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101)
마저리 하포드 디커니스 – 훗날 닐 부인 (1931. 7. 28)
한국명: 하경진 선생, 진주 1962-70; 서울 1970-77; 대전 1978-80

디커니스 마저리 하포드는 뉴헤브리데스를 섬기던 간호사였고 1962년 3월 29일 데스 닐 목사와 결혼하기 위해 한국으로 떠났다. 데스는 서울에서 2년의 언어공부를 마쳤기 때문에, 닐 가족은 1962년 6월 진주에 거처를 결정하였다. 마저리는 열정으로 가지고 선교회의 삶으로 들어왔다. 이어지는 4년 동안 세 명의 자녀들 스테판 존 (1963. 3. 17), 엘리자베스 앤(1964. 8. 29), 헬렌(1965. 11. 26)이 태어났다. 게다가 닐 가족은 많은 숙고 후에 두 명의 어린이 크리스틴 조안(1965. 7. 23)과 필립 제임스(1967. 8. 31)를 입양했다.
마저리는 1967-68년 휴가 기간 동안 건강이 악화되어 고생을 했고, 부산에서 사는 2년 동안 더 악화되었다. 그녀의 건강은 1970년 가족이 서울로 이사한 후에 회복되었다.
마저리는 리처드 루트(Richard Rutt)의「한국의 일과 하루(Korean Works and Days)」에 매혹되었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동안 줄 곳 한국역사와 전통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1970년 서울로 이사한 후, 그녀는 왕립아시아학회(the Royal Asiatic Society)의 활동에 참여했고, 1973년부터 객원 총무가 되었다. 그녀는 또한 국립박물관과 서울 가든 클럽에도 참여했다.

1973년에 그녀는 한국대학 외국학 분야에서 한국역사와 문화에 대한 강좌를 수강했고 여성복지협회(the Girls Welfare Association)를 위한 프로젝트에 관계했다.
1977-78년 그들이 영국에 있는 동안에 마저리는 버밍햄에서 원기회복 과정(a nursing refresher course)에 참여했다. 1979년부터 머저리는 호주에서 자녀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데스는 1981년 9월부터 가족들과 함께 살기 위해 돌아왔다.
호주로 돌아와서 마저리는 브리즈번의 마터병원에 취직했고 신생아 집중 캐어 훈련소에서 일했다. 그녀는 건강과학(간호)으로 대학과정을 마쳤고, “현재 윤리적 결정에 사용되는 생명윤리 구조 안에서 간호윤리”를 연구해서 신학사(B.Th)와 석사(MA)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그녀는 PhD 프로그램에 등록해서 2009년에 마쳤다. 논문의 제목은 “간호사들의 윤리적 결정 조사”였다.
마저리는 1993년에 호주연합교회 목사로 안수를 받았고, 한동안 로마에서 섬겼다. 반면, 성공회 신부가 된 데스는 마저리와 같은 도시 안에 있는 성공회 교회에서 목회하였다. 그녀는 2000-2001년에 센트럴 다운스(Central Downs) 교구에서 섬겼다.

정병준 교수
(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