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인가? ‘철학적 인간론’을 연구한 막스 셸러, 헬무트 플레스너, 아놀드 겔렌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다.
막스 셸러 (Max Scheler), 헬무트 플레스너 (Helmuth Pleβner), 아놀드 겔렌 (Arnold Gehlen) 등은 ‘철학적 인간론’을 연구한다.
인간이라면 반드시 인간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인간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사유하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인간이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인간 개인의 삶 뿐 만아니라, 사회 전체에 긍정과 부정의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인간 자체에 대한 연구는 철학의 출반점이면서 동시에 철학적 탐구의 핵심적 대상이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이해는 고대로부터 있었지만, 인간 자신이 철학적 직접적인 대상이 된 것은 막스 셸러 (Max Scheler)의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후 헬무트 플레스너 (Helmuth Pleβner)의 “유기체의 단계와 인간”에 의해 확산되고, 아놀드 겔렌 (Arnold Gehlen)의 “인간”에 의해 정리 되었다. 이들의 공통적인 관심은 인간을 생물학적 관점에 서서 철학적으로 새로이 규정하려는 것으로 이것이 철학적 인간학이며, 철학적 인간학의 핵심 주제이다.

○ 막스 셸러 (Max Scheler, 1874년 8월 22일 ~ 1928년 5월 19일)
막스 셸러 (Max Scheler, 1874년 8월 22일 ~ 1928년 5월 19일)는 독일 남부 뮌헨에서 태어나 뮌헨대학교와 베를린대학교, 예나대학교에서 의학, 천문학, 사회학을 공부했으며, 1902년에 예나대학교 강사 시절에 후설 (E. Husserl)을 만나 현상학적 방법론에 관해 연구했다. 그 후 쾰른대학교와 프랑크푸르트대학교 등에서 교수를 지냈다. 셸러는 사회학과 철학, 종교 등 다방면에 걸쳐 학문적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특히 현상학적 방법에 의한 ‘실질적 가치윤리학’의 정립과 ‘철학적 인간학’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또한 만하임 (K. Mannheim)과 더불어 ‘지식사회학’의 창시자로도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저서에는 『윤리학에 있어서 형식주의와 실질적 가치윤리학)』(1916)과 『가치들의 전도에 관해(Vom Umsturz der Werte)』(1919), 『공감의 본질과 형식』(1923), 『사회학과 세계관학에 관한 저작집』(1923), 『지식의 형태와 사회』(1926), 『우주에 있어서 인간의 위치』(1928) 등이 있고, 1980년에는 셸러 전집이 스위스 베른의 프랑케 출판사에서 15권으로 간행되었으며, 이후에도 계속 유고집이 발간되고 있다.

○ 헬무트 플레스너 (Helmuth Plessner, 1892 ~ 1985)
헬무트 플레스너 (Helmuth Plessner, 1892년 9월 4일 ~ 1985년 6월 12일)는 독일의 비스바덴에서 태어나 프라이부르크 · 하이델 베르크 · 베를린 각 대학에서 의학 · 생물학 · 철학을 배우고 독자적인 인간학적 입장을 구축하였는데, 나치스의 정권탈취로 네덜란드 프로닝겐으로 이주하여 제2차대전 후 괴팅겐대학 사회학 교수가 되었다. 그의 업적은 동물심리학 · 현상학 · 사상사 · 철학사 · 사회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쳤으며, 인간 과학의 모든 달성을, E.후설에게 배운 현상학을 기초로 하는 철학적 인간학 속에서 통합하려 하였다.
헬무트 플레스너는 철학적 인간학에 대한 저서를 내며 인간의 존재에 대해 고찰했다. 이는 탈중심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을 중심으로 철학적인 고뇌를 펼 쳐냈다. (탈중심적이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만이 그 자신의 고유한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외부로부터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또한, 막스 셸러와 함께 철학적 인간학을 경험을 통해 개인의 본성을 탐구하는 유럽의 철학적 인간학을 세우는 데 이바지했다.
플레스너는 인간에 관한 철학적과제를 유기체일반이라는 영역 속 가치를 새롭게 설정하고 규명했다. (셸러와 유사한 측면)
플레스너의 인간학에서는 인간학적인 문제설 정의를 근거로 인간의 본질에 관한 해석과 의문제기, 인간의 권위상실과 무질서를 말한다. 그의 문제설정은 인간의 권위, 자유와 책임 있는 태도를 새롭게 규정짓는 과제를 갖고 있다.
