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프랑스> 방문기(3)
노트르담(Notre-Dame) 대성당
프랑스 고딕 건축의 정수
| 지난 2016년 6월 20일(월)부터 7월 2일(토)까지 호주에서 출발해 한국을 경유한 유럽(프랑스)방문이 있었다. 6월 21일(화)부터 24일(금)까지 파리한인침례교회(이상구 목사 시무) 비전센터(수양관)에서 “유럽한인디아스포로 신앙공동체 이해(Understanding Korean Christian Diaspora in Europe)”란 주제로 열렸으며 포럼 후 파리인근의 기독문화유적들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_편집자 주 |
‘칼뱅의 생가’와 ‘느와용 대성당’에 이어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문했다. 프랑스 파리의 시테 섬의 동쪽 세느강변에 위치해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프,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은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이 성당은 지금도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회 건물로서 파리 대주교좌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노트르담 성당은 흔히 프랑스 고딕 건축의 정수로 이야기되는데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 비올레르뒤크에 의해 파괴된 상태에서 보호되어 복구되었다.
1160년 파리의 성당이 ‘유럽 임금들의 본당’이 되자 성당의 규모가 제 역할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 모리스 드 쉴리는 파리 교구장은 이전의 성당을 무너뜨렸다. 전해지는 바로는 파리의 새로운 영광스러운 대성당의 모습을 상상한 드 쉴리가 그것을 원래 성당의 바깥 흙에 스케치하였다고 한다. 건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교구장은 몇 채의 집들을 무너뜨렸고, 성당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운송하기 위해 새 도로를 만들었다.
공사는 국왕 루이 7세 시대인 1163년에 시작되며 드 쉴리 주교는 대성당을 건설하는 데에 자신의 삶과 재산 대부분을 바쳤다.
독특한 탑 두 개와 서쪽 정면을 건설하는 일은 약 1200년에 시작되었는데, 일반적인 건설 과정과는 달리 중랑(中廊)이 완성되기 전이었
다. 건설 과정에서 많은 건축가가 일했으며, 이는 서쪽 정면과 두 탑의 각각 다른 높이와 다른 양식에서 발견된다. 1210년에서 1220년 사이, 4등 건축가는 장미창이 있는 층과 탑 뒤의 거대한 현관의 건설 과정을 감독하였다. 두 탑은 1245년경에 완성되었으며, 대성당은 1345년경에 완성되었다.
1163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1345년경 모두 완성되기까지 무려 182년이 걸린 노트르담 대성당은 최초의 고딕 성당 가운데 하나이며, 고딕 전(全)시대에 걸쳐 건설하였다. 대성당의 조각들과 스테인드글라스는 자연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비춰지는 빛들은 신비감을 더해준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세계에서 최초로 벽날개를 사용한 건물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벽날개가 설계되지 않았지만 공사가 시작되고 얇은 벽들이 점점 높아지면서 커다란 균열이 벽이 밖으로 밀려 성당의 건축가들은 바깥벽 주변에 지지벽을 만들었고, 그 뒤에 비슷한 방법으로 추가되었다고 한다.
노트르담 성당은 몇 번의 수난을 거쳐 현재에 이른다.
1548년 앙리2세때 프랑스의 개신교도를 더 강하게 박해하면서 화형재판소를 설치하기에 이른다. 이에 개신교도들(위그노들)은 강하게 저항하면서 대성당의 성상들을 우상숭배라고 여겨 대성당의 외관을 파괴했다. 루이 14세 때와 루이 15세 때에 전 유럽에 걸쳐 대성당들을 현대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을 개축하였다. 무덤과 스테인드글라스는 제거되었는데, 다행히도 북쪽과 남쪽의 장미창은 파괴되지 않았다.
또한 1790년경 프랑스 혁명의 급진적인 시기에 노트르담 대성당은 반기독교 사상에 의해 모독을 당했으며, 많은 성상이 손상되거나 파괴되었다. 1793년에는 대성당의 많은 보물들은 파괴되거나 강탈당했다. 구약 성서에 나오는 유다 왕들의 조각상들이 봉건질서를 상징하는 프랑스의 왕들로 오인되어 머리가 잘려나갔다. 잘려나간 많은 머리들이 1977년에 인근을 발굴하면서 발견되었고, 지금은 클뤼니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시대에 제대에 위치해 있던 성모 마리아상은 자유의 여신상으로 교체되었다. 중요한 종들은 간신히 용해되는 것에서 피할 수 있었다. 성당의 내부는 말 먹이나 음식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로 사용되었다.
복원 계획은 건축가인 장바티스트앙투안 라쉬와 외젠 비올레르뒤크의 감독으로 1845년에 시작되었다. 플레슈(flèche, 첨탑의 일종)를 건립하고 시메르 갤러리(alerie des Chimères)의 키메라들을 추가하는 것을 포함하여 25년간 계속되었다. 비올레르뒤크는 자신의 작품에 언제나 서명을 했는데, 고딕 볼트(궁륭)를 닮은 날개 구조를 가진 박쥐를 같이 그려 넣었다.
1871년 파리 코뮌 시기에 노트르담 대성당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파리 코뮌이 민중들에 의해 자치가 실시된 사회주의 자치정부였기 때문이었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독일이 창문을 폭격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1939년 9월 11일에 창문을 분리시켰다. 전쟁이 끝나자 이 창문들은 다시 복원되었다. 1991년 유지 및 복원 계획이 시작되었는데, 애초에는 10년간 지속될 예정이었으나 2008년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데, 낡은 조각상들을 청소하고 복원하는 것이 대단히 섬세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다방면에 걸친 복원 작업이 완료되어 대성당은 이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1163년부터 1345년까지, 장장 3세기에 걸친 대공사 끝에 세워진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 시테섬의 명물이다. 잔 다르크의 명예회복 재판,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등 역사적인 사건들이 일어난 무대이기도 하다. 고딕 양식의 대표적 건물인 노트르담 대성당의 중앙문에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예수의 모습이 ‘마지막 심판’이라는 제목의 화려한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내부는 높은 천정과 함께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다. 곧은 직선만 보이는 정면 외관과 달리, 그 뒷면에는 곡선으로 이루어진 벽체들이 있다. 파리 곳곳의 랜드마크나 박물관에 쓸 수 있는 뮤지엄 패스(Museum Pass)로 입장 가능하다.
– 노트르담 대성당 안내
주소: 6 Parvis Notre-Dame-Pl. Jean-Paul II, 75004 Paris
전화번호: +33 01 42 34 56 10
대중교통: 지하철 이용시 4호선의 Cite역 하차 후 도보로 2분 소요
오픈시간: 성당 08:00~18:45(토, 일 8:00~19:45), 종탑 4~9월 10:00~18:30, 10~3월 10:00~17:30(7~8월 금, 토 10:00~23:00)
휴무일: 1월 1일, 5월 1일, 12월 25일
홈페이지: www.notredamedeparis.fr
성당 3D 보기: https://www.abc.net.au/news/2019-04-18/notre-dame-walk-through/11024512
임운규 목사(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