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수 칼럼
이민자부모를 위한 “쉬운” 기독교교육이야기(8)
Q: 이민 2세자녀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그들의 특성은 무엇인가요?
A: 무엇보다 이민자녀들은 겪는 독특한 정체성형성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릭 에릭슨 (Erik Erikson) 은 한 개인이 성장하면서 만나는 심리사회적 위기에 따라 개인의 성장을 8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이 중에서 이민 2세자녀들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단계는 5단계와 6단계이다.
에릭슨의 사회심리발달단계 중, 다섯 번째 단계는 12세에서 20세까지 해당된다. 이 시기는 중, 고등학교 전체와 대학 1, 2학년 때 까지를 포괄한다. 이 시기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때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성취한 근면성으로 이제는 부모의 큰 도움 없이 스스로 중, 고등학교의 학업을 감당해야 한다. 또한 이 시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생기는데, 바로 개인정체성 형성이다. 에릭슨은 청소년 시기에 개인정체성의 혼돈을 겪는데 이를 모라토리움(Moratorium)이라고 명명했다. 모라토리움이라는 기존의 사고와 삶을 거부하는 혼돈의 기간을 거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부모에게 영향 받아 형성된 소 세계가 무너지고 이 잔해 위에 인생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목적, 방향 등이 새롭게 설정된다. 이 과도기를 어떻게 거치느냐는 개인마다 다르다. 건강하고 안정적인 정체성형성을 위해서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고 부모 외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멘토가 필요하다.
이민자녀들과 관련해서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이민 2세들은 보통의 청소년들보다 복잡하게 이 시기를 거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호주에서 소수 민족 (Ethnic Minority) 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소수 민족으로서 겪는 인종 차별과 문화적 편견 등은 그들의 개인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부모세대의 한국문화와 언어의 강요, 그리고 이로 인한 부모세대와의 갈등 또한 개인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문화와 가치, 그리고 한인공동체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결정하게 되는데 이것이 민족 정체성이다.
건강한 민족 정체성을 가진 2세들은 호주 문화와 한국 문화를 균형 있게 받아들여서 문화 간의 혼란과 갈등을 최소화한다. 이는 개인 정체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서 사회적으로, 심리적으로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나와 있다. 반면 자신의 인종적/문화적 백그라운드를 부정하거나 도외시하여 적절한 민족 정체성을 갖지 못한 2세들은 계속적인 문화 충돌과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들의 확신과 상관없이 그들이 갖는 피부색으로 인해 주류 사회에서 “참 호주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인종적 범주화 (Racial Categorisation) 라고 부른다. 교회와 가정은 그들의 이중적인 문화와 삶의 자리, 이중 정체성 형성이라는 독특성을 고려하면서 그들을 교육해야 한다. 이들의 상황에 무관심하거나 무지하여 그들의 라이프 컨텍스트와 상관없는 교육이 행해진다면 그들은 자신의 마음 문을 열지 않을 것이다.
에릭슨의 사회심리발달 여섯 번째 단계는 20세에서 24세까지 이다. 이 시기는 대학시절이거나 직장생활을 막 시작하는 때이다. 이 단계는 타인과의 연결을 추구하는 시기이다. 청소년시기를 거치며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데 몰입하던 개인은 이제는 확립된 정체성을 기반으로 타인과 관계한다. 자신의 문제에 매몰되어 주위를 돌아볼 수 없었던 청소년시기와 달리, 이제는 눈을 들어 주위를 돌아보고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 한다. 타인과의 조화를 통해 친밀감을 성취하는 것이 이 시기의 청년들의 과제이다. 특히 이성과의 관계가 친밀감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시기에 친밀감을 형성한 개인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사회생활을 할 준비가 된 것이다. 반면 타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 고립감을 느낀다. 청소년시기에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개인은 이 시기에도 자신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기에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중시하지 않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
이민자녀들과 관련하여 특기할만한 사실은 정체성형성의 과제가 청소년기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이후의 시기로 미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2세 청소년들을 연구했던 제니스 임은 많은 한인2세 학생들에게서 이러한 정체성형성의 지연현상을 발견하게 된다고 분석하면서, 1세 부모들의 강한 권위와 학업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간섭을 그 이유로 꼽았다. 예를 들어, 대학진학과 관련하여 부모가 자녀를 강하게 통제하게 되면 자녀는 자신의 정체성의 문제를 고민할 여지를 잃게 된다. 이와 함께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아동기 때 주도성을 성취하지 못하는 경우, 청소년기 때 소위 마마보이가 되어 계속해서 부모에게 과잉 의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또한 청소년기의 정체성 지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한 단계에서 이뤄야 할 과제를 제대로 성취하지 못하면 그 결과는 다음 단계로 이어져서 연쇄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청소년기에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이민자녀들에게서는 크게 두 가지 정체성 특징이 발견된다. 불확실한 정체성 (Identity Diffusion) 과 가짜 정체성 (Identity Foreclosure) 이다. 불확실한 정체성은 아직 확고한 정체성이 없는 상태이다. 아직 나란 존재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 이 상태에 머물러있는 자녀들은 유동적 정체성 (Fluid Identity), 즉 상황에 따라서 정체성이 수시로 뒤바뀐다. 반면 가짜 정체성은 (Identity Foreclosure) 는 정체성이 있지만, 진짜 자신의 정체성은 아니다. 부모나 친구의 영향을 받아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지 모라토리움을 겪지 않은 상태이기에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이라 할 수 없다. 이렇게 청소년시기에 정체성형성의 과제를 성취하지 못하면 타인과의 관계와 조화를 통해서 친밀감을 형성해야 할 대학시기에 정체성 혼란의 시기를 겪게 되고, 이는 이 후의 사회생활이나 결혼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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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수 목사 (호주 이민교회교육연구소장/ 오션그로브연합교회담임, Ph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