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프랑스> 방문기(4)
몽마르뜨 언덕의 사크레쾨르(Sacréé-Cœœur) 대성당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어우러진 건축 양식
| 지난 2016년 6월 20일(월)부터 7월 2일(토)까지 호주에서 출발해 한국을 경유한 유럽(프랑스)방문이 있었다. 6월 21일(화)부터 24일(금)까지 파리한인침례교회(이상구 목사 시무) 비전센터(수양관)에서 “유럽한인디아스포로 신앙공동체 이해(Understanding Korean Christian Diaspora in Europe)”란 주제로 열렸으며 포럼 후 파리인근의 기독문화유적들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_편집자 주 |
사크레쾨르(Sacréé-Cœœur) 대성당은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 위치한 새하얀 성당이다. 1870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 정부와 이에 반발하여 일어난 파리 코뮌 항쟁 등으로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지어진 성당이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한 뒤 침체된 국민의 사기를 고양시킬 목적으로 모금한 돈으로 만들어졌다.
암울한 파리의 분위기를 영적인 힘으로 이기고자 가톨릭교도들이 모금한 기부금으로 1877년부터 약 40년에 걸쳐 건축했다. 1876년에 기공되어 1910년에 완성되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의 항복 후에 헌당식을 했다.
이처럼 19세기 말 몽마르트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사크레쾨르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어우러진 건축 양식을 지니며, 리지외 테레즈 성녀(Sainte-Thérèse de Lisieux) 대성당과 같은 건축 양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사크레 쾨르는 단순히 역사와 종교적인 장소로서의 파리를 상징하는 것 이상의 예술가, 문학 카페, 캬바레와
같은 동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며 품어온 몽마르트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장소이다.
특히 사크레쾨르 성당 앞에 루이 9세와 잔다르크 청동상은 당시의 의지와 분위기를 나타내며 진취적인 프랑스의 회복의 소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마 비잔틴 양식의 외관으로 파리의 다른 성당들과는 다른 이국적인 모습이다. 비잔틴 양식으로 하얀 돔이 우아한 자태로 솟아 있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몽마르뜨 언덕에 위치해 있어 몽마르뜨 성당이라고도 불린다. 파리 시내에서 130m 높이의 몽마르뜨 언덕은 파리시내 전경을 보기 좋다. 몽마르뜨는 몽(Mont, 언덕)과 마르뜨(Marte, 순례자)의 합성어로 주변에는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가 함께 살았던 ‘반 고흐의 집’, 시인 ‘트리스탄 차라의 집’, 작곡가 ‘조르주 비제의 집’ 등 예술가들의 살아온 흔적이 남아 있다. 나중에 생 제르맹 거리로 예술가들이 떠나기 전까지 몽마르뜨는 예술가들이 서로 교류하며 프랑스의 문화와 예술을 꽃피운 곳이다. 날씨가 좋은 날은 몽마르뜨에서 파리의 전경을 보면서 걸을 수 있어 산책길로 좋은데 사크레쾨르 성당이 대표적이다.
해발고도 129m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사크레쾨르 성당은 에펠탑, 몽파르나스 타워에서 보는 파리 전경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특히 날씨가 좋은 날은 시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하늘의 파란색과 성당의 새하얀 대리석과 어울려 더욱 밝고 멋스럽게 느껴진다.
성당 앞쪽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처음 길을 닦았을 때 사용된 돌들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데, 실제로 파리 코뮌 마지막 저항 때 무기가 없던 노동자들이 바닥의 돌을 뽑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내부에는 뤽 올리비에르 메르송이 제작한 세계에서 가장 큰 모자이크를 볼 수 있다. 성당의 종루에는 26t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종이 있다.
사크레쾨르 대성당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몽마르뜨 묘지 외에도 테르트르 광장은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을 볼 수 있어 올라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다. 아직도 많은 예술가들이 몽마르뜨 언덕에 거주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관광객들에게 판매하면서 살고 있다.
– 사크레 쾨르 대성당 안내
주소: 35 Rue du Chevalier de la Barre, 75018 Paris
전화: +33 1 53 41 89 00
임운규 목사(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