각성을 모르고 그저 선생님한테 말했으니 됐구나 싶었다. 허나 나중에 그 일에 대해 정확한 사태파악이 되자 내 눈에 일명 불이 켜졌다.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듯 나도 자녀를 양육하면서 가장 힘든 때는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정신적 물질적 그리고 육체적인 피해를 당하고 상처받아 집에 오는 경우가 아닌가 싶다.
여태 다른 아이들의 일로 상담과 조언만을 하며 간접적 학부형의 형태로 살다가 드디어 나도 학부형이 된 2013년에는 이런 비슷한 유형의 경험을 남부럽지 않을 만큼 했었다.
정확한 사건의 내용을 듣게 된 계기는 다음날 딸아이가 나에게 와서 가해자 아이의 의도를 전해 듣고 나에게 얘기를 해 줘서였다. 상황은 이러했다.
울 딸아이와 친하게 지내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엄마와 내가 친하게 지내면서 두 집 아이를 자주 같이 놀게 해서 친하게 지내고 있는 호주아이 J양이 있다. 그 아이는 상당히 독립적이고 또 톰보이 스타일이지만 부드러운 내면을 가지고 있고, 부모의 교육이나 양육방식이 나와 맞는 것이 많아 같이 자주 어울린다. 하여 둘은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에도 같이 놀기로 약속하고 자주 논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2학년에 있는 베트남계 혼혈인 여자아이 XX(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하겠지만, XX의 엄마는 남의 일에 나서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성질을 부리고 아주 가관인 여자다. 나와는 첫 텀에 아주 진하게 부딪힌 경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 딸이 방과후 미술시간에 XX와 같이 미술수업을 하면서 둘이 서로에게 좋은 친구라며 친하게 지냈을 때에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나 같이 아이의 모든 교육은 부모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 사람이, 내 자식의 친구가 별로 좋지 않은 부모를 가진 경우 놀지 말라고 하거나 개입하지 않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내 자식의 사회생활은 나와는 별개의 것이고, 또 나는 어떤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어떤 유형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가르칠 뿐이지, 전면에 나서서 너는 얘랑 놀아라 쟤랑 놀지 마라 하면서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모가 이상하더라도 아이의 잘못이 아니기에 그 아이의 순수함을 믿어보기로 하고, 또 내 아이가 자신의 친구를 사귀는 기준을 만드는 과정을 믿고 기다려주기로 했다. 부모가 된다는 건 정말 성인군자가 되는 것이겠거니….. 하면서 말이다. )
본론으로 돌아가서, X 는 내 딸과 잘 노는 J양을 점 시간에 일부러 찾아와서 J와 내 딸의 선약을 헤치면서 J양을 자기와 놀자며 데려갔다고 했다. 이에 실망한 내 딸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바닥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고 했다. 헌데 갑자기 XX가 나타나서는 바닥에 앉아 있는 내 딸아이의 미간까지 발을 들어올려 치는 시늉을 하면서 “비켜, 안 그럼 너 밟아버릴 거야”라고 했단다.
‘아, 정말 이 시베리아 갯벌에서 귤 까먹을 못된 네 가지… 십장생 같은 어린 것을 봤나!!!’ 난 순간 속으로 열여덟, 열아홉을 외치며 뚜껑이 열리기 일보직전이었다. 허나 맘을 다잡고 물었다.
“그래서 네가 어떻게 했어?”
“내가 놀라서 말을 못했지. 그리고 안 비켰더니 XX가 나를 밟는 척 하는 거야. 그때 엄마가 말한 게 생각 났어. 그래서 바로 수퍼바이져 선생님(학교에는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아이들을 관찰하는 수퍼바이져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아이들의 안전을 관리한다) 한테 가서 말했어. 그랬더니 선생님이 나한테 아주 잘했다고 했어” –여기 까지가 내가 전날 듣고 넘긴 내용이었다.
“그랬구나. 잘했어. 그 수퍼바이져 선생님 이름이 뭐야? 그리고 그 선생님은 네가 말했더니 뭐라고 했어? XX불러서 뭐라고 했어?”
“ 그 선생님은 Mr.00고 그 선생님한테 내가 말했을 때 바로 종이 울려서 점심시간이 끝났어. 그래서 우린 교실로 돌아갔어”
“그게 끝이야? 그 이후에 다른 말 없었어?”
“어, 그런데 오늘 J가 나한테 말해줬어. 어제 XX가 J한테 그랬대. 내가 너무 싫어서 내가 친구를 못 사귀게 만들려고 그랬던 거래”
“뭐라고라고라고라 0.0 “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말이 막혔다. 아니 10살도 안된 어린 여자아이가 어찌 이리 못된 마음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과연 그 엄마의 그 딸이로다… 그리고 내 머릿속을 스치는 한 단어 ‘불링 Bullying’, 나는 재빠르게 딸아이를 안아주며 물었다.
“그래서 네 기분이 어땟어? 마니 속상했겠다, 그렇지?”
“응, 엄마. 나 이제 XX하고 친구 안 할거야. 걔는 너무 나빠. 그리고 나 속상해서 울뻔했어”
“그랬구나. 얼마나 속상했겠어? 그리고 얼마나 놀랐어? 걔가 눈앞에 발 갖다 대고 때리려고 할 때 마니 무서웠겠다. 미안해, 엄마는 선생님한테 말했다 길래 잘 해결 됐는줄 알았어. 이제 엄마가 선생님한테 이 메일 보낼게. 이건 불링 (Bullying) 이야. 절대 아무도 해서는 안 되는 나쁜 짓이야. 그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위협을 하거나, 육체적으로 해를 입히거나, 일부러 다른 사람 마음에 상처를 주려고 하는 행동을 할 자격은 없어. 이건 법에서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아주 심각한 문제야.”
