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난 복 받은 선수이며 행복한 선수였습니다.”
차두리 선수의 은퇴 경기를 보며…
지난 1월 4일 호주에서 처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축구 경기를 관람하였습니다. 2015년 아시안컵 경기를 앞둔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평가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축구의 불모지였던 호주가 아시안컵을 계기로 도약하는 기분이었습니다. 키즈 클럽에서 축구를 하는 7살 둘째 아들은 전날 밤 잠도 못자고 흥분한 상태였습니다. 인터넷으로만 보던 한국팀의 경기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2:0 으로 한국이 이기는 경기를 보며 자신도 손흥민이나 차두리같은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열심히 축구클럽에서 뛰었습니다. 그러던 지난 화요일인 4월 7일에 차두리 선수가 속해있는 서울 FC 경기가 파라마타에 있는 퍼텍 스타디움(Pirtek Stadium) 에서 있었습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FC서울이 지난해 챔피언인 호주 웨스턴 시드니와의 경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와 함께 다시 차두리 선수의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맨 앞자리에서 황소같은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재미가 흥미진진 하였습니다. 웨스턴 시드니의 일방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한 서울 FC 선수들이 대견했으며 추운날 한순간의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는 아이들도 대견하였습니다. 1:1 무승부의 경기 결과가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역시 차두리’라는 탄성을 자아낼 경기였습니다.
차두리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참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골 욕심이 있을 것인데 수비수인 차두리는 자신이 골을 넣기보다는 공격수들이 골을 넣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분명 보였습니다. 수비수들을 자신에게 붙게하고 공격수가 넣을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드는 플레이는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얼마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에서 차두리는 대표팀 은퇴 경기를 가졌습니다. 한국이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에서 1-0 승리를 거두었던 경기이며 차두리의 대표팀 은퇴 경기로 치러졌던 의미있는 경기였습니다. 차두리를 주장으로 선발 출전시킨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42분경 예고대로 김창수로 교체했습니다. 차두리가 그라운드를 떠나자 선수들은 물론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메운 3만여 관중들도 기립박수로 화답해 주었습니다. 하프 타임 역시 차두리를 위한 시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전광판에는 차두리 은퇴를 기념한 영상이 흘러나왔고, 관중들은 ‘차두리 고마워’가 쓰인 대형 플래카드를 흔들었으며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은 감사패를 전달하고 대표팀 응원단 붉은악마는 기념선물을 전달해주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차두리의 아버지인 차범근 감독이 등장해 꽃다발을 전했을 때였습니다. 늘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던 차두리는 차감독의 품에 안겨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차두리의 아버지 차범근 전국가대표팀 감독은 한국축구 역사의 첫 레전드와 같은 인물입니다. 1978년 12월에 ‘독일 분데스리가 SV 다름슈타트’에 이적하였고 그 이후 1979년 7월 ‘분데스리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에 스카우트이 됩니다. 스카우트 후에는 곧바로 1980년 팀을 UEFA컵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았고, 이듬해인 1981년에는 팀의 ‘DFB-포칼’ 우승에 공헌니다. 1983년 7월에는 ‘분데스리가 바이어 레버쿠젠’으로 이적하여 1988년에 다시 한 번 UEFA컵에서 우승을 합니다. 이 우승으로 차범근은 각기 다른 두 팀에서 UEFA컵우승을 차지한 9번째 선수가 되었습니다. 1989년 현역에서 은퇴한 차범근은 많은 기록을 남겼는데 리그 경기에서 98골을 기록하여 분데스리가 외국인 선수 최다 골 기록을 세웠습니다. 또한 차범근이 1985-86 시즌에 기록한 17골은 지금까지 분데스리가에서 아시아 출신 선수 중 한 시즌 동안 가장 많은 골을 넣은 기록으로 남아있으며 분데스리가에서 활동한 10시즌 동안 단 1장의 엘라카드만을 받았을 정도로 투철한 페어플레이 정신을 드러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화려한 레전드의 아들로 태어난 차두리는 아버지 차범근이 독일 분데스리가의’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활약할 당시 서독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빠른 스피드로 인하여 ‘아우토반(Autobahn)’이라는 별명이 붙었었습니다.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차로봇’, ‘차미네이터’라는 별명으로 월드컵에서 박지성과 함께 인상적인 선수로 선보였습니다. 그러나, 2008년 결혼한 신혜성와 결혼 5년 만에 파경을 맞이해 주변의 안타까운 시선을 받기도 하였으며 공격수로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여 슬럼프에 빠져 축구를 그만둘 생각도 했었습니다.
