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오늘
1949년 6월 8일,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 발간
1949년 6월 8일에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이 발간됐다.

○ 조지 오웰의 ‘1984’ (민음사, 2003.6)
‘동물농장’과 함께 조지 오웰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전제주의라는 거대한 지배 시스템 앞에 놓인 한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다가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 그 과정과 양상, 그리고 배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작품의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전체주의의 극한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 나라. 오세아니아의 정치 통제 기구인 당은 허구적 인물인 빅 브라더를 내세워 독재 권력의 극대화를 꾀하는 한편, 정치 체제를 항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등을 이용하여 당원들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당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과 동시에 당원들의 사상적인 통제를 위해 과거의 사실을 끊임없이 날조하고, 새로운 언어인 신어를 창조하여 생각과 행동을 속박함은 물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성욕까지 통제한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이런 당의 통제에 반발을 느끼고 저항을 꾀하지만, 오히려 함정에 빠져 사상경찰에 체포되고, 혹독한 고문 끝에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 ‘골드스타인’을 만났다고 자백하고, 결국 당이 원하는 것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무기력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 목차
제 1부
제 2부
제 3부
부록 : 신어의 원리

– 저자소개 : 조지 오웰(George Orwell, 본명: Eric Arthur Blair)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er Blair. 1903년 6월 25일, 인도의 벵골 주 모티하리에서 하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8세 때 사립예비학교에 들어갔으나, 이곳에서 상류층 아이들과의 심한 차별을 맛보며 우울한 소년시절을 보냈고, 장학생으로 들어간 이튼교에서의 학창시절 역시 계급 차이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22년부터 5년간 미얀마에서 대영제국 경찰로 근무했으나 점차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껴 직장을 그만두고 파리로 건너가 작가수업을 쌓았다. 유럽으로 돌아와 파리와 런던에서 부랑자 생활을 하고 잠시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거쳐 영국 노동자들의 삶에 관한 조사 활동에 참여했다. 이때를 토대로 한 소설이 1933년의 첫 소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생활’과 1935년 ‘버마 시절’이다.
전체주의를 혐오한 그는 스페인 내전에도 참가했는데, 그 체험을 기록한 1936년 ‘카탈로니아 찬가’는 뛰어난 보도 문학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2차 대전 직후인 1945년에는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을 우화로 그린 ‘동물농장’으로 일약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해 그는 아내를 잃고 자신도 지병인 폐결핵의 악화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그 와중에도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전체주의의 종말을 기묘하게 묘사한 디스토피아 소설 ‘1984년’을 출간했다. ‘1984년’은 전제주의라는 거대한 지배 시스템 앞에 놓인 한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다가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 그 과정과 양상, 그리고 배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작품의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전체주의의 극한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 나라이다. 오세아니아의 정치 통제 기구인 당은 허구적 인물인 빅 브라더를 내세워 독재 권력의 극대화를 꾀하는 한편, 정치 체제를 항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등을 이용하여 당원들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당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과 동시에 당원들의 사상적인 통제를 위해 과거의 사실을 끊임없이 날조하고, 새로운 언어인 신어를 창조하여 생각과 행동을 속박함은 물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성욕까지 통제한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이런 당의 통제에 반발을 느끼고 저항을 꾀하지만, 오히려 함정에 빠져 사상경찰에 체포되고, 혹독한 고문 끝에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 ‘골드스타인’을 만났다고 자백하고, 결국 당이 원하는 것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무기력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1984년’은 오웰을 20세기 최고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 만들었다. 하지만 날로 악화되는 병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작품을 발표한 이듬해인 1950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지 오웰은 지난 1999년 영국 방송 BBC가 조사한 ‘지난 1천 년간 최고의 작가’ 부문에서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에 이어 3위에 선정되었다. 게다가 영문학에서는 ‘오웰주의’, ‘오웰주의자’라는 뜻의 Orwellism이나 Orwellian이라는 표현이 따로 있을 정도이니, 이 정도면 그가 서양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주로 당대의 문제였던 계급 의식을 풍자하고 이것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였으며, 또 일찍이 스탈린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거기서 다시 현대사회의 바닥에 깔려 있는 악몽과 같은 전체주의의 풍토를 작품에 정착시켰다. 그는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글을 쓰는 이유를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자신의 글 중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쓴 글들만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책 속으로
윈스턴은 어머니의 꿈을 꾸었다.
어머니가 사라진 것은 그가 열 살인가, 열한 살 때였다.
어머니는 탐스러운 머릿결에 키가 큰 데다 조각처럼 몸매가 아름다운 조용하면서도 행동이 침착한 여자였다. 그리고 그가 어렴풋이 기억하기로 아버지는 피부가 검고 야윈편이었는데, 언제나 검정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는 안경을 끼고 다녔다. 그런데 이들 두사람은 50년대의 제 1차 대숙청때 희생된 게 틀림없다.
꿈속에서 어머니는 어린 여동생을 껴안은채, 그가 있는 곳의 아래쪽 깊숙한 곳에 앉아 있었다. 여동생에 대해서는 자그맣고 허약한 아이로, 언제나 말이 없는 가운데 커다란 눈망울만 깜빡이고 있었다는 것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지하였다. 정확하게는 샘 바닥이나 깊은 무덤 속 같은 데였다. 그런데 그곳은 그와 멀찍이 떨어진 아래쪽인데도 계속 더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둘은 침몰하는 배의 일등 선실에 앉아서 시커먼 물을 통해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p. 45~46

– 출판사 서평
.조지 오웰 탄생 100주년, 그의 작품을 통해 오늘을 되돌아보다
조지 오웰의 대표작 ‘1984’는 1949년에 발표된 디스토피아 소설로 ‘동물농장’과 함께 60여 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는 작품이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소련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면서 미래에 대해 예언한 소설이라고 평했다. 1949년 6월 12일자 뉴욕타임스에는 “올해 출간된 작품 중 ‘1984’는 가장 동시대적인 작품”이라고 실렸을 정도로 작품에 담겨 있는 시사적인 함의도 뚜렷했다. 그렇다면 소련이 붕괴된 오늘날, 작품이 갖는 의미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가? 물론 그렇지 않다. 사회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1984’를 스탈린주의의 잔학함에 대한 묘사로만 해석하고 그것이 서구 사회에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한다면 정말 불행한 일일 것이라고 말했듯이, 작품의 제목인 ‘1984년’(오웰은 이 작품을 1948년에 완성했는데, ‘1984년’이라는 제목은 ‘48’을 뒤바꾼 것이라고 한다.)이 거의 20년이나 지난 오늘 우리 사회에까지도, 그의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충분한 의미를 담고 있다.
.21세기, 사생활 침해가 문제되는 고도의 정보사회에 던지는 경고
‘1984’에서는 빅 브라더라는 인물의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텔레스크린이라는 장치를 이용한다. 텔레스크린은 수신과 송신을 동시에 행하여 어떠한 소리나 동작도 낱낱이 포착할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다. 사상경찰(思想警察)은 텔레스크린을 통해 개개인을 감시하며, 사람들은 오랜 세월 그렇게 지내다 보니 그런 삶에 익숙해져 버린다. 작품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도 하루 종일 텔레스크린의 감시를 받으며 생활한다. 이런 상황은 조지 오웰이 작품을 썼을 당시에는 단지 미래에 대한 공상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몇 년 전부터 은행, 백화점, 관공서 등 곳곳에 몰래 카메라가 설치되어 우리는 일거일동을 감시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언제 얼마의 현금을 인출하는지, 어떤 물건을 사는지, 어떤 문서를 발급받는지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노출된다. 심지어 지구를 도는 인공위성의 초정밀 카메라로는 우리가 안방에서 무엇을 하는지조차 찍을 수 있다. 더불어 도청 장치를 통해 통화 내용이 새어나갈 수도 있고, 휴대폰의 전원을 켜놓은 동안에는 다른 사람이 우리의 위치를 파악할 수도 있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우리의 신상정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흘러들어갈 수도 있다. 그리하여 작품이 출간되었던 1949년 당시보다도 정보 기술의 발달로 개개인의 사생활과 신상정보가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오늘날, 오웰의 작품이 보내는 경고는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독자들의 비판 의식을 일깨우기 위한 정치적 소설
조지 오웰은 1946년에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해 1948년에 완성했다. 조지 오웰은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로도 유명한데 1947년에 쓴 그의 에세이’나는 왜 쓰는가’를 보면 작품을 통해 조지 오웰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가 더욱 뚜렷해진다.
