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프랑스> 방문기(7)
클로드 모네의 연작모델, 노르망디 루앙(Rouen)대성당
시련의 역사로 초기 고딕양식과 후기 프랑부아양 양식이 첨가된 다양성이 어우러진 성당
| 지난 2016년 6월 20일(월)부터 7월 2일(토)까지 호주에서 출발해 한국을 경유한 유럽(프랑스)방문이 있었다. 6월 21일(화)부터 24일(금)까지 파리한인침례교회(이상구 목사 시무) 비전센터(수양관)에서 “유럽한인디아스포로 신앙공동체 이해(Understanding Korean Christian Diaspora in Europe)”란 주제로 열렸으며 포럼 후 파리인근의 기독문화유적들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_편집자 주 |
일정가운데 하루는 지베르니(Giverny)에 위치한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생가와 묘지, 루앙(Rouen)에 자리한 루앙대성당(Cathedrale Notre-Dame de Rouen)을 찾았다.
17세기와 18세기 루앙(Rouen)은 프랑스의 두 번째 도시로써 7만5천명의 거주자가 있었지만 인구는 늘지 않고 계속 정체되어 있었으며, 루앙만의 활기찬 모습도 점점 빛을 잃어갔다. 그럼에도 루앙인들은 바다에서의 활동은 활발히 진행하였다. 교회는 도시의 풍경을 잘 보여주였으며, 루앙 대성당도 완성되었다. 수도원의 배치와 몇몇 학교의 건립이 이루어졌으며, 예수회 수도사 대학은 가장 중요한 시설로 꼽히게 되었다. 코르네유, 퐁트넬, 블레즈 파스칼이 이 당시에 루앙에 살거나 머물렀었다.
19세기 루앙은 다른 프랑스 지역과 마찬가지로 산업 혁명의 영향아래 놓여 있었으며, 이는 루앙의 섬유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었다. 루앙 미술관, 예술 극장 등 새로운 건축물들이 도시를 바꾸어 놓았다. 19세기 동안 플로베르나 모파상과 같은 작가들, 에콜 데 루앙의 인상주의파 화가들, 모네의 ‘루앙 대성당’ 연작 작품들로 인해 루앙의 문화는 더욱 풍부해졌다. 게다가 현재 루앙 관광안내 사무소의 전신인 재정관이 이러한 루앙의 번성했던 문화의 한 부분을 되살릴 것이며, 이는 2010년 여름 처음 열린 ‘노르망디 인상주의’ 축제에서 보여준 노르망디만의 예술에서 나타난다.
제 1차 세계 대전 동안 루앙은 전선의 후방 기지 역할을 했다. 제 2차 세계 대전은 루앙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었으며, 1944년 캐나다가 루앙을 해방시켰을 때 이미 폐허로 변해버렸다. 전쟁이 끝나고 몇 년 동안은 재건의 시기였다. 재건은 예전의 루앙을 보존하는데 중점을 두며, 길의 폭도 예전과 똑같이 만들고 도보와 몇 백년된 거대 유물들을 복원해 예전의 매력적인 루앙으로 되돌려 놓았다. 오늘날 루앙에는 11만명의 거주민들이 산다. 2010년 루앙은 71개의 시와 50만명의 거주민이 사는 프랑스의 첫 번째 주거 밀집 공동체로 선정된 루앙 엘뵈프 오스트르베르트(Rouen-Elbeuf-Austreberthe)의 중심이 되었다.
역사적인 도시 루앙의 중심에 위치한 루앙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은 고딕 예술의 발전 모습을 축약적으로
보여준다. 몇 세기를 지나며 파괴되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계속 변화하며 살아있는 건축물로 남아 있다.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대주교관이 있는 이곳은 여전히 대주교가 머무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성당의 합창대 쪽에는 노르망디 공작의 묘비가 있으며, 911년에 사망한 노르망디 첫 공작인 롤롱(Rollon) 공작의 묘비, 잉글랜드의 왕이자 노르망디 공작이기도 한 사자왕 리처드 1세의 심장이 있다고 한다.
