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핑계와 변명
가난뱅이와 부자의 차이는 무얼까.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가난뱅이는 변명을 찾고, 부자는 교훈을 찾는다고 한다. 변명은 실패하는 사람의 습관이다. 실패를 되풀이하는 이들은 대개 핑계가 많다. 변명거리를 챙겨두면 실패해도 아프지가 않다. 얼마든지 빠져나갈 구멍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명은 가장 치사한 발명이라고도 한다. 변명하는 습관은 누구에게서 비롯됐을까? 유신정권과 오공정권을 비난했다고 해직되었던 우리들의 스승 조요한 교수님은 플라톤이 쓴 〈변명 Apologia〉을 필독하라고
강조한 적이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다룬 철학적 대화편인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는 고발자들의 비난에 대답하면서 자신이 살아온 내력과 자신의 도덕적 입장을 이야기한다.
서양 문학에서 유명한 변명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몽테뉴는 수필 〈레몽 세봉의 변명 Apologie de Raimond Sebond〉에서 15세기의 한 스페인 사람의 믿음을 변호하면서 이를 구실로 인간의 이성이 무익하다고 주장한다. 〈미스터 콜리 시버(희극배우)의 생애에 대한 변명 An Apology for the Life of Mr. Colley Cibber(Comedian)〉은 18세기 영국의 배우이자 감독인 콜리 시버가 알렉산더 포프의 비판에 응수한다. 뉴먼추기경이 쓴 〈나의 생애를 위한 변명 Apologia pro Vita Sua〉후에 〈나의 종교적 견해의 내력 History of My Religious Opinions〉으로 개명)은 로마 가톨릭 교회로 개종하게 만든 일반적 종교 원리를 검토한 정신적 자서전이다. 이렇게 인간은 누구나 변명을 한다.
<사기>를 보면 항우 같은 장수도 ‘하늘 탓’을 했다. 한나라 군사에 포위된 항우는 이런 말로 최후를 장식한다. “나는 70여 차례를 싸워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그런데 나는 오늘 죽기로 결심했다. 이는 하늘 탓이지 내 탓이 아니다. 포위를 뚫고 적장을 죽여 보임으로써 하늘이 나를 망쳤다는 증거를 후세에 남기겠다.”하늘 탓을 했지만 항우는 적어도 비겁하지는 않았다. 강동(江東)으로 가 후일을 도모하라는 권유를 물리치고 자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우처럼 사람 죽이기를 파리 잡듯이 했던 냉혈한들을 보면 대개가 용렬(庸劣)하다. 유고의 독재자 밀로셰비치 같은 자는 인종 청소를 “국민을 보호하려는 정의의 실현”이라고 강변했다.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독일의 아돌프 아이히만은 “나는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발뺌하기도 했다.
일찍이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가 호모 사피엔스(지혜 있는 사람)란 학명을 붙인 이래 인간에게는 다양한 이름이 부여됐다. 인간은 호모 루덴스(유희인)이며 호모 로퀜스(언어인)이다. 동시에 호모 폴리티쿠스(정치인)이자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인)이며 호모 릴리글로수스(종교인)이다. 휴대전화를 생활화한 호모 모빌리쿠스로 불리는 작금의 세상이다
덧붙인다면 인간은 변명의 동물이요 핑계의 동물이다. 오래 전 우리 조상은 이 인간 속성을 파악했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은 있다’거나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속담이 증거다. 인간은 변명하고 핑계를 대며 산다. 거짓말이 그렇듯 어쩔 수 없이 하는 선의의 핑계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핑계의 자기복제적 속성을 경계해야 한다. 변명은 변명을 낳고, 핑계는 핑계를 낳는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솔직하게 인정하고 책임을 지기보다는 핑계로 빠져나가다 보면 다른 핑계를 계속 대야 한다. ‘비 오는 달밤’이라는 비문(非文)이 있다. ‘검은 백마’처럼 성립되지 않는 표현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난센스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환한 달밤에 비가 내리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검은 태양이 떠오르기도 한다. 아닌 척 얄팍한 속임수와 변명 그리고 핑게가 들어 있는 가난한 양심이다
‘타면자건(唾面自乾)’이란 얘기가 있다. 이 말은 “만약 어떤 사람이 얼굴에 침을 뱉는다면 그것은 뭔가 크게 화가 날 일이 있었기 때문이므로 바로 그 자리에서 침을 닦아 버린다면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게 되니 그 침이 마르도록 내버려둬야 한다”는 뜻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속내를 감히 들어내 놓을 수 없을 때 참 필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사도바울은 주님의 사랑을 이렇게 전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고,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은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

전현구 목사 (시드니조은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