평화 시대였다면 나는 화려한 책 혹은 단순한 묘사 위주의 책을 썼을 것이 틀림없고 나의 정치적 충성이 어느 쪽에 있는 건지도 모르는 상태로 살았을 것이다. (……) 스페인 전쟁과 1936-1937년의 기타 사건들은 정세를 결정적으로 바꿔놓았고 그 이후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1936년 이후 내가 진지하게 쓴 작품들은 그 한 줄 한 줄이 모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해’ 쓰여졌다. 우리 시대처럼 소란한 세월을 살면서 이런 문제들을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난센스이다. (……) ‘동물농장’은 내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 보고자 한, 그래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충분히 의식하면서 쓴 첫 소설이었다. 지금 몇 년째 나는 소설에 손대지 않고 있으나 곧 하나 쓸까 한다. 물론 실패작일 것이고 모든 책은 실패작이지만 내가 쓰려는 책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에리히 프롬이 언급했던 것처럼 오웰은 단순히 암울한 미래상을 예언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그의 에세이를 통해서도 미루어볼 수 있듯이 오웰의 ‘1984’는 명백히 정치적이다. 그는 거대한 지배 체제 하에서 저항을 기도하지만 결국 체제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파멸해 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탁월하게 형상화하면서 독자들의 비판적 의식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조지 오엘 / 조지 오웰 (George Orwell, 1903~1950) 개관
영국의 저술가 ‘조지 오엘(George Orwell,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1903년 6월 25일 ~ 1950년 1월 21일)는 인도에서 태어난 영국 작가이자 언론인이다. 명료한 문체로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과 민주사회주의에 대한 지지를 표한 것으로 이름나 있다.

– 조지 오엘(George Orwell, 조지 오웰)
.생사: 1903년 06월 25일(영국령 인도 비하르 주)~1950년 01월 21일(46세, 영국 런던)
.본명: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필명: 조지 오웰
.직업: 작가, 언론인
.언어: 영어 (국적: 영국)
.모교: 이튼 칼리지
.장르: 디스토피아, 르포
.주제: 반파시즘, 반스탈린주의, 마르크스주의
.대표작: 동물농장, 1984 외 다수
오엘(오웰)은 문학 평론, 시, 평론, 소설과 같은 작품을 남겼으며, 동물 농장(1945년)과 1984년(1949년)으로 특히 유명하다. 논픽션 작품 중에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37년), 카탈로니아 찬가(1938년) 등이 있다. 2008년 타임스는 1945년 이후 위대한 영국 작가 50선에 2위로 조지 오웰을 꼽았다. 반공주의자로 잘못 알려져있으나 마르크스주의 계열의 사회주의자중 한명이다.
조지 오웰의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대중 문화와 정치에 영향을 주고 있다. 조지 오웰이 만든 신조어인 빅 브라더, 사상 경찰(思想警察, Thought Police), 신어, 이중 사고(二重思考, doublethink)와 같은 언어와 그가 예견한 냉전 체제 등은 여전히 영향력있는 개념이다.
조지 오웰은 1950년 1월 21일에 오랫동안 앓아 온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 성장기
에릭 아서 블레어는 1903년 6월 25일에 당시 영국의 식민지이던 영국령 인도의 벵갈(오늘날 비하르 주)에서 태어났다. 증조부 찰스 블레어는 부유한 젠트리로 토머스 페인 백작의 딸과 결혼하였다. 그의 주요 수입원은 자메이카의 플랜테이션 농장이었다. 할아버지 토머스 리처드 아서 블레어는 성직자이었다. 젠트리 신분은 세대를 걸쳐 상속되었으나 제물은 그렇지 못하여 에릭은 자신의 집안을 “상류 중산층의 하층”이라고 표현하였다. 에릭의 아버지인 리처드 월머슬리 블레어(Richard Walmesley Blair)는 인도 식민국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어머니 이다 블레어(Ida Mabel Blair)는 에릭이 두 살이 되던 해 그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생가는 비하르 주의 역사 유적으로 지정되었다.
에릭은 어머니 이다와 함께 옥스포드셔의 헨리온템즈에 정착하였다. 아버지가 3개월간 영국에 돌아왔던 1907년을 제외하면 1912년까지 가족들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에릭에게는 마조리라는 이름의 누나와 에이브릴이라는 이름의 여동생이 있었다. 1905년에 쓰인 어머니의 일기에는 활발한 사회 활동과 예술에 대한 관심이 보인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에릭의 가족은 옥스포드셔의 쉽레이크로 이주하였다. 에릭은 여기서 버디컴 집안과 어울렸는데 특히 딸인 제신타 버디컴(Jacintha Buddicom)과 친하게 지냈다. 이들의 우정은 이후로도 계속하여 이어졌고, 1974년 제신타는 이 때의 일을 적은 ‘에릭과 우리들’을 출간하였다.
에릭은 다섯살이 되어 헨리온템즈의 수녀원 부속학교에 입학하였다. 그곳은 1903년 이후 프랑스에서 종교 교육이 금지되자 영국으로 건너 온 우르술라 수녀회가 운영하는 로마 가톨릭 계열의 학교였다. 어머니 이다는 에릭을 퍼블릭 스쿨에 보내고자 하였으나 그러기엔 학비가 부담이 되었다. 이다의 형제인 찰스 리무진이 이스트서식스에 있는 세인트 시프리언즈 스쿨을 추천했는데 프로 골퍼였던 리무진은 그 학교 교장과 몇 차례 골프를 친적이 있었다.
학교 교장은 학비의 절반을 감해주기로 하고 에릭을 입학하도록 하였다. 1911년 에릭은 세인트 시프리언즈 스쿨에 입학하였고 집에는 방학 때에만 갔다. 그는 등록금 이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으나, 학교에선 에릭이 “가난한 집안”이란 소문이 번졌다. 그는 훗날 회고록 ‘정말, 정말 좋았지'(Such, Such Were the Joys)에서 학교가 싫었다고 썼다. 에릭은 이 학교에서 사이릴 코널리와 친구가 되었다. 코널리는 많은 해가 지나 호라이즌의 편집장이 되었고 조지 오웰의 여러 에세이를 잡지에 수록하였다. 오웰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자신의 가족에 대해 묘사하기를 ‘상류 중산층의 하급 계층'(lower-upper-middle class)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세인트 시프리언즈 스쿨을 다니는 동안 에릭은 헨리온템즈의 지역 신문인 헨리 앤 사우스 옥스퍼드셔 스탠다드에 두 편의 시를 기고하였다. 에릭은 코널리와 함께 할로우 스쿨이 지급하는 할로우 역사 장학급 2등급에 선정되었다. 이로서 윌링턴 스쿨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지만 이튼 스쿨에 들어가고 싶었던 에릭은 이튼 스쿨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세인트 시프리언즈에 남아 있기로 결정하였다. 에릭은 1916년 12월까지 세인트 시프리언즈에 있었다.
1917년 1월 에릭은 웰링턴 스쿨로 옮겼다. 그러나 5월에 이튼 스쿨에서 입학 허가서가 도착하자 이튼으로 옮겼다. 에릭은 1921년까지 이튼 스쿨에 다녔다. 그는 어린 시절 친구 버디컴에게 웰링턴이 “더럽다”고 말했고, 이튼은 “흥미롭고 행복한 곳”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이튼 스쿨의 교장은 엔드류 시든햄 페러 고우로 트리니티 칼리지의 펠로우쉽 교수였다. 그는 에릭의 진로를 조언하는 편지를 써 주었다. 에릭은 당시 이튼 스쿨을 함께 다니고 있던 올더스 헉슬리, 스테번 런시먼과 같은 이들에게서 간략한 프랑스어를 배웠다. 사이릴 코널리가 에릭을 쫓아 이튼 스쿨에 왔지만 몇 해 동안 해어져 있었던 이유로 관계는 소원해졌다.
