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신학: 인문학적 신학적으로 죽음읽기
제2강 Sokrates의 죽음과 Hamlet의 고뇌
(인문학적 죽음의 고전적 모델과 계속되는 질문과 갈등)
들어가는 말
‘인문학과 죽음’ 혹은 ‘인문학적 죽음’을 화두로 삼고 시작한 우리 강좌의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두 사람을 앞에 세워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합니다. 첫 번째 화두는 기원 전 4세기를 전후하여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주로 활동했던 소크라테스라는 실재 인물의 사상과 삶과 죽음 이야기 입니다. 소크라테스 이전에 활동했던 철학자들의 주된 관심은 ‘우주 만물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주의 아르케(Arche)를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최초로 ‘만물의 본질을 질문하는 인간 자신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문제의 핵심을 자연에서 인간으로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소크라테스의 중심 사상과 그 자신의 삶과 죽음을 살펴보면서 ‘죽음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시도해 보고자 합니다. 둘째는 16, 17세기에 활동했던 인문주의 문학의 대표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윌리암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46–1616)가 쓴 작품 ‘햄릿’(원래의 제목은 ‘덴마크의 왕자 햄릿의 비극: The Tragedy of Hamlet, Prince of Denmark)을 중심하여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가장 크고 위대한 질문과 다시 한번 씨름해 보려고 합니다. 물론 햄릿은 실재 인물은 아닙니다. 그는 희곡 속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그러나 햄릿은 한 시대, 한 작품 속에 갇혀있는 상상적 주인공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인간의 본성과 인간 최대의 질문을 문제 삼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소크라테스(Sokrates, BC 470-399)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전성기인 페리클레스(Pericles)시대에 태어나서 소피스트들과 함께 살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Peloponnesian War, BC 431-404)에서 패배한 다음 아테네가 몰락 할 즈음 그의 삶을 마쳤습니다. 아버지는 조각가였고 어머니는 산파였다고 알려집니다. 자신이 쓴 글은 하나도 전해지는 것이 없으나 그의 제자 중 하나인 플라톤이 Apology of Sokrates, Paedon, Symposium 같은 스승과의 대화록을 남겨줌으로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철학, 삶과 죽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소크라테스가 되게 한 사람은 그의 제자 플라톤입니다. 예수나 석가 등 위대한 인물들에게는 자신의 저서는 없고 오직 위대한 제자들이 있을 뿐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대는 두 가지 면에서 극심한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첫째는 소피스트들을 중심한 상대주의와 허무주의가 팽배한 시대였습니다. 기존의 가치관은 무너져가고 새로운 가치관은 아직 형성되지 못했던 정신적 혼란기였습니다. 사람들은 진정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하고 또 어떻게 사는 것이 옳바른 삶인지를 모르고 방황했습니다. 삶의 목표와 방법을 상실하고 허둥대던 때였습니다. 오늘날 포스트 모던이즘 시대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정치-사회적으로도 혼란한 시대였습니다. 페리클레스 같은 지도자는 사라지고 30여년이나 계속되어온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온 나라를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가난으로 내몰았습니다. 하여튼 소크라테스는 정신적으로는 가치관을 상실하고 현실적으로는 내일의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대에 태어나 평생을 살다가 간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대의 교사’요 ‘진리의 스승’으로 활동한 소크리테스는 몇 가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첫째는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하는 물음입니다. 아시다싶이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 학자들이 지녔던 가장 큰 과심은 우주와 만물의 본질, 근본, Arche였습니다. ‘우주 만물은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 그 근본은 무엇인가?’를 찿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물었습니다. ‘그래 좋다. 그런데 그 우주와 만상의 근본을 추구하는 너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이냐? 너 너 자신은 도대체 누구냐?’ 그는 철학의 핵심 주제를 자연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그 인간도 바로 구체적인 자아의 문제로 돌려놓았습니다. 여기에서 소크라테스 철학의 제 1주제가 나옵니다. ‘너 자신을 알라!’ Gnothi seauton! Know Yourself!
