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책에서 답을 구하라’
새로운 스타일의 ‘책방’ 프로그램 <비밀독서단> 이야기
한동안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세를 이루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다가 ‘꾹방’이라고 불리는 요리 프로그램이 바톤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책을 대신 읽어주는 프로그램들인 ‘책방’이 등장을 했습니다. KBS의 <TV, 책을 말하다>에서 <TV, 책을 보다>로 면면히 이어지는 프로그램과 팟 캐스트의 <이동진의 빨간책방>등이 그것들입니다. 처음엔 책을 소개해 주는 분위기 정도였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바쁜 생활 속에서 진득하게 책을 붙들고 앉아있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이 된 것입니다.
<TV, 책을 보다>는 책 소개 프로그램의 틀을 벗어나 책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이나 책에 대한 색다른 주장을 다룬 ‘강독쇼’로 시청자들과의 공감의 폭을 충분히 넓히고 있으며 독서를 권장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지난 9월 15일 첫 선을 보인 O tvN의 <비밀독서단> 역시 책 읽을 시간 없는 시청자들을 위해 대신 책을 읽어 주는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출판과 문학 시장이 하향세를 걷고 있는 가운데 얼마전 독자들의 관심 밖에 있던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는 특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북 토크쇼 O tvN <비밀 독서단>에서 박준 시인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소개되자마자 베스트셀러 1위에 진입하며 출판 시장에 파장을 일으킨 것입니다. 미디어의 등장으로 인기를 얻거나 영화나 드라마 등의 미디어를 통해 화제를 낳는 소위 ‘미디어셀러’가 인기를 얻은 것입니다.
스마트폰 시대가 본격화 되면서부터 종이책의 위기는 찾아왔고 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스마트 기기 사용자들이 스마트폰의 게임, 영화, 방송, 뉴스 등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책을 펴기가 쉽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최근 5년간 한국인의 하루 평균 독서시간은 평일 26분으로 조사되었지만 인터넷의 이용시간은 2.3시간이고 스마트폰 이용시간은 1.6시간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독서 가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현재 한국에선 성인 세 명 중 한 명이 한 해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고 있으며 실질문맹률은 아쉽게도 OECD 국가중 꼴찌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전에는 어려운 시기마다 사람들을 위로하고 길을 밝혀준 책을 포기할 수 없는 문화적 안간힘 때문인지 책은 읽지도 않으면서 ‘인문학’에는 관심을 갖는 ‘인문학 열풍’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책을 읽지 않는 문화 속에서 탄생한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은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꾹방’과 어께를 나란히 하며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분위기입니다.
요즘 출판 시장에 파장을 일으킨 <비밀 독서단>은 책을 주제로 하지만 예능 요소를 접목시켜 대중의 소비자의 구매욕구를 높이고 있습니다. 기존의 책 소개 프로그램들이 전문가 패널을 출연시켜 양질의 정보를 전했다면, <비밀 독서단>은 정찬우, 데프콘, 김범수, 예지원 등이 전문가들이 미리 선정한 책을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춰 소개해 다소 무거울 법한 분위기를 예능감 넘치게 이끌고 갑니다. 연출을 맡은 김도형 PD도 “<비밀독서단>에서는 책에 대한 호평만 존재하지 않는다. 단원들의 솔직한 감상평과 반론, 그리고 단원들의 진솔한 경험담이 더해지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방송이후 <비밀 독서단>의 영향력은 예상 밖으로 컸습니디. 박준 시인의 시집 뿐 아니라 프로그램에서 소개했던 <악당의 명언>, 역대 설득의 고수들의 말을 분석해 설득의 비밀을 풀어낸 <레토릭> 등이 줄줄이 서점가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는 등 미디어셀러의 위력을 마음것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디어셀러는 방송의 영향력으로 홍보 효과만 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방송될 때마다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는 등 출판 시장의 흐름 자체를 미디어의 영향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미디어셀러의 흥행은 <비밀 독서단>과 같은 TV 프로그램 뿐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모바일 시대에 걸맞게 대안 미디어로 등장한 팟캐스트의 경우 미디어셀러의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문학 팟캐스트로 자리 잡은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의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출간된 지 10년이 넘은 ‘이언 맥큐언’의 <속죄>가 소개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절판됐던 일본 작가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에 대해 언급을 하자 출판사에 독자들의 재출간 요청이 쇄도했다고 합니다. 젊은층의 수요가 높은 팟캐스트가 신간 뿐 아니라 책의 출간에 재점화를 일으킨 것입니다.
