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11)
아그네스 브라운, 엥겔 부인 (1868. 8. 11-1954. 8. 16)
한국명: 브라운, 왕길지 목사 부인, 부산 1895-1919; 평양 1919-37
아그네스 브라운은 벨레 멘지스 선교사를 배출한 발라랏의 에벤에저 교회 출신으로 일정한 간호사 훈련을 받고 1895년 12월 3일에 부산에 도착했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는 아담슨 부인이 사망한 직후였고, 아담슨 목사와 PWMU 선교사들 사이의 관계가 매우 악화되었을 때였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한국인들의 신뢰와 우정을 받을 수 있는 재능과 자질이 있음을 증명하였다. 조용하면서도 명랑한 성품과 민감한 유머감각, 거기에 강한 체격을 부여받은 그녀는 조금만 허약했더라면 자신을 깨뜨리고도 남았을 큰 어려움들을 견디어 낼 수 있었다.
브라운은 약간의 한국어를 습득하자마자 부산진 근처 마을에 사는 여성들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한사람의 전도부인은 북동쪽에 있는 마을과 읍들을 향해, 울산 북쪽의 평영(Pyung Yung)까지 이르는 긴 여행들을 시도했다. 그녀는 멘지스와 무어가 병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동안에 전도활동을 지속했다. 브라운은 부산진의 소녀들과 여성들 사이에서, 동료 선교사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브라운과 다른 여선교사들은 엥겔 부부가 도착한 이후 자신들의 집을 비워주고 3년 동안 오래된 초가집에서 살아야 하는 불편함을 겪었다.
브라운은 여러 학교들과 여성들을 위한 주ㆍ야간 학급에서 가르쳤다. 또한 고아원의 소녀들을 돌보는 책임도 감당했다. 그녀는 간호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자주 불려갔다. 동래 시에 전도를 시작한 사람은 바로 브라운이었다. 그녀는 순회 사역을 떠나지 않는 한 1907년까지 대부분의 주말을 그곳에서 가르치고 예배를 인도하였다. 그녀는 전도부인들을 훈련하고 감독했다. 또한 호주선교회 지역 내 여성들을 위한 연간 사경회와 대구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사경회에서 가르쳤다. 그녀는 마을로 이사 온 일본인들을 방문해서 그들에게 복음서들을 팔았다.
브라운과 엥겔은 그녀의 두 번째 휴가 기간 중인 1907년 7월 3일 에벤에저 교회에서 결혼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아그네스는 결혼 전에 했던 활동을 지속했고 때로는 남편과 함께 순회사역을 떠났다. 그러나 1909년에 그녀의 활동은 주로 부산진에서 여성을 위한 주일 오후반, 연간 여성사경회, 성경학원, 동래의 사경회에서 가르치는 일로 한정되었다. 1911년 10월 21일 그들의 첫째 아들 프랭크 엥겔(Frank Engel)이 태어났지만 활동은 줄지 않았다.
1919년 엥겔 박사와 그 가족은 평양으로 이사하였고 그곳에서 17년 동안 아그네스는 여전히 한국에 남아있는 자기 자녀들과 평양에서 공부하는 호주선교사들의 자녀들을 보살폈다. 1932년에서 은퇴할 때까지 그녀는 평양의 여자성경학원에서 가르쳤고 또한 일본 여성들에게 전도와 교육활동을 하였다.
1937년 선교회 의사록은 그녀의 은퇴에 경의를 표하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사귐에 풍미를 더하며 많은 어려움을 부드럽게 하는 그녀의 번득이는 재치는 그녀가 지닌 재능들 가운데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한국인, 일본인, 서구인들을 향한 그녀의 진실한 우정으로 인해 그녀의 집은 많은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었다. 그녀가 떠나는 것을 슬퍼하는 친구들 가운데는 일본부인들을 위한 성경공부반 회원들이 있었다 …”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