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39)
캐서린 제이 레잉 디커니스(?-1967. 5.23)
한국명: 양요안(梁要安) 선생, 진주 1913-15, 1916-32; 마산 1915-16
캐서린 레잉(Catherine J. Laing)은 빅토리아 PWMU(The Presbyterian Women’s Missionary Union)에 의해 임명되었으나 퀸즐랜드 출신이었고 퀸즐랜드 장로교회여전도회(PWMU)에 의해 지원을 받았다. 그녀는 빅토리아의 디커니스 훈련소에서 교육을 받았고, 1912년 12월 디커니스로 임직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퀸즐랜드 PWMU를 위해 일했고, 1913년 9월 4일에 한국에 도착하였다.
레잉은 마산에서 보낸 일 년(1915-16)을 제외하고 19년의 한국생활 전체를 진주지역의 여성들 사이에서 사역하였다. 그녀는 지치지 않는 순회전도자로서, 그 지역 전역에 있는 여성 모임들을 방문하였고, 그들을 각 지역의 중심지들로 모아 7-10일 동안의 연례 사경회를 개최했다. 그녀는 전도부인을 감독하는 책임이 있었다. 그녀는 매년 한 그룹의 드러나지 않은 지도자 그룹을 준비시켜 부산에 있는 5년 과정의 성경학원에 참여시켰고, 그녀는 그곳에서 가르쳤다. 그녀는 주일학교를 조직하고 가르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마을 교회 안에 야학을 조직하고 가르쳤다. 그녀는 많은 방법으로 기독교여성들의 성장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했던 전도자였다.
대공황으로 인해 퀸즐랜드 PWMU는 지원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1932년 말 한국에서 레잉을 철수시킨다는 결정이 내려졌을 때, 그 지역에서 800명 이상의 여성들은 레잉이 계속 더 머물 수 있도록 재고하고 허락해 달라고 선교회에 요청하는 청원서에 서명을 하였다. 그러한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호주교회는 레잉의 철수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디커니스 레잉은 호주로 귀국한 후 퀸즐랜드 PWMU의 조직 총무가 되었다. 그녀는 1933-56년 동안 총무로서 퀸즐랜드의 전역을 여행하면서 섬겼다. 그러나 결국 한국과 선교활동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고, 브리즈번(Brisbane)에 있는 한국 학생들은 도움을 받기 위해, 또한 한국어를 말할 기회를 갖기 위해 자주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조용한 성품과 다정한 기질의 사람이었던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 레잉은 1967년 5월 23일에 사망했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