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오늘
1862년 5월 6일, ‘생태주의자의 효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Henry David Thoreau, 1817 ~ 1862) 별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Henry David Thoreau, 1817년 7월 12일 ~ 1862년 5월 6일)는 미국의 철학자·시인·수필가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Henry David Thoreau)
.출생: 1817년 7월 12일, Concord, Massachusetts, United States
.사망: 1862년 5월 6일, Concord, Massachusetts, United States
영향줌: Martin Luther King, Jr., Mahatma Gandhi 등
대표작: Civil Disobedience, Life Without Principle 등
미국의 유명 작가이자 사상가로 생태주의자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유명한 작품으로는 월든이 있다.
훗날 그의 사상은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 인도의 국부 마하트마 간디, 미국의 마틴 루터 킹목사,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났으며,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미국-멕시코 전쟁에 반대해 인두세 납부를 하지 않았다가 감옥에 투옥된 적이 있다.
○ 생애 및 활동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태어나 미국 콩코드에서 죽었다. 하버드 대학 졸업 후 가업인 연필 제조업, 교사, 측량 업무 등에 종사했지만 평생 일정한 직업에 정착하지 않고 곧 학업에 매진했다. ‘자연’의 저자인 초월주의자 랄프 왈도 에머슨 등과 친분을 맺었다.
자비 출판한 첫 작품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 일주일’ (A Week on the Concord and Merrimack Rivers, 1849년)은 젊어서 세상을 떠난 형과 선상 여행을 정리한 수필로 당시의 사회에서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표작 ‘월든 – 숲속의 생활’ (Walden, 1854년)은 2년 2개월에 걸친 숲에서 혼자 기록을 정리한 것이며, 그 사상은 이후 시대의 시인과 작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소로우의 사후 ‘메인의 숲’ (The Maine Woods, 1864년)과 ‘케이프 콧’ (Cape Cod, 1865년) 등의 여행기와 자연을 쓴 에세이, 일기, 서간집 등 수많은 작품이 출판되었다. 소로우의 작품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주제로 한 것이 많고, 자연 문학 (Nature writing)의 계보에 자리매김 된다.
그의 일생은 물욕과 인습의 사회 및 국가에 항거해서 자연과 인생의 진실에 관한 파악에 바쳐진 과감하고 성스러운 실험의 연속이었다.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항의하기 위해 홀로 월든의 숲에서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기도 했으며, 인두세 납부 거부로 투옥도 당했고, 후에는 노예 해방 운동에 헌신하였다. 그의 그러한 정신은 “시민 불복종”으로 이어진 마하트마 간디의 인도독립 운동과 킹 목사의 시민권 운동 등에 사상적 영향을 주었다.
에머슨과 함께 위대한 초월주의 철학자이며 미국 르네상스의 원천이었다. 그는 또한 자연과학자이기도 하며 주요 저작으로는 ‘월든’ ‘시민 불복종’이 있다.
○ 생태주의
자연과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으며, 강연을 하기도 했다.
당시 산업혁명 직후 아메리카 드림 등 노동과 성공에만 관심을 쏟던 세태와 달리 직접 숲에서 집을 만들고 혼자서 자립해서 살았다. 당연히 당시 사람들에겐 외면을 받았지만, 20세기 후반에 와서 계속된 노동과 반복을 비판한 ‘월든’이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다.
실천적 초월주의자인 소로는 미국적 삶의 주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실험적 삶을 산 사람이었다. 하지만, 당대 생활양식의 비판 근거를 미국적 이념에서 찾았기에 그는 미국적 특성이 강한 작가라고도 여겨진다. 산업화와 근대화에 사로잡힌 근대적인 삶의 양식을 거부하고 비판한 그는 내면의 풍요로움, 검소한 삶, 자급자족의 삶을 강조하였다. 이외에도, 그는 자연친화적인 삶을 중시하고 전쟁과 노예제도를 비롯한 물질문명과 인간의 이기와 탐욕을 싫어하고 반대하며 옳지 못한 정부와 사회에 대해선 합법적이면서도 간접, 소극적으로라도 반대, 저항하고 맞설 것을 주장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을 주장한 생태주의자였다.
1844년 4월경 피시 차우더 수프를 만들던 중 콩코드의 숲 300에이커(약 1,200,000m2)를 태워먹은 적도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소로의 자연 속 거주지는 그의 후견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의 사유지였다. 소로는 에머슨의 자비로 임대료를 내지 않고 해당 부지를 무료로 이용한 것이다. 에머슨은 미국 내 이름난 강연자로 이름이 높았으며, 사교계의 스타였고, 물려받은 엄청난 재산 덕분에 처음부터 부유한 생활을 누렸다. 이후 재산이 줄어들자 그는 각종 강연회를 통해 거액의 재산을 다시 회복하기도 한다.
그가 소로에게 특혜를 준 것은 문학에 대한 자신의 열정 때문이었다. 에머슨은 본인, 마가렛 풀러, 소로, 브론슨 올코트, 윌리암 엘러리 챠닝 등과 함께 소위 초월주의자 모임을 만들어, 동양적이고 이상적인 문학 작품을 다수 발간한 바 있다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런 배경에서 에머슨은 소로에게도 자연인용 부지를 빌려주고 그에게 문학적 기대를 품은 것이다. 이후 에머슨과 소로는 관계가 틀어지고 (소로는 후견인인 에머슨에 대해 악담을 한 바 있다) 소로는 점점 기인처럼 변해갔으며, 소로 역시도 생전에는 문학적 명성을 얻지 못하였다. 소로가 겨울철 나무의 나이테 개수를 세던 중 폐렴에 걸려 죽을 때가 되어서야 둘은 극적으로 화해한다. 다시 말해, 소로의 자연 친화적인 삶조차도 에머슨이 재력과 사유지로 그를 지원해 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실제 소로는 오랜 기간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최소한의 생활비만으로 살아가야 했기에, 단독이었다면 월든에서의 자급자족이 어려웠을 것이다. 시민 불복종과 관련해서도, 인두세를 미납해 투옥된 소로는 이모가 미납된 세액을 대납한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소로우가 당시 인정받지 못한 이유 중에는 이런 점도 한 몫 했다. 물론 그의 기본적인 사상 – 즉 세속적 성공에 매몰되는 삶을 경고한 점은 높이 살만 하다.
○ 주요 저작
.월터 랄레이 경 (Sir Walter Raleigh, 1844년)
.시민 불복종 (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 1849년)
.월든 (Walden : or, the Life in the Wood, 1854년)
.원칙없는 삶 (Life Without Principle, 1863년)
.메인 숲 (The Maine Woods, 1864년)
– 한글 번역본
.월든, 양병석 번역, 범우사 (1999)
.월든, 강승영 번역, 이레 (1993)
.시민의 불복종, 강승영 번역, 이레 (1999)
.소로우의 노래, 강은교 편역(編訳), 이레 (1999)
.소로우의 일기, 윤규상 번역, 도솔 (1996)
○ 명언
“새로운 옷을 요구하는 산업을 조심해라.” (I say, beware of all enterprises that require new clothes.)
“잔물결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망하지 않으리.” (He who hears the rippling of rivers in these degenerate days will not utterly despair.)
참고 = 위키백과,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