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영 목사의 청소년 칼럼
잃어버린 것을 찾아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세상은 참 많은 것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홍수가 나면 먹을 물을 마실 수 없듯이 말이다. 예전에 우리 부모세대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기를 밥 먹듯이 했는데, 오늘 세대들은 먹을 것이 너무 많아 무엇을 먹어야 하지를 고민하며 살아간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면 참 간단할 텐데, 선택의 폭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무엇을 선택해야 좋을지 모르는 세대들…
안데르센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면 오늘 우리가 배우고 가야 할 중요한 로드맵이 숨겨져 있다. 옷을 만드는 재봉사가 어리석은 사람이나 불성실한 사람만이 임금님의 옷을 보지 못하고 벌거벗은 몸을 볼 것이라고 이야기하게 됨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숨기는 모습을. 그렇지만 그 때 한 아이만이 자신이 보았던 것을 그대로 외치게 된다. “임금님은 벌거벗었네” 이 외침으로 어른들도 마침내 임금이 벌거벗었다고 쑥덕댈 수 있었다. 허영과 가식으로 점철된 기성세대들. 자신을 감추기 위해 화려하게 변신하는 현대의 모습들. 진실을 드러내기 보다는 거짓으로라도 완벽한 포장을 통해 상대방을 자신의 뜻대로 만들어가려는 세상의 흐름들…
그러기에 솔직한 표현을 서슴없이 내던지는 동심의 마음. 바로 진실한 마음이 그리워지는 대목이다. 본 대로 말할 수 있는 순전함. 느낀 대로 말할 수 있는 순진함. 걸러짐이 없이, 주어진 시간 속에서 솔직함으로 서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세대들.. 이 모습은 기성세대에게도 필요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자녀세대들에게는 더 더욱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조건들이다. 사람들을 기계화하거나 길들여진 동물처럼 무엇인가 필요를 제공해 주기만 하면 조용히 따라가는 모습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것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은 아닌 듯싶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존재의 의미를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주변의 분위기에 휩싸여 행동하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 한다. 남들이 그렇다하면 나도 그렇다하고, 남들이 그렇지 않다 하면 나도 그렇지 않다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찾아볼 수 없고 그저 물 흐르는 대로 갈 뿐이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가 왜 이런 진실함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 그 잃어버린 동심은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바로 이것이 앞서 가고 있는 부모세대들이 고민하며 제시해주어야 할 Sign이다. 우리들은 대부분 어려서부터 위대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성장하게 된다. 그들의 삶을 따라가면 되는지 알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참을 따라갔는데, 어느 순간 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참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노출되고 만다. 그렇기에 다음세대 주역인 자녀세대들을 위한 우리의 책임이 무겁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더 이상 우리의 자녀들이 기계적으로 누군가의 의해서 조정되거나, 동물처럼 본능에 충실한 존재로 나아가는 것을 막아서야 한다. 세상의 가치와 기준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으로서 가장 바람직하게 살아가는 듯한 착각을 하며 살아가는 걸음을 멈추게 해야 한다. 자동화된 기계가 아니고 본능적인 동물이 아닌 창조자의 형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존재의 의미를 강력하게 도전하며 심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 싸움은 자녀들에게보다는 먼저 부모세대가 싸워서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치열한 싸움의 현장을 혼자만의 싸움으로 간직하려고 하지 않고 도리어 자녀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그 싸움에 동참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할 때, 힘 있는 싸움을 싸울 수 있다. 그 처절한 싸움의 현장에서 부모와 자녀세대들은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거룩한 회복을 경험하게 된다. 그 거룩함이 회복되어질 때, 거기에서 원래 간직하고 있었던 인간의 야성인 순수함, 진실함. 그 동심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속에 간직되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한 모습으로 각 세대 간에 적용되고, 그런 세상이 도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되는 것이다.
잃어버린 것이 있어도 이내 포기하는 세대의 모습.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음에도 존재의식마저 상실된 세대.
지금이 바로 그들을 깨워 잃어버린 인간의 야성이 무엇인지 찾아내도록 해야 할 시기인 것이다.
윤석영 목사(히스교회 시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