“응, 엄마 고마워.”
“나중에 선생님이 너를 불러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면 엄마한테 말한 것처럼 솔직하게 정확하게 말하면 돼.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말고. 그냥 선생님들은 누가 잘못했는지 알려고 하는 거야. 선생님하고 미팅하게 되면 학교갔다 와서 엄마한테도 무슨 일 있었는지 알려줘. 알았지?”
손이 떨리고,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치고, 눈이 튀어나오고, 뚜껑이 열리고, 콧구멍이 벌렁거리고, 화나고, 기막히고, 불이 났지만, 종이를 꺼내 무엇을 어찌 쓸지 요약점을 차례로 써 내려갔다. 그리곤 컴퓨터를 켜고 이 메일을 써 내려갔다. 장장 3장짜리 빽빽한 장문의 편지를…
밤새워 이 메일을 보내놓고 다음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그날 학교의 모든 선생님, 교장선생님까지도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에 놀라웠고, 세 명의 아이를 각각, 또 같이 불러 질문하고 가해학생이 인정하고 돌아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학교의 빠른 일 처리에 감동받았다.
허나, 익히 알고 있듯이 불링이 이렇게 쉽게 끝날 일은 없는가 보다. 다음날 오전 아이를 데려다 주는데 먼발치에서 누가 우릴 손가락질하며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가해학생 XX의 베트남인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데려다 주려와서는 가해학생에게 우리가 누군지 물었는지 가해학생은 우리를 손가락질 하고 있었고, 그 할아버지는 뚫어져라 노골적으로 성난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에, 그 손녀에, 난 정말 못된 가족 3종 세트에 기가 막혔다. 허나 무시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여기고 돌아섰다. 그런데 그날 오후 아이를 픽업 갔을 때 그 할아버지는 내 앞 2미터 전방에서 걸어가면서 나를 잡아 잡수시겠다는 표정으로 악의를 가득 담아 노려보고 있었다. 이건 불링의 연장선이었다. 너무나도 기분 나쁘고 화가 났다. 자기 손녀가 잘못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건 대체 무슨 행동이란 말인가?라는 생각에 바로 교장실로 향했다. 교장선생님과 면담을 하면서 알게 된 건, XX의 집에선 아이가 선생님이 무서워 거짓말을 했다고 믿는단다. 내 아이 옆에서 같이 놀던 그 많은 아이들의 눈은 어찌 속이겠냐고 했지만 그 부모는 내가 일부러 자기 아이를 가해자로 몰고 있다고 느끼는 문제가 있는 가정교육을 행하고 있었다. 아하, 내가 제일 기피하는 내 자식은 항상 옳아 유형의 가족이로구나.. 말이 안 나왔다.
나는 교장선생님에게 이건 더 이상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를 위협하는 일이고 경찰서에 신고해야겠다고 했다. 허나 학교의 이미지를 비롯, 교장선생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XX의 가족에게 말을 전하고 나는 일단 신고를 보류하기로 했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나 불링반대 협회에 도움의 전화도 해보고, 다른 기관에 연락도 해보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피하는 일이 전부였다. 머 이런 거지 같은 일이…… 절망했다. 피하는 게 답이라니… 가해자는 저리 뻔뻔한데…
며칠 뒤엔 XX의 가관인 엄마가 나타나서는 나와 1미터 거리를 두고 소리소리 질러가며 무슨 일이 있었냐며 나보고 들으라고 노골적으로 소리를 질러대고, 그 할아버지는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나서 나를 노려보는 작태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허나 나는 바로 교장실로 향했고 교장실에서도 뾰족한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 후 교감선생님이 내 딸에게 개인적으로 면담을 해주며 학교는 안전하고, 재미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셨고, 불링이나 그런 일이 생기면 바로 선생님을 찾아오라는 안부의 말까지 해준 덕에 아이는 안심하고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엔 XX의 부모도 학교의 조치를 따르겠다고 했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다.
어디나 그렇듯 학원폭력의 피해자는 상처받은 마음을 혼자 다잡아야 하고, 또 지원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피하는 게 상책이란 학교의 대응에도 약간의 불만이 있었지만, 앞으로 몇 년을 더 다녀야 하는 딸아이를 위해서, 나이가 들수록 강해져만 가는 내 성격을 누르고 또 누를 수 밖엔 없었다.. 정말 참을 인자를 가슴속으로 천 번도 더 써야 했던 씁쓸한 경험이었다.그래도 나는 영어가 되니 이렇게라도 아이를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지만, 영어가 안 되는 부모님이 있는 아이들은 얼마나 속상할까 싶어 위로를 삼았다.
영어가 안돼서 아이의 억울함을 못 들어주는 부모님들, 주저하지 마시고 통역서비스를 이용하세요. 그리고 만약 통역 서비스가 맘에 안 드시면 제게 도움을 요청해주세요. 저도 미약하나마 우리 아이들이 학원폭력에 상처받고 힘들어 하지 않게 같이 노력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언어는 장애가 아닙니다. 사는데 조금 불편할 뿐이니 주위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보세요. 정 안되고 억울하면 교육청에 탄원이라도 내서 우리 아이들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상처받은 우리 아이들에게 든든한 지원자로써 또 버팀목으로써, 알게 모르게 상처받은 우리 아이들을 꼭 껴안아줍시다. 그리고 절대 억울함을 호소하는 아이를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와 아이를 불나게 만드는 불링 (bullying)을 다시는 겪지 않길 바라며 댁의 모든 자녀가 불링의 피해자가 되지 않길 소망합니다.
엘리자벳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