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부드러운 눈빛과 따스한 말 한마디”
영화 ‘사도’에서 찾은 사랑의 언어
2015년도를 시작하면서 ‘가족사랑 프로젝트’ 라는 문구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5월부터 시작하며 10월까지의 시간은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 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6개월간의 노력으로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습니다. 이젠 11월에 있을 브리즈번 공연을 준비해야 하지만 잠시 한숨을 돌릴 기회를 얻은 느낌입니다.
지난 화요일 잠시 머리도 식힐겸 극장을 찾았습니다. 요즘은 한국 영화들이 종종 들어와 극장에 갈 맛(?)이 납니다. 지난 번 ‘명량’ 과 ‘베테랑’에 이어 이번에는 ‘사도’ 를 보았습니다. 공연을 하는 사람의 눈에는 영화를 볼 때, 작품의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과 함께 배우들의 연기에 관심이 쏠리기 마련입니다. ‘관상’을 통하여 ‘역시, 송강호’라는 확신을 갖게한 배우 송강호는 사도를 통하여 ‘과연 송강호! 누가 이 역활을 이만큼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감탄을 갖게 하였습니다. 여기에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유아인’의 소위 ‘미친 존재감’ 역시 탁월한 캐스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탁월한 두 명의 연기 지존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몇 백년전에 있었던 오래된 이야기였지만 지금을 사는 우리들에게 큰 공감을 갖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와 같은 평민들하고는 격(?)이 다른 왕과 왕자의 이야기였지만 현대를 사는 아비와 자식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습니다.
얼마전 강남 엄마들 사이에선 영화 ‘사도’가 큰 인기라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 때도 박스오피스 1위를 굳건히 지키며 강남 지역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선 ‘사도’ 매진 사례가 이어졌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20·30대 관객은 줄어들었지만 아이 손을 잡은 40대 강남 엄마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진 것입니다. 강남 엄마들은 대개 사도세자를 제물(?)로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성공한다’는 교훈을 아이에게 심어주려 고 이 영화를 택한다고 하고 어떤 분은 ‘공부 않하면 너도 뒤주에 갖힐 수 있다’ 는 경고를 주기 위함이라는 농담도 합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온 뒤엔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합니다.
남편과 아들 둘까지 네 식구가 같은 ‘사도’를 본 공무원 변모(47)씨는 “처음 생각대로 ‘엄마 말 안 듣고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사도세자처럼 된다’는 의식을 제대로 심어준 것 같다”며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듯 했지만 또 다른 40대 강남 주부 윤모씨는 “아이들에게 역사 공부가 될 것 같아 극장엘 갔는데, 나올 땐 오히려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고 하며 “영조처럼 자식을 몰아붙이다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것 아닌가”라며 “공부를 시키거나 혼낼 때도 ‘과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영화를 본 아이들도 대체로 비슷한 반응을 보였는데 중학생 A군은 “영화를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부모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거나 공부를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고 했고 “사도세자 뒤주를 보면서 ‘스터디룸’이 생각 났다”는 중학생도 있었다고 합니다.
‘스터디룸’은 지난해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구입 물품이었습니다. 사방이 막힌 직육면체 부스 안에 책상과 의자를 붙인 가구 ‘스터디룸’이 큰 인기를 끌었던 것입니다. 가로 1.1m, 세로 0.8m, 높이 2.1m로 중고생 한 명이 들어가면 딱 맞는 이 부스는 200만원이 넘는데도, 아이의 집중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이유로 강남에서 크게 유행했다고 합니다. 일부 엄마들은 스터디룸에서 공부하는 아이를 감시하려고 CCTV나 잠금 장치, 소리 나는 종까지 달았고, 이를 두고 아이를 감금하는 ‘현대판 사도세자 뒤주’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습니다.
가끔 SNS 를 통하여 ‘스터디룸’ 이야기를 몇 번 볼 때마다 과장된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지만 ‘현대판 뒤주’에서 생존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뉴스를 보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순 없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무엇으로 막겠습니까? 그러나, 자신의 욕심을 아이들을 통하여 채우려는 지나친 ‘과잉사랑’이 우리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영화 ‘사도’는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인 임오화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사건) 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조선 왕조중 가장 오랜 기간인 51년을 통치한 왕인 영조와 그의 아들 사도세자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아버지인 영조의 관점과 아들인 사도세자의 관점으로 진행이 됩니다. 이 영화 곳곳에는 영조라는 아버지의 아픔과 사도세자라는 아들의 아픔이 함께 뭍어 있습니다.