둘째로 소크라테스가 던진 질문은 ‘우리는 어떻게 하면 올바로 살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그의 대답은 아주 직선적입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반성하는 삶, 자기를 성찰하는 인간 이 되어야지 우리는 옳바른 삶을 살수 있다고 했습니다. ‘생각’ ‘반성’ ‘성찰’ ‘순간순간 마다 생각하고’ ‘끊임없이 반성하고’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인간’이 될 때 우리는 살만한 가치있는 인생을 살게 된다고 본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그의 철학적 주제는 반복됩니다. ‘너 자신을 알아라’ Gnothi seauton! Know Yourself!
셋째로 소크라테스가 제기한 것은 ‘진정한 앎이란 무엇인가?’ ‘참된 지식이란 무엇인가?’라 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반성하고 성찰하는 목적은 알기 위해서이다’ 사람은 사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지 진리를 따라가게 되고,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아야지 사랑을 하게 되고,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아야지 정의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올바로 살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무지는 최고의 악이다. 모든 악한 행위는 무지에서 나온다’ ‘나는 무지하게 살기 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여기에서도 역시 되돌아가는 최종적 경고는 똑같습니다. ‘너 자신을 알아라’ Gnothi seauton! Know Yourself!
넷째로 소크라테스는 모든 지식 중에서 최고의 지식은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무릇 인간은 나이가 더해지고 덕과 지식이 높아지고 생각과 반성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소크라테스는 결국 ‘무지에 대한 지식’ ‘무식에 대한 자각’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하는 길이라고 보았습니다. 한번은 소크라테스의 친구 카이레폰이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 가서 질문을 했습니다. ‘신이여 이 세상에서 제일 현명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때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소크라테스다!’ ‘왜 그렇습니까?’ 질문을 던지자 다시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가장 무지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소크라테스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사실 한 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 ‘I know only one thing that is that I know nothing. – 소크 라테스에 의하면 인간이란 그가 지닌 지식 때문에 현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무지 때문에, 그 리고 무지에 대한 지식 때문에 현명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 철학의 주제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너 자신을 알아라’ Gnothi seauyon! Know Yoursef!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 철학의 종착점은 ‘지행합일’(知行合一)입니다. ‘아는 것과 사는 것은 하나다’ ‘온전한 지식은 실천을 통해 완성되고 그의 삶이 그의 지식을 증명한다’는 논리입니다. ‘선을 아는 것은 선하게 사는 것을 통해서 증명된다’ 소크라테스는 知와 行을 동일한 것이요 동전의 양면이나 손바닥의 앞뒤와 같다고 보았습니다(여기서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방법론인 대화법, 즉 무지를 고백할 때까지 계속 질문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일본 철학계의 영향이라고 합니다만 흔히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세계 4대 성인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예수, 석가, 공자와 함께 소크라테스를 동급의 성인 반열에 세웁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른 세분은 모두 특정한 종교의 창시자들인데 소크라테스만은 아무 종교도 세운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부정적 평가를 하는 이들 중에는 그를 성인 취급하는 것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를 세계 4대 성인 가운데 하나로 여기는 사람들은 그의 철학적 사상이 뛰어나고 위대해서라기보다는 그의 죽음이 마치 종교적 순교처럼 보일 정도로 남다르고 특별한 데서 기인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왜, 어떻게 죽었고, 또 어떻게 해석되기에 ‘종교적 순교’처럼 이야기되고 더 나아가 오늘 우리가 그의 죽음을 인문학적 죽음의 화두로 삼게 되었을까요?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을 가져다준 가장 직접적인 동기는 당시 아테네를 지배하고 있던 소피스트들이나 정치가들과의 사상적 및 정치적 마찰과 충돌 때문이었습니다.
