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104)

바바라 헬렌 마틴 의사 (1933. 10. 30)
한국명: 민보은 선생, 부산 1964-95
바바라는 1957년에 멜번대학(MB BS)을 졸업하고, 영국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시험에 합격했을 즈음에, 호주장로교선교회(APBM)로부터 맥켄지 의사의 1964-65년 휴가 동안 대리의사로서 일해 줄 것을 요청하는 초청을 받았다. 바바라는 그 이전에 네팔에 대한 소명을 느낀 적이 있었으나, 많은 기도를 한 후에 1965년 6월 한국으로의 정식 선교사직을 받아들였고, 총 32년을 한국에서 살았다. 훗날 그녀는 한국인 의료 등록과 전문의 자격을 획득하였는데 둘 다 그녀의 지속적인 사역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1965년 헬렌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후, 바바라는 서울의 어학당에서 공부했고 한국어에 대해 훌륭한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바라의 주요 사역은 점차적으로 조산사들과 전문의들을 이론적으로 임상적으로 훈련시키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일상적인 일 혹은 훨씬 더 복잡한 산부인과의 일에 많은 시간을 사용했다. 1976년 맥켄지 의사가 은퇴한 후, 바바라가 맡은 주요 책임은 레지던트 의사들의 대학원 훈련를 시키는 것이었다. 이듬해에는 코랠리 렌들 쇼트 교수(Prof Coralie Rendle-Short)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캐스 맥켄지의 은퇴 이후 1978년 11월부터, 바바라는 조산사들에게 비정상 조산에 대해 가르치는 책임을 맡았다. 산부인과 전문의 돈 마스던(Dr. Don Marsden)은 1978년 말부터 1979년 동안 임상활동에서 그녀를 일을 경감시켜 주었다.

1968년 중반 여러 차례의 설사병으로 인해 그녀는 병원 일을 줄여야 했다. 그러나 그해 후반 휴가 중에 건강을 회복했고, 멜번에서 원기회복과정을 연구했다. 업무의 과중과 병원의 전문 의사의 부족으로 인해 향후 휴가는 기간이 줄고, 그녀가 전문성 유지를 위해 참가하는 컨퍼런스나 원기회복 과정과 연결하여 계획되었다. 1977년 그녀는 왕립대학 산부인과의 특별회원으로 승인되었다. 그리고 1981년에는 새로 설립된 오스트레일리아 칼리지에서 특별회원으로 승인되었다.
한국인 산부인과 협회에 참여하는 것은 병원훈련 프로그램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바바라는 레지던트들이 협회에서 논문을 발표할 수 있도록 도왔고 그녀가 협회의 회원으로서 따뜻하게 수용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매우 기뻐하였다. 바바라는 또한 산부인과 아시아 회의들과 그녀의 특별한 의학적 관심이 된 융모성질환(trophoblastic disease) 세계학회 모임에서 논문들을 발표했다. 1978년부터 그녀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 외에 의료부원장으로서 행정적인 부담이 증가되었다. 그녀는 청주의료센터에서 오랫동안 이사로 섬겼고 양지재활센터가 1987년 건축할 때 이사회에서 일하면서 많은 지원을 하였다.
그녀는 1985년 10월 의료 공적을 치하하는 대한적십자사 박애상을 받았고 1993년 12월에 부산의 명예시민이 되었다.
1990년 바바라는 말기완화치료(palliative care)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1994년 6개월간 영국의 호스피스 사역에 대해 공부하고 경험을 가졌다. 그리고 일신병원으로 돌아와서 그곳에 호스피스 활동을 시작했고 1995년 11월에 선교사역을 마쳤다. 이로써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일신병원 산부인과에서 가르치고 치료하는 32년간의 헌신적인 봉사가 끝이 났다. 그녀의 마지막 수 년 동안에 매년 10,000명 이상의 아기들이 병원에서 태어났다.
호주로 돌아온 이후 바라라는 1996-2004년 뉴캐슬에서 말기완화치료분야에서 일했고, 그 이후로 멜번의 노선 호스피탈(Northern Hospital)에서 말기완화치료 자문으로 일했다.

정병준 교수
(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