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시리즈
고전의 가치
인문학에서 고전이 그다지 중시되지 않는다는 반론이 있다. 고전을 읽더라도 단순히 그 주장이나 이론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왜 그런 주장을 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린스턴 대학교의 유명한 철학자 길버트 하먼은 사무실 문에 “철학사 꺼져” 같은 문구를 붙여놓기도 했고, 분석철학의 거장 콰인은 철학사 강의를 지루한 작업이라 평가하기도 햇다.
그러나 인문학은 매우 심오하며 다른 분과학문과 비교하여 고전(classics)이 매우 중요한 학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예컨대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고 해도 물리학사(史)를 전공하지 않는 한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전부 볼 필요는 없으며, 그 주요 개념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고전역학 교과서를 이해하는 정도로 충분히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정치철학을 전공하려는 학생은 한 번이라도 반드시 플라톤의 ‘국가론’을 제대로 읽어 볼 필요가 있으며, 이와는 별개로 현대 정치철학자들의 플라톤에 대한 해석도 눈여겨 봐야 한다.
따라서 마음먹기에 따라 인문학은 그야말로 평생을 파고들어가도 모자랄 정도의 엄청난 독서량과 생각의 깊이를 요구하는 학문이 된다. 이처럼 인문학은 고전을 통해 과거 사람들(학자들)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고, 이를 비판하며 새로운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중요시한다. 사실 혼자 생각하는 것 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많은 학자들은 이미 과거에 누군가 생각해 보았던 것들을 참고한다.
화이트헤드의 ‘엄연한 사실’은 과거 경험이 객관적 불멸로 축적되면서 동시에 현재 겪는 경험과 간섭하여 새롭게 재삼의 경험으로 창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은 인류 문명사의 객관적 불멸이며 그것이 현재 속에서 엄연한 사실로 재탄생 하여야 한다. 이것이 공자의 온고지신 학이시습의 의미일 것이다.
고전은 흔히 ‘classic’ 을 의미한다. 클래식은 뛰어나고 아름다운 작품을 의미하는데 한자어 ‘고(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클래식은 문화적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작품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고전은 과거의 유산 중에서 후대에 귀감이 되고, 창작이나 학문 연구에서 기준이나 원리가 되는 것이다. 세월이 지났지만 유행을 타지 않는 원형적인 것의 의미이고 불변하는 것, 시공을 초월해 여전히 그 가치를 인정받고 의미가 진행형인 것들을 뜻한다.
고전은 짧은 인생을 살면서 5000년 인류 문화의 경험과 지혜를 간접적으로 체득하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이 길어야 100년을 넘지 못하지만 고전과 호흡을 같이 하는 삶과 고전과 동떨어진 삶은 그 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인류 문화의 정수가 담겨 있는 고전을 떠나서 그 시대만을 호흡하는 삶은 비유컨대 하루살이와 다를 바 없는 목숨이라 할 수 있다.
고전은 선인의 숨결이 담겨 있고 삶의 진수를 집대성한 대표적인 철학의 보고이며 실용 학문의 근간이다. 거기에 비하면 신간은 시대가 요구하는 정보나 지식, 혹은 현대 사조에 다른 혁신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고전이 인생을 보다 깊이 생각하게 하거나 아름다운 서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면, 신간 서적은 우리가 생활하는데 꼭 알아두어야 할 것들을 가르친다고 할 수 있다.
고전은 시대와 시대를 건너오면서 살아남은 책이다. 불필요한 불순물이나 인간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는 책은 이미 걸러지고 도태된 결과가 바로 고전이다.
하지만 신간은 다르다. 칼날과도 같다. 잘 사용하면 유익함으로 연결되지만 잘못 쓰면 상처를 입게 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