이튼에서의 그의 학업에 대한 평가는 바보 같은 학생이었다는 것과 훌륭한 학생이었다는 것이 공존하고 있다. 자신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분개하는 몇몇 교사를 에릭은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훗날 조지 오웰을 필명으로 사용한 뒤 쓴 ‘정말, 정말 좋았지’에서 에릭은 학창 시절 동안 학교가 가르친 것은 단순한 암기식 수업이며 그 속에서 자신은 계급 차별로 인한 따돌림을 당했다고 썼으며 이튼의 교육에 대해 ‘(아는 척 할 줄 아는) 신용 사기를 향한 과감한 준비’만을 시켰다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약하고 못생겼다는 것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스스로를 실패한 인생으로 생각했다. 어려서 형성된 실패한 인생이라는 감각은 그가 평생 동안 가졌던 것이었다. 에릭을 직접 만나본 사람들은 그가 추남이었으나 맑고 푸른 눈을 가졌다고 회고한다.
결국 그가 이튼을 졸업할 무렵에는 167명중 138등을 할 만큼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는 이튼 스쿨에서 로저 마이너스와 함께 대학 잡지를 편집하는 일을 하였고, 대학 진학 선발 시험인 킹스 스콜라를 통과하였지만 부모의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릭은 이튼에서 훗날 자신의 지기들이 되는 친구들을 몇몇 사귀었다. 그중 싸이릴 코놀리는 잡지 ‘호라이즌’의 편집자가 되어 오웰의 유명한 에세이 대부분을 출간해주었다. 훗날 오웰은 상당한 자율을 허용했던 이튼스쿨 시절을 ‘그런대로’ 행복했다고 회고했지만, 입학 후 공부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신경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이튼의 생활에 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가 제국주의와 영국의 식민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은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아버지처럼 식민 관료의 길을 선택했다. 당시 이튼의 교육은 학생들을 식민 관료, 군인, 제국주의자로 만드는 것이었고, 아직 에릭은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런시먼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에릭 블레어가 동양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썼다. 에릭의 아버지는 서퍽의 사우스월드에서 퇴임하였고, 가족은 에릭이 인도의 제국 경찰이 되기를 희망하였다.

○ ‘버마 시절’
에릭 블레어의 외할머니는 버마의 모울메인에 살았다. 에릭은 버마에세 경찰을 하기로 하고 1922년 10월 SS 히어포드셔 호를 타고 수에즈 운하와 스리랑카를 거쳐 버마로 갔다. 한달 후 그는 양곤에 도착하였고, 만달레이에서 훈련을 받았다. 핀우린에서 잠시 복무한 후, 1924년 초 에야와디 관구의 미야웅미아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의 동년배들이 대부분 영국의 대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갈 때 그는 에야와디 관구의 트완테에서 20만명의 치안을 책임지게 되었다. 1924년 말이 되어 그는 양곤 인근의 시리암(탄리인) 경찰서의 부서장으로 승진하였다. 시리암에는 버마 오일의 정유 공장이 있었다. 공장 주변은 드럼통 쓰레기가 뒹굴고 뿜어져 나오는 이산화 황으로 주변 식물들이 죽어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관할지가 양곤과 가까웠기 때문에 에릭은 종종 시내로 나가 항구에 나가거나 서점과 카페를 들리면서 경찰 업무의 지루함을 달랬다. 당시 버마는 90명 정도의 영국인 경찰 간부가 13000명 정도의 현지인 경찰을 관리했고 그들이 1300만 명이나 되는 인구를 장악했다.
1925년 에릭 블레어는 버마에서 두 번째로 큰 감옥인 인사인 형무소로 발령받았다. 인사인에서 근무하는 동안 에릭은 엘리사 마리아 랭포드레를 알게 되었고 그녀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주제”로 끝없는 대화를 나누곤 하였다. 그녀는 훗날 인도 시킴 주의 초대 수상인 카지 렌두프 도르지와 결혼하였다. 랭포드레는 에릭이 “매우 공정하고 사소한 것까지 세세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적었다.
에릭은 미얀마에서 다른 영국인 간부들이 영국식 사교생활을 즐기던 것과는 달리 고독하게 지냈고 가끔 사창가를 찾았다. 다른 푸카(펀잡어로 식민지배자들을 이르는 말)와 달리 카인족과 같은 소수 민족을 찾아다니거나 버마어를 읽었다. 당시 동료였던 로저 비든은 1969년 BBC에 출연하여 블레어는 매우 빨리 버마어를 습득하였으며 버마의 승려들과 유창하게 소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에릭이 가혹한 식민통치자는 아니었으나 불교 승려들과 매춘부들에 대해 경멸하는 태도를 취했고 이는 훗날 제국주의자임을 거부했던 글에서도 확인이 가능할 정도로 체화되어 있었다.
1926년 에릭은 외할머니가 사는 모울메인으로 옮겼다. 그해 말 그는 다시 상부 버마 사가잉 관구의 카타로 발령되었고, 1927년 그곳에서 뎅기열에 걸렸다. 에릭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갔다. 1927년 9월 영국의 콘월에서 가족을 만난 그는 버마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하고 가족들의 반대에도 사표를 제출하였다. 그는 5년간이나 식민 관리 생활을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에 대한 깊은 자기혐오에 빠지게 되었다. 아버지가 35년간 근무하여 가족이 ‘중류 생활자’로 지내게 해준, 그리고 자신이 5년간 영국 신사로 지낼 수 있도록 해준 신분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에릭은 작가가 되고자 했다. 그는 버마에서의 경험을 살려 1931년 에세이 ‘교수형'(A Hanging), 1934년 소설 ‘버마 시절'(Burmese Days), 1936년 수필집 ‘코끼리를 쏘다'(Shooting an Elephant)를 발표하였다.
오웰의 두 번째 저서인 ‘버마 시절’은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비극적인 로맨스가 제국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고 반제국주의적 정서가 강하게 드러나 있다. 주인공 플로리는 식민 경찰로 있던 오웰의 페르소나로 읽히며 그는 어떻게 자신이 제국주의를 혐오하게 되었는가를 실감나게 묘사한다. 그는 버마에서 보낸 시간들의 이미지가 너무도 강해서 그것을 어딘가에 쏟아붓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영국에 돌아온 에릭 블레어는 가족이 살고 있는 사우스월드에 자리 잡았다. 그는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 옛 은사인 고우가 있는 캐임브리지를 방문하였다. 1927년 에릭 블레어는 런던으로 거처를 옮겼다. 가족과 안면이 있던 시인 러스 피터가 숙소를 잡는 것을 도와주었고, 블레어는 그 해 말 노팅힐의 포르토벨로 가에 방을 얻었다. 이 집에는 조지 오웰을 기념하는 블루 플래크가 부착되어 있다. 블레어의 어머니는 러스 피터가 이사를 도운 것에 적잖이 안심을 하였고, 피터는 블레어가 시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다는 걸 지적하며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을 써 보라고 권유하였다. 에릭 블레어는 경험을 쌓기 위해 이스트엔드오브런던의 생활상을 살폈다. 에릭 블레어는 이스트엔드오브런던의 밑바닥 삶을 서술한 ‘밑바닥 사람들’을 출간한 잭 런던을 동경하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가 가난한 계층의 사람인양 차려입고서 이스트런던의 라임하우스코스웨이에 있는 하숙집을 빌렸다. 에릭 블레어는 이 시기 겪은 일을 정리하여 1931년 첫 수필 ‘스파이크’를 발표하였다.
1928년 초 그는 파리로 이주하여 노동자들의 밀집 거주 지역이었던 파리 5구의 루두포드페(Rue du Pot-de-Fer)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이모 넬리 리무진이 파리에 살고 있어서 필요한 사회적 지원과 경제적 도움을 주었다. 에릭 블레어는 ‘버마 시절’의 초고를 쓰며 작가 생활을 했지만, 벌이가 될 만한 것은 못되었다. 에릭 블레어는 프랑스의 국제공산당 잡지인 몽드에 투고를 하면서 작가로서 보다는 언론인으로서 더 알려지게 되었다. 에릭 블레어가 전업 작가로서 쓴 첫 글인 ‘영국의 관료 체제'(프랑스어: La Censure en Angleterre)는 1928년 10월 6일 실렸다. 영어로 된 첫 글은 1928년 12월 29일 지케이스 위클리(G.K.’s Weekly)에 실린 ‘서푼짜리 신문'(A Farthing Newspaper)이었다. 에릭 블레어는 프랑스의 좌파 잡지인 르 프로그레 시비크(Le Progrès Civique, 진보 시민)에 정기적으로 투고하여 런던의 부랑자와 거지의 삶을 다룬 글들을 썼다. 밑바닥 삶에 대한 그의 이런 관심은 훗날 ‘카탈로니아 찬가’가 집필되기 전까지 에릭 블레어의 주된 평론 주제였다.
