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 자선냄비를 끓게 하자!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이건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사회는 악한 사회고, 공감하고 협력하며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는 선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선의의 경쟁도 힘들고 어려운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한 경쟁사회는 사회를 피폐(疲弊)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행동주의 철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그의 책 『공감의 시대』에서 20세기가 석유 에너지를 기반으로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경제 체제였다면, 21세기는 오픈 소스와 협력이 이끄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라며 다윈의 적자생존이 아닌 공감하는 인간이 이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20세기를 지배하던 경쟁의 문화는 공감의 문화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한 축을 이끌고 있는 구세군 불우 이웃을 위한 자선냄비 운동이 있다. 필자는 김환기 사관으로부터 구세군 자선 냄비를 섬겨달라는 요청(?!)을 받고 지난주 토요일(13일) Chullora Market에서 일던 자선 모금에 참여했다. 자선냄비 자원봉사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이라서 걱정도 많았지만 참여한다는 단순한 생각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다. 필자는 연합교단(Uniting Church in Australia)소속인 Parramatta Mission에서 매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약200여 명의 노숙자(Homeless)들에게 아침/점심을 제공하는 곳에서 사역하고 있다. 노숙자들/ 알코올 독자들/ 마약 중독자들 다양한 분들이 다녀가는 곳이라서 예측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들이 있는 곳에서 건강한 시민들과 직접 마음을 공감하는 자리로 바꾼 것뿐인데도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매년 12월이 시작되면 등장하는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운동은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유래는 1891년 성탄이 가까워져 오던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그 첫 종소리를 울리게 되었다. 도시 빈민들과 갑작스러운 재난을 당하여 슬픈 성탄을 맞이하게 된 천여 명의 사람들을 먹여야 했던 한 구세군 사관(조셉 맥피 정위)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옛날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누군가가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그는 오클랜드 부두로 나아가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 솥을 다리를 놓아 거리에 내걸었다. 그리고 그 위에 이렇게 써 붙였다. 이 국솥을 끊게 합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성탄절에 불우한 이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만큼의 충분한 기금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웃을 돕기 위해 새벽까지 고민하며 기도하던 한 사관의 깊은 마음이 오늘날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매년 성탄이 가까워지면 실시하게 되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정신은 오늘날 모든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타고 우리 사회 깊숙이 파고들어 모든 이들에게 이웃사랑의 절실한 필요성을 되살려 주고 있으며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 만들기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1928년 12월 15일 당시 한국 구세군 사령관이었던 박 준섭(조셉 바아) 사관이 서울의 도심에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불우 이웃돕기를 시작하게 되었다.(구세군 자선냄비 자료 중에서)
스페인의 역사철학자 호세 오르테가이가세트는 “인간에게 본성이란 없다. 그에게는 오직 역사가 있을 뿐이다”이라고 했다. 이 말대로, 그 소외당하는 이웃들을 그렇게 만든 건 그들이 겪은 역사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분명 개인의 책임도 분명 있다. 그러나 일정 부분 그 사회와 경제와 정치적인 왜곡에서 오는 소외도 분명 있지 싶다. 그래서 선진국일지라도 세상에는 늘 그늘진‘소외된 자’ ‘가난한 자’ ‘병든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말이 있다. 즉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밥을 보태면 한 사람이 먹을 만한 양식이 된다는 뜻으로, 여럿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쯤은 도와주기 쉽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호주에 있는 한인Community에서 적어도 이민 1세대는 한국 현대사가 가르쳐 준 나쁜 보편적 신념 하나가 있다. 그것은“내 코가 석 자인데 남 사정 봐줄 여유가 어디 있나?”라는 말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문화와 사회가 다른 국가에서 이민자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웃을 돕기 위해 새벽까지 고민하며 기도하던 한 사관의 깊은 마음과 그 정신은 오늘날 모든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타고 우리 사회 깊숙이 파고들어 모든 이들에게 이웃사랑의 절실한 필요성을 되살려야 한다.
호주 구세군에서는 12월 24일 자정까지 자선냄비를 운영한다고 한다. 가까운 상가나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어려울수록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작은 신음 소리까지 마음으로 듣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이지 싶다. 세상이 아름답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름답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눈물나게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겠는가?
전현구 목사(시드니조은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