방송사에서는 책 소개 프로그램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저조한 시청률을 이유로 폐지된 사례들이 있었기에 <비밀 독서단>의 작은 흥행은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시집을 출판한 출판사는 증쇄를 하며 ‘반짝 호황’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40여 년을 버텨온 문예지 <세계의 문학>이 폐간되고, 만성적 적자 타개를 위해 <소설문학>이 잠정 휴간됐다는 소식이 들리는 걸 보면 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그리 많아 보이진 않기 때문에 미디어셀러만 살아남는 현실을 낙관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라고도 합니다.
그래도, <비밀독서단> 이라는 프로가 매력이 있는 이유는 일방적인 주입식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조승연이 소개한 라 로슈프코의 <잠언과 성찰>을 두고 벌인 데프콘, 신기주 기자의 설전이 대표적입니다. 전문가로서 야심차게 <잠언과 성찰>을 소개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데프콘은 책이 너무 어렵다고 투정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잠언식의 책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거나 생각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신기주 기자의 반박에 조승연 단원을 무색하게 만듭니다. 심지어 이날의 책으로 뽑힌 신기주 기자가 소개한 말콤 글래드웰의 <다윗과 골리앗>과 비교가 되면 <잠언과 성찰>의 자리는 더더욱 협소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그저 교양으로서의 책 소개를 넘어, 책을 가지고 물고 뜯는 재미를 주는 <비밀독서단>의 묘미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청자들은 마치 그 책을 읽은 양 프로그램에 소개된 책들을 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이런 책 소개 프로그램의 장단점을 극명하게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맛깔나게 소개되는 과정을 통해 결국 시청자들이 읽어보게 만들고 싶은 것이 그 장점이라면, 결국 남의 말에 불과한 소개를 듣고 자신이 읽은 것처럼 만족하게 되는 단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같이 책을 안 읽은 사회에서 그나마 이렇게라도 책을 접하게 되면 다행이지만, 그냥 그렇게 책을 소비하고 말 가능성도 있기는 합니다.
<비밀독서단>의 김 PD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진정한 독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다. 사람에 책을 대입해야지 책에 사람을 대입하는 건 아니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책을 선정해 가르치기보다 다양한 관점을 전할 것”이라고 말하며 “저자를 출연시키지 않는다”는 원칙도 그래서 세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출연자들은 책이 난해하면 어렵다고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싫다고 말한다. 다른 독법을 솔직하게 말하고 공감 또는 충돌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그걸 본 뒤 시청자들도 소개된 책을 자기 취향에 따라 골라 읽으면 좋겠다.”라고 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가장 재미가 없었던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는 요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요리 경력 30년의 아줌마 한 사람과 젊고 이쁜 아나운서 누나가 나옵니다. 아줌마는 계속 설명을 하면서 음식을 만들고 이뿐 아나운서 누나는 “네, 네” 하면서 대답만 합니다. 거의 일방적인 조언을 듣고 호응만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나오는 꾹방은 차원이 다릅니다. 만드는 법도 예전처럼 몇 미리와 몇 그램을 넣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종이컵으로 몇 컵 정도를 넣으면 된다고 합니다. 어떤 프로그램은 게스트를 초청해서 그들의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냉장고의 주인이 원하는 음식을 15분만에 만들어 승부를 가리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책을 소개로 하는 프로그램도 변화한 것입니다. 더 이상 저명한 작가나 탁월한 교수가 나와서 일방적으로 책을 강추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젠 달라지고 있습니다. 좋은 책들을 추천하고 추천을 받은 책들 가운데 본인이 원하는 책을 선정하여 읽고 각자의 느낌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것입니다.
바른 역사 교육을 위하여 한 종류의 역사 교과서만을 만드는 이 시점에서 같은 책을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든 이런 프로그램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름’을 ‘틀림’이라고 말하는 지나친 독선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한 번 책에서 답을 찾는 인생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 …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디모데전서 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