1929년 2월 에릭 블레어는 중병이 걸려 파리 14구의 코신 병원에 입원하였다. 이 병원은 의대 학생의 교육을 위해 운영되어 무료로 진료를 하였다. 당시의 경험은 1946년에 발표된 ‘빈자가 죽는 법'(How the Poor Die)의 바탕이 되었다. 그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이 하숙방에 도둑이 들어 가진 돈을 모두 훔쳤다. 블레어는 생계를 위해 뤼드리볼리 가의 호텔에서 접시를 닦아야 했다. 1933년 출간 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는 그의 접시닦이 생활, 구빈원에서의 생활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있다. 밑바닥 생활을 거치면서 에릭 블레어는 상류층의 자본가들은 프롤레타리아의 폭동을 두려워 할 뿐, 그들의 생활 개선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보잘 것 없는 노동자들에 대한 밑바닥을 관통하는 본능은 단지 폭도에 대한 공포이다. 폭도는 저급한 동물이기 때문에 여가 시간이 생긴다면 위험해질 것이다. 너무 바빠서 생각할 시간도 없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다.” _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1929년 8월 에릭 블레어는 뉴 아델피에 ‘스파이크’를 투고하였다. 뉴 아델피는 대중적 사회주의를 불러일으킨 주요 잡지 중 하나였으며 1935년까지의 오웰의 글 대부분이 이 잡지를 통해 발표되었다. 1929년 12월 에릭 블레어는 2년 여간의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부모들이 살고 있는 사우스월드의 집으로 돌아갔다. 가족은 지역에서 평판이 좋았고 여동생 에이브릴은 찻집을 운영하였다. 그는 지역의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고, 그 가운데에는 사우스월드의 세인트펠릭스 여학교의 체육 교사였던 브랜다 샐켈드도 있었다. 성공회 신부의 딸이었던 그녀는 블레어의 청혼을 거절하기는 하였지만, 친구로 남아 여러 해 동안 주기적으로 편지를 주고 받았다.
1930년 블레어는 여동생 마조리와 그녀의 남편이자 어릴 때부터 격의없이 알고지내던 험프리 데킨과 함께 리즈의 브램리에 잠시 머물렀다. 블레어는 여기서 뉴 아델피에 투고를 하며 사우스월드의 개인 교사로 생활하였다. 당시 가르쳤던 학생들 중에는 훗날 철학자가 된 리처드 스텐리 피터스가 있었다. 이 즈음 블레어의 생활은 이중적이었다. 사우스월드 블레어 가의 아들인 에릭은 예의바르고 별다른 일 없이 지내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당시 필명으로 사용한 버튼은 런던의 이스트앤드 싸구려 숙소와 길바닥을 거닐고 켄트의 들판에서 홉을 주었다. 그는 해변에서 그림을 그리고 수영을 하며 지내다 훗날 그의 경력에 영향을 미친 마블 피어즈와 프란시스 피어즈를 만나게 되었다. 일년 뒤 블레어는 이들을 런던에서 다시 만났고, 그들의 친구인 막스 플로우먼과도 자주 만났다. 또한 블레어는 루스 피터와 리처드 피터의 집에서도 자주 머물렀는데, 그 덕에 블레어의 간헐적인 밑바닥 생활에는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당시 블레어의 하루 임금은 하프 크라운(8분의 1 파운드) 정도였다.
1931년 8월 블레어는 ‘교수형’을 투고하면서 뉴 아델피의 정규 기고자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는 이스트앤드와 켄트의 홉 밭에서 막노동을 하였고 이러한 경험을 일기로 기록하였다.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1935년 소설 ‘목사의 딸’을 발표하였다. 블레어는 여러 출판사에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의 출간을 의뢰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1931년 말 조지 오웰은 순전히 투옥 경험을 쌓을 목적으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1931년 12월 19일 위스키 한 병을 들이킨 뒤 병을 들고 배회하다 베스널 그린 경찰서에 체포되었다. 거기서 블레어는 당시 사용하던 필명인 에드워드 버튼으로 자신의 인적사항을 기재하였다. 경찰서는 인적 사항이 확인 되지 않자 몇 차례의 추가 조사를 하고는 블레어를 석방하였다.
1932년 4월 블레어는 웨스트런던의 남자 고등학교였던 하우스론 고등학교의 교사로 채용되었다. 하우스톤 고등학교는 열 살에서 열여섯 살쯤 되는 열대여섯 학생이 다니는 작은 사립 학교였고 블레어 외에도 다른 교사 한 명이 더 있었는데, 학부모는 무역상이나 상점 주인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교사 생활을 하는 동안 마블 피어즈는 빅토르 골란츠가 운영하는 출판사가 ‘천한 것의 일기'(A Scullion’s Diary,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의 초고 제목)를 40 파운드에 출판할 의사가 있다고 알려왔고 블레어는 이를 수락하였다.
1932년 여름 끝무렵 에릭 블레어는 사우스월드로 가서 부모가 집을 장만한 것을 축하하였다. 휴가 기간동안 에릭과 여동생 에이브릴은 집 단장을 하였고, 에릭은 ‘버마 시절’의 집필을 계속하였다. 이 동안 블레어는 엘리너 자크와 교재하였다. 하지만 블레어가 보다 깊은 관계를 희망하는 사이 그녀는 데니스 콜링스에게 애정을 보였다. 1932년 8월 블레어는 그의 실패한 투옥 경험담을 담은 ‘유치장’을 뉴 아델피에 기고하였다. 블레어는 다시 교사 생활을 시작했고 그 사이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의 출간을 준비하였다. 그는 가족들이 자신의 부랑자 생활을 알 게 될까 염려되어 새로운 필명을 고심하였다. 블레어는 1932년 11월 15일 무어에게 편지를 보내 필명을 추천해 주길 부탁했고, 나흘 뒤 무어와 골란츠는 기존의 필명이었던 버튼과 함께 케네스 마일즈, H. 루이스 얼웨이스, 조지 오웰 등의 이름을 추천하였다. 블레어는 조지 오웰을 필명으로 선택했는데, 엘리너 자크에게 그 이유를 “부드럽게 들리는 영국 이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그가 작가로서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고 가족들이 놀라지 않도록 고려해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서포크의 오웰 강을 좋아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한동안 기고문에는 계속 에릭 블레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저자를 조지 오웰이라고 밝힌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 1933년 1월 빅토르 골란츠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책은 평판이 좋았고, 뉴욕의 하퍼 앤 브라더스 출판사가 다음 판을 인쇄하였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는 그의 접시닦이 생활, 구빈원에서의 생활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있다. 첫 번째 저서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모순들을 묘사함에 있어 매우 신랄한 필치를 구사하고 있다. 밑바닥 생활을 묘사하는 것 뿐 아니라 그 와중에 런던의 속어와 욕설을 정리해둔다거나 구빈원 시스템의 모순을 치밀하게 폭로하는 등 다층적이면서도 종합적인 글쓰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오웰다운 위트가 곳곳에 넘친다. 잭 런던의 ‘밑바닥 사람들'(1903)로부터 영향받은 작품이다. 그동안 블레어는 ‘버마 시절’의 집필을 계속하였다. 1933년 중반 블레어는 하우스론 고등학교를 떠나 힐링턴 구에 있는 억스브리지의 프레이스 컬리지 교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이전 학교와 달리 그 곳은 200 명이 넘는 학생이 있었고 교직원도 모든 부서가 편성되어 있는 학교였다. 블레어는 오토바이를 구입하여 인근을 돌아다녔다. 그는 추운 날씨에 밖을 돌아다니다 폐렴에 걸렸고 억스브리지 코테이지 병원에 입원하였다.[51] 중태에 빠져 사경을 해매던 그는 1934년 1월이 되어서야 간신히 퇴원하였다. 그는 사우스월드의 부모 집으로 돌아갔고 교사직을 영영 그만두었다.
1933년 말에 블레어는 ‘버마 시절’을 탈고하였으나 골란츠가 명예 훼손에 휘말릴 것을 염려하여 출판을 거절하자 낙담하였다. 그러나 하퍼 앤 브라더스는 미국에서 출간을 추진하였다. ‘버마 시절’은 출간 이후에도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 비해 호의적이지 못한 평가와 판매고를 올렸다.
