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 서의 이민 삶 나눔
어느나라의 편에 속할까?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지난 토요일 시드니에서 아시안 컵 축구 결승전 경기가 열렸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경기를 보러 가기 위에 빨간 티셔츠를 준비하고, 집에서 또는 경기장에서 열심히 응원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경기장엔 노란색과 초록색을 입은 호주 응원단의 거대한 물결속에 당당한 붉은악마와 교포 응원단이 모여 목청높혀 응원했다 한다. 지인도 아들에게 축구를 보여주고자 예전부터 결승전 티켓을 구매하여 기다리고 있었고, 운좋게 한국이 결승에 올라 한국과 호주의 경기를 볼수 있었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과연 어느나라를 응원할지에 대해 질문 하였다. 일단 붉은악마 쪽 좌석이 배정되엇으니 붉은 악마를 응원할 것이라고 했다. 아이도 같은 생각이냐고 물어 보니 아이에겐 선택권이 없다고 했다.
나는 잠시 여기에서 왜 아이에게도 애국심을 강요하는지 의구심이 생겼다. 호주에서 태어나고, 교육 받고, 완벽한 호주도 아니면서 완벽한 한국인도 아닌 이민 자녀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한쪽으로 부모에 의해 치우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정체성이라고 하는, 즉 아이덴티티라고 하는 것은 과연 내가 어느 나라에 살고 있으며, 어느 나라의 뿌리를 따라가고, 본인 자신이 어느나라가 자신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본다. 한쪽만 결정해야 한다면 다국적 시민권을 갖고잇는 사람은 과연 정체성이 무엇인지 일개 국가로 단언할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물리적으로는 호주의 법과 문화를 따르고있으며 복지혜택을 받지만 나의 근본은 한국에서 왔기 때문에 호주에 사는 한국인이라고 한다고 누가 손가락질 할수 있을까?
예전 티비프로그램에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교육받은 백인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 사람은 외형적으로 백인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나고 살면서 모든 삶이 한국인과 같지만 다른 외형으로 인한 차별을 받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외국에 여행을 가면서도 김치를 싸가는 뼛속까지 한국인인 삶을 살고 있으니 과연 이 사람의 정체성을 무엇이라고 할수 잇을까? 우리가 흔히 말하기를 호주에서 태어나고 호주에서 교육 받았으며 호주의 사고방식을 갖고 사는 동양사람들을 바나나라고 한다. 겉은 노랗지만 속은 백인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가졋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사람인지 호주인인지 선을 그어야 될 이유가 있을까? 왜 다민족 국가에서 겉모습만으로 선입견을갖고 잇어야할까? 어느쪽으로 자신의 소속국가를 정하건 모든건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 가족도 누구도 정해줄 수 없고 또 비판하거나 압력을 가해서도 안된다고 본다.
비정상회담이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온 프랑스 인은 아버지가 이태리에서 이민 온 반 이태리계 혈통이다. 그의 아버지는 축구에서 이태리 팀을 응원하지만 아들에게는 너는 프랑스에서 낳고 자란 프랑스인이다, 고로 너는 프랑스를 응원해라고 했다한다. 어찌보면 그 것이야말로 아이에게 아이덴티티 혼란을 주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호주에서 한국 대 호주 결승경기가 열렸을 때 우리가 어려서 학교에서 배웠던 강요되는 애국심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응원하고자 하는 나라를 결정할 수 있고 선택의 자유를 존중할 수 있는 부모야말로, 아이의 진정한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는 부모라 생각했다. 나와 다름이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존중해 줄 때 가족안에서의 평화, 나아가서는 사회의 조화로움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엘리자벳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