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32)
아미 엘리자베스 왓슨 부인 (본명: 비어드) (1889-d. 1935. 4)
한국명: 왕대선 목사 부인, 마산 1912-13; 통영 1913-28
아미 비어드는 빅토리아의 농촌 찰톤(Charlton)에서 태어났고 후에 두널리(Dunolly) 주립학교 근처로 이사했다. 그녀는 매리보로의 퀸즈 칼리지(Queen’s College, Maryborough)에서 장학금을 받았고, 멜번 대학에서 우등학위(honors)로 석사(MA)를 마쳤다. 그녀는 로버트 왓슨을 만나기 전에 이미 PWMU의 선교사로 한국을 지원하려는 결심하고 있었다.
로버트는 아미 보다 앞서 한국으로 출발했으나, 아미와 다른 선교사들이 타고 오는 배를 기다리기 위해 상해로 갔다. 로버트와 아미는 그곳에서 1911년 10월 26일에 찰스 매클라렌 의사의 주례로 결혼하였다.
1914년 1월, 통영에 도착한 지 수개월이 지나 왓슨부인은 여자아이들을 위한 소학교를 세웠고 1917년 휴가 때까지 그 학교의 교장으로 섬겼다. 그녀는 또한 낮에 학교에 올 수 없는 여성과 소녀들을 위해 야간학교를 운영했다. 그리고 세례준비자들이나 세례 받으려고 하는 여성들을 위해 주일오후에 공부반을 운영했다. 통영에는 주중에 하루 오후에 여자아이들에게 수예, 성경, 노래를 가르치는 학급이 시작되었다. 일부 비기독교 여성들이 이 학급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다. 왓슨 부인은 한국여성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넓히려고 애썼다.
왓슨 부부는 한국에서 세 아들, 조크(Jock), 도날드(Donald), 데이비드(Daivid)를 길렀고, 1923년에 쌍둥이 딸이 태어나자마자 죽는 아픔을 겪었다.
동료들 중에 한 사람은 왓슨 부인에 대해 “한국인들, 동료선교사들, PWMU는 왓슨 부인에게 결코 값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다.”고 기록했다. PWMU는 연합회를 위한 왓슨부인의 헌신적인 사역에 대해 따뜻한 평가와 감사를 기록했다.
왓슨부인은 한국의 이야기에 대해 훌륭한 기록자였고 이야기꾼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들 중 많은 것이 PWMU의〈연대기〉(Chronicle)에 출판되었다.
1917년 왓슨부인은 건강이 나빠서 어려움을 겪었고 계획보다 일찍 휴가를 떠나야 했다. 그녀의 건강 악화는 남은 인생 줄 곳 지속되었고, 1928년에 로버트와 아미 왓슨의 훌륭한 선교사 경력을 끝내도록 하였다.
동료 선교사들은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왓슨부인은 이 나라에 온 이후로 교회의 여성들과 남녀 어린이들 사이에서 일하면서 자기 몫을 다해왔다. 그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도구였다. 그녀는 아름답고 생생한 기록을 통해, 그리고 연약한 고통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는 사역을 통해 우리를 크게 도와주었다.
왓슨 부인은 1935년 호주에서 사망했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