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29)
제시 메클라렌 부인(본명: 리브) (1883. 3. 22-1968. 3.28)
한국명: 마 의사 부인, 진주 1911-1923; 서울 1923-1938
제시 리브는 1883년에 호바트(Hobart)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들어가기 전 2년 동안 인도의 푸나(Poona)에서 선교사로 일하는 아버지를 도왔다. 대학에 들어간 후 그녀는 학생자원자가 되었고, 학생기독교운동(SCM)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호주ㆍ뉴질랜드 학생기독교운동의 순회총무가 되었다.
제시 매클라렌은 진주에서 작은 유치원을 세우고 운영하는 것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기여를 하면서 선교회의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제시는 한국어를 말하고 쓰는데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서울에서 사는 동안 그녀는 기독교 서적의 출판에 참여했는데 한국어를 실력을 잘 발휘하였다.
매클라렌 부부는 1923년에 딸 레이첼(Rachel)이 태어나기 전에 고아 또는 버려진 세 명의 딸들을 입양하여 길렀다.
매클라렌 부인은 심각한 심장 질환으로 고생을 했으나 친절한 상담자였고 누구에게든지 깊은 친구가 되었다. 진주와 서울에서 찰스와 제시가 살았던 집에는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고, 따뜻함, 평화, 재치, 지적인 토론이 넘치는 장소가 되었다. 매클라렌 부인은 훌륭한 정원사였다. 서울에 있는 그녀의 정원에는 수 백 종류의 한국 식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서울에서 사는 기간 동안 제시는 이화여자대학교의 정원을 설계하고 조경을 하고 간수했다. 1936년에 매클라렌 부인은 이화여자대학의 이사회에 임명되었다.
제시 매클라렌은 1968년 3월 28일에 사망했고 선교회는 의사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을 남겼다.
선교사의 딸, 제시 매클라렌(리브)은 찰스 매클라렌이 그랬던 것처럼 학생자원운동(SVM)에 참여했다. 그녀는 1911년 8월에 그와 결혼했고 두 달 후에 한국으로 갔다. 그녀의 남편에게 있어서는 완벽한 조력자(foil)였던 제시 매클라렌은 그녀 자신의 것이 될 때까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공부하면서 한국과 한국인을 섬겼다. 그녀는 한국인들의 친구이며 상담자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인, 미국인, 호주인 동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그녀는 심장질환으로 활동에 제약이 있었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은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1940년에 레이첼과 함께 호주로 돌아갔고, 그들은 일정기간 사실상의 옥살이를 하고 돌아온 의사 찰스와 1942년에 재회했다. 은퇴한 이후에도 그들은 1957년에 찰스가 사망할 때까지 개인적인 사역을 함께 했고 제시는 11년 후에 사망했다. 위대한 한 인생이요. 놀라운 동반자였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