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이 시대의 진정한 ‘태양의 후예(태후)’
– 미국 최악의 우범 지대에서 사역하는 이태후 목사 이야기
얼마전 한국의 유명 일간지에서는 어느 목사의 이야기를 기사로 내보냈습니다. 일반적인 목사의 목회 사역과는 조금 다른 사역을 하는 목사의 이야기였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흑인 동네 노스센트럴(North Central)에서 사역하는 이태후(51)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설교보다는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어느 목사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목사는 2003년부터 13년째 노스센트럴에서 살고 있습니다. 서울대 미학과와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뉴욕 한인교회에서 7년 동안 사역하다가 이곳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노스센트럴은 미국에서도 가장 범죄율이 높은 지역 중 하나이며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살인사건이 많이 일어난 도시로 꼽히는 곳입니다. 주민 94%가량이 흑인이고 이 중 45%가 절대 빈곤층 또는 빈민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2006년도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이 지역 건물 중 44%가 빈 채로 버려졌고 전기와 수도가 끊긴 빈집에서 지내는 불법 거주자(squatter)들이 활개를 치고, 마약 관련 사건·사고와 총기 살인 소식이 끊이지 않는 동네입니다. 필라델피아 시경이 이곳에서 하루 137명의 마약 사범을 검거한 날도 있다고 합니다. 이 목사는 “처음 온 사람은 대낮에도 차에서 내리기는커녕 차를 세우기도 무서워하는 동네”라고 했습니다.
그럼 이 목사는 이런 곳이서 어떠한 사역을 하고 있을까요? 특별한 건 없고 그냥 그곳 주민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침엔 커피 한 잔 들고 현관문 앞에 앉아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여름에는 모여서 바베큐 해먹으면서 수다 떨고, 누가 죽으면 장례식 처리를 도와주고, 누가 법원에 가야 한다고 하면 같이 가서 대리인을 서주고, 일 며칠 못해서 먹을 게 없는 사람에겐 라면 좀 챙겨주고, 세탁소에서 사람들이 안 찾아가는 옷을 받아다가 옷 없는 사람들한테 나눠주는 지극히 평범한 일을 한다고 합니다.
이 목사는 ‘스피릿 앤드 트루스(Spirit & Truth)’라는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떨어진 인근 교회 협동 목사로 있고 그곳에 가서 주일에는 기도도 하고 가끔 설교도 하지만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는 주민들에게 따로 설교를 하진 않는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에게 그보다 급한 게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항상 곁에 있어 줄 사람입니다. 만약 마약 사범이 이곳에서 한 명 죽었다면 보통 사람들 눈엔 그냥 범죄자이겠지만 이 동네에선 그도 누군가의 아들이거나 남편,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 시신을 처리하고 그 죽음으로 충격과 상처를 받은 가족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주된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노스 센트럴은 ‘필라델피아의 할렘’이라고 불립니다. 이곳엔 동양인 거주자는 물론 동양인이 오는 일도 거의 없다고 합니다. 처음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목사를 경계했고 말을 거는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목사는 개의치 않고 매일 거리 청소를 했고 지저분한 쓰레기를 치우고 꽃 화분을 여기저기 갖다 놓았다고 합니다.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동네가 조금씩 밝아졌고 6개월쯤 지났을 때 사람들이 뭐 하는 사람이냐고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이 목사가 그냥 ‘목사’ 라고 대답하면 주민들은 어리둥절해했다고 합니다. 흑인 목사들조차도 살지 않는 동네에 동양인 목사가 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노스센트럴 흑인들 모두 ‘레버런드 리(Reverend Lee·이 목사님)’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 목사는 ‘교회로 오라’고 하는 것보다 그들과 함께 사는게 훨씬 효과적인 전도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를 꼭 교회에서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을 위한 좋은 이웃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그걸 실행에 옮기고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이태후 목사가 이 지역에서 더욱 유명해진 건 특별한 행사 때문이었습니다. 2006년부터 매년 여름 한 달간 한 블록에 차가 다니지 못하도록 거리를 막아놓고 동네 아이들을 맘껏 뛰어놀게 하는 이른바 ‘여름 캠프’를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처음 캠프를 열 때만 해도 아이들이 15명 정도 모였는데, 요즘엔 6~15세 아이들이 140명가량 찾아온다고 합니다.
여름 캠프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여름방학 기간에 시청에 ‘플레이 스트리트(Play Street)’라는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됩니다. 빈민가 아이들을 위해 매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차가 다니지 못하도록 길을 막아놓고 아이들을 뛰어놀도록 해준 것입니다. 시청에서 공짜로 점심도 주고 방학이 되면 딱히 갈 데가 없어서 방황하는 이곳 아이들을 위하여 신청해서 진행을 했던 것입니다. 자원봉사자를 불러 모은 뒤 아이들에게 밥도 주고, 공부도 가르치고, 실컷 놀게 해주겠다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 효과를 거둔 것입니다.
