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인생의 절대 강자는 없습니다.
이 시대의 삶의 모습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바로, 모발폰(휴대폰)입니다. 이 모발폰이 대중화되는데 큰 영향을 끼친 회사가 있습니다. ‘노키아(NOKIA)’ 라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한때 세계 최강의 모발폰 브랜드였던 노키아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노키아 휴대폰’ 사업부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매각된 데 이어 그 브랜드마저 없어질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MS의 스티븐 엘롭 디바이스그룹 책임자는 “노키아 브랜드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며 “훨씬 더 진취적인(go-forward) 브랜드를 선별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주요 외신들은 스마트폰에서 노키아를 지우고 MS의 색깔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노키아는 1992년 ‘요르마 올릴라’의 최고경영자(CEO) 취임과 함께 기존 사업을 매각하고 정보기술(IT) 분야에 집중하면서 글로벌 최강의 IT기업으로 변신 했었습니다. 그 성과는 1998∼2011년 세계 모발폰 업계 1위 자리를 연속 14년을 차지하는 모발폰 업계의 ‘절대 강자’ 로 불리웠으며 한때는 시장 점유율이 무려 70%를 넘어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노키아는 우리나와도 일찍 인연을 맺었습니다. 1984년 마산에 노키아TMC라는 휴대폰 생산공장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이름은 탠디모비라통신주식회사였습니다. 이 시절에 국내에서는 지금과 같은 휴대폰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폰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노키아의 한국 상륙이 한국 이동통신 서비스의 시작이며 올해가 한국 이동통신서비스 30주년이라고 합니다.
모발폰 업계의 절대 강자에서 이제는 사라지는 브랜드로 버림 받은 노키아의 역사는 세기를 거슬러 1865년까지 올라갑니다. ‘프레드릭 이데스탐’이 핀란드 남서부 소도시 ‘노키아’에 세운 종이공장이 그 모태입니다. 노키아의 시작은 통신이 아니라,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드는 펄프회사였습니다. ‘노키아’라는 이름은 당시 공장이 세워진 소도시의 이름입니다. 강을 끼고 있어 목재 운송이 편했기 때문에 이데스탐이 회사를 그 곳에 세웠다고 합니다. 초창기 노키아 로고에 등장하는 물고기는 소도시 ‘노키아’의 강을 뜻합니다. 세계대전을 거치며 노키아는 본격적으로 미국 기업과 견줄 다크호스로 성장하여 케이블과 임업, 전자 등 다양한 분야로 성장하였습니다.
처음으로 모발폰을 만든 해는 지난 1987년입니다. ‘모비라 시티맨(Mobira Cityman)’이 그 첫 제품이었습니다. 당시에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이 제품을 사용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구소련이 해체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며 당신엔 냉전시대라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인물로도 평가 받았습니다. 이러한 인물이 사용한 모발폰은 혁신과 개혁의 상징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모발폰의 제왕 자리에 오른 1990년은 노키아가 잊을 수 없는 해였습니다. 특히, 1998년에는 미국 모토로라를 제치고 모발폰 연 판매량 첫 1위를 차지했고 핀란드 국민들은 환호했습니다. 펄프를 만들던 소도시의 작은 회사 하나가 핀란드 국가 경제지표를 좌지우지하는 글로벌 기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노키아 제품은 ‘싼 맛’에 사는 그런 제품이 아니였습니다. 유럽형 2세대(2G) 이동통신을 처음 개발한 혁신적인 브랜드가 노키아였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에서 들어오는 로열티 수입만으로도 엄청난 부를 쌓았으며 기술 혁신과 판매 성적 등 모든 분야에서 적수가 없었던 절대 강자가 분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이런 노키아에게도 무서운 적수가 나타났습니다. 노키아에게 2007년은 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해로 기록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바로, 그해 상반기에 첫선을 보인 아이폰 때문이었습니다. 노키아를 무릎꿇게 만든 것은 노키아와 경쟁 관계에 있었던 오랜 적수들이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모발폰 시장에 뛰어들어 이듬해부터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기시작한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이었습니다. 절대 강자였던 노키아는 애플의 급성장과는 반대로 6년연속 매출과 수익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MS 출신 ‘스티븐 엘롭’을 새로운 CEO로 영입했습니다. 엘롭은 취임 후 노키아의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심비안을 “불타는 플랫폼”이라고 하며 ” 당장 여기서 빠져 나와야 한다.(윈도폰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노키아의 스마트폰 사업은 호전되지 않았고 2013년 결국 MS에 매각됐으며 이 때문에 스티븐 엘롭은 MS가 파견한 ‘트로이 목마’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애플 출현 이후 노키아와 함께 위기에 처했던 삼성전자는 노키아와 달리 구글과의 굳건한 안드로이드 동맹을 통해 갤럭시 시리즈를 내놓고 재기에 성공하며 2012년에는 아이폰 시리즈를 제치고 모발폰 시장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결국, 노키아를 제친 아이폰도 절대 강자는 아니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젠간 삼성전자도 물러날 때가 온다는 결론입니다.
미국도 절대 강자의 자리에서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30일 미국의 ‘파이넨셜 타임즈’ 는 중국이 올해 구매력평가(PPP)로 환산한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세계 경제 규모 순위에서 왕좌가 바뀌는 것은 1872년 미국이 영국을 추월한지 142년 만의 일입니다. 금융위기 이래 더 뚜렷해진 달러 패권의 약화와 더불어 미국이 1세기 넘게 지켜온 세계 경제 패권을 뒤흔드는 상징적 사건일 것입니다. 또한 이 신문은 중국 경제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미국을 추월하고 있다고 전했으며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2019년 정도에 중국이 미국을 제칠 것으로 예상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은 실제로 훨씬 빨랐던 것입니다. 또한, 구매력평가 기준의 GDP로 보면 중국뿐 아니라 신흥국들의 부상이 뚜렷하며 이에 따라 세계 경제질서에서 이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반영될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미국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입니다. 20세기 절대 강자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 옛날 ‘알렉산더 제국’이 흔들렸고 ‘로마 제국’이 흔들렸고 ‘대영 제국’이 흔들린 것과 같이 미국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듯이 인생에는 가장 화려한 날들이 있습니다. 이런 화려한 날들이 영원히 지속될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인생은 우리를 위한 화려한 잔치를 영원히 베풀어 주지 않습니다. 인생의 절대 강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연약함을 기억하고 강할 때도 약할 때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어찌보면 나의 연약함을 자랑하는 사람이 스스로 절대 강자가 되려는 사람보다 현명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혹시, 주변에 절대 강자로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너무 부러워 하지 마십시오. 이젠 내려올 일만 남았습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린도후서 11: 30)
현재 임기호 목사는 ‘다음세대 부흥’을 위하여 ‘메시지 커뮤니티 교회’ 와 ‘메시지 스쿨’ 사역을 섬기고 있습니다.
‘메시지 커뮤니티 교회’ 예배는 주일 오전 10:30, 토요일 오후 7:30 에 메시지 스쿨에서 진행됩니다.
홈페이지: www.messageschool.org
학교주소: 43 / 14-26 Telopea Ave, Homebush West NSW 21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