루앙 대성당은 프랑스의 성당 중에서 많은 수난을 당한 성당이다. 1200년 대화재의 참사를 겪어야 했고 이어지는 잉글랜드와 프랑스 왕권 쟁탈의 목표로 전행된 백년전쟁에서 극심한 손상을 입었다. 16세기 초인 1514년의 또 한번의 큰 화재를 당해야 했고, 이어서 종교전쟁 당시 개신교인 칼빈파에 의한 대단한 파괴와 약탈을 겪어야 했다.
1789년 혁명 당시의 약탈과 파손, 1822년의 첨탑에 일어난 화재, 그리고 마지막으로 2차 대전 당시 투하된 7발의 폭탄에 의한 파괴 등 노르망디 지방의 수난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성당이다. 그러나 초기 고딕 양식에 후기 프랑부아양 양식이 첨가되면서 시련의 역사 안에서 다양성이 어우러진 대성당이 되었다.
특히 루앙 대성당은 작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작품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모네는 프랑스의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인상파의 개척자의 한 사람이었다. 인상파(Impressionism)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프랑스에서 시작된 예술운동이며, 동일한 이념이나 명백히 정의된 원칙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화가들의 자유연대에서 시작되었다.
모네는 스승의 권유로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풍경화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그림을 실내에서 제작하던 시기였기에 이것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제작방법이었다. 모네는 이런 새로운 환경에서 실내 작업에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빛의 성질을 이해하였다. 이런 자연 광선에 대한 그의 지식과 화가로서의 탁월한 재능이 어우러진 작품들은 가장 순간적인 효과를 극적으로 연출하여 다른 작품에서는 보기 어려운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이처럼 모네는 빛과 기후 조건을 달리해 같은 주제를 되풀이 묘사하는 연작 제작방법과 화가 자신의 주관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작품 세계를 열어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모네는 아름다운 루앙 대성당을 주제로 야심찬 연작을 그리기 위해 1892년과 1893년 두 차례에 걸쳐 루앙 대성당을 찾았고, 1892년에는 루앙대성당 건너편 2층에 방을 세 얻고 루앙 대성당을 주제로 연속적으로 그려나갔다. 모네는 이른 아침에서 늦은 저녁에 이르기까지 햇빛의 양과 각도가 달라질 때마다 그에 따라 함께 변하는 성당의 모습을 시간대별로 그리면서 한 장소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성당의 정감을 섬세히 표현했다. 거대한 석회암 덩어리들로 된 대성당은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한숨, 탄원과 감사의 기도를 담고 있는 범상치 않은 공간이다. 작가의 관심은 성당 내부가 아니라 돌덩어리 자체를 향해 있었다. 비바람에 씻기고 손때가 묻고 먼지와 이끼가 쌓인 시간의 두터운 층들이 빛을 받아 어떻게 변하는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눈이 보이는 것을 통해 내면 영혼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모네를 매료시킨 빛은 성당 내부를 밝히는 초자연적인 성령의 상징이었다.
프랑스의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클로드 모네의 작품 ‘루앙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Rouen: 1892-1893)은 현재 프랑스 파리 오르세(Orsey)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편 잔다르크성당과 루앙대성당 사이에 위치한 루앙 시계탑(Gros-Horloge)은 고딕 양식의 종루와 아케이드, 르네상스 양식의 눈금반 등 18세기 분수를 하나로 합쳐놓은 건축물이다. 종루에는 종이 있고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기계식 시계로 19세기부터 1928년까지 작동하였다. 안에는 근대 원근법을 사용한 장식이 되어 있으며 독특한 전경을 선사한다.
– 루앙(Rouen)대성당 안내
.주소: Place de la Cathédrale, 76000 Rouen, France
.연락처: +33 2 35 71 71 60
임운규 목사(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