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이야기(21)
한 유대인 의사 이야기
얼마 전 유대인 의사를 초청해서 한인 교인들을 위한 강연회를 가졌다. 강사는 시드니 의대의 정신과 교수이며, 국가에 공헌도를 인정 받는 이에게 주는 호주 무공 훈장(AM-Australia Medalist)을 받은 Garry Walter 교수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오스트리아에서 성장해 비엔나 의대에서 공부하고 의사가 된 Otto Walter이다. 원래 그의 이름은 유대적인 다른 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유럽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이 시작 되고 학교와 사회에서 유대인에 대한 시선이 집중 되자 개명하게 되었다. 그는 나치가 정권을 잡고 유대인 들을 더욱 극심하게 핍박하는 가운데 학문적인 자격을 갗추고 공식적인 의사가 되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독일인이나 다른 국민들에게 주어지는 동등한 자격을 그들은 누릴 수 없었다. 특히 1938년 11월9-10일에 걸쳐 독일 전역에 걸쳐 수 만개의 유대인 가게와, 회당(Synagogue)을 부수고 유대인 거리의 모든 유치창이 깨어지며 그들의 재산과 살 권리를
박탈한 Krystallnacht(수정의 밤) 가 자행 되면서 Otto Walter는 독일을 피해 인근 국가로 피신하기 시작 하면서 그의 도피자의 삶은 시작 되었다.
Otto의 이야기로 본격적으로 들아가면, 할아버지 Otto의 본래 이름은 Osias Wucher 로 고리대금업자라는 뜻을 가진 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학문에 뜻을 두고 비엔나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는1913년부터 그의 학문적인 여정의 시작과 함께 이름을 Otto Walter로 개명하기로 결단하게 된다. 그가 의대생으로 비엔나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될 당시에 비엔나는 저명한 유대인 인사들로 인해 명성을 얻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철학자였던 마틴부버나 작가였던 프란츠 카프카나 의학자였던 알프레드 아들러와 같은 이들이 있었다. 그 뿐 아니라 비엔나 대학 의과의 41% 는 유대인 학생들이어서, 그만큼 의학 분야에서 유대인들이 기여하고 있는 바가 많았었다. 그러나 Otto가 공부하던 때는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비엔나를 비롯한 유럽이 혼란스러운 시대였으며, 그 때문에 의대생들의 대부분이 전쟁에서 봉사를 위해 군의관으로 참여하기 위해 학문을 그만두어야 했던 어지럽던 시대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Otto는 두려워하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고 용감히 전투에 참여하여 전문의들이 할 수 있는 수술에도 참여하는 등 기여하는 바가 많아 국가에서 주는 훈장과 메달을 세개나 타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전쟁이 종식된 이후 Otto는 다시 비엔나로 돌아와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공부를 마치게 되는데 그 후 그는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절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평온한 때도 잠시, 독일 나치 정권이 비엔나를 점령하여 들어오면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과정에서 비엔나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끌려가고, 재산을 몰살당하고 그들의 작업장과 사업등이 모두 문을 닫아야 하는 좌절시런 시절을 겪게 된다. Otto는 이러한 시절 가운데 사랑하는 아내와 16살난 아들과 반년을 떨어져 살아야하는 아픔도 겪었으며, 다시 가정으로 돌아오게 된 이후에는 나치에 의해서 의사로서 생활을 영위할 수 없었던 좌절을 극복하고, 식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타국에 망명을 하기 위한 노력들을 가해야 했다. 먼저는 캐나다와 미국으로 도망가기 위한 그의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자 비엔나에서 가까운 동유럽 등을 전전하면서 난민과 같이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삶을 살아야 했는데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다로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로,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로 그와 가족들은 부단하게 거주할 곳을 찾아 헤매며 도망다녔다. 이러한 와중에 그는 그가 사랑하던 형과 동생을 잃었으며, 그가 마침내 터키를 향한 배를 타고 종착지인 팔레스타인에서 비자를 받아 의사로서 전문적인 일들을 새롭게 감당하며 삶의 터전을 잡게 되면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는 등 망명의 여정 가운데 가족들의 부고를 많이 듣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서 Otto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뼈저린 아픔과 절망을 극복하여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종국에는 Otto 가족은 멜버른을 거쳐 시드니에서 마지막 망명 생활을 종결하게 되는데, 세대를 거쳐 오스트리아의 문화 가운데 뿌리를 두고 그들의 생활 기반을 잡는 과정 가운데 Otto가 겪게 되는 삶의 질고들은 또한 호주에 정착한 1세대로서 우리들도 상상해볼 만한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전문인으로서의 자신의 자긍심이 짓밟히고, 의사 자격증을 인정받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새로운 직업을 선택해야 했던 과정이나, 자신보다 유능하지 못한 의사들에게 손을 내밀어 기회를 얻기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했던 이야기들은이민 1세대로서 부닫혀야 하는 지금의 현실과도 동일하며 수십년 전에는 결코 극복하기 쉽지 않은 장벽들이 었다. 이러한 Otto집안의 이민 1세대 겪은 어려움과 그의 정신적인 충격들과 이것을 치료하고 극복해 가는 과정은 손자인 Garry에게도 도전이 되면서 또한 할아버지에 대한 아쉬움과 진한 동정심을 유발하게 하였는데 이 때문에 그는 할아버지를 치료하였던 정신과 의사들에대한 말할 수 없는 감사하는 마음을 안고 나중에 자신도 또한 정신과 의사가 되게 되었다.
이러한 유대인의 3세대를 거친 한 가족사를 들으면서, 2차대전과 나치의 학살과 수용소라는 역사적 질고 앞에서도 끈질기게 이겨온 유대인들의 생명력과 정체성에 대해서 주목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아마 다른 무엇이 아닌, 그들이 어느 곳에 흩어져 있을 지라도 성경적, 문화적 정체성이 그들의 공동체적인 삶의 중심에 있고, 그것은 바로 가족 안에 있는 따뜻한 사랑과 서로를 향한 온전한 신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때로 힘든 사건을 겪게 되고, 자녀세대와 부모세대가 함께 할 수 없는 것 같은 상황들 가운데 외롭게 섬처럼 고민하는 시간들을 가지는 것 같다. 그러나 외부의 고통을 함께 누리고 극복할 수 있는 가족의 힘과 그 속에 연대하고 체휼하는 마음은 세대를 거쳐서 소중하게 가족의 전통으로 내려오고 그것이 오늘 또 새로운 이민의 역사를 써가는 우리에게도 잊지말아야 필요한 교훈이기도 하다.
정원일 목사 (Christians for Israel – National Director. Korea)
베다니 사역 본부 대표, 키비 호주 대표(문화 교류학 박사 과정 중)
0410-430-677, wijung@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