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사랑과 정의와 같은 보편적인 상식을 담고 싶었지 말입니다.”
– 태양의 후예를 제작한 김우택 대표 이야기
상반기 가장 큰 드라마 히트작은 단연 KBS의 ‘태양의 후예’ 입니다. 16부작으로 제작된 이 드라마의 마지막 회의 시청률이 40% 에 육박하는 놀라운 돌풍을 가져왔습니다. 경제적 가치가 3조 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고 PPL 광고 수입도 35억원이 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배우 송중기는 연예인 최초로 ‘KBS 뉴스 9’ 에 츨연을 했을 정도입니다.매일 아침 7시에 나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김대표는 “꿈과 상식이 잘 붙기 위해서는 정신적 육체적 조직적 체력이 필요하다.” 고 말하며 “사업 계획은 창사 이래 세워본 적이 없고, 똑똑한 사람 대신 꿈이 맞는 사람과 일한다”고 합니다. 또한, 김대표는 스스로의 매력에 대하여 말하길 “꿈이 있다는 거다. NEW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자기 꿈과 오너의 꿈이 맞는 사람들이 오래 있는다. 꿈이 맞는 사람들끼리 있으면 힘들어도 행복하다. 꿈이 안 맞으면 다른 직장을 구하든지, 자기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라고 합니다.
특별히, NEW의 꿈은 “멋진 미디어 회사가 되는 것이다. 미디어 회사다운 자유와 창의성을 근간으로 해서 사랑과 정의 같은 상식적인 가치를 대중과 나누고 사회에 널리 소통시키면서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이다. 구글 회사에서 일해본 적은 없지만, 구글의 이미지를 좋아한다. 대기업 시스템에서 나온 공장 같은 미디어 경영은 피하고 싶다.”로 합니다.
김대표는 1998년부터 10년 동안 메가박스, 쇼박스 등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젊은 나이에 대표까지 올랐습니다. 메가박스 총괄대표를 맡았을 때가 겨우 36살이었습니다. 회사는 김대표에게 자기의 일을 하는 것처럼 모든 권한을 주었고 눈치를 보지 않고 일을 하다보니 회사가 성장을 했고 돈도 영향력도 날이 갈수록 커졌습니다. 지금도 김대표는 이 일을 가장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2008년 즈음엔 이 일을 좀더 소명을 갖고 하고 싶어졌고 NEW는 작지만 강한 회사로 영화계에서 차근차근 이름을 얻어갔습니다.
그 방법은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투자 방식과 저예산의 작은 영화를 여러 편 제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2013년이었습니다. 2012년 ‘내 아내의 모든 것’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피에타’ 등 화제작들을 내놓으며 시동을 건 NEW는 이듬해 2013년 ‘7번 방의 선물’과 ‘변호인’, ‘신세계’ 등으로 잇따라 대박을 터뜨렸고 CJ와 쇼박스, 롯데를 이기고 그해 관객 동원 1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내리막길도 있었습니다. 2014년과 2015년 ‘허삼관’과 ‘대호’ 등 크게 실패를 맛보았고 주가는 급락하고 재무 환경을 염려하는 시선도 많았지만, 잘 나갈 때나 못 나갈 때나 김우택 대표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2년간 우직하게 뮤지컬과 스포츠, 음악 사업부를 론칭하며 저변을 확대했고, 중국의 금융 자본과 엔터테인먼트를 연결해 갔습니다. 결국 2014년엔 중국의 드라마제작·유통업체인 화처미디어로부터 540억 원의 투자유치 계약에 이어 2015년 10월에는 중국에 합자법인 화책 미디어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는 ‘태양의 후예’라는 작품을 중심으로 잠재적인 에너지를 폭발시킨 것입니다.
‘태양의 후예’의 제작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선 “이걸 통해서 직원들이 많이 배울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우리 회사는 드라마 제작은 처음이라 드라마 팀도 없어서 각 팀에서 차출해서 7~8명이 이 일을 해냈다. 실수도 많았지만 확실히 노하우가 쌓였다는 게 느껴졌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다음에 하면 진짜 잘할 수 있다였다. 남이 하는 데 돈만 넣었다면, 크게 터져 돈은 벌었겠지만 ‘넥스트’를 기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뮤지컬 ‘디셈버’를 처음 시작할 때도 그랬었다. 그 분야에 아무것도 몰랐지만, 일단 김광석 음원으로 판을 크게 벌였던 것이다.”라고 합니다.
김대표는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고자 하는 개척자 기질이 강합니다. 엔터테인먼트 출신도 아니고, 경영학도에 M&A 전문가였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회사를 크게 하고 싶은 욕심이 정말 강했지만 미디어라는 업을 즐긴 건 아니었다고 합니다. 40대가 돼서야 회사 크기나 시장점유율보다 더 중요한, 대중과 소통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내가 가진 철학을 나누고 싶다는 소명에서 이 일에 뛰어 들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철학이 생겼는데 가족, 사랑, 정의, 통일 등의 건강한 상식을 나누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변호인’이나 ‘그대를 사랑합니다’ 같은 영화를 만들었고 특별히, 쇼박스 시절에 ‘웰컴 투 동막골’ 같은 영화를 배급했던 것입니다. ‘태양의 후예’를 결정한 것도 그 이야기가 대단히 보편적인 상식을 담고 있어서라고 합니다.
애국주의를 조장한다거나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분들도 많지만, 군인이 나라에 충성하고 의사가 사람을 살리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청자들은 송중기의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를 좋아하지만, 김대표는 개인적으로 유시진 대위가 국가에 관해 얘기할 때나 강모연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할 때, 이 드라마를 잘 했다는 확신을 갖었다고 합니다.
아침 7시 정도에 출근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데 이 시간이 가장 중요한 시간이며 간단히 기도하고 차 마시고 생각을 정리하고, 아침 9시 반부터 본격적인 일과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 뒤부터는 계속 결정하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김대표는 이 시대에 리더가 가지고 있어야 할 능력으로 공감을 뽑았습니다. 어떻게 요즘 같은 바쁜 사회에서 사전 제작된 드라마가 시청률 40% 육박하게 할 수 있었을까요? 결국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끌어냈던 것입니다.
얼마전 나영석 PD 에 관한 글을 읽은적이 있었습니다. 나PD 가 ‘예능계 마이다스의 손’ 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그가 박학다식하거나 뛰어난 사람이 아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평범함의 능력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평범함의 능력은 다름아닌 공감의 능력이었습니다. 특별히, 바쁜 일상 가운데에도 쉼표를 줄 수 있는 보편적 공감인 여행과 음식이라는 컨텐츠가 사랑을 받은 것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매일매일 솟아져 나오는 새로운 것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혼동스럽게 할지라도 결국 보편적인 가치인 공감만큼 마음을 얻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누구를 정죄하고 바꾸려는 시도보다는 함께 먹고 함께 마시며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내셨던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빌립보서 2: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