먼저 영조는 세 가지의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입니다.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출생에 대한 콤플렉스와 형인 경종을 죽인 동생이라는 콤플렉스 그리고, 스스로 왕위에 오를 수 없어 노론을 등에 업고 즉위한 왕이라는 압박감에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영조의 콤플렉스는 모든 부분에서 철저히 스스로를 통제하였고 누구보다 철저한 자기관리에 철저 했습니다. 그것은 고스란히 늦둥이였던 사도세자에게도 요구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예와 예술을 좋아하던 사도세자에게 이러한 엄격한 규칙은 큰 압박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 영조의 콤플렉스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네 아버지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아무런 배경없이 몸둥이 하나만을 가지고 살아 온 아버지들의 모습과 직장에서 누군가를 올라타지 않고는 설 수 없는 환경들 그리고,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밑바닦을 기어야 하는 슬픈 아버지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현재의 자리에 오리기까지의 아픔과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겪는 고뇌도 닮은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왕이나 왕족은 죽고나서 그 인물의 업적에 따라서 이름이 결정됩니다. 사도세자의 이름 역시 사후에 지어진 이름입니다. 영화속에 나오는 영조의 대사와 같이 ‘생각할 사’ 와 ‘슬퍼할 도’ 라는 의미를 ‘사도세자’의 이름도 그렇습니다. 학자들은 영조는 자식을 죽인 것을 후회하거나 아니면 다른 속뜻이 있지는 않았을까를 추축하기도 합니다. 총명하고 천재라 칭송받던 사도세자는 대리청정을 하면서 영조와 의견대립이 잦았고 서서히 아버지인 영조와 멀어지고 중압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중압감 때문인지 사도세자는 의대증이라는 정신병을 얻습니다. 이 병은 옷을 입는데 한나절이 걸리고 벗기도 어려웠다고 합니다. 입거나 벗을 때 옷이 자신의 몸에 닿으면 발작을 일으켰다고 전해집니다.
영화 속에도 등장하지만 사도세자의 그림중 ‘개’를 들여다 보면 어미 개로 보이는 큰 개와 작은 강아지 두 마리가 나옵니다. 작은 강아지는 해맑게 어미를 향해 뛰어가지만 어미 개는 등을 돌리고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학자들은 이것이 사도세자가 영조에게 받은 느낌을 잘 드러냈다고 말합니다. 영조로부터 받은 중압감과 더불어 사도세자가 아버지인 영조에게 관심받기를 바랬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영화 ‘사도’는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보다는 가족적인 메시지를 다룬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콤플렉스를 가진 아버지 영조와 천재로써 많은 기대를 받았던 사도세자 그리고 천민출신으로 숨어지내며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 영빈 그리고 자식만을 생각하는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등의 등장인물들 모두는 결핍을 가진 어느 가정에나 있을수 있는 그런 인물들입니다. 이러한 구성원의 행동이나 그들이 속한 상황을 통해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특별히, 영화 속을 들여다 보면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자결을 명하며 “왕이 아닌 아비로써 집안일으로써 말한다”라는 대사를 보면 영화의 의도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영조와 사도세자의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기대와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왕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더 인정 받기를 원했던 영조와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인정 받지 못한 아픔을 가진 사도세자을 보면서 안따까운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극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을 때, 이런 대화를 나눠야 한단 말인가?” 아들에 대한 애처러움과 아비에 대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남는 대사입니다.
인생은 깨닭고 나면 늦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언제 부드러운 눈빛과 따스한 말 한마디를 건낸적이 있소” 라고 외치던 사도세자의 음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누군가의 아들이며 또 누군가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다시금 되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을 한다는 것이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도 아들로써 아버지로써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제게 주신 두 아들에게 부드러운 눈빛과 따스한 말 한마디를 건내는 아버지가 되어야 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를 향한 영원한 아버지의 음성을 영혼에 담고 싶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편 2: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