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영원한 강자는 없다”
– 노래방의 황제기업이었던 금영의 흥망성쇠 이야기
“별 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노래방에 가면 누군가는 꼭 부른다는 ‘아파트’ 라는 노래의 첫 소절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노래방 한 번 안가본 사람이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오늘은 노래방과 연관된 이야기를 나눕니다.
젊은 시절 노래방은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최고의 특효약이었습니다. 팍팍한 삶에서 노래방은 한국인들에게 회복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퇴근 후 직장인들의 회식, 주부들의 친목 모임, 대학생들의 놀이문화에서 노래방은 국민 오락의 대명사였습니다. 또한 IMF 로 직장을 떠나야 했던 이들에게 노래방은 새로운 창업 아이템이 되었으며 침체된 부동산 경기도 살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노래방은 청소년들에게는 가수의 꿈을 키우는 연습장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한류(韓流) 오디션 스타들이 노래방에서 연습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노래방의 개척자이자, 황제라고 불리던 (주)금영은 아쉽게도 올 3월을 끝으로 노래방 사업을 포기하고 부산의 한 중소기업에 인수되었다고 합니다.
국내 최초의 공식 노래방은 1991년 5월 12일 해운대에 등장한 ‘하와이비치 노래연습장’이었습니다. 노래연습장은 오락실에 설치된 1.5평 부스의 ‘동전 노래방’이었는데 300원에 한 곡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노래연습장은 ‘음식과 주류의 반입이 금지된 노래반주기 서비스업’ 개념으로 한국 사회에 공식 등장하게 됩니다. 이때 노래반주기에 주목했던 사람이 문방구 게임기기를 제조하던 남경실업의 김승영 대표였습니다.
1984년, 청소년용 전자오락기기를 제조·생산했던 김승영 대표는 정부의 청소년 비디오 게임기를 유해 상품으로 규제하는 바람에 사업을 접게 됩니다. 일본의 비디오 게임기를 연구하던 김 대표는 1989년 일본의 가라오케(Karaoke)를 보고 종목을 전자부품 및 음향, 노래 반주기 사업으로 전환하여 회사를 법인으로 하고, 상호도 금영으로 바꿨습니다.
금영은 일본의 가라오케 기기를 카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일본 가라오케는 레이저 디스크에 곡을 담는 방식이었는데, 김 대표는 노래를 반도체 칩에 담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훨씬 더 많은 곡을 담을 수 있고, 검색과 업데이트에 유리했던 것입니다. 이 전략은 성공을 가져왔습니다. 잠깐 반짝했던 일본식 디스크 가라오케는 전멸했고 (주)아싸와 (주)TJ미디어, (주)금영이 국내 시장을 놓고 격돌하게 된 것입니다.
김승영 대표의 금영은 후발 주자였습니다. 그는 아싸가 오케스트라 반주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MIDI라는 컴퓨터 반주기를 이용해 곡을 녹음했습니다. 이때 현실감이 오케스트라에 떨어지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코러스와 팡파르 기능을 넣었습니다. MIDI를 이용한 녹음은 단시간에 최신 곡들을 경쟁사보다 더 많이 녹음해 노래방에 공급할 수 있게 됩니다. 당연히 노래방 사업자들로서는 신곡이 많은 업체를 선호하게 된 것입니다.
노래방에 가면 떠져 나오는 팡파르에 관한 비밀이 있었습니다. 금영의 초기 팡파르는 노래 부르는 이의 박자, 음정 등을 컴퓨터가 계산해 점수를 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취기가 오른 손님들이 점수가 안 나오자 노래반주기를 발로 걷어차 고장이 잦게 됩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무작위로 점수를 주는 시스템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결국, 노래 실력과 점수는 상관이 없게 된 것입니다.
