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타키투스’ (Tacitus)의 서술 성향
고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 (Publius Cornelius Tacitus, 56 ~ 117)는 자신의 저서를 지을 때 상당히 비평적인 문체와 서술 태도를 보였다. 또 흔히 이르기를 그는 원로원의 권리를 옹호하면서 로마 제정에 대해 가장 신랄한 비판을 가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원로원 의원들을 고발하는 델라토르 제도에 대해 무한한 증오와 비난을 표출하는 태도를 곳곳에서 보이며 황제에게 대항하여 직언을 행사하는 원로원 의원에 대해서는 매우 큰 찬사를 보낸다. 또한 팍스 로마나 등을 언급할 때 으레 비판적 시각을 대변하는 어구 중 하나인 ‘그들은(로마인) 폐허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평화라고 부른다.’는 말도 타키투스가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의 삶을 돌이켜보자면 알 수 있듯이 타키투스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도미티아누스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이었고, ‘연대기’에서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시대의 모든 황제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그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다섯 황제들을 모두 직접 체험한 인물이 아니었고, 그를 정계와 로마 사회에서 원로원 핵심으로 이끌어준 장인 아그리콜라의 부친이 칼리굴라의 지시를 어기고 항명죄로 처형된 개인적인 이유 등으로 그가 살지 않았던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타키투스는 갈리아 출신으로 출세를 꿈꾸며 로마로 와서 개인적인 능력과 장인의 도움으로 원로원 의석을 꿰찼다. 이때 그는 온건하고 유연한 공화정 회귀론자이면서 동시에 철저한 원로원 중심론자였다. 따라서 개인적인 이유 외에도 정치적 신념으로도 원로원 중심 시스템을 뒤엎고 원수정을 열어 혈통세습을 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뒷세대의 수에토니우스처럼 온갖 소문들을 무차별적으로 집어넣지 않아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했다고 평가받는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인해 후세사람들에게 폭군 황제로 이름난 칼리굴라와 네로, 원로원 의원들을 비난했던 티베리우스에 대해서 부정적인 서술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상술했듯이 도미티아누스에 대해서도 당대 원로원의 동료들처럼 좋게 서술하지 않았다.

○ 타키투스 (Publius Cornelius Tacitus, 56 ~ 117)
타키투스 (Publius Cornelius Tacitus)는 고대 로마의 역사가ㆍ웅변가ㆍ정치가이다. 젊은 시절 로마 제정의 암흑상을 체험한 그는 공공 이익에 기여하는 삶을 살고자 역사가가 되기로 한다. 뛰어난 변론술로 로마 황제들의 절대권력을 비판하는 로마 제국 초기의 역사서를 저술하였다. 역사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탁월한 문학성은 그의 저작이 인류의 고전이 되는 밑바탕이 되었다. 시세에 맞지 않아 불우한 일생을 보낸 아그리콜라의 생애를 서술한 『아그리콜라』와 도덕적으로 타락하기 시작한 로마와는 달리 질박하고 건전한 사회를 이루었던 용맹스런 게르만족을 묘사한 『게르마니아』,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공화정 시대와 비교해 제정시대에는 웅변술이 쇠퇴하였음을 비판한 『웅변가들에 관한 대화』, 티베리우스 황제의 등극에서부터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연대기식으로 서술한 『연대기』와 『역사』 등을 남겼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