캠프는 4주간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리는데, 월·화·목요일은 정규 수업을 합니다. 아침엔 간단하게 찬양을 배웁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하고 다 같이 마셜 아트(태권도나 가라테, 유도 등의 격투 기술)를 배우기도 합니다. 수요일엔 다 같이 버스를 타고 45분쯤 떨어진 공용 수영장에 가서 물놀이를 하고 금요일엔 소풍으로 수족관이나 동물원 등에 갑니다. 다 같이 모여서 한 달간 재밌고 신나게 노는 단순한 프로그램입니다. 우범 지역에서 열리는 평범한 여름 캠프가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한 것입니다.
아침에 짧게 하는 성경공부를 통하여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기본 윤리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왜 땀 흘려 일을 해야 하는지? 가족이 무엇인지? 결혼을 하는 것은 왜 중요한지? 등과 같은 것들을 알려 줍니다. 대부분의 이 동네 아이들은 일을 해서 돈을 버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어렸을 때 자연스럽게 마약부터 손을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들도 보통 집에 없고 아이가 넷인데 그 아빠가 모두 제각각인 집도 있을 정도 입니다. 생명을 낳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등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학력 수준이 상상 이상으로 낮은 지역이기 때문에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고 대부분 꿈이 없다고 합니다. 남자 아이들은 농구 선수, 힙합 가수, 갱스터가 되고 싶다고만 하고 여자 아이들은 모델 아니면 엄마가 되겠다고 하는데 다른 직업이 뭐가 있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주 동안 캠프에서 자원봉사자 선생님들과 놀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적인 자극을 받게 됩니다. 캠프가 끝날 무렵엔 아이들 꿈이 꽤 다양해집니다. 대학은 백인이나 동양인만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엔지니어나 변호사, 건축설계사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캠프 내내 뚱하던 아이들도 제법 있는데, 막상 캠프 끝날 때가 되면 ‘캠프가 너무 짧다’고 투덜대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부모도 덩달아 변한다고 합니다. 이 목사는 “자기 자식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는데 마음이 안 열리는 부모가 어딨겠어요. 한번은 동네 마약 거래 조직 두목이 찾아와서 ‘아이들을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돈을 준 적도 있어요. 마약상의 돈을 받을 순 없어서 ‘마음만 받겠다’고 했죠.(웃음)” 라고 합니다.
빈민층 아이에게 실현 못 할 꿈을 공연히 심어줄 수도 있지 않느냐는 걱정 어린 시선도 있지만 현실적인 꿈을 꿀 수 있도록 돕습니다. 나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나도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이런 것을 알고 난 아이들의 표정은 자기 만족감과 자신감에 넘치게 된다고 합니다. 마약 거래하는 아이들도 사실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싶어하지만 일자리를 어떻게 잡을지 몰라 헤매다 결국 마약에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모두 대학을 가라거나 화이트칼라가 되라고 가르치지 않고 배관, 용접, 미용 같은 기술을 배워서 죄를 짓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며 그렇게 하면 충분히 자립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고 합니다.
이 목사는 한국 교회를 보면서 오랫동안 품었던 고민과 회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닌 세대로 한쪽에선 분신하고 뛰어내리며 투쟁하는 것을 보았고 교회에선 찬송가만 부르고 있는 걸 봤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당장 일자리가 없고 밥을 먹지 못하는 이들도 많은데 대형 교회가 줄줄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복음이 인류를 향한 기쁜 소식임을 믿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할까를 고민하고 어떻게 살아야 복음을 알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합니다. 한국 교회가 전파하는 지극히 단편적이고 얕은 구원인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는 식의 개인주의적 구원은 기독교가 전파하는 구원에서 지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목사는 2013년 한국에 잠시 들어와 머물 때도 서울 하월곡동 성매매촌인 속칭 ‘미아리 텍사스’에서 성매매 여성들에게 장미꽃과 초콜릿, 카드를 나눠주는 무료 공연을 두 차례 열기도 했습니다.
목사의 중요한 사역은 당연히 말씀을 전파하는 사역입니다. 그러나, 단지 말씀만 전하는 사역을 넘어서 말씀을 실천하는 사역을 할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에 더 가깝게 될 것입니다. 혹시나 마음 속에 나는 강단에서만 외칠테니 성도들만 나가서 실천하라는 목사가 있다면 너무나 안타까울 것 같습니다. 신앙은 고백으로 시작하여 실천으로 완성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태양의 후예(태후)’가 바로 이 ‘태후’목사가 아닐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