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팹시티(Fabcity) 운동을 아시나요?
– 도시의 자급자족률을 올려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는 독특한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과거 호텔로 쓰이던 건물을 지역사회에서 인수해서 커뮤니티 센터로 활용하고 있는 건물인데 카페 형식으로 개조해서 오픈한 수리카페(Repair Cafe)가 그것입니다. 커피를 마시거나, 간단한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카페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다른 곳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카페에서는 한 달에 몇 차례 집에 있는 각종 고장난 제품들을 들고와서 서로 고치는 이벤트가 열립니다. 은퇴한 기술자들이나 현역으로 다양한 지식을 가진 분들이 자신들의 실력을 뽐내기도 합니다. 단순히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는 것을 넘어 의미있고 재미있는 협업을 하는 카페입니다.
이 카페는 지나치게 늘어나는 전자제품 쓰레기를 줄이려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 수리카페재단(Repair Cafe Foundation)을 만들고 네덜란드 정부에서 52만 5천 달러의 자금을 지원받고, 사람들의 기부를 받아서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네덜란드 전역에서 30개의 그룹이 시작했는데, 이제는 노르웨이와 영국, 독일, 프랑스, 벨기에 등에도 공감을 하는 그룹들이 수리카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수리를 하는 제품은 간단한 옷가지부터, 오래된 커피메이커, 고장난 조명기구 등은 물론 전기청소기나 세탁기와 같은 대형 제품들도 있습니다.
200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처음 생긴 수리카페는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모색하던 네덜란드 언론인 ‘마르틴 포스트마’가 시작했습니다. 암스테르담에 만든 첫 수리카페가 큰 호응을 얻어 이용자가 늘자 그는 수리카페 운영과 확산을 지원하기 위해 2011년 비영리 재단을 설립합니다. 재단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의 수리카페는 1,178개. 스위스 전역의 29개 수리카페는 올해 10월 29일 제 1회 ‘수리의 날’ 행사를 열어 쓰레기로 버려질 운명이던 물건을 800점 이상 되살렸으며 아시아에는 일본과 인도에 수리카페가 있습니다.
그냥 수리하는 것과는 달리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서로 배우고, 직접 해본다는 측면에서 수리카페의 분위기는 과거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는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경험을 선사하고, 이웃들 사이의 결속도 다지며, 은퇴한 사람들에게는 멋진 소일거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함부로 제품을 버리거나 낭비를 하는 것을 방지하는 심리적인 효과도 주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더욱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평가 받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환경을 위해 무엇인가를 같이 하고, 고장났던 것이 고쳐져서 동작하게 되는 것 자체에서 얻는 기쁨뿐만 아니라, 자원봉사 기술자들은 자신들의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증명하며 인기인으로 부각되기도 합니다. 또한, 더 이상 낯설고 무서운 이웃들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이웃사촌과 같은 관계도 회복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카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지역사회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수리카페의 모습은 자급자족 도시에 도전하는 팹시티(Fabcity) 프로젝트의 한 형태입니다. 팹시티는 세계 팹랩 네트워크가 중심이 돼 추진 중인 프로젝트입니다.
팹시티는 2054년까지 도시의 자급자족률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리려는 글로벌 프로젝트입니다. 외부에서 생산된 것을 들여와 소비하고 쓰레기를 배출하는 도시가 아니라 식량과 에너지, 생활물품 등 도시에 필요한 것들을 자체 생산하고 재활용을 통해 쓰레기를 줄이며 자급자족의 기술과 정보를 공유하는 전지구적 네트워크를 지향합니다.
팹시티는 전세계 팹랩이 모이는 연례회의로 2014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팹10에서 처음 아이디어로 제안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바르셀로나 시장은 향후 40년 안에 자급자족률 50% 이상을 달성하려는 바르셀로나의 계획을 소개하며 다른 도시들의 동참을 촉구합니다. 이듬해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팹11에서 보스턴을 비롯해 중국 선전, 남아공의 에쿠룰레니 등 7개 도시가 프로젝트 합류를 선언한 데 이어 현재 전세계 16개 도시(지역, 국가 포함)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올해 중국 선전에서 열린 팹12에서 벨기에 브뤼셀, 브라질 쿠리치바, 영국 런던, 이탈리아 로마, 덴마크 코펜하겐도 내년부터 동참하겠다고 밝혀 참여 도시는 계속 늘어날 전망입니다.