앞에서 본대로 첫 째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 있던 많은 젊은이들을 상대로 당시 소피스트들과는 달리 지식의 상대주의를 비판하고 진리의 보편성을 주장하며 정치적 목적을 떠나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을 살아야만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소피스트들은 소크라테스의 이런 주장을 거부하고 동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모든 것의 중심’으로 보는 소크라테스의 철학과 주장을 받아드리기 어려웠고 끊임없이 계속하는 그의 ‘질문법’ 같은 철학적 방법론 역시 수상하게 여겼습니다. 마침내 이들 기득권자들은 소크라테스를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의 길로 몰고 가는 위험한 인물이라고 규정하고 법정에 세우기로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당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기존의 정치-사회적 기득권자들을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당시 아테네 사회의 지배적인 상류계급으로부터 아테네의 전통을 부인하고 젊은 세대를 위태롭게 하는 매우 위험한 인물로 낙인이 찍혀 고소를 당하게 되어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둘째로 소크라테스는 당시의 과두정치(寡頭政治) 체제를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과두정치는 아테네 사회를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에서 후퇴하게 한다고 보고 이에 반대했습니다. 몇몇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해서 지배되는 사회는 참된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은 그 누구든지 직접 정치에 참여하고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어야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소크라테스 는 페리클레스 시대의 직접민주주의를 이상적 정치체제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셋째로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결정적인 것은 자신의 이런 주장은 단순히 자기가 지어낸 생각이 아니라 다이몬(Daemon –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귀신, 악령, 혹은 정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옛날 사람들은 이를 신과 인간의 중간에 있는 어떤 초월적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이 자신에게 전해 준 메시지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일종의 신적 계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크라테스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아테네 시민사회가 수용하고 따르는 신이 아니라, 믿을 수 없는 엉뚱한 우상과 미신을 가지고 선동하는 무신론자인 소크라테스는 당연히 처단되어야만 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실제로 아테네 배심원에 기소된 소크라테스의 죄목은 소크라테스는 (1) 무신론자요, (2) 미신을 믿는 자요, (3) 젊은이들을 선동하고 타락의 길로 유혹하는 자요, (4) 국법과 국가의 제도를 경시하는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플라톤이 쓴 ‘파이돈’이나 ‘소크라테스의 변명’에는 소크라테스의 최후가 잘 그려져 있습니 다(그림으로는 가장 잘 알려진 것이 Jacques Louis David가 1787년 파리에서 그린 ‘소크라테스의 죽음: The Death of Socrates’이 있습니다. 현재는 맨하탄에 있는 Metropolitan Museum of Art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드디어 기원전 399년, 70세가 된 노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법정에 섯습니다. 위에서 말한 몇 가지 기소 내용을 놓고 질문과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배심원들 중에는 그가 이미 했던 말을 수정하거나 철회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지만 소크라테스는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일부 배심원들은 그를 회유하면서 이렇게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잘못 보셨습니다. 진리를 따라 선하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은 죽고 사는 일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내가 한 일들이 진실로 선한 일인지 아닌지 그걸 고민할 뿐입니다. 나는 부끄럽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습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 혹시라도 부끄럽게 산 것은 아니었던 지를 염려했습니다. 배심원들 중에 는 그에게 사형을 언도하기 보다는 아테네에서 추방 하도록 하자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는 끝까지 아테네가 정해 준 법에 충실하겠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습니다(흔히 소크라테스가 했다고 전해지는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고대 로마의 격언인 ‘법이란 지독해도 법이다’ dura lex, sed lex에서 온 말이지 소크라테스가 직접한 말은 아닙니다. 후에 이 말을 일본의 법철학자 오디카 도모오가 그의 저서 ‘법철학’에서 실정법주의를 주장하면서 소크라테스의 말이라고 한데서 오해된 것이라고 봅니다. 오다카 도모오의 이런 해석은 당시 일본의 잔혹한 식민지 통치를 합리화하려는 시도에서 한 말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마침내 501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투표를 했습니다. 결과는 361:140으로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인류가 겪은 역사적 경험들에 의하면 다수는 항상 옳고 소수는 틀리는 것이 아닙니다. 불의한 다수와 정의로운 소수가 인류의 역사를 불행하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여기에서 우리는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의견의 차이는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문제에서 다수와 소수의 주장을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 ‘오늘날 흔히 집단지성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여기에는 어떤 문제점과 함정이 있는가?’ 