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아니아 한인교회 탐방
시드니순복음교회 (담임 김범석 목사)
남태평양의 바누아투, 피지에 선교를 다녀온 직후 김범석 목사를 기자가 만났다.
시드니 순복음교회는 시드니에서도 상징적인 디아스포라 한인교회이다.
30여년 전 초대 목사로 고 정우성 목사가 부임해 예배 드리는 소리, 찬양 부르는 소리 등이 시끄럽다는 호주 주민들의 민원으로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예배를 드리다가 비교적 짧은 시간에 현재의 교회부지를 매입 건축하게 된 것이 1990년도의 일이다.
이민교회가 긴 역사를 가지기 힘든 척박함 속에서 복음에 대한 열정이 만들어 낸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다.
그 축복의 통로답게 교회는 나날이 부흥하고 건강한 교회로 성장해 왔다.
선교여행으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김 목사에게 기자가 꽤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정도 규모의 이민교회면 내실을 다지면서 지교회 목회만 감당해도 되지 않느냐고.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죽습니다. 그 순간이 위험한 신호인 것이죠.”
복음 앞에는 적당함과 타협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말이다.
호주는 위치적으로 남태평양의 수 많은 작은 섬나라 국가들과 인접해있다.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바누아투, 피지, 뉴칼레도니아, 사모아, 통가 등이 그곳이다.
이러한 남태평양의 국가들은 타 지역보다 선교사들이 부족하다.
선교사들이 부족하다는 것은 복음의 효력 또한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김 목사는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한다.
“제가 디아스포라잖아요. 하나님이 이곳에 보내셨다면 그 목적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끝없이 두드리며 구해야 하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감당하지 못했던 곳이 남태평양입니다. 세계교회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우리교회라도 가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오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사실 선교 마인드는 고 정우성 목사의 목회철학이기도 했다.
수많은 남태평양의 나라들에 제대로 전해진 복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들 나라에서도 이단들의 활동은 이루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몰몬교와 여호와의 증인들은 돈을 갖다 붓고 있는 실정이란다.
통가의 경우 마을마다 몰몬교회가 없지 않을 정도로 깊이 들어와 제대로 된 복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실정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짝퉁 물건은 명품을 카피한 것인데, 명품이 없다면 짝퉁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막론하고 교회가 세워지는 곳이면 이단들도 따라 왔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교회보다 이단들이 한발 더 빠르다고 한다.
호주에 한인 디아스포라와 한인교회들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끊임없이 하나님께 질문하는 김범석
목사.
“결국엔 디아스포라 교회가 그 지역과 함께 주변을 돌아보고 보살피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직 젊은 목회자여서 일까?
김 목사의 선교적 마인드는 기발했다.
선교팀이 계획을 세워 선교지에 도착하게 되는 순간부터가 선교라고 말하는 김 목사.
“가면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하고, 택시를 타든, 버스를 타든 돈을 쓰게 되고 그 돈은 선교지의 경제에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들고 가서 한 보따리 풀어 놓고 올 수도 있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복음 보따리만 들고 간다 하더라도 사소하고 작은 그것부터가 선교의 시작인 것이죠”
김 목사는 단기 선교라는 것이 선교지에 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않냐며 다소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사실 필자도 단기선교를 갈 때 선교지를 위한 절실한 복음적 마인드 보다는 나의 개인적인 욕구가 더 앞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김 목사는 “그러한 자기를 위한 단기선교였지만, 꾸준하게 중장기적으로 지속된다면 그때부터 은혜를 끼치고 변화되고 열매 맺게 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작지만 복음 앞에 당당하고 강한 사람. 김 목사는 마치 ‘작은 거인’ 같았다.
김범석 목사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88년도에 가족과 함께 이민을 왔다.
당시 화학공학자였던 부친을 따라 낯선 타국에 왔지만 졸업을 하지 않고 온 상태라 고등학교3학년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이듬해 대학에 진학하지만, 이내 2학년 즈음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게 되고 신학에 대한 열정을 품게 된다.
이후, 힐송 College에 입학해 공부하면서 중고등부 교사로 전도사로 사역하는 3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돈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헌신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김 목사의 부친은 상당한 수재였다.
경남 의령 시골 깡촌에서 호롱불 켜가며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전국대학입시시험 성적 전국 등수가 한자릿수일 정도니…
그런 부친의 좋은 DNA를 물려받았는지, 그는 다시 시드니대학교에서 경제학부 마케팅을 전공했다. 관련된 일을 1년 정도 하다가 다시 콜링을 받는다.
좀 더 전문적인 신학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갈 것을 결정하고, 가족과 함께 LA 패서데나 지역에 있는 세계적인 신학교 풀러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는 꼬박 6년을 신학과 사투를 벌인다.
조금 더 쉽게 가는 길도 있었지만, 타협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어려운 길을 선택해 스스로 정금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LA순복음교회를 섬기며 많은 목회자들과 수준 높은 교제를 나누었다.
김 목사가 체류할 당시,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의 처남인 김성수 목사, 분당순복음교회 당회장 이태근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현 당회장 이영훈 목사가 LA순복음교회에 시무했으며, 그들의 목회를 목격하고 섬기면서 사단취장했다.
6년의 공부를 마치고 지난 2007년 8월 귀국, 고 정우성 목사의 목회철학 아래 영어예배와 수요예배에
서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부목사로 섬기던 중 지난해 3월 담임 정우성목사가 소천한다.
시드니순복음교회 성도들의 정우성 목사에 대한 사랑은 사실 아주 각별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 맥락에서 교회와 성도들이 조금은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질문을 던져보았다.
“평생 목양일념으로 사셨던 분인데 아버지의 부르심을 받고 운명하셨어요. 정우성 목사님께서 가셨던 그 의의 길만 따라 간다면 어떤 두려움과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또, 다음세대에 대한 강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지금은 교회가 교회다운 기능을 상실하고, 세상이 교회 걱정을 넘어 교회를 욕하며, 현시대가 다음세대를 잃어버리고 있는 시대다.
“다음세대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함께 알고 나눠야 합니다. 교회로 방향을 선회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마음속에 없기 때문인데, 어떻게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게 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교회들은 생각해야 합니다.”
바다에서 큰 배보다 작은 배가 방향을 돌리기 쉽듯, 대형교회보다는 작은 규모의 교회들이 변화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김 목사 또한, 이 곳 시드니에서도 다음세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작은 교회들이 연합해서 역동적으로 다음세대를 위해 일한다면 대형교회들도 서서히 발맞춰 동역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왔으니, 이제 제대로 섬기는 일만 남았다.
인터뷰어 = 송준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