(주)아싸가 금영에 밀릴 무렵, 청년층을 타깃으로 한 태진(TJ)미디어의 질러노래방이 상승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이후 노래방 손님들은 금영과 TJ미디어로 확연하게 구분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금영의 김승영 대표는 이를 기발한 방법으로 돌파했습니다. 노래방에 신곡 업데이트를 직원이 방문해 처리해 주는 것이 아니라, 2000년대 초 급속히 확산된 인터넷 전용선을 통해 실시간으로 처리했던 것입니다. 세계 최초로 가라오케 노래방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아이디어는 금영이 일본에 진출해 가라오케 손님들 간에 노래 베팅을 하는 시스템으로 진화됩니다. 일본의 가라오케 문화는 손님들 간에 노래 시합을 하는 전통이 있었고 금영의 온라인 노래반주기 시스템은 여기서 대박을 친 것입니다. 금영이 일본에 진출한 2000년까지는 한국 기업이 일본에 진출한 전례가 많지 않았습니다. 일부 가라오케 전문기업이 원가 절감을 위해 중국산 OEM을 시도했으나 품질하자 문제와 콘텐츠 부재 등으로 사업을 포기하면서 금영은 2003년 일본 진출의 기회를 맞게 됩니다. 금영은 먼저 일본 가라오케 기기 빅3 중 한 업체의 콘텐츠 개발에 참여하다가 2003년 ‘KY Japan’을 설립합니다. 2006년에는 ‘UGANAVI KING’이라는 곡목 검색기를 출시했고 지금은 일본 내 시장점유율 80%에 해당하는 기업에 지속적으로 자사의 제품을 납품하며, 93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김승영 대표가 이처럼 발 빠르게 시장에 대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노래와는 담을 쌓은 IT 엔지니어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노래방 시장은 급속하게 금영 측으로 기울게 됩니다. 노래방 반주기의 70%가 금영이었고, TJ미디어가 30%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금영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좀 더 발전된 기술을 개발하게 되는데, 바로 무선 마이크 시스템이었습니다. 노래방은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므로 유선 마이크가 불편함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무선 마이크 기술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한 끝에 금영은 노래방 무선 마이크 시스템에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금영의 몰락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무리한 사업 다각화가 화근이었습니다. 금영은 2012년 휴대전화 부품 업체인 아이디에스와 음향·통신장비 업체인 르네코의 지분을 인수했습니다. 그러나 인수한 회사들이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별도 재무제표 기준으로 2014년 말 금영의 부채 비율은 717%, 단기차입금은 416억 원에 달하게 됩니다
여기에 음원저작권협회에서 금영을 압박해 왔고 노래방 음원 저작권료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금영과의 음원이용계약을 해지하게 됩니다. 여기에 불건전한 재무행위도 문제가 되어 검찰의 수사를 받았고 결국 재무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올 3월에 사업의 근간인 노래방 사업부를 셋톱박스를 만드는 부산의 한 중소기업에 매각하기 됩니다.
한때, 노래방의 황제기업이었던 금영의 흥망성쇠는 시장에서 영원한 강자란 존재할 수 없으며, 고객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언제나 고객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진리를 알려 줍니다. 부산의 벽돌 깨기 문방구 게임 제조사에서 출발하여 일본 가라오케 시장을 석권했던 금영이지만 자신에게 이윤을 남겨주는 소비자에게는 끝까지 보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금영의 몰락은 시장경제에는 영원한 승자가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일깨운 사건입니다.
성경에는 수 많은 나라들이 등장합니다. 이 나라들이 시작될 때는 영원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과 같이 지금은 다 사라진 과거의 나라들이 되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주변을 돌아보면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 옵니다. 괜시리 내 환경과 상황을 탓하며 스스로 약자라며 비하 하기도 합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역사가 증명하고 사회가 말해 주듯이 영원한 강자는 없습니다. 만약에 영원한 강자가 있다면 사랑의 왕이신 예수님이실 겁니다. 그러나, 그분은 스스로가 강자가 되시기 보다는 자신이 사랑하시는 약자들의 편에 있으셨기 때문에 강자로 표현되기를 원하시진 않을 것 같습니다.
강자가 되기 보다는 사명자가 되십시오. 자신의 사명을 위하여 강자의 자리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과 같은 사명자가 되십시오. 힘은 영원하지 않지만 사명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이사야 40: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