하는 문제들에 대해 토의해 볼 수 있겠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형이 집행되기 전 그는 제자들에 의해서 몇 번이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지만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묵인되고 인정된 탈출을 거절하고 당당하게 사약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독미나리에서 채취하여 만든 독배를 마시고 숨을 거둡니다. 숨이 멈추기 전 소크라테스는 마지막 이야기를 합니다. ‘자 이제는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들은 살러 갑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누가 더 좋은 것을 만나게 될지는 오직 신 만이 아십니다’ 그러면서 옆에 서 있던 제자 크리톤에게 이런 부탁을 남기고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오 크리톤이여 전에 내가 여행 중에 아이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그냥 얻어먹고 갚지 못한게 있네. 기억해 두었다가 내 대신 꼭 갚아주게나’
소크라테스의 죽음의 의미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이런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의 죽음에는 어떤 의미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나타난 것만 보자면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정치적 희생처럼 보입니다. 사실 그는 무신론자도 아니었고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사회를 어지럽게 하거나 혹세무민하는 선동가는 더더군다나 아니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미래를 걱정하고 다음 세대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영혼의 실재를 믿었고, 죽음 이 후의 사후 세계를 확신했던 일종의 종교인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소크라테스가 패배한 것은 사회적 주류 세력에게 진 것입니다. 다수의 횡포와 권력자들의 선동과 뇌물과 불의한 거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너무나 천진난만했던 것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는 이미 괴변가로 변한 소피스트들과는 대립했고, 페리클레스 사후 아테네의 새로운 정치세력들과 손을 잡지 못함으로 정치적 기반을 하나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오늘도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도 선하고 순진한 정치적 희생자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단순히 형태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그 내면의 깊이에서 바라보면서 그의 죽음이 주는 의미를 찾아봅니다. 한 마디로 저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철학적 죽음’이요 ‘인문학적 죽음’이라고 정의해 봅니다. 인문학교실이라고 해서 우리들의 분위기에 따라 만들어낸 신조어 처럼 들리시겠지만 사실 죽음에는 육체적 죽음 이외에도 정신적 죽음, 사회적 죽음, 종교적 죽음, 정치적 죽음 등 여러가지 의미를 지닌 죽음들이 실재합니다. 우리는 지금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철학적 혹은 인문학적 각도에서 해석해 보자는 것입니다.
첫째로 소크라테스는 영혼불멸을 믿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육체적 죽음이란 인 간 존재에게 있어서 최종적이거나 결정적인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는 육체란 영 혼이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갈아입을 수 있는 옷과 같은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의 제자 플라톤의 이원론에 의하면 영혼은 그 자체가 이데아의 세계요, 불멸의 존재요, 불변하는 실체인 반면에, 육체는 이데아의 모방으로써, 살아져 없어지는 허상이고, 쉬임없이 변하는 것 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바로 이런 신념 속에서 죽음이란 우리 영혼이 육체의 감옥으로 부터 벗어나 참되고 영원한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요, 참된 자유와 해방을 얻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슬픔이나 비극, 재앙이나 고통으로 보지 않고 축복이요, 기쁨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죽음은 우리를 이데아의 세계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요, 순간에서 영원으로, 거짓에서 진리로, 육체적 욕망이나 감각적 유혹에서 참되고 영원한 이상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한다고 본 것입니다. ‘인간은 육체의 사슬에 얽어매여 있는 동안은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죽음이란 고향인 이데아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토의해 볼 문제 – 여기에서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의연하게 받아드렸던 죽음이란 그의 영혼불멸 사상에 근거한 것인데 끝까지 죽음을 피해 보려고 했던 예수와 기독교가 믿는 ‘죽은 자의 부활 사상’과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습니다. 헬라철학[Hellenism]이 주장하는 ‘영혼불멸론’과 기독교[Hebraism]가 주장하는 ‘죽은 자의 부활 신앙’에 대해서는 Oscar Cullman이 쓴 ‘영원 불멸인가? 죽은 자의 부활인가?’를 참고 할만합니다).
둘째로 소크라테스는 이상과 같은 신념에 따라 죽음을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완전한 행복이요 기쁨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죽음을 감사함으로 받아드렸습니다. ‘죽음이란 이 세 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여행길입니다. 여기에는 약간의 흥분과 기대가 있습니다. 거기에 가면 오래 전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 기쁨이 있고 우리 영혼이 육체의 종살이에서 해방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고소한 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에 다시 검토 할 시간이 있으리라고 봅니다만 인문학적으로 존엄한 죽음이란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태도로 받아드리느냐 하는 문제와 깊이 연관이 됩니다.