그외에도 ‘엽란을 날려라’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카탈로니아 찬가'(스페인 내전) ‘동물 농장'(제2차 세계대전) ‘1984년’은 명저
○ 오웰 리스트
조지 오웰은 병상에 있을 때 친소주의 작가 명단을 작성하여 ‘백주의 암흑’의 작가 아서 케스틀러의 처제였던 정보조사원 셀리아 커원을 통해 영국 정부 외무연방성 산하의 정보연구국(Information Research Department)에 제출하였다.
이 리스트에는 38명의 명단이 적혀 있었고, 영국은 이를 메카시즘 선전 활동에 활용하였다. 오웰 리스트는 54년간 비밀로 묶여 있다가 2003년이 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
오웰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실제 소련 KGB에 포섭된 친소파로 밝혀졌다.
오웰 리스트는 후일 격론을 불러 일으켰다. 아일랜드계 미국 언론인 겸 작가 알렉산더 코번(Alexander Cockburn)은 이를 “당치않은 고자질”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명단을 넘겨받은 셀리아 커원은 오웰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옹호하였다.

영화 ‘1984’
감독_마이클 래드포드 / 주연_존 허트, 리처드 버튼 / 1984년 / Australia
‘1984’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 작가 조지 오웰이 1948년에 쓴 작품이다. 1948년의 마지막 두 숫자를 거꾸로 썼다는 설도 있다. 특히, 오웰 그는 말년에 아내의 사망에 대한 슬픔을 가슴에 품고 양자인 리처드와 스코틀랜드 지역의 주라(Jura) 섬에서 폐결핵으로 각혈까지 하며 ‘1984’라는 마지막 대작을 남긴다.
영화 ‘1984’는 존 허트(John Hurt, 윈스턴 스미스 역)와 리처드 버튼(Richard Button, 오브라이언 역) 두 유명 영국 배우가 열연했다.
“그는 마치 괴물들만 사는 세계에서 자신도 괴물이 되어 방향을 잃고 바다 밑 숲속을 방황하고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는 혼자였다. 과거는 사멸되었고, 미래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식은 힘이라는 당의 슬로건 하에 지도자와 당의 독재를 비난하며 유라시아의 즉각적인 평화협정과, 언론, 출판, 집회 그리고 사상의 자유를 요구하는 배반자 골드스타인을 증오하는 2분 증오 시간 동안 진리부에서 일하는 윈스턴은 내부당원 오브라이언과 묘한 교감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텔레스크린의 감시가 닿지 않는 구석에서 금지된 공책에 일기를 적기 시작한다.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디스토피아 소설 〈1984〉(조지 오웰)을 원작으로 영국의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이 영화화 한 작품으로 1984년 58세 나이로 세상을 뜬 대배우 리처드 버튼의 마지막 출연작이다.
개인 정보가 쉽게 노출되고 구석구석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섬뜩하게 와 닿을 수 있는 영화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는 명언을 탁월하게 스크린에 옮겨 놓은 작품이다. (한국영상자료원)

○ 작품의 무대 : 오세아니아 (Oceania)
당 (The Party)이 모든 것을 이끌어 가는 일당독재 국가이다. 대표 사상은 영국 사회주의 (English Socialism), 신어 (Newspeak)로는 Ingsoc이다.
제3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이 대영제국을 합병하여 성립했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남북 아메리카 대륙과 브리튼 제도 (영국 +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및 아프리카 대륙 남부를 차지하며, 현실 세계의 영연방 (British Commonwealth)과 미국의 세력권을 더한 것과 거의 일치한다. 작중에서, 윈스턴 스미스의 과거회상 중 콜체스터에 핵폭탄이 떨어져 그의 가족들이 지하로 피신 갔을 때 이미 피난을 온 노인이 “역시 그 놈들을 믿지 말았어야 했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미국이 핵폭탄으로 영국의 뒤통수를 쳤거나, 보호해주기로 약속했지만 소련이 영국을 핵공격할 때 막아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미국이 영국을 합병해 탄생한 국가임에도 수도나 다름없는 제1공대(Airstrip one)가 영국에 있는데, 작중 핵전쟁 때 북아메리카에도 대량의 핵폭격이 있었다는 언급으로 봐서 영국을 합병한 후 미국은 핵폭격을 맞아 제대로 된 도시 하나 없을 정도로 초토화된 모양이다.
그렇지만 상세한 합병과정은 안 나오니 진실은 저 너머에. 왜 하필 영국 사회주의인지는 의문이다. 주인공의 기억을 빌리면 아마도 당시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작중 배경이 되는 제 1공대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모르므로 그 지역들은 실제로 동아시아와 유라시아가 차지하고 있을 수도, 완전히 인류가 절멸한 황무지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실제의 세계와 별반 다를 바 없을 수도 있다. 실제 지리상 명칭인 오세아니아 주와는 다른 개념이지만 작품 내 설정상으로는 오세아니아 주 또한 ‘강대국 오세아니아’의 세력권에 모두 들어간다. 대양(Ocean)에 둘러싸여 해양국가로서의 성격이 아래의 두 나라보다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에 지은 이름일지도. 실제로 영국과 미국은 강력한 해군력과 해운무역으로 성장한 해양강국의 대표선수들이다.
주인공이 사는 런던은 오세아니아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인 제1공대에 속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오세아니아가 차지한 지역들의 현실과 연결시키면 오세아니아에서 제일 큰 도시는 아무래도 멕시코 시티인 듯하다. 제1공대는 “제1공대도 이전에는 브리튼 또는 잉글랜드라고 불렸다. 런던은 늘 런던이었지만”이라고 스미스가 확실히 회상한다.
인구수는 대략 3억. 인구 구조는 2%가 안 되는 내부당원(상급당원, 대략 600만 명), 13%의 외부당원(하급당원), 그리고 85% 가량의 프롤(노동자)의 세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

○ 등장인물
– 윈스턴 스미스 (Winston Smith) : 주인공. 39세로 오세아니아 외부당원이다. 런던의 승리 맨션에 거주하며 근무지는 진리부 기록국. 주요 업무는 과거의 신문 기사를 조작하고 수정해서 당의 실책을 가리는 것이다. 양친과 여동생이 있으나 모두 행방불명 상태이며, 외부당원인 캐서린과 결혼도 했지만 별거 중이다. 윈스턴 스미스라는 이름은 윈스턴 처칠의 이름과 당시 영국에서 가장 흔한 성인 스미스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본래는 평범한 당원이었으나, 여러가지 계기로 인해 현 체제에 의문을 품게 되고 노트를 사서 일기를 쓰게 되면서 당의 반역자가 된다. 이후 줄리아를 만나 밀회를 즐기고, 내부당원인 오브라이언에 의해 지하 투쟁 단체인 형제단에 가입해서 체제 전복을 위한 투쟁을 시작하나 했으나 함정이었다. 사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이 체제에 불만을 가진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체포하기 위해 무려 7년 동안 연극을 꾸민 것이었다.
결국 사상죄로 애정부에 끌려들어가 모진 고문 끝에 저항 의지가 완전히 거세된 채, 빅 브라더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가지면서 당에게 완전히 세뇌되고 만다.
– 줄리아 (Julia) : 어찌보면 윈스턴 스미스에 이은 또 다른 주역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여인. 26세로 오세아니아 외부당원이다. 성격은 몹시 쾌활하면서도 대담한 편. 근무지는 진리부 창작국 포르노과(Pornsec)이다. ‘2분간 증오’ 장면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 때 윈스턴은 줄리아를 사상경찰이나 내부당의 끄나풀로 오인했으나 실상은 정반대로 오히려 체제에 대한 반항심을 품은 채 일탈을 꿈꾸고 있었다. 줄리아는 윈스턴의 눈빛만 보고 그가 체제에 불만적이라고 생각해서 그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던 것. 이후 윈스턴과 밀회를 즐기고, 내부당원 오브라이언의 소개로 반체제 단체인 형제단에도 가입하나 앞서 서술하였듯이 이는 모두 오브라이언의 교묘한 함정이었다. 결국 정치범이 되어 윈스턴과 함께 애정부에 잡혀간다. 이후 윈스턴과 줄리아는 한 번 재회하는데, 세뇌로 인해 이전과 같은 감정은 남아있지 않은 모양이다.
