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47)
스텔라 매이 스코트(?-1961. 7)
한국명: 서오성(徐五星), 마산 1916-19; 거창 1920-41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한 11명의 아이를 낳은 대가족의 첫째로 태어난 스텔라 스코트(Stella May Scott)는 그녀의 삶의 특징이 된 책임감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일찍부터 발전시켰다. 그녀는 음악교사였고 주일학교 선생이었다. 스텔라 스코트는 1916년 3월 초에 한국에 도착해서 전도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그녀는 처음에 마산에 배속되었고 1920년 거창으로 이전할 때까지 주로 마산에 거주했다. 거창에서는 21년을 머물렀다.
스코트는 복음전도자였다. 불신자 가정의 어린이들을 위한 주일 학교에 찾아온 어린이든지, 아니면 여자 성도들의 가정을 방문할 때, 외국인을 보기 위해 찾아온 여성들이든지, 그녀는 늘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
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는 또한 선생이었다. 그녀는 20년 동안 거창에서 학교 운영의 책임을 맡았고, 많은 시간을 유치원을 위해 할애했다. 매년, 그녀는 5년 과정의 여자성경학원에 참여할 여성 집단을 준비시켰다. 그녀는 어린이들 위한 성경학급도 운영했다. 한때 그녀는 수 년 동안 농촌지역을 광범위하게 순회하면서 지역사경회를 열고 가르쳤는데, 인근 마을 교회들로부터 여성들을 중심지로 불러 모아 성경과 기독교 신앙을 가르쳤다. 그녀는 전도부인들과 성경을 파는 권서들을 훈련시키고 감독했다.
스코트는 매우 적응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흉내를 잘 내었고 선교사역의 여러 가지 측면에 도움을 주는 능력이 있었다. 그녀는 지침이 없이 일했다.
스코트는 1940년 휴가를 마친 이후, 전쟁으로 인해 한국으로 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빅토리아의 이스트 브룬스윅(East Brunswick)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노우드(Norwood) 지역의 교회들에서 디커니스로 섬겼다. 그녀는 은퇴 직전에 학교에서 종교교육을 했고, PWMU 문서보관소의 사서로 일했다. 스텔라 스코트는 1961년 7월 말에 사망했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