마지막 셋째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그의 말과 가르침에 대한 책임으로 받아드린 사람입니 다. 그는 자신의 말과 삶과 죽음을 하나로 연결시켰고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가장 분명하게 ‘지행합일’을 몸으로 실천했습니다. 아는 대로 살았고, 말한 대로 실천했고, 가르친 대로 죽은 사람이 소크라테스입니다. 사실 그는 철학을 가르친 사람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살다가, 철학적으로 죽은 사람입니다.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깊은 믿음은 그는 끝까지 인간의 선함과 진리의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흔들리지 아니하는 한 가지 믿음과 원칙이 그를 최후까지 붙잡아주고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인생의 길을 걷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신념 없는 사람들과 더불어 말 따로, 삶 따로가 극치에 이른 언행불일치의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나 사업가들은 두 말할 것도 없고 지식인들이나 종교인들까지도 모두 ‘내로남불’이요, 말은 말이고 삶은 삶이라고 하는 시대 속에서 진정한 스승을 찾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희곡 ‘햄릿’의 줄거리
먼저 밝혀 둘 것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인문학 명강’(21세기북스, 2014)에 나오는 서울대학의 이종숙 교수의 글로부터 생각의 단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12세기 덴마크의 왕가를 중심하여 벌어지는 ‘햄릿’의 줄거리부터 간단히 추려보겠습니다. 주인공은 왕자 햄릿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 햄릿왕이 갑자기 죽고 그의 뒤를 이어 왕의 동생인 클라우디우스가 왕위를 계승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아버지가 죽으면 당연히 왕자인 자기가 왕위를 이어 받아야하는 것인데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새로운 왕 클라우디우스는 왕자 햄릿에게는 삼촌이자 작은 아버지인 셈입니다. 거기에다 왕위에 오른 크라우디우스는 형수이자 햄릿의 어머니인 거투루드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 밤이었습니다. 죽은 선왕 햄릿의 귀신이 아들 햄릿에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부탁합니다. ‘나는 독사에게 물려서 죽은 것이 아니라 내 동생 클라우디우스가 내 귀에 독이 든 풀을 넣어서 살해되었다. 너는 나를 위해서 꼭 복수해 다오’ 이때부터 햄릿은 호시탐탐 복수의 기회를 노립니다만 연극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햄릿은 복수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미친척 하기도합니다. 그러다가 오필리어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자기에게 나타난 귀신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갈등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 중에 또 다시 아버지의 혼령이 나타나 복수를 재다짐 합니다. 위기에 처해진 클라우디스왕은 햄릿을 영국으로 추방하기로하고 밀서를 보내 죽이라는 지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항해 중이던 배는 해적들에게 나포되고 햄릿은 다시 덴마크로 돌아옵니다. 그는 이때 전에 사랑에 빠졌던 오필리어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 호레이쇼와 같이 장례식에 갔다가 오필리어의 오빠인 레어티즈의 요청에 따라 격투를 벌리게 됩니다. 격투에서 치명상을 입은 햄릿은 죽어가는 순간 마침 그 자리에 온 왕 클라우디우스죽이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복수하게 됩니다. 그리고 참 우연하게도 어머니이자 삼촌의 아내가 된 거투르드 역시 그 순간 독이 든 포도주를 마시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대표적인 비극 작품인 ‘햄릿’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햄릿’에서 찿아보는 죽음의 의미와 갈등
(1) 인생이란 하나의 연극입니다. 햄릿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잘 압니다. ‘인생이란 하나의 연극이고 나는 이 인생 무대 위에 세워진 배우로써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감당하다가 연극이 끝나면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쓴 배우들입니다. ‘인간’ ‘인격’을 나타내는 헬라어 ‘persona’는 본래 ‘가면’이란 뜻인데 여기에서 영어의 person이 나왔습니다. 인간은 가면을 쓴 존재이고 배역을 맡은 배우들입니다. 우리는 연극 이 끝나면 집으로 가야 합니다. 무대 위에서 집짖고 밥먹고 놀면서 영원히 살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엔 또 다른 배우가 나와서 인생을 수놓아야하기 때문입니다. 단막극이던 연속극이던 모든 연극에는 반드시 피날레가 있습니다. 그래서 연극 햄릿의 주제는 이미 지난 시간에 공부한 ‘memento mori’입니다. ‘잊지 말아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 ‘잊지 말아라 반드시 집으로 가야 할 때가 온다’ 이 작품의 결말은 주요 등장 인물들이 모두 죽음으로 막을 내립니다. 죽음은 피 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이고 운명입니다. 선왕 햄릿도, 왕자 햄릿도, 찬탈자요 살인자인 클라우디우스도, 이상한 여인 거투루드도, 포로니우스, 레오티즈, 오필리아도 모두 다 죽음으로 연극은 끝을 맞이합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말한 대로 죽지 않고 사는 유일한 길은 ‘당신이 직접 하나님이 되는 길 뿐’입니다.