– 오브라이언 (O’Brien) : 오세아니아 내부당원. 억세고 거친 인상을 지닌 거구의 사나이로, 윈스턴 스미스의 묘사에 따르면 험상궂은 얼굴에 주름살까지 많아서 언뜻 보기에는 투박하고 못생긴 외모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큰 덩치와 언제나 침착함을 유지하는 포커페이스 때문에 지적인 카리스마와 신사적이고 세련된 풍모를 발산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 때문에 윈스턴은 오래전부터 오브라이언에게 왠지 모를 호감과 신뢰감을 느껴왔다. 계급이 높은 내부당원답게 하인이 딸린 호화스러운 저택에서 생활하고 있으나, 다른 내부당원들과는 달리 자신보다 한참 낮은 계급인 외부당원인 윈스턴에게도 매우 예의바르고 친절하게 대해준다. 그러던 어느 날, 윈스턴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형제단과 골드스타인의 ‘그 책’에 대해서 알려준다. 이후 다시 윈스턴과 줄리아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그들을 반당조직인 형제단에 가입할 것을 권유하고 마치 자신이 그들의 동지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모두가 당 내부의 불만분자를 색출해내기 위한 함정에 불과했다. 이후 윈스턴을 애정부로 끌고가서 무자비하게 고문한 끝에 그의 인간성을 말살한다. 세상에 진실 따위는 없으며 모든 생각을 통제하는 당의 권력이야말로 유일한 진실이라는 극단적인 허무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있다.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진실을 오히려 체제 유지에 활용하는 인물상은 멋진 신세계의 무스타파 몬드와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여러 문학 수업이나 평론 등지에서 둘이 같이 언급되는 사례가 많다.
– 파슨스 (Parsons) : 윈스턴의 동료. 이름은 톰이며 35세. 아내와 1남 1녀를 두었다. 전체적인 이미지는 동물농장의 복서처럼 우직하고 힘깨나 쓰는 근육뇌 캐릭터다. 순수하게 당에 충성하나 요직은 맡지 못하고 힘 쓰는 하급직에서 일한다. 파슨스는 동료인 윈스턴을 나름 친구처럼 여기고 있으나, 체제에 은근히 불만을 품고 있던 윈스턴은 거의 바보처럼 보일 정도로 당에 순종적인 파슨스를 바보처럼 여기며 은근히 경멸했다. 나중에는 윈스턴과 마찬가지로 사상죄로 애정부에 끌려오게 되었는데, 신고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7살 먹은 딸이었다. 파슨스에 따르면 잠을 자던 중에 얼떨결에 “빅브라더를 타도하라”는 잠꼬대를 했는데, 딸이 엿듣고 바로 다음 날 아침에 신고해버렸다고 한다.
– 사임 (Syme) : 윈스턴의 동료. 당의 명령에 따라 신어사전 편찬을 맡고 있으며, 언어와 사상을 통제하는 어려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만큼 지적이며 총명하다. 윈스턴과 대화하던 중에 신어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는 면모를 보여준다(신어는 사상 통제와 반란 방지를 위해 영어를 재구성한 언어). 윈스턴은 그가 너무 똑똑하기 때문에 증발될 것이라고 예상했고, 그 예상은 사실이 되었다.
– 앰플포스 (Ampleforth) : 윈스턴의 동료. 각운을 맞추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과거의 시문학 중 남겨 놓아야 할 것들을 현 체제의 입맛에 맞게 수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키플링의 시 중 Rod의 각운인 God를 대체할 말이 없어 그대로 두었고, 결국 증발되었다.
– 캐서린 스미스 (Katharine Smith) : 윈스턴의 아내. 외부당원. 윈스턴의 회상에 따르면 골수 당원(Goodthinker)이었고, 그에 걸맞게 당의 선전에 세뇌되어 성행위 자체를 불결한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남편인 윈스턴과 성관계를 가지기는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의 요구에 따라 아이를 만들기 위한 것에 불과했고, 결국 윈스턴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얻지 못했다. 소설에서는 별거 중이라 직접 등장하지 않고 (당은 이혼을 금지한다) 윈스턴의 회상에서만 언급된다. 윈스턴의 회고에 따르면 성관계를 할 때마다 마치 시체처럼 뻣뻣했으며 때문에 별다른 애정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 채링턴 (Charrington) : 런던 빈민가에서 잡화상점을 운영하는 60대 주인으로, 노동자(프롤) 계급이다. 윈스턴과 친하게 지내며 혁명 이전의 많은 노래들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상점 위 층에는 텔레스크린이 없는 빈 방이 있는데, 윈스턴이 이를 빌려 줄리아와의 밀회 장소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텔레스크린이 그림 뒤에 있었고, 그의 정체는 사상경찰이었다. 애초부터 채링턴은 윈스턴을 감시하려 했던 것이다. 실제로는 30대의 젊은이였으며, 노인의 모습은 윈스턴을 속이기 위한 정교한 분장이었다.
– 마틴 (Martin) : 오브라이언의 집에서 일하는 하인.
– 위더스 동지 (Comrade Withers) : 내부당원. 유동요새의 보급을 맡은 군수조직 FFCC를 맡았고 빅 브라더에게 2등 공로훈장을 수여받았으나 3개월 후에 증발됐다. 윈스턴은 증발된 위더스의 기록을 지우라는 업무를 받고 아래에 있는 오길비 동무를 만들었다.
– 오길비 동지 (Comrade Ogilvy) : 윈스턴이 증발된 위더스를 대체하기 위해 지어낸 외부당원. 윈스턴이 만든 설정에 따르면 7살에 매우 높은 살상력의 수류탄을 발명해 실험했고 스파이단에 가입한 후 반당분자인 숙부를 애정부에 신고했다. 나이가 차자 당과 빅 브라더를 위해 헌신하기 위해 독신을 지키다가 전선에서 비행 중에 적군(유라시아/동아시아)에게 피격당하자 서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기관총을 메달고는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윈스턴은 이 기사를 빅 브라더가 오길비의 충성심을 치하하는 연설로 마무리했다. 훈장을 추가할까 생각도 했지만 교차 검증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져 그만뒀다고 한다.
– 틸롯슨 (Tillotson) : 진리부 기록국에서 일하는 내부당원.

– 빅브라더 (Big Brother) : 당의 지도자. 작중에서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번역본에 따라서는 대형(大兄)이라고도 불린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오세아니아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초월적인 권력의 소유자이다. 당으로부터는 위대하며 전지전능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 사람들 앞에서는 모습과 음성은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보이나, 다만 그의 초상화가 그려진 포스터는 오세아니아 곳곳에 널려있으며, 그가 사람들 앞에서 했다고 하는 발언들은 꾸준히 기록물에 실리고 있다. 윈스턴의 묘사에 따르면 초상화에 그려진 빅 브라더는 잘생기고 위엄있는 얼굴에 콧수염을 기른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숙적인 골드스타인이 노골적으로 트로츠키에게서 따온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면, 빅 브라더는 그 인상에 대한 서술이 스탈린과 흡사하다. 내부당원 오브라이언의 말에 따르면 빅 브라더가 곧 당이요, 당이 곧 빅 브라더라고 한 점을 보면 사실 빅 브라더는 실존하지 않거나 혹은 실존하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당의 프로파간다를 위하여 상징적인 껍데기만 남아있는 인물로 여겨진다. 오브라이언은 애정부에서 빅 브라더가 죽는지에 대해 윈스턴이 물어보자 어떻게 죽겠느냐고 답했으며, 형제단이 실존하는지에 대해서도 그건 자네가 영원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 엠마누엘 골드스타인 (Emmanuel Goldstein) : 당의 반역자. 빅 브라더와 마찬가지로 작중에서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유대인 혈통에 안경을 걸쳤으며 염소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등 소련의 트로츠키를 연상케하는 외모를 지니고 있다. 당의 주장에 따르면 한때 빅 브라더와 맞먹는 세력을 가졌으나 그에게 반기를 든 후 잠적한 만악의 근원이며 반당 조직인 형제단의 우두머리이다. 당의 지도자인 빅브라더와 마찬가지로 작중에서는 직접 등장하지는 않으며, 텔레스크린 속 모습과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당에서 가장 적대하는 인물로, 공식적인 원수. 당원들은 하루에 1번씩 2분 동안 스크린에 나타난 골드스타인의 얼굴을 보고 분노해야 하는 ‘2분간 증오’라는 해괴한 의식을 치른다.[32] 아이러니하게도 당의 지도자인 빅 브라더의 경우처럼 어쩌면 실존하지 않거나, 혹은 실존하는 인물이라도 당의 프로파간다를 위하여 상징적인 요소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 존스, 애런슨, 러더퍼드 (Jones, Aaronson, Rutherford) : 당의 초기 멤버. 이 중에서도 러더퍼드는 당의 혁명 때 풍자 만화를 이용한 여론몰이에 재주가 있었다. 하지만 셋 다 빅 브라더와의 권력다툼에 패해 1960년대에 숙청당했고 당의 공식 역사서에 반역자로 기록됐다. 윈스턴은 1973년에 진리부에서 근무하다가 이들이 과거에 뉴욕에서 열렸던 당의 모임에 참가한 사실을 더 타임스에 실린 사진으로 알게 됐는데, 당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그 날 이들은 유라시아의 비밀 기지에서 회합을 가졌기에 윈스턴이 당의 기록은 거짓임을 확신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윈스턴은 사진을 그 자리에서 기억구멍에 넣어 버렸지만 윈스턴이 잡혀 들어간 애정부에서 같은 사진을 보여준 오브라이언은 사진을 다시 기억구멍에 버린 후, 그들은 반역자일 뿐이며 그 사진은 자네가 조작하고 지어낸 망상이라는 이중사고로 윈스턴의 입을 막았다. 빅 브라더가 스탈린, 골드스타인이 트로츠키라면 이들은 스탈린과 협력했다가 숙청당한 레프 카메네프, 그리고리 지노비예프, 니콜라이 부하린에 대입된다.

