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홀로코스트 추모, ‘2015 Kristallnacht Commemoration’ 개최
유대인 학살의 역사,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
지난 11월 8일(주일) 오후 6시 시드니유대인박물관(Sydney Jewish Museum, 146 Darlinghurst Rd Darlinghurst)에서는 ‘2015 Kristallnacht Commemoration’(깨진 유리의 밤 기념) 행사가 열렸다.
이날은 1938년 11월 9일 발생한 유대인 홀로코스트 77주년을 기념하며 추모노래, 다니 호버그(NSW 유대인회 Shoah Remembrance Committee 대표)의 취지 설명, Kristallnacht Commemoration 관계 가족의 간증(Robyn Bloom), Cheryl Koenig OAM의 강연, 제레미 스피낙(NSW 유대인회 회장)의 감사인사 순으로 진행됐다. 다니 호버그씨는 행사를 준비하며 “이번 Kristallnacht Commemoration 77주년을 맞아 과거를 용서하되 잊지는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Kristallnacht Commemoration(깨진 유리의 밤 기념)
‘Kristallnacht’은 독일식 표현(영문으로는 ‘Night of Broken Glass’)으로 1938년 11월 9일 밤 유태인에 대한 폭력이 독일 전역에서 발생해 상점의 창문 유리들이 깨져 거리에 흩어져 있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이 사건은 파리에서 유대인 청소년이 독일 관리를 피살한 것에 대한 독일인의 분노에 비롯되어 계획하지 않은 우발적인 일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독일 선전부 장관 요셉 괴벨스와 다른 나치들이 주도면밀하게 조작한 프로그램이었다.
사건 2일 만에 250개의 회당이 불타고, 7,000개 이상의 유대인 상점이 폐허가 되고 약탈되었으며, 수많은 유태인이 살해되고, 유대인 묘지, 병원, 학교 및 가정집 등이 약탈되었는데 경찰과 소방대는 이를 방관만 했다.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아침 3만명의 독일계 유대인 남성들이 유대인이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집단수용소로 보내졌는데 그중 수백명이 학살되었다. 독일 나치는 대 박해 이후 유대인에게 잔해 청소와 보수 명령을 내렸으며, 유대인들에게는 손해에 대한 보험금 지급도 금지하고 오히려 보험금을 나치가 가로채기도 했다.
호주의 디아스포라 유대인
세계 유대인 인구를 1,700만명으로 추산할 때 500만명 정도가 이스라엘에 거주하고 그 외 더 많은 인구가 해외 디아스포라(Diaspora)되어 있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유대인들의 생존능력은 신비하기까지 하다.
호주에 유대인들의 유입은 분명치 않으나 1788년 영국에서 첫 죄수호송선이 호주로 왔을 때 유대인들도 함께 왔다고 본다. 1828년에는 100여명의 유대인이 호주에 정착했고, 1841에는 1,000여명으로 파악되었다. 이후 빅토리아주에 금광개발 붐이 일면서 1861년에는 5,486명으로 급증하였고, 1933년 유대인의 수는 23,000명으로 앵글로 셀틱의 배경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1차 세계대전 이후 1933년과 39년 사이에는 8,000명이 호주로 이민을 왔으며,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과 55년 사이에는 27,000명의 유대인들이 이민을 왔는데 이들은 나치에 의해 저질러진 동유럽의 인종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2차 세계대전 후 이민 온 동유럽 유대인들은 ‘호주 유대인 복지협회’(Australian Jewish Welfare Societies)와 ‘호주 유대인 복지와 구제협회’(Australian Jewish Welfare and Relief Society)란 두 기관의 도움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그들의 신앙의 고수하고 신앙공동체와 함께 민족공동체를 지켜왔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호주에 건너와서도 그들의 신앙을 고수하고, 회당과 성전을 세웠다. 첫 회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유대인들은 가정과 상점 등에서 모임을 가져오다가 공동체가 성장하면서 1844년 시드니의 York Street에 호주의 첫 회당(Synagogue)을 세웠다. 시드니를 시작으로 타즈마니아의 Hobart(1845), Launceston(1846), 빅토리아주의 Melbourne(1847), 그리고 남호주의 Adelaide(1850)에 회당을 세워나갔다. 호주 최초로 시드니의 York Street에 세워진 회당에서 30여 년간 모임을 가졌으며 공동체의 확대로 인해 더 큰 회당을 건축하여 1878년 이전하게 되었는데 그곳이 Elizabeth Street에 위치한 대(大)회당(The Great Synagogue)이다.
또한 호주에서 유대인박물관은 멜버른에 ‘호주 유대인박물관’으로 1982년 먼저 개설되었고, 시드니에는 1992년 11월 18일 달링허스트(148 Darlinghurst Rd)에 ‘시드니유대인박물관’이란 이름으로 호주 유대인 역사와 대학살 박물관을 열어 시드니에 유대인공동체의 시작과 200여년 간의 경과를 전시하고 있다. 장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 박물관은 방문객들에게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증인으로서, 그리고 학살된 유대인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장소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자료들뿐 아니라, 자료를 보여주는 박물관 자체의 기술에도 놀라게 된다. 전시실 내에서는 생생한 음향 및 시청각 자료, 실물크기의 조각상과 디오라마(틈새를 통해 모형 내부를 확대해 보는 장치) 등을 통해 지나간 역사의 현장을 보다 실감나게 배울 수 있다. 각종 문서와 신문을 탐색하고 멀티미디어 자료들을 통해 더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박물관 내의 상점에서는 각종 기념품 및 유대인 학살을 다룬 책들을 구입할 수 있다. 또한 시드니의 중심지인 George Street를 중심으로 유대인들의 사업지구로 활발히 확대해 가고 있는 추세이다.
한편 호주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을 위한 기독교계의 접촉도 실시되고 있는데 KIBI(Korea Israel Bible Institute, 호주대표 정원일 목사, 베다니사역본부 대표), Jews for Jesus Australia, CWI(Christian Witness to Israel, 박계천 목사) 등은 쉽지 않은 호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은 Christian이란 표현보다는 Messianic Jews라 부르며 여전히 유대인으로서의 긍지를 유지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