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드라마 속에서 ‘정의의 가치’를 발견하지 말입니다.”
– 드라마 ‘태양의 후예’ 통한 대리 만족 –
요즘 한국에선 수.목요일에 남편들은 알아서 저녁을 해결하고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밤 10시 이전에 반드시 아이들을 잠다리에 들게 만들어야 하며 11시 이후에는 절대로 아내에게 말을 걸어서도 안된다고 합니다. 아내들을 위하여 ‘태양의 후예(태후)’ 가 본방을 하는 수. 목요일의 방영시간인 10시를 중심으로 모든 스케줄이 정리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녁을 준비하느라, 태후를 준비하는 마음이 흩어지면 안되고 본방을 시청하는 10시에는 그 어떤 것에도 방해를 받아서는 안되며 방송을 보고 난후에도 여운을 간직하기 위해 방송이 끝난 11시 이후에도 남편은 절대로 말을 걸면 안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30% 가 넘는 시청률을 자랑하며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여심들을 정복하며 신드룸을 일으키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효과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효과를 가져온 비밀이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바로 ‘정의의 가치에 대한 대리 만족’ 입니다.
“너 말이야 새X야. 국가가 뭔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 국가다. 군인인 나한테 국민의 생명보다 우선시하라고 국가가 준 임무는 없다.”
드라마 ‘태후’에서 주인공 유시진(송중기 분) 대위의 말입니다. 우르크 대지진 속에서 혼자만 살아서 재물을 챙기려는 갑(甲)질의 공사 책임자를 향해 외치는 강도 높은 사이다(?) 대사입니다. 한 두 사람 죽는 게 뭐 그리 대수냐는 책임자의 입을 막은 분노의 멘트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드라마의 성공 요인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정의감을 대리만족 시켜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태후의 ‘정의사회학’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태후의 인기배경 요소 속의 ‘정의감’은 국가에 대한 사명감과 동시에 자기 일에 대한 사명감과 맞물려 40~50대는 물론 10~30대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영웅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대리만족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요즘 한국은 총선을 앞두고 국민보다는 존영(尊影)이 먼저인 정치권과 집권층의 부정과 비리 그리고 운전기사 폭행과 같은 부당의 갑질사회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수많은 ‘흙수저’들은 정의가 실종됐다고 절망하지만 태후의 정의감은 ‘각자의 대리만족’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는 “드라마라는 것은 자기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거울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대중은 자신들에게 결여돼 있는 측면에서 대리만족을 한다. 여기서는 그것이 바로 정의인 것이다”며 “정의란 가치가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특히나 결여돼 있기 때문에 태후 같은 드라마에서 나오는 이런 모습들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태후에서 상명하복의 폭력적인 상하 관계에서 이에 저항하는 송중기라는 캐릭터에서 사람들이 정의라는 가치를 발견하는 것 같다”며 “이런 캐릭터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그런 사회심리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또한 외국 캐릭터인 어벤저스와 달리 우리 주변에 있을 법 한 이야기인 송중기라는 군인과 사명감 있는 의사(송혜교)의 만남은 우리가 실천하지 못하는 사회정의를 꼭 달성하는 듯한 환상을 불어넣는다는 것입니다. 현실은 언제나 상사 앞에서 굽신거릴 수 밖에 없고 이익만 쫒는 삶이지만 성공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는 자기 모습과 태후 주인공들의 소영웅 이미지가 오버랩되면서 대리 만족을 얻는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시민들 반응은 이렇습니다. 주부 전양혜(38) 씨는 “태후를 재밌게 보고 있는데, 만약 유시진 대위더러 지금 정치권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고 한다면, 아마 ‘의원님들, 국민보다 더 중요한 것 없지 말입니다’라고 할 것 같다”며 “정치도, 사회도, 기업도 정의가 실현되는 곳이 없는 것 같은 각박한 현실에서 TV속에서라도 사회정의 실현의 쾌감을 느끼고 싶다”고 했습니다.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정의’란 다소 ‘이상적’인 단어가 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근 크게 인기를 끈 영화 ‘내부자들’에서 조직폭력배 안상구(이병헌)는 정의를 부르짖는 검사에게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기는 한가?”라고 비웃는 장면에 모두가 수긍합니다. 불의에 맞서는 정의로운 약자들이 돈과 권력을 쥔 강자들을 이기기 힘든 사회라고 인식하고 있는 관객들은 이 대사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같은 해석은 기본적으로 지난 2010년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책이 불어 일으킨 우리 사회 ‘정의 열풍’과 연관이 있기도 합니다. 정의라는 가치가 땅에 떨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정의에 대한 갈망이 크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는 “정직함이나 불의에 대한 비타협적 태도 등이 우리 사회에 결여돼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하고 있는 것”이라며 “특히 송중기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상사의 불합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지시에 결코 굴하지 않는데, 현재 젊은 세대 청년들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그런 부분이다”고 분석했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 성과만 급한 사회가 되다보니 상사에 굴종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시대 청년들의 허탈함을 드라마 속 영웅을 통해 해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역시 “서열이 낮은 부하 입장에서는 무조건 따르는 게 관습이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고 참고, 저항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며 “그러나 불의를 참지 않는 캐릭터를 보며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다”고 했습니다.
‘태양의 후예’ 이외에도 최근 종영한 ‘시그널’도 제대로 정의를 다룬 드라마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한동안 정의 코드가 드라마의 흐름을 주도할 것이라는 예상에도 동감을 합니다.
물론 좋은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님니다. 선남선녀 사이의 애정 관계와 판타지 그리고 드라마의 상술이 지배할 뿐, 드라마적 요소에선 훌륭함을 발견할 수 없다는 시선도 있습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그널은 굉장히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는데, 태후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대중적인 인기는 높은데, 좋은 드라마라는 생각이 안든다”며 “정의감과 로맨스 코드와 B급 민족주의 등등 수많은 것을 뒤섞어서 상업성에 치중한 드라마라고 본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또한 신교수는 “태양의 후예는 정의라는 기준에 따라 상관의 명령에 불복하는 등 군인의 상명하복적 부분에서 기존의 군인 코드를 비틀고 있다는 점이 주효한 것 같다”며 “드라마 ‘시그널’ 또한 약자에 대한 착취, 권력의 지배에 종속하게 되는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정확히 드러났다는 점에서 열풍을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물론 드라마를 통한 정의감 대리만족에 우려를 표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드라마 평론가)는 “정의가 잘 실현되지 않는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분노를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에서 기화시키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판타지가 과할 경우 현실과 다른 또 다른 편견의 시작이 될 수 있어 적당한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모든 이야기들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드라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연출가의 손을 거쳐 배우들의 연기로 나타납니다. 시청자는 드라마를 통하여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받고 사람들의 공감이 커질 때 ‘대박’ 이 나는 것입니다.
드라마 한 편으로 속이 시원해진다는 것은 그 만큼 드라마에 담긴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다는 말이고 그 메시지가 많은 공감을 얻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시대의 정의란 무엇인가?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문제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