○ 줄거리
1948년 당시 조지 오웰이 소설에서 그린 36년 후의 세계는 크게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과 분쟁 지역으로 나뉩니다. 이 세 국가는 모두 철저한 전체주의 독재 국가로서 세 나라가 분쟁 지역을 두고 끊임없이 전쟁을 치른디.
오세아니아는 그 존재를 알 수 없는 ‘빅 브라더’를 정점으로, 절대권력을 가진 ‘내부당(Party)’이 지배하는 나라다. 나라 곳곳에 ‘빅 브라더가 당신을 보고 있다’는 포스터가 붙어있고, 당의 핵심 슬로건은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다. 또한, 거리 곳곳, 모든 가정에는 텔레스크린(Telescreen)이라는 대형 화면이 설치되어 나라 안의 모든 사람을 24시간 감시한다.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는 오세아니아의 진리부(Ministry of Truth)의 외부 당원으로서 과거의 역사를 조작하는 일을 한다. 진리부의 슬로건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로서 나라 안에서 출판된 과거의 모든 저작물을 현재 시점에 맞게 완벽하고 철저하게 조작하고 재생산한다. 예를 들어, 수년 전에 당에서 예측했던 올해 특정한 물자의 생산량이 빗나가면, 이를 올해 정확한 생산량에 맞춰 수년 전에 관련하여 발간된 모든 책, 잡지, 신문의 내용을 수정한다. 이때 구술 기록기(Speakwriter)라는 기기를 사용하는데, 수정할 저작물의 위치와 내용을 마이크에 대고 말하면, 그대로 수정된다.
윈스턴은 이런 당의 위선에 염증을 느끼고 당에 대한 저항감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같은 진리부에 근무하는 ‘줄리아’라는 미모의 당원을 만나게 되고, 줄리아가 건넨 쪽지 “I love you”를 개기로 둘은 금새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오세아니아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은 상상할 수도 허락되지도 않는다. 이들이 사랑이 발각되는 날, 이들의 목숨은 온전할 수 없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이들 둘은 열정적인 사랑을 키워간다.
그들은 우연히 내부 당원인 ‘오브라이언’을 만나게 되고 그가 가입한 지하 단체인 ‘형제단’에 대해 알게 되고, 이내 그들은 이 단체에 가입한다. 특히, 윈스턴은 오브라이언을 통해 얻은 ‘그 책(the book)’을 통해 내부 당의 근본적인 체제 유지를 위한 온갖 거짓과 불합리성을 확인한다.
어느 날, 윈스턴과 줄리아가 비밀 아지트에서 사랑을 나눈 후, 창 너머 빨래를 거는 아낙네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죽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며 공감한다. 이 때, 방벽의 액자에서 “너희들은 죽었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액자가 떨어지면서 감시용 텔레스크린이 등장힌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애정부(Ministry of Love, 사상 범죄 등 모든 범죄를 관리하는 부처)의 고문실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힌다. 거기서 동지로 알았던 오브라이언이 실은 이 모든 일을 꾸민 것임이 드러난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을 전기고문한다.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윈스턴. 오브라이언은 이런 윈스턴의 잘못된 정신 자체를 완전히 개조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민 것이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애정부에서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모진 고문을 당하고, 진심으로 ‘빅브라더’를 사랑하는 인간으로 거듭난다. 둘은 우연히 재회하지만, 이제 예전에 사랑하는 그들이 아니다. 오직 ‘빅 브라더’에 대한 진실한 사랑만이 남아있는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고, 쓸쓸히 사형 집행을 기다리며 막을 내린다.
영화 ‘1984’는 원작 소설의 끔찍한 고문실의 모습을 너무나 생생하게 전달한다.

○ 생각해 볼 것들
– 진실과 거짓을 모두 받아들이는 ‘이중사고’
‘반어법적 이름’과 ‘전쟁은 평화, 자유는 속박(복종, 예속), 무지는 힘’(War is Peace. Freedom is Slavery. Ignorance is Strength.)이라는 원칙은 당의 ‘이중사고’라는 덕목을 대표한다. 빅브라더의 숭배와, 오세아니아의 반역자로 알려진 ‘골드스타인’과 적국에 저주를 퍼붓는 ‘2분 간 증오’로 체제와 욕구에 건 불만 등을 모두 처리한다.
이처럼 ‘1984’의 중심을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 바로 ‘이중사고(doublethink)’다. 이는 두 개의 상반된 내용을 모두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독특한 사고 방식으로서 주로 내부 당원들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핵심 사고체계다. 즉 진실과 조작된 진실 모두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웬만한 물건에는 다 ‘승리’(Victory)라는 단어가 붙는다. 승리 주(진, gin), 승리 커피, 승리 연(담배) 등. 주인공은 승리 아파트에서 산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모두 품질은 저질이다.
성교는 아이를 낳는 것을 위해서만 하는 일종의 ‘전투’이며, 당에서는 성교를 관장과 같은 역겨운 것으로 취급한다. 오브라이언이 주인공을 고문할 때, 성교 과정에서 느끼는 오르가슴을 없애버리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또한 국력 대부분을 전쟁에 쏟다보니 골드스타인의 책에 따르면 정작 내부당원들도 2차 세계대전 쯤의 부유층의 생활 수준보다 못한 생활을 한다.