국가대표로서의 마지막 경기가 끝난 후 차두리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나누었습니다. “대표팀 생활을 하면서 오르막 내리막이 있었고, 기쁜 일 실망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오늘을 끝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벗는다.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난 복 받은 사람인 것 같다.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게 맞는 것 같다. 나보다 선수로서 더 많은 훌륭한 업적을 세운 선수들이 많다. 가깝게는 친구인 박지성만 해도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 운동장에서 많은 팬들의 환성과 고맙다는 메시지를 봤을 때 내가 한 것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다고 느꼈기에 감사하고 부끄러우면서도 미안했다. 너무나 행복한 선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라며 감격을 표현했습니다.그는 이어서 “항상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의 명성에 도전했던 것 같다. 아버지보다 더 잘 하고 싶었고, 그럴 수 있다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현실의 벽을 느꼈다. 그러다보니 난 축구를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 홀가분하기도 하면서 아버지의 아성에 도전했으나 실패한 데 대한 자책감과 아쉬움도 남았다. 한편으론 축구를 너무 잘 하는 아버지를 둬서 조금은 속상한 마음도 있었다. 그래도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자 롤모델이 아버지였다. 집에 돌아가면 그런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행운이었다. 나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알맞게 지시해줄 수 있는 감독 역할도 해주셨다. 항상 사랑으로 내가 힘들 때 보듬어주고 챙겨주는 아버지였다”라며 아버지인 차범근 감독에 대한 진심어린 마음을 나눴습니다. 또한 팬들에게 “얼마 전 기사에서 피지컬은 아버지 발은 어머니라는 댓글을 읽었다. 공감하면 안 되는데 저절로 공감이 가더라. 분명 난 기술이 화려한 선수는 아니었다. 대신 다른 장점들이 있다. 유럽에서는 선수의 장점을 가장 크게 본다. 그 장점을 극대화시켜서 팀에 맞게 선수를 기용한다. 우리는 축구 선수가 완벽해야 한다는 주의가 강하다. 그러다보니 현 대표팀 선수들도 많이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 모든 선수는 장점이 있고 단점도 있다. 그게 축구다. 완벽한 선수는 없다. 서로 부족한 걸 메우는 게 팀이다. 팬들 역시 단점을 찾아서 그 선수를 평가하려 하지 말고 장점을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봐주길 바란다”라며 지지를 부탁했다
은퇴경기에서 팬들에게 남긴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모든 선수는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으며 완벽한 선수는 없다’라는 말은 완전함만을 추구하려는 이 시대의 우리들의 모습을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복 받은 선수로 살 수 있으며 행복한 선수로 마무리 할 수 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며 인생을 어둡게만 살아 갑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멋진 골을 넣는 멋진 공격수로 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골을 넣지 못하는 공격수는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 어떻게 하면 행복한 축구선수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다고 합니다. 그때, 자신의 장점인 신체조건과 빠른 스피드를 가진 세계적인 선수들을 경기를 보면서 과감하게 포지션을 바꾸게 되었답니다.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는 그의 결단은 ‘약점을 인정하고 강점으로 승부하는 선수’, ‘복 받은 선수’, ‘행복한 선수’ 로 은퇴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레전드 차범근 감독의 아들’에서 ‘지치지 않는 차미네이터’ 로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구나 복 받은 인생이었습니다. 이 복은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인생의 가장 큰 목표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을 때 행복은 더 가까이 다가와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행복을 많이 가져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버릴 때 줘어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약점을 통해 겸손해지며 강점을 통해 담대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한 번 점검해 보시죠. 난 지금 어떤 약점을 인정하고 어떤 강점을 가지고 복 받은 인생을 살고 있는지를…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편 1: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