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먼지에 깔린 책을 살려 주세요’
– 상위 독자 0.1% 를 꿈꾸며 –
아침과 저녁에 만나는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더워서 걷어차 버렸던 이불을 새벽에는 다시 찾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여름에서 공기가 달라지는 시점은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가을이 되면 떠 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단풍과 독서입니다. 단풍은 자연의 몫이지만 독서는 나의 몫입니다. 매년 새해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독서에 관한 계획을 세워보지만 실천이 잘 되어지지는 않습니다.
남에게 자신의 서재를 내보이는 건 조심스럽습니다. 거실 책장 한구석에 묵직한 전집류 하나 정도 있어야 폼 좀 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런 시절에 서재는 주인장의 취향과 관심사를 드러내는 은밀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스마트폰을 조금만 만지작거리면 재미난 스낵 컬처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책이 좋다는 사람들은 줄어 들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발표한 ‘2015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서도 이런 실태가 드러냅니다. 성인 평균 독서율은 65.3%로 1994년 조사 시작 이래 최저였습니다. 반면, 책 읽은 성인들의 평균 독서량은 14권으로, 2013년 조사 12.9권에 비해 늘었습니다. 이 결과는 읽는 사람만 더 읽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다이어트, 금연과 함께 신년계획에서 늘 빠지지 않는 게 ‘독서’입니다. 읽고는 싶은데, 시행착오와 기회비용을 줄이고픈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책 깨나 읽는다는 교보문고 상위 0.1% 고객은 대체 무슨 책을 읽었을까 살펴보았습니다. 2015년 전체 독자군과 0.1% 독자군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100권 목록과 비교한 결과가 <한국일보> 에 나왔었습니다. 그 내용들을 소개합니다.
우선 0.1%의 상위 독자들은 40대 비율이 42.86%로 압도적이었습니다. 그 다음이 30대(25.43%), 50대(19.41%) 순이었습니다. 남성, 여성 비율은 53.26%, 46.74%였습니다. 전체 독자군에서는 40대(29.3%), 20대(27.7%), 30대(27%) 순이었지만 세대별 차이가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았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34.2%, 65.8%로 여성이 두 배 가까이 많았습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이들 0.1%의 독자군이 구매하는 책의 규모는 한해 보통 200권 정도”라면서 “사들인 책을 다 읽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선물용 등으로 대량구매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집계하기 때문에 구매 목적은 일단 본인들이 읽기 위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인지 이들이 고르는 책에서는 40대 남성의 취향이 두드러집니다. 전체 독자에서 9%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어’나 요리책 같은 ‘가정ㆍ생활’분야의 책은 0.1% 독자들의 책에선 보이지 않습니다. 전체 독자에서 1ㆍ2위를 차지한 시ㆍ에세이(22%), 소설(20%) 분야는 각각 3위(15%), 5위(12%)로 떨어졌습니다.
0.1% 독자들에서는 대신 ‘인문’영역이 눈에 띕니다. 전체 독자에서 인문 비중은 12%였으나 0.1% 독자층에서는 24%로 비중이 두 배나 높았습니다. 사서 읽는 구체적인 책에서도 ‘0.1%’와 ‘전체’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전제 독자층에서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생각의길),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에디톨로지’(21세기북스)가 18위, 30위로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반면 0.1% 독자층에서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담론’(돌베개)이 3위,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짚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김영사)가 22위였습니다.
이외에도 공중보건의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부키), 일본 교육심리학자 사이토 다카시의 ‘곁에 두고 읽는 니체’(홍익)가 50위, 53위였습니다. 과학의 최전선을 인문학적 글쓰기로 풀어낸 ‘김대식의 빅퀘스천’(동아시아), 오에 겐자부로가 털어놓은 독서인생 ‘읽는 인간’(위즈덤하우스)이 각각 82, 85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가운데 ‘담론’을 제외하면 전체 독자 구매 도서 100위권에 든 책은 한 권도 없었습니다.
0.1% 열혈 독서 집단의 또 다른 특징은 과학, 역사, 정치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점입니다. 전체 독자에서 이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모두 10위권 밖이었지만, 0.1% 독자군에서는 나란히 6, 7, 8위를 차지했습니다. 과학 분야에서는 과학 관련 황당한 질문들에 대한 유머스러운 대답을 담은 ‘위험한 과학책’(시공사), 뇌과학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탐구한 ‘마음의 미래’(김영사), 영원한 고전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가 각각 20, 56, 87위에 올랐습니다. ‘역사ㆍ문화’분야에선 유홍준의 입담이 재미있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남한강편’(창비), ‘세계사를 품은 영어이야기’(허니와이즈)가 30, 43위를 기록했습니다.
‘정치ㆍ사회’ 영역에서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저자의 책이 100위권에 올랐습니다. 하버드대 박사인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교수의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21세기북스),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을 지낸 다니엘 튜더의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문학동네)이 각각 77, 91위였습니다. 이 가운데 전체 독자군에서 100위권에 든 책은 ‘위험한 과학책’(94위)이 유일합니다.
출판사 관계자는 “아무래도 0.1% 고객층은 독자들과의 교감을 고려할 뿐 아니라 탄탄한 내용과 구성까지 갖춘 책을 선호한다”면서 “이들 중심 독자들에게 어필한 뒤 전체 독자군으로 퍼져나가는 베스트셀러의 모델을 만들어가는 게 모든 출판사들의 숙제”라고 말했습니다.
새해가 되면 큰 맘을 먹고 인터넷 주문으로 책을 몇 권 신청합니다. 오매불망 책을 기다리지만 정작 책을 받으면 읽는 것이 도리어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대충을 내용을 흩어보고 책장에 올려논 책도 있고 제대로 읽기 위하여 책상 옆에 앉혀논 책도 있습니다.
시간이 나면 읽어야지 생각했던 책들은 어느 덧 먼지에 눌러 숨쉬기가 힘들어 보입니다. 중간중간에 책갈피가 끼워진 책들의 숫자는 다 읽은 책의 숫자를 넘어서는 기분입니다. 즐거워야 할 책읽기가 숙제처럼 밀려오면 먼지가 쌓인 책 위에는 다른 책들이 쌓여만 갑니다.
새롭게 시작한 문화센터 한쪽 구석에 작은 책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책장에서 먼지에 깔려 있던 몇 권의 책들을 구조하여(?) 문화센터 책장에 갖다 놓았습니다. 아이들을 기다리던 어머니 한 분이 책장을 유심히 보시더니 얇은 책 한 권을 뽑아서 소파에 앉으셨습니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기다리며 스마트폰에 집중하시지만 책을 보시는 모습이 좋아 보였습니다.
집에서는 먼지에 깔려 재대로 숨을 쉬지도 못했던 책이였지만 먼지를 털어 버리고 새로운 자리에 자리를 잡더니 누군가의 양식이 되었습니다. 책을 열면 책은 숨을 쉽니다. 먼지에 눌려서 생명력을 잃었던 책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책의 호흡은 책과 마주하는 사람에게 전달되어지고 호흡은 생명력이 됩니다.
먼지 쌓은 책이 숨을 쉴 수 있도록 책을 구해 주어야 합니다. 당신이 구한 책 한 권이 당신을 구할 것입니다. 오늘이라도 덮어 두었던 책을 열고 그 안에 숨어있는 호흡을 느끼며 생명력을 찾아가야 합니다. 나중에라는 말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핑계의 말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혹시, 먼지에 깔린 책들 가운데 당신의 성경책이 있다면 가장 먼저 구출해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펼쳐서 읽기 시작해야 합니다. 진정한 생명력의 신비를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편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