윈스턴이 읽은 골드스타인의 책에서는 ‘전쟁 상황에서는 말고기 1점으로도 부유를 나눌 수 있다’고 평가했다. 내부당원의 생활 수준은 설비가 좋고 넓은 집, 질 좋은 옷, 기름진 음식, 술, 담배, 두어 명의 하인들, 자동차나 헬리콥터 정도다. 여기서 헬리콥터와 하인, 넓은 집 정도를 빼면 흔히 볼 수 있는 중산층과 비슷한 수준이다. 줄리아는 윈스턴에게 내부당원에게 성상납을 강요받았다는 증언과 함께 내부당원들은 모두 돼지새끼들이라며 내부당원을 모욕하는데, 실제로 쾌락을 즐길 생활적 여유가 있는 것인지, 이것마저도 외부당원에 대한 아주 기계적인 사상검증의 일환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주인공을 비롯한 외부당원들의 생활은 더욱 엉망이다. 거기다 월급에서 4분의 1을 의연금으로 내놓아야 한다. 차라리 노동자(프롤)들이 외부당원들보단 행복하게 산다고 봐도 맞다. 소설보다 영화에서 노동자들이 오히려 외부당원들보다도 더 좋은 환경에서 사는 것처럼 묘사된다. 윈스턴이 사는 곳은 거의 폐허 수준인데 노동자들의 거주지가 오히려 화려하고 근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아무리 전체주의 사회라도 노동자들 중에서 그나마 잘 사는 사람이 있어야 노동자들에게 우민화 정책이 가능 할테니 설정 상으로도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국가에서 지급하는 배급품이 안 나와서 암시장에서 돈을 주고 사야 하는데, 이는 자칫하면 수용소로 끌려갈 수도 있는 행위이다. 윈스턴을 비롯한 동료들이 면도칼 하나를 몇 개월 동안 쓰고 있으며, 모두 다 만성적인 영양실조(아마도 비타민 결핍으로 추정)와 살인적인 업무량,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어서 윈스턴 나이대의 외부당원은 몸이 성한 사람이 없고 다들 어딘가 몸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윈스턴도 발목에 정맥류성 궤양을 앓고 있는데 몇 년째 변변한 치료를 못 받고 있다.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당으로부터 동물 취급을 겪는다지만 이들은 사상 통제에서 열외대상이다. 사실 사상경찰이 몰래 이들 중에 숨어 들어가서 수상한 이야기를 하는 자를 처단한다고는 하나, 표정 하나로도 표정죄(Facecrime)로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당원들과는 비교도 안 될 자유를 누린다. 그냥 정치나 정부 상황에 관심 안 가지고 생각없이 살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윈스턴이 당 이전의 시대를 기억하는 늙은 프롤들을 찾아다니며 질문을 했을 때 만난 사람들은 과거 회상을 하라고 하면 술이나 모자 이야기 같은 뜬구름 잡는 옛날 이야기 밖에 안 할 정도로 저능한 이들뿐이었다. 그리고 당원들도 마찬가지라서 윈스턴도 당 이전의 생활에 대해 단편적인 것만 기억하고 있으며, 줄리아는 윈스턴보다 어려서 어릴 때 증발한 할아버지에게 옛날 이야기를 몇 개 들은 걸 빼면 당 이전의 생활에 대해 전혀 모른다.
또한 당이 이상형으로 내놓는 신체조건이 청년은 키가 크고 근육질이며, 여자는 금발에 성격이 명랑하고 햇볕에 그을린 건강한 피부와 볼록 튀어나온 가슴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사실상 당이 바라는 신체 조건(지능 제외)을 가진 자는 권력 쟁탈 분쟁에서 증발 표적 1순위이기 쉽고, 1부에서 윈스턴은 당의 이상형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고속출세를 하고 그 수도 점차 급증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소설에서 직접 그렇다고 확정짓지 않았지만, 당이 당원과 프롤들에게 우생학적 이상형의 조건을 제시해 그 중에서 부합되는 인물들이 나타나게 한 다음, 증발 표적으로써 숙청시킬 목적을 위해 그러한 이상형 기준을 만든 것으로도 볼 수 있으며 이중사고로 지배하는 당의 통치에선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 사고를 제한하는 ‘신어’ 사용
오세아니아의 언어는 신어(Newspeak)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능한 한 허용되는 단어의 수를 극단적으로 줄임으로써 자유로운 사고 자체를 차단한다. 예를 들어, ‘좀 크다’는 ‘plus-big’이라는 유일한 표현만 존재한다. ‘아주 좋다’는 ‘double-plus-good’이라고만 표현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맨 뒤에는 이런 ‘신어(新語)의 원리’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한편 신어로 평부(평성, Minipax), 애부(애성, Miniluv), 풍부(풍성, Miniplenty), 진부(진성, Minitrue)로 표기한다. 4개의 부 모두 이름과 하는 일이 완전히 다른 반어법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 자유를 위장한 ‘속박’
절대권력을 가진 당은 전쟁을 관장하는 ‘평화부/평화성’(Ministry of Peace), 사상범죄를 포함한 모든 범죄를 관리하는 고문 전담 ‘애정부/애정성’(Ministry of Love), 매일같이 배급량 감소만을 발표하는 ‘풍요부/풍요성’(Ministry of Plenty), 모든 정보를 통제, 조작하는 ‘진리부/진리성’(Ministry of Truth) 이렇게 네 성(省) 또는 부(部)으로 나눠지는데 목적과 부서명이 매우 상반되는 모순이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전체주의의 체계적인 감시하에서 무감각하게 받아드리며 적극적으로 순응하기에 이른다.
사상범죄자는 그가 있었다는 모든 흔적이 사라진 뒤(이른바 ‘증발’) 엄청난 고문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아예 그의 인간성을 말살한 뒤 그의 마음까지 세뇌시켜 순교자를 철저하게 없앤다고 한다. 오브라이언의 말에 따르면 중세의 종교재판이나 나치, 소련의 순교말살 작전보다 발전했다고 한다.
중세 이단 심문의 요지가 ‘Thou shalt not’(~ 하지 말라), 공산주의 체제의 요지가 ‘Thou shalt’(~ 하라)였다면, 빅 브라더 정권의 요지는 ‘Thou art’(너는 ~다)라고 한다. 개인을 부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개념 자체를 없앤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 1948년 당시 스탈린의 공산독재 체제와 유사한 억압된 미래 상을 특유의 저널리스트로서의 치밀하고 정교한 언어로 너무나 생생히 그렸다. 그가 그린 암울한 미래가 결코 실현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 세계 곳곳에서 보안이라는 명목으로 24시간 작동하는 수많은 감시카메라들이 실은 또 다른,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빅 브라더’의 눈들 중 하나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기우(杞憂)일까?
– 빅데이터가 빅브라더?
특히, 요즘 각광 받는 ‘빅 데이터(Big Data)’는 방대한 데이터를 발달된 정보통신 기술로서 분석함으로써 이제까지 상상할 수 없던 새로운 가치와 사업을 창조한다고 힌다.
이런 ‘빅 데이터’가 악용되어 빅브라더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 결말
윈스턴과 줄리아는 애정부에서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모진 고문을 당하고, 진심으로 ‘빅브라더’를 사랑하는 인간으로 거듭난듯 둘은 우연히 재회하지만, 이제 예전에 사랑하는 그들이 아니다. 쓸쓸히 사형 집행을 기다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명확하지 않고 애매한 결말 때문에 여러 상상을 하게 된다. 당에게 내면까지 세뇌당한 데다가, 당의 변덕에 따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채로 목숨만 연명하는 처지니 데드 엔드는 아니지만 배드 엔딩이다.
소설에서는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다”(He loved Big Brother)로 끝나는 마지막 문장이 일품이다. 사상 경찰에 체포되기 전에 줄리아는 윈스턴에게 “그들은 당신의 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고, 윈스턴도 동의한다. 체포되어 오브라이언이 주도하는 모진 고문과 세뇌, 그리고 죄중단 훈련과 이중사고를 통해 윈스턴은 마침내 당의 강령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끝내 오브라이언이 “빅브라더에 대한 자네의 진심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윈스턴은 “그를 증오한다”라는 말로 응수한다.
그러자 윈스턴은 애정부에 끌려온 모든 정치범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고문실인 101호실로 끌려가 마침내 자신이 절대 배신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줄리아마저 배신하고 만다. 결국 그는 자신의 마지막 남은 인간성까지 모조리 말살당하고, 당이 바라는 인간성으로 채워진다. 이는 곧, 건드릴 수 없다고 믿었던 윈스턴의 자아를 끝내 당의 입맛에 맞게 개조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묘사한다.
줄리아도 당에게 세뇌당해서 마지막 장면 직전에 만났을 때 윈스턴에게 별다른 감정이 남아있지 않다. 화면상으로 전두엽 절제술의 상처 자국이 있는 걸로 묘사했다. 소설에서 나온 “이마를 가로질러 관자놀이까지 기다란 흉터가 있었다”의 묘사인 듯하다. 소설에는 육감적이었던 몸도 매력없이 뚱뚱해졌다는 묘사도 있다. 이는 윈스턴도 마찬가지인데, 배는 볼록 나왔고, 치아는 약해져 조금만 흔들어도 빠지고, 심지어 탈모까지 생겼다고 묘사되어 있다.
○ 영화와 소설 속 명대사
It was a bright cold day in April, and the clocks were striking thirteen.
맑고 쌀쌀한 4월의 어느 날, 시계는 13시를 가리켰다.
BIG BROTHER IS WATCHING YOU
빅 브라더는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
War is peace, Freedom is slavery, Ignorance is strength.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We shall meet in the place where there is no darkness.
우리는 어둠이 없는 곳에서 만날 것이오.
2 plus 2 equals 5.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다.
Do it to Julia! Not me!
줄리아에게 하시오! 나 말고!
He loved Big Brother.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