(2) 이 작품에서는 복수와 죽음 이야기가 큰 줄거리인데 이것이 셰익스피어가 보는 인간의 역사입니다. 개인으로써의 인간과 공동체로써의 인류는 끊임없이 죽고 죽이는 역사를 이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 길로 갈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후 인간은 죽이고 죽으면서 그 살인에 대한 복수를 이어 왔습니다. 다른 말로하면 인류의 역사는 ‘비극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들을 압니다. ‘아가멤논’과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를 썼던 아이스킬로스, ‘오이디프스왕’과 ‘안티고네’를 대표작으로 하는 소포클레스, ‘헤라클레스’와 ‘페니키아의 여인들’을 남긴 에우리피데스를 말입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도 기억합니다. ‘햄릿’ ‘리어왕’ ‘오셀로’ ‘맥베스’는 우리에게 비극이란 무엇이고 비극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묻게 해 줍니다. 문학에서의 비극이란 단순히 ‘슬픈 이야기’이거나 bad ending, 혹은 sad ending으로 끝나는 스토리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희극 보다 비극을 진정으로 참되고 아름다운 인간의 이야기라고 했을 때, 그 것은 슬프고 아프고 고통스런 이야기 속에는 가장 진실한 이야기, 가장 진지한 삶의 스토리가 있다는 뜻에서 그리 말한 것입니다. 햄릿은 우리에게 우리의 삶이나 죽음은 모두 그 구성 요소가 비극이고, 슬픔이고, 고통이며 그래서 거기에는 진실이 있고 아름다움이 깃든다고 본 것입니다.
(3) 우리는 ‘햄릿’ 제 3막 1장에 나오는 햄릿의 독백에 주목합니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이 문장은 여러가지로 번역이 되곤 했습니다. ‘죽을 것이냐? 살 것이냐?’ ‘죽일 것이냐? 죽을 것이냐?’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더 살 것이냐? 여기에서 멈출 것이냐?’ ‘자살을 할까? 타살을 할까?’ 복수를 앞에 두고 결행을 머뭇거리는 햄릿의 고뇌에 찬 독백입니다. 이 문장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햄릿에 대한 여러가지 분석이 있어 왔습니다. 햄릿은 복수 같은 것을 단행하기에는 적당하지 못한 ‘감성적 인간형’(Emotional character)이라는 주장을 비롯하여, 그는 너무 많이 생각함으로 행동에 이르지 못하는 ‘지성적 인간형’(Intellectual character)이라느니, 프로이드와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은 오이디프스와 햄릿은 모두 다 ‘정신분열형 인간들’(Complex character) 이라고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햄릿의 이런 고뇌하는 인간형이 셰익스피어가 보는 바람직한 인간형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이란 처음부터 그렇게 단순한 것도 아니고 간단하게 설명하고 결정하고 끝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지금 여기에서의 주제는 ‘죽음’입니다. 그것이 타인을 죽이는 타살이든지 아니면 스스로를 죽이는 자살이든지 하여튼 죽음 앞에선 인간은 다시한번 더 진지하게 물어야한다고 봅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작품은 전통적인 기독교적 죽음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집니다. 치욕적인 삶과 싸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또 다시한번 더 묻습니다. 절대적 마침표인 죽음 앞에서 삶을 종결하는 최선의 길이 무엇일지 머뭇거리며 고뇌하는 인간이 그래도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죽을 때까지 정직하게 고민하는 인간이 그래도 선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너무 일찍 고민을 중단하고 너무 빨리 결정하거나 행동하는 것은 미숙한 인생 태도라고 봅니다. ‘죽을 때까지 고민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퍽 괜찮은 사람입니다’
(4) 사람이란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그에게 던져지는 최종적 질문은 결국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과 연계됩니다. ‘햄릿’의 고뇌는 죽음의 고뇌이면서 동시에 삶에 대한 질문을 포함합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물음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물음이기 때문입니다. 자,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