오늘날의 동식물 유전자 조작이나 동물 복제가 결국 인간 복제로 이어지는 상황으로 볼 때, 이러한 위기는 종교의 구속 상실로부터 왔다고 말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특수한 형식이나 현상을 본질에 대한 징표로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인간의 본질은 삶의 제 현상들에 대한 시각의 다양성 때문이요, 열려 있는 물음이며, 어떤 초월적인 원리가 배제된 삶의 내·외적인 현상자체로부터 비롯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 아놀드 겔렌 (Arnold Gehlen, 1904년 1월 9일 ~ 1976년 1월 30일)
아르놀트 겔렌( Arnold Gehlen, 1904년 1월 9일 ~ 1976년 1월 30일)은 1904년 독일 동부의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겔렌은 10세가 되기 전 개인교사로부터 기초교육을 받은 후 1914년 10세가 되던 해에 김나지움에 입학한다. 김나지움 과정을 마친 후 겔렌은 라이프치히 대학에 진학하여 철학과 독어학 그리고 미술사를 공부했으며, 물리학과 동물학 등에도 관심을 갖고 청강했다. 그리고 1925년 겨울학기에 막스 셸러 (Max Scheler)와 니콜라이 하르트만 (Nicolai Hartmann)의 강의를 청강하면서 철학적 인간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것이 그의 존재론적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겔렌은 1927년 박사과정을 마치고 1930년 ‘사실적 정신과 비사실적 정신’ (Wirklicher und unwirklicher Geist)이란 논문으로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한다. 당시 겔렌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였던 한스 드리슈(Hans Driesch)의 생물학주의적 시각은 겔렌에게 철학적 사유의 방법론적 근거가 되었다. 1933년 30세의 젊은 나이에 겔렌은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의 정교수가 되었으며, 같은 해 출판된 ‘의지의 자유에 대한 이론’ (Theorie des Willensfreiheit)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한 학기 후 그는 다시 라이프치히로 돌아와 스승 드리슈가 정년퇴임한 자리를 이어받는다.
1940년 겔렌의 첫 번째 주저라고 할 수 있는 ‘인간’ (Der Mensch)이 출판되고, 1942년 그는 독일철학회 회장이 된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을 형태학적·생물학적 기반으로 탐구하고 있으며, 동물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인간의 생물학적 특수성을 밝혀내고 있다. 그는 이를 인간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위해 피할 수 없는 방법으로 간주했다. ‘인간’ 이후 긴 공백기를 가진 후 1949년 ‘기술 시대의 영혼’ (Die Seele im technischen Zeitalter)이 출간되고, 이것이 당시 기술 개념을 둘러싼 담론의 물꼬를 트게 된다. 아울러 이는 1960년대 후반 이후 자본주의적 기술 문화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독일에서 실증주의적인 시각에서 기술의 문제를 논할 수 있는 자극제 역할을 한 중요한 성과물이었다.
이후 그의 저서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대표적인 주저는 역시 1956년에 출판된 ‘최초의 인간과 그 이후의 문화’ (Urmensch und Spätkultur)다. 이 책은 나중에 독일 현대철학에서 중요한 문화 이론서이자 기술인간학과 연관된 주요 업적으로 평가받았다. 또한 이는 오늘날 문화 이론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책이기도 하다. 1969년 겔렌의 마지막 저서라고 할 수 있는 ‘도덕과 초(超)도덕: 하나의 다원주의적 윤리’ (Moral und Hypermoral: Eine pluralistische Ethik)이 세상에 나온다. 이 책은 오늘날 복잡하고 이질적인 복합 사회에서는 어떤 문화적 규범이 형성될 수 있으며 또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지 묻고 있다.
겔렌은 나치에 대한 참여와 동조로 전후 전범 처리와 관련하여 많은 재판에 출석했으며, 이러한 전력이 그의 철학 자체에 대한 평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학문적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으며 그의 오랜 친구였던 사회학자 헬무트 셸스키 (Helmut Schelsky)까지도 그를 이해해 주지 못했다. 겔렌의 인생에서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40년대 이후, 이런 상황과 연관해 그의 사회적 위상은 현저히 달라졌으며, 결국 1940년대 후반에는 스파이어의 작은 전문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어 그곳에서 가장 긴 교직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62년부터 1969년까지 아헨공과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76년 1월 30일 함부르크에서 72세의 나이로 하직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