팹시티의 구체적인 매뉴얼이나 평가 기준은 아직 없지만, 기본 전략은 백서로 나와 있습니다. 각 지역의 고유한 자원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환경 친화적 첨단 제조 생태계, 태양열 등 재생에너지 기반의 분산형 에너지 생산, 블록체인 방식의 전자화폐를 이용한 지역 통화, 식량 자급을 위한 도시 영속농업, 만들기를 통한 배움을 중심에 둔 미래를 위한 교육, 정부와 시민 영역의 민관 협력 등이 있습니다.
핵심은 생산적이면서 지속 가능한 도시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입니다. 팹시티는 도시 문제 해결을 위한 지식과 경험을 도시들끼리 공유합니다. 디지털 제조 실험실로서 거의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장비와 교육 프로그램을 갖춘 팹랩은 만드는 사람들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사회 혁신을 주도하는 플랫폼 역할을 맡게 됩니다.
바르셀로나와 암스테르담, 파리는 팹시티의 프로토타입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파리는 팹시티를 추진하는 민관 협력기구를 만들었고, 암스테르담은 팹시티 구현을 위한 건축과 디자인을 소개하는 전시로 올해 4월부터 두 달간 팹시티 캠퍼스를 운영했고 바르셀로나 팹랩은 디지털제조와 식량, 에너지의 3개 분야에서 자급자족을 실험하는 발다우라랩을 가동하며 팹시티 건설을 위한 기술과 원칙을 개발 중이라고 합니다.
도시의 팹랩이 주도하는 팹시티 프로젝트와는 별도로, 남미에서는 아마존 원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아마존 강에 팹랩을 띄우는 계획이 진행 중입니다. 2013년 페루의 팹랩이 제안해서 남미의 여러 팹랩 등 20개국 50여 명의 전문가들이 협력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기술과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소외된 채 가난과 범죄로 망가져가는 원주민 공동체를 재생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원주민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면서 아마존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고 교육을 하는 데 팹랩의 기술과 인력, 경험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전기, 식량, 주택, 생활용품 등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하고, 원주민 스스로 관리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교육을 병행합니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아마존 팹랩은 페루에서 브라질까지 아마존 강을 따라 오르내리는 이동형 팹랩과, 오지까지 들어가서 활동할 수 있는 거점이 되도록 강 연안의 주요 지점에 정박하는 고정형 팹랩을 최소 10개씩 만들어 운영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만드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권리 중 하나로 ‘자가수리(Self Repair) 선언’이 있습니다. 물건을 사서 쓰다가 망가지면 버리는 데 익숙한 소비주의를 거부하고, 고쳐 쓰자는 이 선언은 고칠 수 없으면 소유한 게 아니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수리가 재활용보다 낫다’, ‘수리는 지구를 구한다’ ‘수리는 사람과 사물을 연결한다’ 등 이 선언을 구성하는 문장들은 생활 방식을 바꾸자는 제안일 것입니다
어린 시절 목공소와 전파사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왠만한 가구나 전기제품은 모두 거기에 가서 고쳐서 사용했습니다. 기술이 좋아지면서 망가지는 일이 줄었고 A.S 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이젠 과거속의 장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젠 고치는 값이나 새 것을 사는 값이나 큰 차이가 없다보니 고치는 번거러움 보다는 새로 사는 즐거움을 택하기도 합니다. 결국 새 것을 얻는 동시에 새로운 쓰레기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혹시, 이런 기술이 있으신 분들이 계시면 고치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예수님처럼 수리 카페를 한 번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요?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시편 147:3)
임기호 목사는 다음세대와 문화사역을 위하여 ‘메시지 커뮤니티 교회’와 ‘메시지 스쿨’을 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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